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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정부’만 고결하다는 시대착오] [대법원-헌재 갈등]

뚝섬 2022. 7. 8. 06:47

운동권 정부’만 고결하다는 시대착오 

 

지난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린 6·10 민주 항쟁 기념식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 윤상원 열사, 1986년 전방 입소 반대 시위 중 분신한 김세진·이재호 당시 대학생 등 민주화 유공자 15명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이 주축인 전(前) 정부가 아니라 그들에게 “기득권·부패 세력”이란 말을 듣고 있는 이번 정부가 1980년대 운동권의 상징적 인물들에게 훈장을 추서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훈장증엔 ‘대통령 윤석열’이라고 커다랗게 씌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부 신문은 ‘전 정부가 심사했고 (이번 정부는) 전달만 했다’고 애써 강조했다. ‘민주주의 발전 유공자’에 대한 포상은 2020년 시작했다. 누가 결정했든 이 정부로선 정해진 일을 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외면했던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빚 고문’도 한동훈 법무부에서 해결됐다. 국가 실수로 초과 지급된 5억원을 피해자들이 몇 년 동안 못 갚다 보니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갚아야 할 돈이 15억원이나 됐는데, 전 정부는 ‘이자 탕감’을 결정한 법원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용 결정은 한 장관 취임 직후 나왔다. 그는 미적거렸던 전임자들과 달리 전격적으로 공적(公的) 결정을 내렸다.

 

1960~1970년대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들 눈물을 닦아주고 1980년대 열사들을 추모하는 일은 ‘운동권 정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대는 바뀌었다. 정부 인사들이 5·18 기념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행정안전부가 6·10 기념식을 주최한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공식적인 역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운동권 자신들이다. 일부 정치인은 여전히 ‘그 시절’ 관성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대선 패인(敗因) 분석에서 “함께 힘을 합쳐 가짜 민주주의, 수구 냉전, 신자유주의를 이겨내자”고 썼다. 그는 유난히 ‘동지적 덕성’ ‘고결한 도덕성’ ‘순결한 사상’을 강조했다. 운동권 특유의 ‘우리는 깨끗하고 나머지 세상은 타락했다’는 인식에선 미성숙함마저 엿보였다. 지난 정부 사람들에게서 “어디 감히 문재인 정부 적폐란 말을 입에 담느냐”(이해찬) “감히 임명받은 권력이 겁대가리 없이 어디 건방지게…”(이재명) “감히 김대중 정신을 입에 올리다니”(추미애) 같은 언사가 많은 데는 연유가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난 정부가 행정부와 입법부를 다 장악하고도 보수 세력에 포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호소하고, 부동산 가격 폭등은 정책 실패가 아니라 자본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포위된 요새 신드롬’(임지현 ‘우리 안의 파시즘, 그 후 20년’)에 빠져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를 자기들 진지처럼 생각하고 오로지 ‘투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봤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들의 ‘능력 없음’을 숨기는 동시에 ‘깨어있는 시민’을 부추겨 상대방을 공격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을 지키는 행위였다. 5년 내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갔을 리가 없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청년 학생들’뿐 아니라 매일 아침 일어나 묵묵히 일터로 나갔던 ‘어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 훈장 수여식이나 인혁당 피해자 구제 결정을 보면서, 정권에 관계없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영속성을 갖고 누군가 묵묵히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운동권이 주축인 정당은 싸움터인 국회로 돌아갔다. 운동권과는 다른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이 정부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신동흔 기자, 조선일보(2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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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헌재 갈등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적대적인 관계인 것처럼 일반에게 비치는 건 양자 모두에게 이롭다고 할 수 없다.” 민법학자 출신의 양창수 전 대법관은 2014년 퇴임식 때 대법원과 헌재의 해묵은 갈등 얘기를 꺼냈다. 그는 “두 기관의 관계는 호양(互讓·서로 양보함)적 관행으로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는 관계를 벗어났다”면서 국회의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지난달 30일 헌재가 일부 위헌 취지의 헌재 판단을 법원이 무시했다는 이유로 대법원의 뇌물죄 확정 판결을 취소하는 결정을 했다. 헌재의 대법원 판결 취소는 1997년 이후 25년 만이다. 대법원은 6일 입장문을 내 “법률의 해석과 적용 권한은 법원에 전속하는 것”이라며 “다른 국가 기관이 간섭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권력 분립 구조의 기본 원리와 사법권 독립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헌법을 근거로 헌재 결정을 비판한 것이다.

▷1988년 설립 당시 헌재 위상은 대법원과 비교조차 하기 어려웠다. 설립 2년 만에 헌재가 법무사 시험을 규제하는 대법원 규칙이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결정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선고 연기 요청을 헌재가 거부하자 대법원은 “재판관 대부분이 과거 법관 시절 크게 빛을 보지 못한 인물이고, 법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라며 헌재의 실력을 폄훼했다. 헌재도 “수십 년간 정권 눈치나 봐 온 사람들이, 대법원이 국민 기본권을 보호한 적이 있느냐”고 맞섰다. 위헌심사권이 헌재에 있다는 걸 알린 계기였다.

 

헌재는 처음엔 위헌과 합헌 중 하나만을 선택했다. 그러나 1991년 독일 헌재처럼 ‘법조문을 ○○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식의 다양한 결정 방식을 도입했다. 독일은 한국처럼 대법원과 헌재가 있다. 대법원은 “독일과 달리 한국은 재판이 위헌 소송 대상이 아닌데도 이런 결정을 하는 건 재판권 침해”라고 반격했다. 1996년 헌재의 법률 해석에 대한 견해는 대법원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듬해 헌재는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하는 첫 결정을 했다. 2003, 2009, 2012, 2016년에도 유사한 공방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가장 컸을 때 헌재가 생겼다. 헌재는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맡게 된 것도 있지만 기본권 보호에 앞장서면서 존재감을 키웠다. 재판관보다 대법관을 더 선호하던 관행이 바뀔 정도로 이제는 양측이 대등한 관계가 됐다. 최고 법률기관의 자존심 싸움에 기본권을 구제받아야 하는 국민들만 양 기관을 오가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는 공방을 언제까지 할 건가.

-정원수 논설위원, 동아일보(2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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