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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상소문] [선조의 뒤끝]

뚝섬 2022. 8. 23. 07:46

[최고의 상소문]

[선조의 뒤끝]

 

 

 

최고의 상소문 

 

명령을 거역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선조의 분노는 여러 기록에 나와 있다. 출정 명령을 듣지 않자 삼도수군통제사 이 장군을 “한산도 장수”로 낮춰 부르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안히 누워만 있다”고 했다. 투옥한 다음엔 “임금을 속인 자는 반드시 죽게 돼 있다”며 “형벌을 끝까지 시행하겠다”고 했다. ‘장하(杖下)에 죽는다’는 말이 있다. 끝까지 매를 때리겠다는 것은 끝내 죽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구명 운동이 시작됐다. 이 장군의 종사관을 지낸 정경달(丁景達)이 조정에 달려가 외쳤다. “이순신의 전쟁 능력은 예를 찾을 수 없습니다. 싸움을 미루는 것은 전술인데 어찌 죄입니까. 그를 죽이면 나라가 망하는데 어찌 하시렵니까.” 대놓고 “임금이 틀렸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시원한 발언이지만 임금의 분노에 기름을 부어 구명은커녕 이순신을 오히려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선조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우의정 정탁(鄭琢)이 상소문을 올렸다. “이순신은 큰 죄를 지었지만 성상께서는 극형을 내리지 않고 인(仁)을 베푸시려는 일념으로…이순신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아보시려고… 생명에 대한 임금의 어진 뜻이 죽을 죄를 진 자에게까지 미치니 감격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임금의 속 좁은 뜻과 반대였다. 정탁도 알면서 그런 것이다. 성인군자로 추켜세우니 임금은 어쩔 수 없었다. 문제아에게 “잘한다, 잘한다” 하면 잘하는 때가 있는 것과 같다.

 

▶상소문은 이순신을 깔아뭉개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용기로 치면 원균에게 미치지 못하고 남의 공로를 탐내서 제 공로로 만들어 속였기 때문에 이순신이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이순신의 작은 공적 몇 가지 열거한 다음 “무릇 인재는 나라의 보배이므로 주판질하는 사람까지 재주가 있으면 아껴야 하는데 장수의 재질을 가진 자를 오직 법률에만 맡길 수 있겠느냐”고 호소했다.

 

▶정탁의 상소문은 거의 사실이 아니다. “하얀 거짓말”이라고 할까. 선조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거짓말에 마음을 돌렸다. 이순신을 죽이면 졸장부라는 말이니 선조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소문이 이순신을 살렸다. 결과적으로 나라를 구했다. 정탁의 상소문은 최고의 상소문으로 꼽힌다. 결과만 대단해서가 아니라 염라대왕의 마음도 바꿀 수 있는 완벽한 설득의 기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상소문 초고가 국가 보물에 지정될 것이라고 한다. 아직 보물이 아니었다는 게 오히려 의외였다.

 

선우정 논설위원, 조선일보(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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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뒤끝

 

[임용한의 전쟁사]

 

임금 사후에 생전의 공덕을 기리어 붙인 이름인 묘호(廟號)에는 조와 종이 있다. 조는 공을 세운 임금에게 증정하는데, 공은 왕조를 개창한다거나 국난을 극복한 공을 말한다. 선조라는 묘호는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큰 공을 세웠다는 의미에서 ‘조’자를 붙인 것이다.

그러나 선조에 대한 현대인의 평가는 박하다 못해 거의 최악 수준이다. 임진왜란이 나기 전에 선조의 치적에 대한 평가는 좋았다. 당대의 민심이 그랬다. 임진왜란 중에도 선조의 판단력은 훌륭한 편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서울을 버리고 도망간 건 뭐냐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고려 현종, 명종, 공민왕, 조선의 인조 등 수도에서 피란한 왕이 한둘이 아니다. 몇 가지 실수를 인정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행적도 많았다. 이순신을 파격적으로 등용한 사람도 선조다.

하지만 이순신 해임부터 일이 꼬인다. 이순신 해임으로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이 거의 전멸하고, 호남이 쑥대밭이 되었다. 임진왜란 전사에서 최대의 비극이 다 이때 벌어진다. 그 와중에 이순신이 명량해전으로 최악의 상황을 막았다. 이제 선조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실수를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이순신에게 몇 배의 보답을 하는 것이 자신의 명예를 만회할 수 있는 길이었다.

 

선조는 반대로 한다. 명나라 장군들이 놀라서 이순신을 칭찬했다. 명군 총사령관 양호는 선조에게 와서 이순신에게 어떤 포상을 했느냐? 포상이 부족하면 자신이 직접 포상하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이순신이 전사하자 명나라 병부상서 형개는 너무 애통해서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말하고 선조에게 특별 제사를 지내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선조는 여전히 떨떠름했다. 이순신의 공을 인정하면 자신의 실수를 더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이것이 선조의 명성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주었다.

우리 정치인들은 잘못을 인정하는 데 정말 박하다. 선조처럼 한 번 잘못을 인정하면 더 밀린다고 생각한다. 정치와 줄다리기를 구분하지 못한다.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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