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포 홍어]
[이젠 ‘군산 홍어’ 시대]
[호남의 소울푸드 전라도 홍어]
영산포 홍어
[김준의 맛과 섬]
홍어찜-홍어탕-홍어탕
오랜만에 어머니를 모시고 전남 나주 영산포 홍어 집을 다녀왔다. 홍어탕이 그리웠다. 어머니는 귀한 홍어 대신 가오리 무침을 곧잘 하셨다. 그런 날이면 양은 주전자를 들고 술도가로 달려야 했다. 술값은 수매하면 아버지가 드린다는 말을 남기고 외상 장부에 꼭 눌러 적어두고 왔다.
영산포 홍어는 숙성 홍어다. 삭힌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원하는 것을 내준다. 홍어 전문 식당에서는 김치, 수육, 홍어로 이루어진 홍어 삼합이 중심이다. 김치도 홍어를 넣어 삭힌 것이다. 여기에 콩나물을 삶아 올린 홍어 찜, 홍어 탕수육, 홍어 전 등도 맛볼 수 있다. 마무리는 홍어탕이다. 역시 홍어탕이 으뜸이다.
점심을 먹고 홍어를 사려고 가게에 들어섰다. 설을 맞아 주문한 홍어를 포장 중이었다. 국산 홍어라는 말에 원산지를 물었더니, ‘연평도에서 왔어요’라고 했다. 너무 반가웠다. 연평도 옥중동 마을에서 홍어잡이 어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한때 흑산도까지 내려가 홍어를 잡았다. 국가 중요 어업유산으로 지정된 ‘흑산도 홍어잡이 어업’도 인천 지역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연평도 일대에서도 홍어가 많이 서식하고 많이 잡힌다. 하지만 홍어는 전라도에서 즐기는 음식으로 홍어 값도 후했다. 대청도에서 잡힌 홍어가 수도권이라는 소비처가 있음에도 번거롭게 영산포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이유이다. 영산포에서 숙성된 홍어는 전라도만 아니라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으로 유통된다.
홍어포장
홍어를 즐기는 사람들은 알싸한 냄새에 먼저 몸이 반응한다. 오죽하면, ‘홍어는 냄새가 보약’이라는 말을 만들었을까. 그다음 혀끝과 입안에서 느낀다. 먹고 나서 콧구멍으로 뿜어져 나오는 ‘뻥 뚫린다’는 느낌이 세 번째다. 마지막으로 몸이 오싹하며 심한 사람은 닭살이 돋기도 한다. 이렇게 즐겨야 홍어를 제대로 영접하는 것이다. 이런 맛을 즐기고 싶다면 흑산도보다는 영산포 홍어가 제격이다.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 달포에 걸쳐 옮겨지면서 가마니와 항아리에 담겨 만들어진 독특한 맛이다. 영산포 홍어는 이렇게 거리와 시간과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 낸 맛이다.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조선일보(24-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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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군산 홍어’ 시대
정치권에서 홍어는 호남 권력의 상징이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홍어 사랑이 남달랐다. 1988년 평화민주당 시절 총재였던 그는 주요 행사가 있을 때면 홍어를 당사로 공수했고, 나중에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 등이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당 상징 음식’이었던 셈이다. 2005년 2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한화갑 민주당 대표 취임을 축하하는 뜻으로 홍어 두 마리를 선물하기도 했다.
▶홍어 중 으뜸은 단연 전남 신안의 흑산도 홍어였다. 껍질이 얇고 부드러워 최상품으로 쳤다. 그 홍어가 목포는 물론 영산포를 통해 나주로, 또 광주로 들어가면서 호남 지역 대표 음식이 됐다. 본래 흑산도 사람들은 홍어를 날것으로 먹었는데 육지로 가면서 삭아, 삭힌 홍어가 육지 사람들에게 대중화됐다. 홍어는 그 맛을 코, 애, 날개, 꼬리 순으로 매길 만큼 버릴 것도 없다.
▶TV 드라마 ‘대장금’엔 장금이가 생선회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한 상궁이 이름도 안 알려주고 먹어보라고 건넨 것이었다. 마지못해 회를 오물오물하던 장금이가 이렇게 말한다. “자꾸 씹으니 맛이 납니다. 육질도 차지고 처음엔 코끝이 찡하고 다음엔 입안이 상쾌하고 그 뒤끝의 맛은 청량합니다.” 그 생선이 홍어였다. 이게 홍어 맛 아닐까 싶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홍어를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으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흑산 홍어는 값이 비싸다. 최근에도 흑산도에선 8kg급 암컷 홍어가 42만원 선에서 위판되고 있다고 한다. 한때 국산 홍어가 품귀 현상을 빚자 칠레산 홍어가 몰려든 적이 있다. 2005년 3227t가량 수입됐다. 이후 칠레 정부가 남획을 우려해 수출을 규제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수입 물량이 크게 준 것은 아니다. 지난해 홍어 수입량이 4614t이었는데, 그중 아르헨티나산이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칠레산은 8%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최근 전북 군산 앞바다에서 홍어가 많이 잡히고 있다고 한다. 2017년 4t 정도였는데 지난해 1417t으로 급증했다. 전국 어획량의 45% 수준으로, 흑산도가 있는 신안보다 3배가량 많다고 한다. 2020년 신안 어획량을 앞서더니 격차를 더 벌렸다. 바닷물 온도가 오르면서 난류성 어종인 홍어 서식지가 군산까지 올라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전북도와 군산시는 특화 상품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고 한다. ‘군산 홍어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머지않아 흑산도가 ‘홍어 1번지’ 자리를 내줘야 할지 모르겠다.
-최원규 논설위원, 조선일보(2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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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소울푸드 전라도 홍어
영산강 지역 별미
고려 말 흑산도에 왜구 출몰 주민들 영산강 거슬러 나주로
영산포까지 배 타고 10~15일 다른 고기는 다 썩었지만
홍어는 썩지 않고 발효
홍어 40% 나주서 삭힌 것
칠레·뉴질랜드·중국산… 삭힌 홍어 썰어 놓으면
전문가도 원산지 구별 못해
원산지보다 삭히는 기술
잘 삭힌 홍어는 썰 때 칼에 들러붙어
톡 쏘는 알싸함 뒤에 감칠맛이 숨어있어
흑산도에선 생 홍어회 즐겨
"싱싱한 홍어 왜 삭혀먹나" 핑크빛의 촉촉한 생홍어
비린내·잡내 전혀 없어 고상하고 섬세한 맛
설 연휴 고향이 전라도와 경상도라면 먹게 될 음식이 있다. 전라도라면 홍어, 경상도라면 문어다. 명절 차례상이나 결혼식·장례식 등 중요한 날 상차림에서 빠지지 않는 지역의 '소울 푸드'다. 두 음식이 어떻게 두 지역의 대표 음식이 됐는지 그 사연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나주에선 홍어 없으면 '잔치한다'는 말을 못 해. 그런데 홍어 마련하는 부담이 너무 큰 거요. 그래서 나주의 한 마을 주민들이 '잔칫상에 홍어를 놓지 말기로 하자'고 합의한 거야. 얼마 후 그 마을에 결혼식이 있었어요. 타지 사람들이 왔다가 '왜 홍어가 없다냐' 난리가 난 거야. 마을 사람들이 '우리는 이제 잔치 때 홍어를 내지 않기로 했소' 하니, 타지 손님들이 '그럼 느그들끼리만 잔치 허지 왜 우릴 부르냐'고 화를 냈어. 결국 홍어 내지 말자는 합의는 없던 일이 돼 버렸지."
"호남에서 홍어가 얼마나 중요하냐"고 묻자 전남 나주 '홍어일번지' 대표이자 국내 최초·유일의 홍어 명인 안국현씨가 "20여년 전 있었던 실화"라며 해준 이야기다. 그만큼 코를 톡 쏘는 삭힌 홍어는 호남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음식이다.
어디 것이냐보다 제대로 삭혔느냐가 중요
전남 나주 ‘홍어일번지’ 안국현 대표가 숙성 중인 홍어를 힘겹게 들어올렸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30~40여년 전만 해도 모든 전라도 땅에서 홍어를 먹지는 않았다고 한다. 홍어가 주로 잡히는 흑산도 등 도서 지역을 제외한 뭍에서는 전남 나주·함평·영암·목포에서만 즐겼다. 이 지역들은 영산강을 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엔 역사적 배경이 있다.
고려 말 흑산도 일대 섬들은 왜구에 시달렸다. 정부는 공도(空島) 정책을 실시했다. 섬 주민들을 뭍으로 이주시키고 섬을 텅 비우는 정책. 흑산도 사람들은 배 타고 목포 거쳐 영산강을 거슬러 나주에 살다가 왜구가 잠잠해지면 고향 흑산도로 돌아가곤 했다. 흑산도에서 영산강을 거슬러 나주 영산포에 닿으려면 열흘에서 보름이 걸렸다. 냉동·냉장 기술 없던 시절 다른 고기는 썩었지만 홍어는 썩지 않고 발효됐다. 이렇게 삭힌 홍어가 나오게 됐고, 나주와 인근 지역에서 별미로 즐기게 됐다.
한때 '대한민국 4대 강'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큰 물줄기였던 영산강은 홍수와 가뭄 피해를 막으려고 건설한 하굿둑과 댐으로 얕은 개천 수준으로 전락했다. 나주 영산포도 과거 영화(榮華)를 잃었다. 하지만 홍어를 삭히는 '원천 기술'은 그대로 남았다. 안 대표는 "현재 나주에 홍어 가공·판매 업체 37곳, 홍어 전문 식당 10곳이 있다"며 "전국 유통되는 홍어의 40%가 나주에서 삭힌 것"이라 했다.
호남에서도 영산강 일대에서만 먹던 홍어가 전국적 인기를 얻으면서 귀한 몸이 됐다. 안 대표는 "국내산 홍어는 5%에 불과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칠레산은 알지만 아르헨티나·뉴질랜드·포클랜드·미국·우루과이·중국·일본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오는 건 잘 모르지요."
삭힌 홍어는 썰어 놓으면 전문가도 구분하기 힘들다고 한다. 뒤집어 말하면 어디 것이냐보다 얼마나 제대로 삭히느냐가 중요하다. "잘 삭은 홍어는 썰면 칼날에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아요. 특히 제대로 삭힌 국산 홍어는 입에서 '당기는 맛'이 있어요. 톡 쏘는 알싸함 뒤에 숨은 감칠맛이 계속 먹고 싶게 만든달까. 잘 못 삭히면 맵고 톡 쏘기만 해요. 비리고 느끼하지."
삭혀야 제맛? 홍어를 왜 삭혀
광주 ‘김가원’ 홍어삼합. 세 음식이 만나면 형언할 수 없이 복합적인 맛과 향의 융합이 벌어진다. 여기에 막걸리까지 곁들이면 그야말로 환상이다.
홍어는 삭혀 먹는 생선으로 알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는 홍어를 삭히지 않고 싱싱할 때 먹었다. 흑산도에서도 홍어를 삭히지 않고 회로 먹는다. "삭힌 홍어는 저장 기술이 없던 시절 먹던 거예요. 지금은 새벽에 경매받은 홍어를 그날 오후 받을 수 있는데 뭣 하러 삭혀 먹어요?" 광주광역시 '김가원' 김문희 대표는 자녀 교육을 위해 지금은 뭍으로 나왔지만 예전엔 홍도에서 해녀로 일했고, 남편은 홍어잡이 배 선주였다. 김씨가 둥그런 접시에 그날 흑산도에서 들어온 홍어와 30일 숙성시킨 홍어를 반씩 담아 냈다.
삭힌 홍어와 생 홍어는 눈으로 보기에도 차이가 났다. 삭힌 홍어가 살짝 건조한 듯하면서 불그스름한 주황빛이 감돈다면, 싱싱한 홍어는 촉촉하면서 뿌연 흰색에 전체적으로 핑크빛이 돌았다. 맛은 더 확연하게 달랐다. 생 홍어회에서는 생선 비린내 또는 잡내가 전혀 없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차졌다. 콩고물 버무리지 않은 인절미랄까. 고상하고 섬세한 맛이다. 삭힌 홍어회를 입에 넣자 그제야 '홍어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어회라고 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강하게 찔렀다. 둘 다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사르르 녹는 홍어 애… 마니아라면 삭힌 홍어 튀김에 감동할 듯
▨나주 '홍어일번지': 여러 홍어 요리를 코스로 낸다. 홍어 애(간)와 껍데기가 애피타이저로 나오고 이어 홍어삼합, 삭히지 않은 홍어 튀김, 삭힌 홍어 튀김, 3년 숙성 홍어김치, 홍어무침, 홍어전, 홍어찜 등이 차례차례 나온다. 꽁꽁 얼린 홍어 애는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게 고소한 아이스크림 같다. 홍어 마니아라면 삭힌 홍어 튀김에 감동할 듯하다. 튀김옷을 깨물면 홍어 삭힌 냄새가 폭탄처럼 터져 나온다. 홍어 젓갈과 보리애국이 밥과 함께 식사로 나온다. 정식 2인 5만(칠레산)·7만원(국내산), 3인 6만·9만원, 4인 8만·12만원, 삼합 2만5000원·5만원.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 국내산 홍어 기준 2호(약 6인분) 7만5000원, 3호(약 10인분) 10만5000원, 5호(약 20인분) 20만5000원. (061)332-7444, www.nskates.com
▨광주광역시 '김가원': 삭히지 않은 생 홍어를 30일쯤 삭힌 홍어와 함께 낸다. 흑산도에서 잡힌 '1번선'만 사용한다. 1번선이란 크기도 크기지만 품질이 그날 경매 들어온 홍어 중 최고를 뜻하는, 경매인들끼리 쓰는 은어. 홍어삼합 8만·10만·12만원, 홍어찜 10만원. (062)382-8700
-광주·나주=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조선일보(1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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