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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거리 ‘히잡 소녀’들] .... [히잡] [이슬람 여성 인권]

뚝섬 2023. 8. 3. 06:19

[서울 거리 ‘히잡 소녀’들]

[히잡이 뭐길래]

[히잡]

[이슬람 여성 인권]

 

 

 

서울 거리 ‘히잡 소녀’들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가 쓴 장편 ‘눈’은 히잡을 벗기려는 세속주의 정부와 종교적 전통을 지키려는 무슬림의 충돌을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은 여학교에서 히잡을 못 쓰게 하는 교장 지시에 반발해 소녀가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에 나선다. 알고 보니 이 소녀는 이슬람식 조혼을 강요받고 반발해 죽었다. 그걸 마을의 무슬림들이 국가의 히잡 금지 때문에 죽었다고 조작했다. 무슬림 악습 탓에 목숨을 버린 소녀가 순교자로 둔갑한 것이다. 작가는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을 그렸다”고 했다.

 

▶지금도 이런 여성 억압이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다.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선 얼굴을 제대로 가리지 않고 길을 걷던 여성이 탈레반 남자들에게 붙잡혀 즉결 처형을 당했다. 유튜브로 이 장면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란에서도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검거된 20대 여성이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 여성이 오히려 가족 손에 죽는 명예 살인도 여전히 남아 있다.

 

종교에 짓눌려 살아온 무슬림 여성들에게 한국이 숨통을 트는 문화적 해방구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젊은 여성이 히잡을 쓰고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들은 부모 아닌 또래들과 방한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관광공사 2020년 자료를 보니 가족·친척과의 방한은 58%였고, 나머지는 혼자 여행하거나 친구·동료와 동행했다. 서울관광재단에 따르면 이슬람 국가의 한국 방문자 중 20~30대 여성은 2021년 8%에서 2022년 17%로 급증했다. 올해는 6월 말 현재 21%다. 많은 중동 국가에서 여성 외출은 남성이 동행해야 가능한 현실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동남아 이슬람 국가에서 온 관광객이 대부분이었던 코로나 이전과 달리 요즘엔 넷 중 한 명은 여성 억압이 심한 사우디와 이란 등 중동 출신이다. 서구 젊은이들처럼 K팝과 K뷰티, 넷플릭스 드라마에 매료돼 한국을 찾는다. 가족 단위로 여행 오는 이들도 대개 딸들이 한국행을 조른 경우고, 국내 여행 동선도 그들이 짠다.

 

▶서울처럼 밤 11시 넘어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세계 대도시는 흔치 않다. 젊은 외국인 여성이 심야에 한강변을 산책하는 모습을 한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친구들이 걱정하자 “여기는 서울이야!” 했더니 안심하더라는 얘기도 있다. 히잡 소녀들이 자기 나라에서도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와 젊음을 누리는 날이 오기 바란다. 40년 전 테헤란과 카불에선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이 거리를 활보했었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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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이 뭐길래

 

무슬림 여성이 머리에 두르는 히잡의 기원은 수천년 전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귀부인만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성경에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창세기에 나오는 레베카는 남편 이사악과의 첫 만남 때 너울을 꺼내 얼굴을 가렸다. 유다가 너울로 얼굴 가린 며느리를 매춘부로 착각했다는 대목도 있다. 고대 중동에선 매춘부가 베일을 썼다는 기록도 있다.

 

▶이슬람교를 연 예언자 무함마드는 히잡 착용을 강요한 적이 없다. 그런데 후대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밖으로 드러내는 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된다 코란 구절을 근거 삼아 여성에게 히잡을 쓰라고 했다. 히잡의 원래 뜻도 두건이 아니라 ‘장막’ 또는 ‘분리’다. 애초에 여성을 남성 세계에서 격리하려는 의도가 깔린 명칭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남자는 알라에,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한다 가르친다. 히잡보다 여성의 몸을 더 많이 가리는 ‘아바야’를 입혔다. 여자는 남성 후견인이 동의해야 진학·취업·결혼할 수 있었다. 외출하려면 코흘리개 남자 손이라도 잡아야 했다. 여성 운전도 금지였다. 여자가 몰 수 있는 것은 범퍼카뿐이란 우스개가 돌았다.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은 눈까지 망사로 가리는 부르카를 강요한다. 저항하면 총살했다.

 

▶이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22세 여성이 의문사하며 촉발된 항의 시위가 13일로 한 달을 맞았다. 200명 넘게 희생됐지만, 여성들은 히잡 벗은 얼굴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거리에선 ‘여성, 삶, 자유’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저항하고 있다. 젊은 남성들까지 가세해 “이슬람 공화국을 원하지 않는다”고 외친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고 싶어한다. 많은 무슬림 여성이 다양한 꽃무늬와 기하학 문양으로 장식한 히잡을 쓴다. 애틋한 느낌도 든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전의 이란은 자유로운 나라였다. 여성이 거리낌 없이 미니스커트를 입었다. 많은 이란인이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이슬람에서 히잡을 벗으려는 움직임은 한 세기가 다 되어 간다. 튀르키예 건국의 아버지 케말 아타튀르크는 1930년대에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했다. 강경한 여성 억압 정책을 고수하던 사우디도 2017년 이후 여성 운전을 허용하고 후견인제를 완화하는 등 개혁에 나섰다. 사우디 여성들은 아직 부족하다고 한다. 배꼽티 입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며 “더 큰 자유”를 요구하고 있다. 이란은 언제까지 이런 흐름을 외면할까.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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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히잡 의문사항의 시위, 여성·MZ세대·노동자 각계각층 참여. 시아파 盟主國에인권의 오는가.

 

-팔면봉, 조선일보(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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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Mona Haydar ‘Hijabi(Wrap My hijab)’(2017)

 

"우리에겐 지도자가 없다. 우리 모두가 지도자다.” 또 다른 여성은 말한다. “누구도 나를 조종할 수 없고, 머리카락으로 나를 정의할 수 없다.”

 

스물두 살의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끌려가 의문사한 뒤 촉발된 시위는 이란 80여 도시로 번지고 있다. 9월 하반기부터 열흘 넘게 이어진 반정부 시위에서 83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체포되었다.

 

이슬람 경전에서 여성의 머리카락은 성적 욕망의 상징이며 히잡은 그것을 가리는 일종의 두건이다. 거리로 뛰쳐나온 이란의 여성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남성들은 히잡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히잡을 강요하는 권력을 거부하는 것이다.

 

시리아 이주민 2세인 모나 헤이더는 미시간주 플린트시에서 태어나 자란 무슬림계 미국인 여성 래퍼다. 그는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히잡을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몰아가는 서구중심주의자들의 편견에 저항한다. 히잡을 쓰는 여성 중에는 히잡을 통해 자신이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당당하게 표현하려는 여성도 있는 것이며 그 행위는 스스로의 자부심과 존엄성을 가지기 위한 명예의 훈장이라는 것이다.

 

노래는 역시 머리카락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땀 안 나냐, 답답하지 않냐, 머리는 얼마나 기냐 운운. 오리엔탈리즘의 갇힌 시각으로 함부로 재단하고 광기를 내보이는 이들에게 돈 내고 교육 좀 받으라는 일침을 선사한다.

 

당신이 싫어해도 나는 여전히 히잡을 쓴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시인, 래퍼이자 기독교 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활동가 모나 헤이더. 이슬람풍의 인트로 멜로디와 세련된 도시적 그루브가 조화를 이룬 모나의 랩을 듣다 보면 히잡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쓰라고 강요하거나 벗으라고 종용하는 편협된 사고가 문제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 될 일이다. 이미 나이키와 아디다스 그리고 많은 패션 브랜드가 다양하게 디자인한 히잡을 출시하는 중이다. 빌보드는 이 노래를 역사상 최고의 페미니스트 송가(anthem) 25곡 중 하나로 선정했다.

 

-강헌 음악평론가, 조선일보(2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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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여성 인권

 

7세기 무함마드, 女 베일 착용 요구… 성차별 관습 천년 넘게 이어졌지만
사우디 "여성운전 허용" 발표하는 등 최근 들어 여성 인권 개선되고 있어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동안 사실상 금지했던 여성의 자동차 운전을 허용하기로 했어요.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이 최근 칙령을 발표하고 내년 6월부터 여성들에게도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발급하도록 한 거예요. 사우디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자동차 운전을 하지 못하는 나라였어요. 여성 운전을 금지하는 법은 없지만, 여성에게 운전면허증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여성 운전을 막아왔죠. 이는 남성과 여성을 격리해 궁극적으로는 여성의 정치·사회 진출을 제한하려는 성(性)차별적 이슬람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랍니다. 그렇다면 이슬람 문화에서는 어떻게 여성 활동을 제약하게 된 걸까요?

◇'여장부'의 남편이던 무함마드

이슬람교의 창시자이자 예언자인 압둘 와하브 무함마드(570~632)에게는 여러 배우자가 있었어요. 그중 첫째인 하디자는 부유한 상인의 딸로 이미 두 번이나 결혼한 40대 과부(寡婦) 사업가였답니다. 하디자는 자신의 종업원이었던 스물다섯 살 청년 무함마드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뒷조사까지 한 다음 먼저 청혼해서 결혼한 과감한 여인으로 평가받습니다.

무함마드는 아내의 탄탄한 재력을 바탕으로 아무런 생계 걱정 없이 히라산(山) 동굴에 들어가 명상 생활을 시작합니다. 무함마드는 오랜 수련 끝에 대천사(大天使) 가브리엘을 통해 알라의 계시를 받게 됐다고 해요. 무함마드는 이 계시를 여러 사람에게 전파하기 시작했고, '알라 외에는 신이 없다'는 유일신 신앙을 굳게 믿게 됩니다. 이런 무함마드의 말을 적은 게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이죠. 

 

무함마드는 약 20년간 하디자와 살면서 둘째 아내를 들이지 않았어요. 하디자가 죽은 후에야 새로운 아내들과 가정을 꾸렸죠. 이렇듯 초기 이슬람 사회는 우리가 지금 아는 것처럼 가부장적 관습이 깊게 뿌리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점점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무슬림(이슬람교 신자) 여성들이 자기 얼굴과 신체를 가리는 베일을 쓰기 시작한 거죠. 사실 베일은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볼 수 있었던 풍습입니다.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베일 같은 것을 머리에 쓰고 있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런데 이를 여성의 정조를 상징하는 도구로 활용한 건 이슬람 시대부터랍니다.

628년 무함마드는 아내들에게 모두 베일을 쓰라고 요구합니다. 베일을 착용함으로써 다른 남성들을 향한 신체 노출을 최소화하고, 그 여성이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또는 어느 집안 여성인지 보여줘 남성들이 함부로 그 여성을 대할 수 없도록 한 것이죠. 또 무함마드 스스로 여러 배우자를 뒀듯, 한 남성이 아내를 많게는 넷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코란'에 명시합니다.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가 이슬람 사회에서 일반적 결혼 형태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한 것이에요.

◇'낙타 전투'의 주인공은 여성

재미있는 건 무함마드의 셋째 아내였던 아이샤가 아주 주체적인 성격의 여장부였다는 사실입니다. 아이샤는 평소 남편 무함마드와 수많은 전투에 동행했고, 심지어 낙타를 하도 험하게 몰아 무함마드에게 자주 핀잔을 들었다고 전해져요. 나아가 무함마드가 사망하고 난 다음인 656년 벌어진 '낙타 전투(이슬람 최고 지도자 알리와 그 반대 세력인 아이샤 간 전쟁)'에도 직접 참여해 이슬람 최초의 '정변(政變)'을 주도하기도 했답니다. '낙타 전투'라는 이름 역시 아이샤가 낙타를 몰고 전장에 나가 군사들을 독려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에요.

하지만 반(反)알리 세력이 낙타 전투에서 패배하자 남자들은 아이샤에게 책임을 돌립니다아이샤의 정치적 무능과 미숙한 행동 때문에 전쟁에서 졌다는 주장이었죠. 이 때문에 무슬림 사이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확산됩니다. 실제 낙타 전투 이후 무슬림 여성의 정치적 참여나 사회적 활동이 엄격히 제한되죠. 물론 이런 몇 가지 사례가 이슬람 사회에 성차별적 관습이 뿌리내리게 된 배경을 모두 설명할 순 없을 거예요. 그러나 이런 사건들이 당시 이슬람 정치·경제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가부장적 문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랍니다. 여성을 정치·사회에서 격리하는 관습은 거대 이슬람 제국이던 오스만 제국 말기인 20세기 초까지 이어지죠.

약 1200년 넘게 이어져 온 가부장적 문화에 균열을 낸 건 터키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1881~1938)이랍니다. 무스타파 케말은 20세기 초 기울어가던 오스만 제국의 개혁을 이끌어 지금의 터키 공화국을 출범시킨 터키 초대 대통령이에요. 그는 1935년 여성의 베일 착용을 금지하고 여성에게 불리했던 이혼법과 상속법 등을 개정해 여성의 지위를 높이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일부 전통주의자는 이런 개혁이 '서구 문화=진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추진됐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무슬림 여성들이 베일을 착용한 건 이슬람 공동체 안에서 그 나름대로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는 주장이죠. 그래서 여전히 터키·유럽 등에서는 이슬람식 베일을 고수하는 무슬림 여학생과 베일을 쓰지 못하게 하는 정부 간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답니다. 

 

이번에 사우디 정부가 여성의 운전을 허용한 것은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개혁안에 따른 것입니다. 이 개혁안은 탈(脫)석유 시대를 대비해 여성의 사회 활동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죠. 변화하는 시대에 사우디도 여성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이슬람 여성들이 착용하는 베일 

 

부르카(Burka)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가리고 눈 부위도 망사로 덮는 복장이에요. 니캅(Niqab)은 눈은 내놓고 나머지 신체를 가리는 옷이고, 차도르(Chador)는 얼굴은 드러내되 나머지를 가리는 옷이에요. 히잡(Hijab)은 가장 대중적인 이슬람 전통 의상으로 머리카락과 목 등을 감싸는 일종의 헤어 스카프랍니다. 

 

-이정하 천안 계광중 역사 교사/기획·구성=박세미 기자, 조선일보(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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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아랍권(특히 시리아 쪽) 여성들이 사막의 따가운 햇빛을 피하기 위하여 쓰는 얼굴에 둘러싸는 형태로 두르는 천이다. 쓰는 이유로는 사막의 햇빛을 피하기도 있으나, 이슬람이 발생되기 전부터 아랍권 여성들이 쓰던 의상으로 꾸란이 작성된 이후 머리카락과 가슴 등을 가려 남자들의 성욕을 억제시킨다는 이유도 있다. 얼굴만 감싼다는 점에서 전신을 감싸는 차도르, 얼굴에 작은 구멍만 남겨두는 니캅, 부르카와는 약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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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여성들은 외출할 때 얼굴이나 가슴을 가리기 위해 스카프나 두건과 비슷하게 생긴 가리개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가리개는 지역에 따라 모양이나 가리는 부위도 다르고 이름도 다릅니다. 무슬림 여성인 무슬리마들이 가리개를 쓰는 것은 그들에게 부여된 의무입니다.

 

가리개를 쓰는 것이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된 이유는 이슬람 경전인 쿠란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가리개가 여성의 지위를 억압하는 도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슬리마들이 히잡이나 차도르 등과 같은 가리개를 사용하는 것은 여성 자신이 신념이나 신의 따위를 굽히지 않고 지키는 굳건한 마음과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종교적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어머니에게 가리개의 의미에 대해 교육받고, 가리개를 사용하는 것이 정숙한 여성으로서 갖춰야 하는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리개를 벗었을 때 스스로 부자연스럽게 여기고, 남들의 시선 때문에 더 불편해하기도 합니다.  

 

-세계지리를 보다(박찬영∙엄정훈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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