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라는 ‘문화’의 힘]
[나의 오랜 벗 ‘747′]
애플이라는 ‘문화’의 힘
[특파원 리포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1년 반 정도의 실리콘밸리 생활 중 가족 외에 갤럭시 사용자를 본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실리콘밸리 네트워크 장비 회사 시스코의 행사장에서 안내를 맡은 미국인이었는데, 당시 그는 유럽계 취재 기자로부터 “그거 왜 쓰세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안내원은 “매우 만족한다”고 대답했지만, 나는 귀찮아질까 봐 손에 쥐고 있던 갤럭시 스마트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올해 2분기 기준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 점유율은 48%, 삼성은 30%다. 하지만 체감상 격차는 훨씬 크다. 10대 아이들부터 머리 희끗한 어르신까지 대부분 아이폰을 들고 있다.
최근 만난 한 애플 직원은 이를 “애플이라는 문화의 힘”이라고 했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부모, 조부모까지 모두 아이폰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대를 이어 아이폰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린 다음 (소비) 세대가 준비돼 있다”고 했다. 자신감이다. 기능적 측면만 보면 갤럭시가 결코 아이폰에 밀리지 않는다. 사실 갤럭시가 더 나은 측면도 있다. 십수년간 아이폰만 사용하다 갤럭시의 편한 연결성과 개방성에 반해 갈아탄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실리콘밸리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능을 강화한 신제품이 쏟아진다. 좋은 제품을 값싸게 내놓으면 팔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 제품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는 제품의 기능보다 ‘의미’와 ‘왜’에 집중했다. ‘왜 사람들이 이 폰을 써야 하는가’ ‘사람들에게 어떤 폰이 필요한가’가 시작점이었다. 애플은 이렇게 10년 넘게 사람들의 요구를 채워주며 스마트폰 제조사 이상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믿을 수 있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쓰는,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제품이라는 문화다.
삼성은 어떤가.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를 내놓지만, 그에 걸맞은 문화가 아직은 없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패스트팔로어(추격자) 전략을 사용하며 짧은 시간 세계 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데만 목적을 뒀기 때문이다. 신제품을 내놓아도 더는 점유율에 변화가 없다면 이제는 문화를 만드는 쪽으로 선회해야 한다. 기기를 제조해 판매하는 업체에 문화까지 만들라는 주문은 가혹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다. 자동차, 세탁기, 냉장고, 컴퓨터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제품의 판매는 오랜 기간 쓴 사용자들의 시간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제품 이상의 것을 판매한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라면 이제 중국제에서 더 많다. 문화를 구축하지 못하면 머지않아 잡아먹힐 것이다.
-실리콘밸리=김성민 특파원, 조선일보(22-10-20)-
_________________
나의 오랜 벗 ‘747′
[에릭 존의 窓]
미 시애틀 에버렛 공장에서 생산 종료되는 747기에 감회
기내 2층 계단 오르내리던 추억… ‘에어포스 원’ 영접도 못 잊어

최근 아내와 워싱턴州 시애틀 인근 보잉 에버렛 공장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방문했던 곳이지만 아내와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인 에버렛 공장은 길이만 1km가 넘는다. 한시간 내에 공장 대부분을 둘러보려면 골프 카트를 이용해야 한다. 아내와 함께 방문한 것 외에도 이번 공장 방문이 유독 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에버렛 공장 투어는 언제나 747라인에서 시작되는데, 6층짜리 건물 높이인 이 거대한 여객기는 볼 때마다 경탄을 금할 수 없다. 747 기종은 1969년 2월, 초도 비행을 성공리에 마쳤다. 삼성전자(당시 삼성전자공업)가 수원에 둥지를 튼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이 역사 깊은 기종의 생산이 종료되면서 마지막으로 생산된 두 대의 747기가 내 눈앞에 있었다. 목을 한껏 뒤로 젖히고 이 거대한 비행기를 바라보는데 747기종 생산 종료가 갖는 의미와 개인적인 추억의 무게에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려왔다.
내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에 대한 로망을 품은 것은 1970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누나가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와 삼촌이 영국 여행을 다녀와서는 ‘계단이 있는 2층 비행기’에 대해 말해주었을 때였다. 당시 열 살이던 나는 삼촌의 런던에서의 일화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비행기로 바다를 건너는 동안 계단을 오른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웠다. 이후 몇 년간은 가끔 비행기 탈 일이 생기면 항공기 내부의 앞과 뒤를 둘러보며 계단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때는 1시간 남짓 거리의 국내선의 경우 점보기를 탈 확률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언젠가 운이 좋은 날, 고향인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플로리다까지 747기를 타고 2시간 비행할 날이 오리라고만 기대했다. 고등학생 때 교환학생으로 브라질에 갈 때도 크게 한번 낙담했다. 물론 상파울루행 DC-8기도 대형 비행기였지만 1층 구조였고 안에 계단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외교관으로 한국에 배치되었을 때도 워싱턴 DC를 떠날 무렵부터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곧 그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교육 이수를 위해 호놀룰루를 경유해 서울로 이동해야 했기에 노스웨스트 항공의 DC-10기를 타고 중간에 잠깐 다리를 펼 여유를 갖는 정도에 그쳤다.
1985년, 한국에서의 첫 해를 마무리하며 미국으로 휴가를 가기 위해 대한항공 항공권을 구매했고, 747기를 탄다는 사실을 알고는 뛸 듯이 기뻤다. 당시에는 좌석 승급이 엄두도 못 낼 만큼의 가격은 아니었기에 고민도 하지 않고 2층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아직도 비행기에 탑승해 위풍당당하게 계단을 처음 오르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비행 중 적어도 10번은 그 계단을 오르내렸을 것이다. 아마 승무원들이 도대체 이 젊은 미국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드디어 바다 위에서 계단을 오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같은 747기와 내부 계단에 대한 강한 애착은 아들에게 대를 이어갔음이 분명하다. 방콕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 두 살배기 아들은 자꾸만 1층 이코노미석에서 벗어나 위층으로 가겠다며 계단으로 향했다. 좌석 승급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며 당시에는 이코노미석으로 여행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아들을 간신히 타일러 자리로 데려오긴 했으나, 화가 잔뜩 나 있던 노스웨스트 항공사 승무원에겐 “비행기 안에 계단이 있는 것은 솔직히 멋지긴 하잖아요?”하며 으쓱했다. 굳은 표정의 승무원들은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듯 했다.
747기는 이후에도 내 인생 다양한 순간에서 교차했다. 내가 베트남 호찌민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서 근무할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베트남 순방을 왔었다. 베트남전 종전 이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첫 순방이었다. 2000년 11월, 밤늦게 공항에 도착한 대통령을 영접할 때 공항 조명을 받은 에어포스 원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당시 미국과 베트남의 공식 외교 관계는 초기 단계에 있었기에 미국을 상징하는 747기의 등장은 마치 향후 양국 관계의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탄과 같이 느껴졌다. 2008년, 태국 주재 미국대사로서 조지 부시 대통령을 747기종의 대통령 전용기 앞에서 맞이한 것은 내 외교관 경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미 공군 참모총장의 외교정책 보좌역으로 근무할 때 앤드류스 공군기지(Andrews Joint Base)에서 해외 출장 준비를 하던 중 창밖으로 747기 한 대가 웅장한 위용을 뽐내며 들어오던 것도 기억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 차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막 도착한 것이었다.
에버렛 공장에 서서 거대한 747기를 바라보노라니 이 모든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전 세계 각지에서 생산된 400만 개의 부품을 에버렛 공장에서 하나의 항공기로 조립하는 일련의 과정은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가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747 항공기가 나를 비롯한 수백만 명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수많은 이의 꿈과 상상력을 키워주었음은 잘 알고 있다. 아내와 에버렛 공장에서 747기를 바라볼 때, 오랜 벗과 조우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747은 나에게 외교 커리어를 키워갈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고, 유년 시절 꿈꾸던 곳에 데려다주었으며, 나이가 들어 가정을 꾸렸을 때 나의 가족에게도 똑같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비록 747기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겠지만 새로운 혁신적인 제품들이 전 세계를 이처럼 고무시킬 것이다. 한국은 미래 운송의 시대를 열기 위해 전기수직이착륙(eVTOL) 항공택시를 개발 중인 몇 안 되는 국가이다. 만약 지금 내가 열 살이라면 비행기로 바다를 건너는 동안 계단을 오르는 것보다 이 무인항공기에 더 크게 흥분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前 주태국 미국 대사, 조선일보(22-10-20)-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世界-人文地理]'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헤라클레스의 12과업… 신화와 역사 사이] [덴두르 신전] (0) | 2022.10.25 |
|---|---|
| [선제공격] [이스라엘 독립 지키려.. 탱크·비행기·군함까지 밀수] (1) | 2022.10.23 |
| [네옴시티] [서울 44배 ‘미래 도시’.. 자유 증진은 미지수] (0) | 2022.10.18 |
| [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였을까] (0) | 2022.10.16 |
| [천연두 휩쓴 17세기.. 동서양 왕들은 걸어다니는 ‘종합병동’..] .... (0) | 2022.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