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 경제를 걱정한다]
[선진국 가는 필수 관문 노동개혁,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
[낡은 노조가 新산업 발목 잡는 나라의 미래]
[정부자문硏 노동개혁 권고… 입법 비전 없인 희망고문일 뿐]
[독일 축구 몰락의 원인이 된 ‘50+1′ 규칙]
일본이 한국 경제를 걱정한다
‘한국’의 추월을 아파했던 일본이 맹렬 정신 실종, 기술 유출 이유로 이제 한국 경제를 걱정한다
우리는 어떤 대책을 고민 중인가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정말 힘들었다. 돈은 안 벌어지고, 개발도 뜻대로 안 됐다. 회의는 날마다 밤 11시에 했다. 사장과 전무도 참여했다. 당시 기흥은 정말 시골이었다. 너무 늦게 끝나니 매일 밤 회사에서 차량을 준비해줬다. 꼭 버스 2대에 나눠 탔다. 혹시 교통사고가 나면 한꺼번에 우리의 꿈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2004년 11월에 작성한 기자의 취재 수첩에 적힌 한 대목이다. 취재원은 당시 삼성전자 차세대연구팀장 김기남 전무. 훗날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삼성이 왜 잘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회의 문화’를 꼽았다. “전무부터 대리까지 누구든 서슴지 않고 반박을 한다. 이런 문화는 처음부터 우리가 생판 모르는 것(반도체 사업)을 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모르는 것을 가장 빨리 하려면 가장 잘하는 사람,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20년 전 취재 수첩을 꺼낸 이유는 지난달 말 일본 경제지 닛케이가 2회에 걸쳐 다룬 ‘삼성과 한국 경제’란 기획 기사 때문이었다. 삼성의 추월을 가장 아파했을 일본이 ‘대기업병’에 걸렸다며 한국을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기사는 “한국의 삼성전자는 최고 경영자의 결단력과 맹렬한 조직력으로 전자업계 거인이 되었지만, 미국의 애플과 대만의 TSMC 추격은 더 거세지고 있다. 중흥을 이끈 선대 회장(이건희)이 키운 사업의 수익은 줄고, 사업 쇄신은 안 됐다. 이재용 회장이 타파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최근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에서 뒤지고, 스마트폰에서 13년 만에 애플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준 사실을 언급했다. 이어 “10년 동안 삼성전자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거의 제자리지만 일본의 소니그룹과 히타치제작소는 사업 구조를 바꾸고 수익성을 개선해 미국 금융 위기 때 대비 주가를 10배 이상 끌어올렸다”는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닛케이 기사의 진짜 핵심은 삼성을 넘은 한국 경제 전반의 문제를 지적하는 대목이었다. 2023년까지 최근 5년간 한국의 반도체, 배터리, OLED, 조선 등에서 해외로 기술 유출은 96건. 유출처는 대부분 중국이며,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했다. 승진 경쟁에서 밀린 기술자들이 대거 중국으로 건너가면서 액정 패널 세계 1위인 중국 BOE에는 100명이 넘는 한국인이 일한다고도 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디스플레이, 조선, 석유화학, 배터리, 철강 등에서 지금 세계 선두는 모두 중국 기업이며, 중국 제조업과 같은 무대서 싸우면 승산이 없다는 진단도 내놨다.
이런 상황을 지적한 뒤 한국 내부의 ‘맹렬 문화’ 실종을 꼬집었다. 노조가 주된 지지 기반인 문재인 정권에서 법제화된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일에 대한 태도, 일하는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고 했다. “일하고 싶다는 젊은 직원에게 퇴근을 독려해야 하고, 정시 퇴근에 익숙해진 직원들 사이엔 ‘시간을 회사에 판다’는 의식이 뿌리내렸다”는 대기업 임원의 한탄을 소개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이미 수출 주도의 재벌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둔화기에 접어들었다. 게다가 일본보다 심각한 저출생, 고령화에 5000만명 수준의 내수 시장으로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때로는 외부의 시선이 자극이 된다. 걱정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건 극복의 기회인 동시에 쇠락의 현실화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복수와 증오의 구호만 넘치는 총선 국면에서 느끼는 절망감은 극단의 진영 논리 때문만이 아니다.
-이인열 산업부장, 조선일보(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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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가는 필수 관문 노동개혁,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
정규직 과보호에 따른 노동시장 이중구조 탓에 대기업 생산직 고령 근로자들은 정년 보장과 고액 연봉을 누리는 반면 하청 근로자 등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만성적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1도크에서 하청 근로자들이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하는 모습./연합뉴스
정부 위탁을 받은 전문가 기구가 ‘노동시장 개혁 권고안’을 발표했다. 사실상 정부안으로, 주52시간제를 월·연간 단위로 확장해 유연 적용, 호봉제를 직무급으로 전환, 파견 근로자 업종·기간 확대, 파업 기간 중 대체 근로 허용, 주휴수당 폐지 등 후진적 노동 제도를 수술하는 개혁 방안이 대거 담겨 있다. 옳은 방향이나 문제는 실행력이다. 고용부 장관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안이한 생각이다. 노조와 무조건 노조 편을 드는 민주당의 반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를 제외한 역대 정권도 여러 차례 노동개혁을 추진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노동계 반발을 돌파할 정권 차원의 의지가 약해 정치적 미봉으로 끝나곤 했기 때문이다. 노동계를 설득하기 위해 임금 체계 개편을 전제로 한 60세 이상 정년 연장, 사회 안전망 확충 등 다양한 협상 카드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산업화, 정보화 단계를 거치며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다. 하지만, 근로 관행과 임금 체계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그대로 묶여 있다. 호봉제 탓에 30년 이상 근속자의 평균 임금은 1년 미만 근속자의 4.4배에 이른다. 호봉제 원조 국가 일본(2.4배)보다 훨씬 높고, 유럽연합 평균치의 3배에 달한다. 전체 산업의 시간당 임금 상승 폭이 지난 20년간 154%로, 미국·독일의 2~3배에 달하는 반면 노동 생산성은 미국·독일의 50~60% 수준에 불과하다. 경쟁국의 연구실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데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52시간제 탓에 연구소조차 밤이 되면 불을 끄고 퇴근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낡은 노동 관행과 제도는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양극화, 정규직 과보호에 따른 청년 일자리 감소, 고임금·저효율에 따른 기업 경쟁력 약화 등을 초래해 국가 경쟁력을 좀먹고 있다. 한국의 GDP 순위는 세계 9위지만 세계경제포럼이 매기는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노사협력(130위), 정리해고 비용(116위), 고용·해고 관행(102위) 등 노사 관계 경쟁력은 세계 꼴찌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 제도와 관행을 고치지 않고서는 경쟁을 이길 수 없고 선진국도 될 수 없다. “(과격 투쟁만 일삼는)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고 했던 어느 전직 의원의 호소처럼 노동 개혁 없이는 미래 세대에 희망을 줄 수도 없다. 4차 산업혁명의 대전환기 속에서 경제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조선일보(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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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게 꺼낸 노동·건보·연금개혁. 정치권도 손익보다 미래 세대를 위해 함께 욕먹을 각오로 나서야.
-팔면봉, 조선일보(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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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노조가 新산업 발목 잡는 나라의 미래
기아차가 25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에 전기차 공장 신설을 추진 중이지만 노조 반대에 막혀 속도를 못 내고 있다. 기아차는 경기도 화성에 2024년까지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지어 일단 연간 10만대를 생산하고 시장 상황에 맞춰 최대 15만대까지 확장하기로 했다. 그런데 기아차 노조는 일감을 늘려야 한다며 처음부터 20만대 생산 규모로 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기아차 노사 단체협약은 신공장 착공 때 노조 동의를 필수로 정해놓고 있다. 그동안 기아차 노사가 신공장과 관련해 14차례나 협의를 진행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사측은 생산 규모를 처음부터 늘리면 시간·비용이 늘어나 글로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노조는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참석자들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기공식에서 첫 삽을 뜨고 있다. 왼쪽부터 호세 무뇨즈 현대자동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사장), 윤승규 기아 북미권역본부장, 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 조태용 주미대사,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 버디 카터 연방 하원의원, 라파엘 워녹 연방 상원의원, 존 오소프 연방 상원의원, 돈 그레이브스 미 상무부 부장관.2022.10.26./ 현대자동차
같은 그룹사인 현대차가 6조3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조지아주에 짓기로 한 전기차 공장은 부지 확정부터 착공까지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내 상황과 정반대다. 미국이 자국 내에서 생산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법을 만들 정도로 전기차 시장의 선점을 놓고 각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는데도 한국 노조는 세상 물정에 귀 막고 막무가내다.
기아차 노조는 광명 2공장의 전기차 라인 전환에도 딴지를 걸고 있다. 이곳에서 만드는 수출용 차량의 일부 생산 물량을 협력사에 외주 주겠다고 하니 노조는 “단체협약 위반”이라며 아예 협력사를 인수하라고 요구한다. 대세로 자리 잡은 온라인 차량 판매조차 노조 반대에 부딪혀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가 생산성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경영 판단까지 좌지우지하면서 기업의 앞길을 막고 있다. 기업의 신속한 투자 결정이 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게 뻔한데도 노조의 자해적 행태는 끝이 없다.
은행들이 가입한 금융노조도 연공서열 중심의 호봉제만 고집하는 바람에 능력·성과에 따른 차등 대우가 필요한 IT 인재 채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은행들이 호봉제를 우회해 전문 계약직으로 IT 인력을 충원하는 방안이 있지만 3년 계약이 지나 재고용하려면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해 지장을 받고 있다. 디지털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인력을 전환 배치하려고 해도 노사 합의를 거쳐야 하니 노조가 은행의 변화를 가로막는 셈이다. 낡은 사고방식에 젖은 노조가 새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나라의 미래가 무엇이겠나.
-조선일보(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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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자문硏 노동개혁 권고… 입법 비전 없인 희망고문일 뿐
권순원 교수 등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을 논의해 온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현행 1주 외에 ‘월 단위 이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뉴시스
정부 의뢰를 받아 노동개혁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전환, 경직된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권고안을 내놨다. 저출산·고령사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공장시대에 맞춰진 노동 관련 제도들을 크게 손봐야 한다는 제안이다.
미래연은 경제활동인구 부족으로 성장률이 하락할 초고령사회에 대비, 임금체계를 개편해 정년연장의 돌파구를 만들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이를 위해서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을 올리는 호봉제를 근로자의 역할, 성과, 숙련도에 따라 다르게 보상하는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주 52시간제의 연장근로 시간 산정단위도 현재의 1주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다양화해 업종, 기업 특성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에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정년 65세를 넘긴 은퇴자들에게 기업이 70세까지 일할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는 법을 도입했다. 또 기업들이 고령자의 고용을 꺼리지 않도록 직무성과급제를 통해 업무에 따라 임금을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100인 이상 사업체의 56%, 노조가 있는 기업의 68%가 호봉제여서 기업들이 임금 높은 고연차 근로자를 줄이려고 한다. 월·연 단위로 연장근로를 규제하는 선진국들과 달리 주 단위로 통제하는 주 52시간제 역시 기업의 인력운용을 제약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런 점에서 미래연의 권고는 설득력이 있다. 청년 세대는 나이, 연차가 아니라 성과에 근거한 공정한 보상을 원하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 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 일하는 ‘긱(Gig) 워커’ 증가 등 노동시장의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서도 개혁은 피할 수 없다. 권고안이 충분히 다루지 않은 고질적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선에도 정부는 박차를 가해야 한다.
문제는 개혁을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등 다수의 노동관계법을 고쳐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계와 야당을 설득하지 못하면 갈등만 키우고, 개혁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개혁안 마련보다 중요한 건 개혁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말로는 강한 의지를 보이다가 희망고문으로 끝난 과거의 개혁 실패를 되풀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동아일보(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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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 몰락의 원인이 된 ‘50+1′ 규칙
[朝鮮칼럼]
대자본의 구단 소유 제한, 리그 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독일의 노동이사제도 기업 혁신만 저해한다는 비판
노조 동의 없이는 공장도 못 짓는 한국에서 잘 정착될까 걱정
“축구는 단순한 경기다.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쫓아다닌 뒤 결국 독일이 이긴다.” 영국 축구의 레전드 게리 리네커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에 패하고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과거 독일 대표팀은 아무리 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들어도 4강 안에 들었다. 그런 극강의 독일 축구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이어 연속으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2일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독일의 저말 무시알라(왼쪽)가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은 채 슬픔을 삼키고 있다. 독일의 베테랑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가 그를 위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많은 전문가는 독일 축구 몰락의 이유로 ‘50+1′ 규칙을 꼽는다. 독일 구단 지분의 ‘50+1′퍼센트를 클럽의 팬과 회원들이 소유해야 한다는 것으로, 특정 기업이나 개인은 49% 이상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자국 리그가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것을 막고 구단 서포터이자 회원들이 평등하게 구단 경영에 참여하자는 취지다. 노동자들의 축구 클럽에서 출발한 독일 축구 구단의 역사와 철학이 반영된 규칙이라고도 한다. 이론상으로는 더없이 근사하게 들린다. 실제로 이 규칙 덕분에 독일 리그 관람료는 다른 유럽 리그의 절반 이하로 싸고, 충성심 높은 팬이자 주주들은 경기 때마다 축구장으로 몰려든다.
그런데 문제는 독일 축구 리그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점이다. 하위 팀이 상위 팀을 이기려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처럼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같은 거부(巨富)가 구단을 인수해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하지만, 독일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 탓에 독일 리그는 스포츠의 생명인 순위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주말 경기가 끝날 때마다 순위가 요동을 치는 잉글랜드 리그와 달리, 독일 리그는 2012년 시즌부터 10년 내내 바이에른 뮌헨이 우승을 차지했다. 유럽 국가 리그의 상위 4팀이 유럽 최고 클럽을 다투는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을 제외하면 존재감이 전혀 없다. 또 손흥민처럼 뛰어난 선수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줄줄이 다른 나라 리그로 떠나 버린다. 오죽하면 매년 우승하는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이 나서서 “50+1 룰을 폐지하지 않으면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50+1 룰은 포퓰리즘”이라고 거세게 비난했을까 싶다.
뮌헨이 리그 10연패를 달성한 데에는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바이에른주(州)를 연고지로 한다는 점도 큰 요인이다. 알리안츠·아우디·지멘스·아디다스 등 뮌헨 소재의 독일 대표 기업들이 구단의 주주이자 스폰서 기업이므로, 가난한 지역에서 연고지를 마련한 구단들은 죽었다 깨나도 뮌헨을 따라잡을 수 없다. 공정을 위해서 만든 룰이 거꾸로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찬 격이다.
‘50+1′ 규칙이 독일 기업 경영에는 노동이사제라는 이름으로 반영된다. 독일은 현재 고용 규모가 500명이 넘는 회사에서는 이사진의 3분의 1에서 최대 절반까지 노동이사를 둬야 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노사 양측에서 동시에 비판받고 있다. 노 측에서는 경영에 대한 감독권만 갖는 노동이사를 두고 “구멍이 숭숭 뚫린 제도”라고 비판하고, 경영계에서는 “기업 혁신의 발목을 잡는 관료주의”라고 비판한다. 독일 시가총액 1위 기업인 SAP의 기업 가치가 삼성전자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의 숫자가 미국·중국·인도 등 경쟁국보다 현저히 뒤지는 것도 겉만 번지르르한 노동 관료주의 탓이라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수출은 중국, 에너지는 러시아에 의존하는 좌파적 글로벌 연대 전략과, 탄소 중립·탈원전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환경 이데올로기를 주창해온 독일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총성 한 방에 찬물을 뒤집어 쓴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독일 대표 화학 회사인 바스프는 에너지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공장 가동을 줄이고 있고, 독일이 자랑하는 강소 기업 4곳 중 한 곳이 저렴한 에너지를 찾아 해외 이전까지 고려해, 제조업 공동화 우려까지 나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8월부터 130개 공기업과 공공 기관에 노동이사제가 시행됐다. 노조의 동의를 못 구하면 공장도 못 짓는 나라에서 이 노동이사제가 어떻게 기업과 경제의 발목을 잡을지 걱정이다. 경제가 곧 안보(安保)이며 기업이 무기화되는 지금 시대에는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과 신념보다는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우선해야 한다.
-조형래 산업부장, 조선일보(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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