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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으로 다시 소환된 ‘난쏘공’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뚝섬 2023. 1. 7. 10:24

[정치판으로 다시 소환된 ‘난쏘공’ 어떻게 읽을 것인가]

[난쏘공]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정치판으로 다시 소환된 ‘난쏘공’ 어떻게 읽을 것인가

 

尹대통령에 선물한 이정미
1970
년대에 갇힌 386 세계관

 

‘서울 낙원구 행복동에서 판잣집을 짓고 살아가는 난쟁이 가족. 어느 날 재개발로 집을 철거당한다. 증조부가 노비였던 아버지는 달나라로 이주하는 상상을 하다가 공장 굴뚝 위에서 추락사하고, 공장 다니는 큰아들은 고용주에게 항의하다 해고된 후 우여곡절 끝에 살인자로 전락하며, 딸은 헐값에 팔려나간 아파트 입주권을 되찾을 목적으로 성적 학대를 견디며 건설 투기꾼과 동거한다.’

 

1978년 출간된 ‘난쏘공’ 초판본. 표지 그림은 백영수 화백 작품이다. /개인소장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는 구절로 시작하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줄거리다. ‘난쏘공’이란 약칭으로 유명한 이 소설이 조세희 작가의 별세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설은 1978년 초판이 나온 이래 지금까지 300쇄를 찍었고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난쏘공이 반세기 가까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까닭은 작가가 폭로한 사회 모순이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바로 불평등과 주택 문제다. 난쟁이 가족의 이웃에 살던 지섭은 철거 용역 직원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방금 선생은 오백 년이 걸려 지은 집을 헐어 버렸습니다.” 무허가 판잣집이지만, 이것마저 대대손손 노비였던 조상의 유산으로 가까스로 만들 수 있었다는 한탄이다. 그런데 오늘날 비슷한 탄식이 젊은이들에게서 나온다. “흙수저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아 산 아파트 값이 폭락해 파산 직전이다.” 연일 뉴스에 나오는 ‘부동산 영끌’ 이야기다. 난쏘공의 1970년대와 오늘날이 이런 식으로 연결된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그랬다.

 

단,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쟁점이 비슷하다고 원인까지 같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중산층이 보유한 구매력은 50년 전 상위 1% 부자보다 크다. 서울의 주택 보급률은 1970년 57%에서 2020년 95%로 상승했다. 오늘날 주로 쟁점이 되는 불평등 문제는 기여에 비해 많은 몫을 챙기는 지대 추구와 관련된다. 서울의 주택 문제는 수백 만 가계가 앉은 자리에서 평생 일해서 벌 소득을 얻거나 잃는 재산상 불안정성이 원인이다.

 

난쏘공에 나오는 절대적 빈곤과 도시 빈민의 주택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경제적 성장에 따라 그 심각성이 상당히 감소했다. 챙겨야 할 중요한 문제이지만, 다른 쟁점을 지배하는 최상위 문제는 아니다. 난쏘공에 공감한다고 소설 상황을 염두에 두고 현실에서 정책을 기획하면 사달이 것이다.

 

지난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정의당 이정미 대표로부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책을 선물받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386 운동권’이라고 하는 문재인 전 정부와 민주당 주류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소득 주도 성장론과 기본 소득론은 난쏘공에 나오는 절대적 빈곤층을 염두에 것으로, 오늘날의 불평등 원인인 지대 추구를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부동산 정책은 난쏘공의 극악무도한 투기 업자를 상상하며 투기 규제책만 퍼부었을 뿐, 오늘날 대도시 주택 문제의 핵심인 아파트의 재산 성격을 무시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작가의 별세를 애도하며 “저를 비롯한 우리 세대는 난쏘공을 읽으며… 실천 의지를 키울 수 있었다”고 소셜미디어(SNS)에 적었는데, 나는 그들이 의지만이 아니라 정책 방향까지 배워왔다고 생각한다. 386 운동권의 세계관은 지금까지도 1970년대 난쏘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소설에 대한 정파적 오독도 문제다. 지난 2일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신년 인사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난쏘공을 선물하며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줄 사람이었다”고 책 내지에 적었다. 윤 대통령의 노동 정책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저 문구는 큰아들 영수가 위정자들에게 냉소를 보내며 “설혹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라고 읊조린 뒤 한 말이다. 영수는 권력에 하소연하지 않고, 동료들을 모아 사장과 담판을 지으려다 해고된다.

 

저 인용문은 대통령실이 아니라 노동조합 사무실에 내걸려야 어울린다. 금서(禁書)였던 난쏘공을 숨어서 읽던 사람들이 “고통을 알아주고 나누는 존재”로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1987년 이후의 노동조합이니 말이다. 노동조합은귀족 노조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고통받는 계층과 괴리돼 있다. 386 이데올로기 안에 갇혀 있는 이정미 대표는 난쏘공을 가지고 보수 정부를 비판하려다 정부 인사들과 비슷한 오류에 빠져버린 셈이다.

 

우리는 난쏘공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최근 한국 정치는 상대를 공격하는 용도로, 또는 자신의 망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현대사를 소환해 소비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난쏘공도 그렇게 소비하려는 것 같아 우려된다. 1970년대 도시 빈민의 삶을 기록한 역사적 소설인 난쏘공을 후대에 소중히 전달하려면, 386 이데올로기에 주의하며 책을 읽어야 한다.

 

-한지원 정치·경제 평론가·'대통령의 숙제' 저자, 조선일보(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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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쏘공 

 

소설가 조세희가 1978년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펴냈을 때 ‘난쏘공 신화‘의 탄생을 내다본 이는 거의 없었다. 당대의 문학평론가 김현은 “한 8000부쯤 나가겠네”라 했고, 작가 자신도 “쓰느라 3년 고생했으니 더 나가야 하는데”라며 걱정했다. 그때만 해도 문학에 도시 빈민의 삶을 담는 것은 흔치 않았다.

 

▶처음엔 운동권 학생들의 ‘의식화’ 도서로 읽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약자를 돌보는 내용이 1970년대 사회 분위기와 맞물리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올해까지 320쇄 148만부를 찍으며 문학 작품으론 유례를 찾기 드문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소설의 애칭인 ‘난쏘공’은 비단 이 소설만 지칭하지 않고 일상에서 다양하게 변용된다. 리오넬 메시가 몇 해 전 남미 축구대회인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페널티 킥을 실축하자 신문에 ‘메쏘공’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최근에도 ‘다누리가 쏘아 올린 우주 강국 꿈’ ‘글로벌 OTT가 쏘아 올린 광고 요금제’ 같은 기사 제목으로 활용된다.

 

▶정작 조세희는 작품의 성공을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1996년 100쇄를 돌파하고 2005년 200쇄에 이르자 “아직도 팔리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출간 30주년 때는 “청년이 이 책 내용에 공감한다는 게 괴롭다”고도 했다. 그는 “30 내가 우리 사회에 품었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한 한국은 성장하기를 멈춘 나라”라고 비판했다.

 

▶'난쏘공’은 그에게 자부심이자 또 다른 고지에 오르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었다.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나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샐린저는 명작 하나로 끝났다. 조세희도 ‘난쏘공’을 뛰어넘는 작품을 쓰길 갈망했지만 쉽지 않았다. 1983년 소설집 ‘시간여행’을 끝으로 결국 소설 쓰기에서 멀어졌다. 여러 해 전 해외여행 때 그의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난쏘공을 넘어서는 작품을 써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낀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곁에서 봤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 병마가 조세희를 덮쳤다. 그는 “집중을 하지 못한다. 젊었던 내게 뛰어와서 써달라고 하던 단어들이 사라진다”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소외된 이들의 삶에 대한 관심만은 놓지 않았다. 펜 대신 카메라를 들고 탄광촌에 들어가 그곳의 삶을 사진집으로 묶기도 했다. 조세희가 우리 사회 음지를 비추는 밝은 조명탄을 쏘고 크리스마스 날 저녁 영면에 들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사회엔 발전에 따른 그림자도 드리워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 그림자를 돌아보게 한 작가였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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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길에서 얼어 죽을 뻔한 사내 살린 부부… 가난하지만 사랑 실천하며 살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쓴 작가 레프 톨스토이. /위키피디아

 

내가 인간의 몸을 하고 있었을 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지나가던 남자와 그 아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1881년 발표된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탄탄한 구성과 단순하고 진실한 내용, 완벽한 언어와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단편소설이에요.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의 장편소설로 지금까지도 위대한 작가, 대문호라는 별칭으로 불리지요. 후대 평론가들은 그 저력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중단편 작품에서 나왔다고 말합니다. 이 작품 역시 짧지만 만만치 않은 문학성과 사상을 담고 있다는 의미죠.

가난한 구두장이 세묜은 아내와 함께 입을 털외투를 만들 양가죽을 구하려고 마을에 나갔어요. 한 농부에게서 밀린 장화 수선비를 받으면 양가죽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농부는 돈이 없다며 푼돈만 쥐여줬죠. 풀이 죽은 세묜은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고 길모퉁이 작은 예배당을 지나다가, 알몸으로 쓰러져 있는 한 사내를 발견해요. 못 본 척 지나쳤지만, 양심에 가책을 느낀 구두장이는 그 자리로 돌아옵니다. 자신의 낡은 옷을 입히고 장화까지 신겨서 집으로 데려오죠. 아내 마트료나는 며칠 동안 먹을 빵 걱정을 하며 남편을 기다리는데, 남편이 낯선 사내를 앞세워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요. 털외투를 만들 양가죽은 못 구하고, 술이나 먹고 들어온 남편에게 화가 치밀었어요. 심지어 자기 식구들 먹을 음식도 모자라는데, 남편은 손님 접대할 음식을 차리라며 타박까지 합니다. 하지만 마트료나는 소박한 음식을 차려내 낯선 손님을 대접해요.

청년의 이름은 미하일이었어요. 미하일은 6년 동안 세묜과 마트료나 가족과 함께 살며 구두를 만들어요. 숙련된 일꾼이 된 미하일이 떠날까 봐 세묜이 걱정할 정도였어요. 사실 미하일은 천사였어요. "한 여자의 영혼을 거두어오라"는 신의 명령을 어긴 죄로 벌을 받아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던 거예요. 신은 세상에 내려가 사람들이 어떤 모양,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미하일에게 살펴보라고 했어요. 미하일이 영혼을 거둔 여자의 쌍둥이 딸들은 이웃의 친절과 사랑으로 잘 자랐어요. 미하일도 한겨울 추위에 얼어 죽을 수도 있었지만, 세묜과 마트료나의 호의와 사랑 때문에 살아남아, 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요? 돈이 모든 것보다 앞서는 세상에서,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우리 모두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연말연시,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 우리 이웃에게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조선일보(2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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