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神’ 지우는 김정은, 말기적 이상 증상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결사의 각오로 타는 ‘날아다니는 관’]
[“고물이 온다, 고물이 간다”]
‘김일성 神’ 지우는 김정은, 말기적 이상 증상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 112돌을 맞은 15일 '수도의 거리마다에 경축의 환희가 넘쳐흐른다'라면서 명절 축하 분위기를 내고 있는 평양 거리 풍경을 소개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북한이 김일성에게 써왔던 ‘태양’이란 표현을 지워가고 있다. 노동신문 등은 지난 15일 김일성 생일을 ‘태양절’로 부르는 대신 대부분 ‘4·15′ 또는 ‘4월 명절’로 표기했다. 통일부는 “의도적 삭제”라고 분석했다. 김일성이 태어났다는 만경대도 ‘태양의 성지’에서 ‘애국의 성지’로 바뀌었다. 1997년 김일성 생일을 ‘태양절’로 이름 붙인 사람이 김씨 왕조 2대인 김정일이다. 김일성을 ‘태양’ 같은 신(神)적 존재로 우상화해 김씨 일가 독재를 정당화하려 했다.
김정은도 집권 초엔 김일성을 흉내 냈다.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옷과 머리를 하고 나오더니 연설 스타일도 따라했다. 김일성처럼 “이밥에 고깃국”을 약속했고 “인민에게 미안”하다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부족한 권력 정당성을 신격화한 김일성 모방으로 메우려 한 것이다. 북 주민들도 상대적으로 괜찮았던 김일성 시대를 떠올리며 잠시 희망을 품기도 했지만 금세 지옥 같은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경제난은 날로 심각해지는데 김정은은 북·중 국경 1400km를 전부 철조망으로 막았다. 이젠 탈북조차 어렵다. 내부 불만이 팽창하고 있다.
이런 위기 속에 김정은은 김일성의 ‘신’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려 한다. ‘태양 김정은 장군’이란 플래카드가 등장했고 노동신문 등은 “주체 조선의 태양”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올해 태양절에 참배도 하지 않았다. 북은 17일 평양 아파트 준공식을 맞아 ‘친근한 어버이’라는 제목의 김정은 우상화 노래를 발표했다. 그동안 ‘어버이’는 김일성을 묘사할 때 쓰던 표현이었다. 김정일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정은은 김일성의 ‘태양’과 ‘어버이’ 호칭을 동시에 제 것으로 만들고 있다.
태양은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넘볼 수 없는 권력을 뜻한다. 김정은은 김일성의 태양이 기울고, 자신이 뜨고 있다는 선전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권력의 근원이 김일성이다. 권력을 세습해놓고 김일성을 벗어나려 한다면 김정은의 권력 정통성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전근대적 김씨 왕조에서 벌어지는 말기적 이상 증상이다.
-조선일보(2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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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사의 각오로 타는 ‘날아다니는 관’
북한 공군 조종사들이 출격에 앞서 결사의 각오를 다지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뒤에 보이는 전투기가 북한 공군 주력인 미그-21이다. 동아일보DB
북한 공군을 찬양하는 전면 기사가 14일 노동신문에 게재됐다. 불과 한 달 반 전인 8월 28일 김정은은 “앞으로는 육해공이 아니라 해육공이라고 불려야 한다. 해군이 자주권 수호에 제일 큰 몫을 해야 한다”며 해군을 격찬했다. 공군이 불만을 가질 수 있으니 부랴부랴 공군을 다독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조국의 영공을 목숨으로 지켜가는 공군 장병들의 열화 같은 애국심을 따라 배우자’는 제목의 기사는 “오직 당중앙 결사옹위의 항로만을 나는 공군 장병들의 결사의 각오와 실천이야말로 누구나 본받아야 할 참다운 애국의 귀감”이라고 치켜세웠다.
이 기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비장한 죽음’이다. 결사, 육탄, 자폭 등 죽음과 연관된 단어들이 이어졌다. 비행 중 목숨을 잃은 조종사들이 본받아야 할 사례가 나열됐다. 기사를 읽으면 북한에선 비행 자체가 목숨을 건 결사적인 행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을 각오가 없으면 비행기를 탈 수 없는 것이 북한 공군의 실제 현실이기 때문이다. 북한 공군의 최신 전투기는 1980년대 중반 생산된 미그-29로 불과 10여 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1967년 전력화된 미그-23이 40여 대, 1959년 전력화된 미그-21이 120여 대인데 이 중 몇 대나 뜰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나머지는 비행기라고 해야 할지조차 민망한 고물들이다.
북한 공군의 주력인 미그-21은 ‘환갑’이 지난 비행기다. 1950년대에 전력화된 비행기가 주력인 공군은 세계에서 북한이 유일하다. 그나마 인도가 올해 초까지 31개 비행대대 중 3개 대대가 미그-21 50대를 운용했지만 지금은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인도가 미그-21을 운용한 것은 소련에서 기술을 이전받은 생산 공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품 조달 및 수리가 가능한 공장까지 갖고 있음에도 인도에서 미그-21은 ‘날아다니는 관’이라고 불렸다. 인도 신문 힌두스탄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60년간 400대 이상의 미그-21이 각종 사고로 추락했고, 약 200명의 조종사가 숨졌다.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우크라이나 전쟁 1년 반 동안 격추된 전투기 수보다 더 많이 추락하고, 더 많은 조종사를 죽게 한 것이 인도의 미그-21이다. 생산 공장이 없는 북한은 인도보다 사정이 더 나쁠 것이다. 인도가 미그-21 운용을 중단하면서 이제 북한 조종사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날아다니는 관’을 타게 됐다.
사고 사례는 노동신문 기사에도 묘사된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포토숍 복사 붙이기 기능까지 동원해 150대가 떴다고 과장선전한 대규모 항공공격종합훈련에서 이륙 후 고장이 난 비행기가 있었다고 한다. 비행사는 귀대 명령을 거부하고 명령을 관철하기 전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면서 그대로 날아가 폭격 임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북한은 이 비행사를 결사의 각오를 가진 귀감이라 내세웠지만 그의 생사는 언급하지 않았다.
전투기는 개발 시기가 20년 정도 차이만 나도 학살 수준의 격차가 벌어진다. 당장 북한 조종사들부터 1947년에 생산돼 아직도 북한에서 운용 중인 미그-15로 1967년에 생산된 미그-23과 전투를 하라고 하면 “미쳤냐”는 소리를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몇 세대 이상의 격차를 가진 한미 공군과 싸워 이긴다고 큰소리를 친다. 북한이 침투용으로 운용하는 AN-2기는 개발된 지 75년이 지났고, 특수부대 12명을 태우면 시속 150㎞도 나지 않는다. 이걸 타고 북한은 유사시 남쪽 곳곳을 기습 점령한다고 큰소리를 친다. 하지만 노동신문이 아무리 열심히 결사의 각오를 주문해도 군인들이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북한군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장마당 세대’가 주력이 됐다. 국가의 혜택이란 걸 받아 보지 못한 이들이 김정은을 위해 진심으로 결사의 각오를 가질까.
물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침 어제까지 서울공항에선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가 열렸다. KF-21, F-35A, E-737 등 65대의 최신 항공기와 전차, 자주포 등 한미 연합군의 핵심 자산들이 전시됐다. 북한군에 전시회 영상을 보여준다면 없었던 결사의 각오도 진심으로 생기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2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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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이 온다, 고물이 간다”
지난해 9월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심야 열병식에서 트랙터들이 122mm 방사포를 견인해 주석단 앞을 지나가고 있다. 동아일보 DB
몇 년 전 유튜브에서 북한군 열병식 풍자 영상이 화제가 됐다. 다리를 75도 이상 올리며 껑충껑충 뛰어가듯 행진하는 북한군 영상에 팝 음악 밴드인 ‘비지스’의 노래를 입혔을 뿐인데 조회수가 4200만 회가 넘었다. 여기엔 10만 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북한의 최대 명절인 태양절 110주년인 내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이 또 열린다. 이젠 하도 많이 봐서 대략적인 흐름이 머리에 훤하다. 선두가 기마병이든 노병이든 약간의 차별화는 있겠지만 보병 행진 후 기계화 부대가 따르고, 공군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가운데 대륙간탄도미사일이 피날레를 장식한다는 순서는 변함이 없다. 화려한 옷을 입고 꽃다발을 든 평양 시민들이 광장에서 ‘김일성, 김정은’과 같은 글씨를 만들며 우렁찬 만세를 부르는 가운데 김정은이 손을 흔들며 퇴장할 것이다. 1990년대에 김일성광장에서 직접 열병식 행사에 참가했던 나는 지금은 서울에서 열병식을 수없이 지켜보지만 이젠 열병식에 별 감흥이 없다.
그러나 내일 열병식은 느낌이 완전히 다를 것 같다.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다. 전쟁이 마치 게임 생중계처럼 세계에 실시간 송출되고, 러시아 전차가 휴대용 미사일 공격을 받아 폭발하고, 전투기와 헬기가 불덩이가 돼 떨어지는 영상이 매일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서 휴대용 미사일에 속절없이 파괴되는 러시아 전차와 장갑차는 알고 보면 북한에겐 ‘꿈의 전차’들이다. 돈 없어 사올 수도 없고, 기술이 모자라 베끼지도 못하는 T72, T80, T90 전차들이다. 북한군은 아직도 1960년 초반 개발된 T62 계열 전차가 주력이다.
1991년 걸프전쟁 때 이라크군은 소련의 최신형 T72 전차를 포함해 3500여 대의 전차부대를 운용했다. 그러나 미군 에이브럼스 탱크 단 1대도 격파하지 못했고, 전차병 3명에게 부상을 입혔을 뿐이다. 31년 전에 그랬다. 지금은 남북의 전차 전력이 반세기 이상 차이 난다. 중동전쟁과 걸프전에서 소련제 전차가 전혀 힘을 못 쓰자 일부 전문가들은 “소련이 보급형을 수출했기 때문, 전차병들의 훈련이 부족했기 때문” 등으로 설명하며 “진짜 러시아 기갑부대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두둔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진짜 러시아 최정예 기계화 부대가 군사력 순위에서 20위나 차이가 나는 우크라이나군에 힘을 못 쓰고 당하고 있는 장면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러시아제 무기의 허상 역시 생생하게 드러났다.
김정은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볼 것이다. 북한은 세계에서 구소련의 무기 시스템과 군사 교리에 기초해 군이 운용되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그런데 북한의 우상인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가 북한이 그렇게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최신 장비를 총동원하고도 창피를 당하고 있다. 전차부대만 힘을 못 쓰는 게 아니다. 러시아 공군도 북한에 없는 SU30, SU34 신형 공군기에 강력한 Mi24, Mi28 공격헬기로 무장했지만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겨우 10여 대를 보유한, 1980년대에 생산된, 미그29는 이번 전쟁에서 고물 취급 받는 낡은 전투기다. 북한의 주력 전투기는 여전히 1950, 60년대 생산된 미그21, 미그23이다.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김일성광장에서 지나가는 기계화 부대를 보면서 이것도 군대라고 유지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진 않을까. 난 내일 열병식에서 북한군 기계화 부대가 지나갈 때마다 우크라이나 거리와 마을에 뒹구는 포탑이 날아가 녹이 쓴 러시아 전차와 장갑차가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되뇔 것이다.
“고물이 온다, 고물이 간다.”
김일성광장 상공을 나는 비행기들을 보면서도 되뇔 것이다.
“고물이 온다, 고물이 간다.”
이는 재래식 전쟁에서도 세계 군사력 평가 6위인 한국이 28위인 북한에 진다고 주장하는 일부 한국군 장성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지금은 남북이 재래식 전쟁을 하면 그냥 고물 청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위성과 무인기로 손금 보듯 전장을 보는 세상에선 고물을 숨길 곳도 없다. 장군님이 명령만 내리면 당장 남으로 진격해 적을 쓸어버릴 수 있다고 믿으며 껑충껑충 행진하는 북한 군인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영상을 보여주고 싶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한편으론 북한군이 얼마나 허약한지도 생생히 방증하고 있다. 고물의 퍼레이드가 뭐가 자랑스럽다고 매년 꼬박꼬박 열어 온 세계에 보여줄까. 창피하지도 않을까.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2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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