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교수’]
[“의사 밥그릇, 중요하지만 본질 아니다… 정부가 필수의료대책 이행 확신 줘야”]
‘의사 교수’
재작년 타계한 조순 전 부총리는 서울대 교수 시절 엄한 스승이었다. 학생들이 시국을 이유로 수업을 거부하면 가차 없이 학점을 깎았다. 1970년 제자로 입학한 아들에겐 더 엄격했다. 한번은 아들이 낸 기말고사 답안지가 사라지자 “네가 얼마나 공부를 안 했으면 시험지가 도망을 다 갔겠느냐”며 F(낙제)를 줬다. 수업 거부와 휴강이 성행하던 1970년대, 조순은 혼신의 힘을 다한 강의와 엄정한 학생 평가로 강단을 지켰다. 그런 스승을 제자들은 어려워하면서도 존경했다.
▶이번 주 아카데미상을 휩쓴 영화 ‘오펜하이머’의 주인공인 핵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도 철저한 강의 준비로 유명했다. 버클리 교수 시절엔 영감을 불어넣는 강의에 매료된 학생들이 같은 과목을 두세 번씩 수강 신청했다. 오펜하이머는 다른 교수들이 불성실하게 강의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강의가 마음에 안 들면 수업 중인 교수를 강의실 밖으로 내쫓은 적도 있다.
▶강의에 대한 이런 열정은 교수직을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신의 소명으로 보는 서구 대학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됐다. ‘교수’라는 뜻의 영어 ‘프로페서(professor)’는 라틴어 pro(앞으로)와 fateri(공표하다)에서 왔다. ‘다중 앞에서 공적인 주제로 말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대학의 시초로 꼽히는 11세기 볼로냐 대학에서 처음 개설한 것은 신학이었다. 교수는 신의 진리를 많은 이에게 전하는 신성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중세 이후 교수는 출신에 관계없이 귀족 대우를 받았다. 오늘날 독일 등 중부 유럽에서 교수들이 누리는 사회적 존경에는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에 ‘사’를 붙인다. 공적인 일을 하는 판·검사에겐 ‘일 사(事)’를 쓴다. 변호사·변리사·조종사는 전문 지식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비 사(士)’를 쓴다. 그런 전문가 중에 특히 사회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종엔 ‘남을 가르친다’는 뜻의 ‘스승 사(師)’를 붙인다. 아픈 이들을 돌보는 도덕적 사명을 수행하는 의사에게 ‘師’를 쓰는 이유다.
▶전공의 파업 와중에 미래의 의사를 키워낼 책임을 진 의대 교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집단 사직하겠다고 했다. “사직서 제출은 진료도 강의도 안 하겠다는 의미”라고도 했다. 파업하겠다는 것이다. 학생이 수업을 거부하면 교수는 말리는 것이 상례인데 다른 풍경이다. ‘의사 교수’는 최고 존칭을 다 모아 놓은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의 기대가 크다. 그런 사람들이 제자 위한다고 환자 생명 팽개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3-14)-
_____________
“의사 밥그릇, 중요하지만 본질 아니다… 정부가 필수의료대책 이행 확신 줘야”
“왜 현장을 떠났냐고요? 환자 살리는 긍지 하나로 버텨왔는데, 그게 짓밟혔기 때문입니다.”
30대 의사 한지성(가명) 씨의 목소리는 착잡했다. 그는 빅5 병원 중 한 곳에서 심장혈관흉부외과 전임의(펠로)로 일하다가 지난달 29일 병원을 떠났다. 그는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도, 반대도 않는다”면서도 “정부가 의사를 ‘제 밥그릇만 아는 악마’로 만들어 버린 게 허탈해서 버틸 수가 없었다”고 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8∼12일 한 씨를 포함한 30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의사 5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지난달 19일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촉발된 ‘의료 공백’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으며 환자가 피해를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응급의학과와 비뇨의학과 등 필수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 5명은 모두 “정부의 정책 추진 방식을 보면서 환자를 위한 노력이 부정당한 것 같았다”고 밝혔다. 심장혈관흉부외과 펠로였던 지태민(가명) 씨는 “격무를 버텼는데 돌아온 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건 ‘밥그릇 지키기’”라는 시각에 대해서도 “본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서 중증 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오민준(가명) 씨는 “(집단행동이) 밥그릇(수입)과 무관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다만 정부의 필수의료 대책이 구체적이지 않고 재원 계획도 없어서 믿을 수 없는 게 진짜 이유”라고 했다. 서울의 한 비뇨의학과의원에서 일하는 30대 안도윤(가명) 씨는 “의사가 늘면 (의사 개개인의) 수입은 당연히 작아질 수 있겠지만 그게 최우선은 아니다”라며 “낮은 수가와 지원 미비 등 필수의료 현장에 누적된 불만에 의대 증원이 기름을 끼얹었다”고 말했다.
“의협은 우리 대표 못해, 젊은 의사 협상 참여시켜 출구 찾아야”
[의료공백 혼란]
MZ의사 5명 심층 인터뷰
“편의점-택시서 싸늘한 시선 느껴… 정부도 의사도 국민도 모두 진 것
이번 사태로 의료체계 환부 드러나… 상설협의체 객관적 지표로 토의를”
“바이털 진료과(환자 생명과 직결된 진료과) 의사 입장에선 ‘우리 좀 살려 달라’고 정부에 계속 개선을 요구했는데, 그동안 안 들어주더니 이제는 (의사) 면허를 갖고 협박하면서 벼랑으로 모는 겁니다. 이런 정부에선 의사 못 하겠다는 거예요.”
비수도권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손정훈(가명)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전공의를 마쳤지만 ‘지방 환자가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을 두 눈으로 보고 싶다’며 이곳 근무를 자청했다. 하지만 최근 사태를 보며 “이젠 환자가 오면 ‘밥그릇만 챙기는 의사’로 볼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와 환자의 신뢰가 깨진 후유증이 한참 갈 것 같다. 정부도 의사도 국민도 졌다”고 했다. 한 씨도 “편의점이나 택시에서도 (의사인 나에 대한) 싸늘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 “필수의료 대책이 ‘가짜 당근’ 아니라는 확신 줘야”
동아일보 심층 인터뷰에 어렵게 응한 ‘필수의료’ 분야 MZ세대 의사 5명은 ‘의대 증원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필수의료 체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필수의료 보상 강화 △의료소송 부담 완화 △지역의료 지원 등을 담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정부의 실행 의지에 의문을 표했다.
오 씨는 “(정책에 따른) 재정 부담을 어떻게 감당할지 구체적 내용이 없다”며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에 돈을 쓰겠다는데 이미 (정부가) 전공의를 ‘악마화’한 상황에서 어떻게 믿냐”고 반문했다. 지 씨도 “예산이 말만 한다고 뚝딱 나오냐. 실효성 없는 ‘뜬구름 잡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존 발표와 비슷한 정책을 ‘재탕’하면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안 씨는 “복지부가 한다는 정책은 전부 그간 실패했거나 (오히려) 폐기한 것들”이라며 “(정책 패키지가) ‘가짜 당근’으로 보인다”고 했다.
의사들은 최근 정부가 실시한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의 업무범위 확대 시범사업 등도 우려했다. 의사의 독점 권한을 침범해서가 아니라, (사직한) 의사를 압박하기 위한 설익은 대책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안 씨는 “정부는 ‘간단한 (피부) 봉합은 간호사도 할 수 있다’는데, 간단한 봉합이란 건 없다”며 “환자 피해가 없을지 의문이다”라고 했다. 한 씨는 “만약 의료사고가 생기면 그 책임을 병원장이 져야 하는 구조도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손 씨는 “사실상 의사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고 주장했다.
● “정부는 ‘대화하자’며 칼 휘둘러, 출구 찾아야”
인터뷰에 응한 의사들은 현 사태의 책임을 정부에 돌리면서도 파국을 막기 위해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의견을 같이했다. 오 씨는 “(의대 증원 이슈로) 위기가 와서 (의료 체계의) 환부가 드러났으면 그걸 어떻게 바꿀지 정부와 의료계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공의도 상처받은 마음 때문에 정부가 들어줄 수 있는 것 이상의 요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 씨는 “이 상황은 의사에게도 절대 달갑지 않다. 모두가 수긍할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 단체의 주장에 모든 의사가 동의하는 건 아니라며, 출구 모색을 위해선 정부가 젊은 의사에게 언로(言路)부터 열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오 씨는 “의협이 정부를 상대하는 방식이 ‘올드’해서 공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의사들은) 집단행동으로 비칠까 봐 사석에서 2, 3명 만나는 것도 꺼린다. 정부는 ‘언제든 대화하겠다’고 하면서도 고압적, 일방적으로 (수사의) 칼을 쥔 듯 행동하는데, 이게 젊은 의사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고 했다. 한 씨는 “(젊은 의사를 포함해) 각계가 모인 상설협의체를 구성하고 객관적 지표를 놓고 상세사항을 결정한다면 당연히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의협 전현직 간부를 경찰이 수사하는 것도 ‘겁박용’이라는 취지로 비판했다. 손 씨는 “젊은 의사들이 간부들 말을 들은 적도 없는데 저게(조사하는 게) 뭐 하는 건가 싶다. 생뚱맞다”고 했다.
-최원영/주현우 기자, 동아일보(24-03-14)-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時事-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왼쪽 태극기부대’ 같은 조국당] [탄핵, 조국의 강으로… ] .... (3) | 2024.03.14 |
---|---|
[‘친김정은’ ‘국군 조롱’ 공천만은 재고돼야..] [종북연대 시즌2] (2) | 2024.03.14 |
[절박해진 김정은.. 北의 체제 변화 대비해야] [북유럽은.. ] .... (1) | 2024.03.13 |
[박용진과 정봉주… ‘조금박해’의 수난사] .... (1) | 2024.03.13 |
[중국 신생아도 어느덧 절반으로] [아이는 ‘갖춘 자’들만의 특권] (1) | 2024.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