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餘暇-City Life]

[국수 먹고 배 두들기며 이쑤시개 물고 나왔다] ....

뚝섬 2024. 5. 20. 10:32

[국수 먹고 배 두들기며 이쑤시개 물고 나왔다] 

[얼마나 친해야 이런 밥집에 같이 올 수 있을까]

 

 

 

---[구두쇠氏 혼밥기행]---

 

국수 먹고 배 두들기며 이쑤시개 물고 나왔다


서울 장안동 ‘국수집’의 고기국수
 

 

인터넷에서 ‘장안동 국수집’으로 검색해야 위치를 찾을 수 있다.

 

옥호(屋號)는 두쇠씨가 식당을 고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였다. 너무 요란하거나 유행 따라간 이름의 밥집은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이를테면 치킨집이 ‘짱맛닭컴’이면 그냥 지나쳤고 ‘부부통닭’이면 슬쩍 출입문을 열어보는 식이었다.

 

이 방법이 늘 통하는 건 아니었다. 언젠가 ‘그냥밥집’이란 식당에서 백반을 먹은 적이 있는데 그냥 밥집이었다. ‘와글와글족발’이란 오글거리는 이름의 식당이 손꼽히는 족발집이라기에 미심쩍어 했지만 그 맛이 출중해 감탄한 적도 있었다.

 

장안동은 서울의 별 특색 없는 동네 중 하나다. 중고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시장으로 이름났을 뿐, 그 밖에 무엇이 있는지 두쇠씨는 알지 못했다. 이 일대는 오랫동안 장안평이라고 불렸는데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이 생기면서 장한평으로 바뀌었다. 중랑천 옛 이름인 한천 옆 긴 평야가 장한평이었다는데 행정구역상 장안동도 여전히 있었다.

 

두쇠씨 자동차가 길에서 퍼져 장안동 배터리 가게에 간 적이 있었다. 기름때 작업복 입은 사람들이 가득한 주변을 보며 이런 동네에 맛집이 많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 두쇠씨가 점심을 해결하러 찾아간 곳은 자동차 시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국수집’이었다. 두쇠씨와 입맛이 어슷비슷한 사람 블로그에서 발견한 곳이었다. 인터넷에서 ‘장안동 국수집’으로 검색해야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옥호가 두쇠씨 마음에 꼭 들었다.

 

깔끔한 간판과 실내를 보는 순간 두쇠씨 생각이 흔들렸다. 젊은 사람들이 노포 흉내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또 다른 최악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입구에 붙은 안내문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저희 집은 어머니 혼자 운영하는 사랑방 같은 점포입니다”로 시작한 안내문은 최근 손님이 부쩍 늘어났으며 “조금 느리고 대응이 미숙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 달라”고 맺고 있었다. 아들이나 딸이 쓴 글일 텐데 맞춤법이며 문맥이 글 써본 사람 솜씨였다.

 

모자 또는 모녀가 운영하는 집인가 했더니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두 분이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 한 분이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하면서 줄곧 손님을 대하는 걸로 보아 주인인 듯했다. 4인용 식탁이 세 개, 2인용이 세 개 놓인 작은 식당이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때였지만 만석이었고 여럿이 온 젊은 사람들과 혼자 온 노인들이 두루 섞여 있었다.

 

점심 메뉴는 국수만 여섯 가지였는데 여느 국숫집과는 달리 고기국수가 있었다. 흔히 고기국수라고 하면 제주도의 돔베고기 넣은 돼지 수육 국수를 말하지만, 이 집 고기국수는 소고기 국물에 소고기를 올린 국수였다. 그 밖에 어묵국수·비빔국수·멸치국수·콩국수·열무국수가 있었다.

 

잘 삶은 우둔살을 푸짐하게 올린 장안동 ‘국수집’의 고기국수. 1만원이 훌쩍 넘는 유명 식당의 소고기 국밥이나 해장국보다도 고기 양이 더 많아 보인다. 이 집에선 곱빼기를 주문해도 보통과 같은 8000원을 받는다. /한현우 기자

 

고기국수가 나왔을 때 두쇠씨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냉면 대접 가득한 소면 위에 소고기 고명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족히 왕갈비 두 대는 잘라 넣은 듯한 양이었다. 그 외엔 잘게 썬 파가 있을 뿐 모양을 내려는 고명은 따로 없었다. 이런 국수가 8000원인데 곱빼기에도 돈을 더 받지 않는다고 하니 요즘 매우 보기 드문 식당이었다.

 

주인아주머니가 “고기는 소스에 찍어 먹고 국수는 소금·후추 넣어가며 간 맞춰 먹으라”고 했다. 국물은 설렁탕과 비슷했고 찬물에 헹군 소면 때문인지 뜨겁지는 않았다. 고기는 양지머리처럼 기름이 거의 없었지만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웠다. 고기가 쉽게 부서져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했다. 설렁탕 국물에 고기와 국수를 그득 담아 먹는 형국이었다. 그릇에 깔린 고기를 훑어 먹느라 두쇠씨는 국물까지 싹 비웠다.

 

고기는 우둔살이라고 했다. 장조림이나 육포, 잡채에 주로 쓰이는 우둔살을 국수와 함께 내는 건 주인아주머니가 개발한 메뉴라며 “오랫동안 잘 삶는 게 요령”이라고 했다. 지금 자리에서 3년쯤 장사했다는 걸 보니 다른 곳에서 다른 음식을 한 것 같았다.

 

이 집 고기국수는 3년 전에도 8000원이었다고 한다. 두쇠씨는 지난 3년간 미친듯이 값을 올리는 바람에 괘씸해서 발을 끊은 몇몇 국숫집을 떠올리며 잇새에 낀 고기를 이쑤시개로 빼냈다. 꼬리곰탕이라도 먹은 양 배가 두둑했다.

 

-한현우 기자, 조선일보(2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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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친해야 이런 밥집에 같이 올 수 있을까

 

서울 청량리시장 간판 없는 밥집의 오징어볶음

 

세상에 싸고 맛있는 집은 없다고 구두쇠씨는 생각했다. 싼 건 비지떡이었다. 콩비지에 밀가루 섞어 부친 떡이 맛있을 리 없다. 싸고 배부르니 먹는 것이다. 다만 비싸고 맛없는 집이 너무 많았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갔다가는 기분 나빠져 나올 게 뻔했다.

 

얼마 전 두쇠씨는 거래처 사람과 점심을 먹었다. 여기 어떠신가요, 하며 식당 링크가 문자로 날아왔다. 광화문 한복판 고층 건물 지하, 무슨 뜻인지 모를 외국어 옥호(屋號), 어두침침한 인테리어, 그리고 터무니없는 가격까지 두쇠씨가 싫어하는 요소를 두루 갖춘 집이었다. 호불호 따질 계제가 아니어서 알겠노라고 했다.

 

음식은 달고 짰다. 그릇들은 장난감처럼 작았다. 잘게 편 썬 채소가 종지에 담겼기에 물어보니 백김치란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두쇠씨는 김치로 소꿉놀이하는 집들을 혐오했다. 게다가 태블릿으로 주문을 해야 했다. 가격은 최고급에 서비스는 셀프. 유행이라면 빈 그릇 주고 돈 내라고 할 기세였다.

두쇠씨는 메뉴를 훑다가 숨이 턱 막혔다. 소주가 8000원이었다. 물가가 아니라 시건방이 고공행진하고 있었다. 상대방은 법인카드로 값을 치르고 영수증을 꼼꼼히 챙겼다. 남의 돈도 아까웠다. 

 

청량리시장 간판 없는 밥집 전경. 문을 닫았을 때는 무엇 하는 곳인지 알 도리가 없다.

 

저녁이 되자 두쇠씨는 뭔가 푸짐한 것, 따끈하고 매콤한 것, 흰쌀밥과 잘 어울리는 것을 먹고 싶었다. 그는 청량리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복판에서 벗어난 한가한 골목에 간판 없는 밥집이 하나 있었다. 인터넷 지도에도 나오지 않아 ‘국수 만드는 집’을 검색해야 했다. 그 골목 초입에 밥집이 있었다.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매일 오후 3시부터 새벽 2시까지 장사하는 백반집이었다. 반찬과 음식이 두루 맛있어서 언제 가도 만족스러웠다. 토요일은 쉬고 일요일에 다시 여는데 일요일에 물건들이 새로 들어와 시장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식당엔 드럼통 탁자 두 개와 짧은 선반 식탁이 전부였다. 날씨가 더워져 가게 앞에 플라스틱 식탁을 놓을 수 있었다. 백반이 8000원이니 싼 맛에 가는 곳은 아니었다. 한쪽에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만든 반찬 여덟 가지가 있었다. 김치 3종과 오징어채 볶음, 깻잎·시금치·미나리·도라지 무침이 있었는데 그 간이 하나같이 짜지 않고 달지 않고 맵지 않은 맛의 삼각지대에 있었다. 여기에 흰쌀밥과 그날 끓인 찌개나 국을 주는 게 백반이었다.

 

백반값에 1000원을 더하면 제육볶음, 2000원이면 오징어볶음을 추가로 먹을 수 있었다. 객들은 대개 둘 중 하나를 시켰지만 시장 사람들은 시키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제집 부엌처럼 술을 마시고 반찬을 집어 먹었다. 한 남자가 냉장고에서 반 병 남은 소주를 꺼내 “이것 먹고 갈게요” 하고 맥주컵에 따르더니 한 번에 들이켰다. 조금 남은 소주를 개수대에 버리고는 나물 한 젓가락을 집어 먹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두툼한 돈다발을 꺼내 1000원짜리 지폐 두 장을 화투 떼듯 세어 부엌 선반에 놓고 나갔다. 혈중알코올농도를 유지하기 위한 정류소 같은 곳이었다.

 

두쇠씨가 주문한 오징어볶음이 금세 나왔다. 오징어 90%, 채소 10%라고 할 만큼 알찼다. 비벼 먹으면 족히 밥 세 공기는 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오징어를 듬뿍듬뿍 집어 먹었지만 그래도 남았고 결국 밥솥을 열어 한 주걱 더 푸는 수밖에 없었다. 밥은 이렇게 먹는 거지, 하고 두쇠씨는 속으로 말했다.

푸짐한 오징어볶음 한 접시와 여덟 가지 반찬, 밥과 찌개를 단돈 1만원에 먹을 수 있다.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만드는 반찬은 하나같이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반찬과 술은 손수 갖다 먹는 게 이 집 손님들의 매너다. /한현우 기자

 

순두부찌개가 딸려 나왔는데도 주인은 “방금 끓인 것”이라며 바지락 듬뿍 든 된장찌개를 또 내왔다. 소주와 막걸리를 5병째 섞어 마시던 남자들은 정치 얘기로 중구난방이었다. 한 사내가 “대통령 월급이 500만원인데 마누라가 3억짜리 빽을 받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핏대를 세웠다. 뉴스는 시장에서 제멋대로 해체되고 재조립돼 마구 흩어졌다.

 

한 무리 남자들이 부엌 앞을 서성이며 소주에 닭발을 먹었다. 닭발도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주인은 “그건 술 드시는 분들 안주”라며 “좀 드릴 테니 드시고 가라”고 했다. 도로 앉았다가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사양했다.

 

두쇠씨는 생각했다. 여기는 친한 사람과 오는 곳일까, 누구든 함께 왔다가 친해지는 곳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현우 기자, 조선일보(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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