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사태는 축구 한일전이 아니다]
[오늘 서울서 AI 정상회의… 정작 ‘AI기본법’조차 없는 韓]
라인 사태는 축구 한일전이 아니다
[조형래 칼럼]
日 정부의 어설픈 관치가 라인 갈등 유발했지만
21세기 原油 데이터에 대한 소유·통제권 강화가 핵심 배경
韓 정부 적절히 대응했으니 이젠 비즈니스로 풀어야
5월 13일 서울 서초구 라인프렌즈 플래그십스토어 강남점 모습./뉴스1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터지자 네이버의 일본 사업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10년 가까이 공들인 일본 검색 사업이 아무런 성과 없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일본 전역을 초토화한 대재앙을 맞은 것이었다. 직원들은 일본 지사 건물이 여진(餘震)으로 흔들릴 때면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이해진 창업자는 2019년 한 강연에서 “직원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면 일본 사업을 재개하기 어렵고, 직원들이 현지에 남으면 더 큰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압박감에 사무실에서 펑펑 울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모바일 메신저 ‘라인’이 탄생했다. 지진으로 유·무선 전화는 먹통이 됐지만 인터넷망은 멀쩡한 것에 착안해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메신저를 개발한 것이다. 이렇게 등장한 라인은 일본 국민의 80% 이상이 사용하는 국민 메신저로 성장했고, 한국 플랫폼의 유일한 해외 진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라인으로 돈을 버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라인 메신저를 활용해 수익을 내려면 쇼핑·금융·오락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접목해야 하지만 그때마다 일본 정부의 규제와 함께, 외국 기업에 배타적인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맞닥뜨리는 데다 일본 최대 포털 기업 야후재팬과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실제로 라인 부문은 결제 서비스 ‘라인 페이’ 확산을 위해 야후재팬과 출혈 경쟁을 벌인 탓에 2019년 매출 2조4000억원에 5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고, 2020년에도 적자 규모를 줄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야후재팬의 손정의 회장이 찾은 돌파구가 라인과 야후재팬의 통합이었다. 이해진 창업자가 2000년 자신의 지분율이 희석되는 것을 감수하고 ‘한게임’과 합병을 통해 국내 경쟁 포털 업체들을 따돌렸듯이, 일본에서도 적(敵)과의 통합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서로의 강점을 살려 실질적인 경영권은 야후 측에서 행사하고 시스템 운영 등 기술 개발은 네이버가 맡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 두 회사의 통합은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후 3년 만에 라인야후의 매출은 60%, 영업이익은 2배 가까이 성장했고 네이버의 지분 가치는 8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라인이 일본의 모바일 인프라로 시장 지배력을 확대하자 일본 내에서는 경제 안보의 차원에서 데이터 주권(主權)과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진 게 사실이다. 왜 자국민의 개인 정보와 소중한 데이터를 한국 측이 공짜로 이용하거나 악용할 우려가 있는 데도 그대로 방치하느냐는 것이다. 유럽연합이 자신들의 데이터를 지키려고 최대 우방국인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을 상대로 강력한 규제 법안을 쏟아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일본 우익에서는 “대일 강경파였던 문재인 정부의 홍보수석이 네이버 부사장 출신”이라고까지 비판했다. 여기에 2021년 이후 라인야후에서 개인 정보 유출 등 크고 작은 보안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것도 이 같은 기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한 인터넷 전문가는 “만약 일본 기업이 카카오톡의 시스템 운영을 맡다가 보안 사고가 났다면 우리는 더 난리가 났을 것”이라며 “알리·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우리 국민의 데이터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도 께름칙하다”고 말했다.
이번 라인 사태가 라인야후의 자본 관계를 재조정하라는 일본 정부의 어설픈 관치(官治)에서 촉발됐지만 이 사안은 근본적으로 우리 편이 무조건 이겨야 하는 축구 한일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21세기 원유(原油)로 불리는 데이터의 소유·통제권, 네이버의 향후 비즈니스 전략, 한·미·일 간의 데이터 공유 문제 등 수많은 변수를 놓고 냉정하게 득실을 따져야 한다. 네이버가 이번 참에 확장성에 한계를 보인 라인을 매각하고 AI(인공지능) 검색이나 클라우드 분야에 집중 투자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비즈니스에 배신은 없다. 선택만 있을 뿐이다.
-조형래 부국장, 조선일보(24-05-21)-
_____________
오늘 서울서 AI 정상회의… 정작 ‘AI기본법’조차 없는 韓
오늘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인공지능(AI) 정상회의’가 열린다. 작년 11월 영국 블레츨리 파크에서 28개국 대표, 기업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AI 안전성 정상회의’의 후속 회의다. 한국, 영국 정부가 공동 개최하는 서울 회의에선 주요국 정상과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이 화상통화 등을 통해 AI가 가져올 미래에 관한 의견을 개진할 예정이다.
‘AI 강국’을 지향하는 한국에서 AI 규범을 논의하는 회의가 열리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정작 이 행사를 주도하는 한국은 AI 산업 발전의 제도적 기초인 ‘AI 기본법’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 초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AI 기본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이달 말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 폐기될 예정이다.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산업 육성이 먼저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반면 주요국들의 제도 정비에는 속도가 붙었다. 유럽의회는 올해 3월 AI 개발 기업이 지켜야 할 의무를 규정한 법안을 최초로 통과시켰다. 미국은 2020년 ‘국가 AI이니셔티브법’을 제정해 2조 원 넘는 돈을 기업에 지원하고 있고, 지난주엔 AI 도입 기업이 근로자 보호를 위해 지켜야 할 내용을 행정명령으로 발표했다. 중국도 작년에 ‘AI 윤리 거버넌스’ 지침을 마련했다.
삼성, LG, 네이버, 카카오 등 주요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한국의 AI 산업은 아직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 9위인 AI 민간투자 규모는 미국의 50분의 1, 중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대학에선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AI 장비가 부족해 우수한 국내 인재들마저 더 좋은 환경을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기업의 AI 투자 가이드라인이 될 기본법조차 못 만드는 현실은 한국의 미래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법이 표류하는 사이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유관 부처들이 규제 주도권을 잡겠다며 경쟁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정부와 정치권은 AI 산업의 진흥과 규제 양면에서 적절하게 균형이 잡힌 기본법을 제정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동아일보(24-05-21)-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ICT-Animal9]'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공지능 PC를 잡아라"… 퀄컴·인텔의 한판 승부] (0) | 2024.05.29 |
---|---|
[AI 내부의 암흑 영역] [“인간의 일자리 뺏지 않을 것”… ] .... (3) | 2024.05.24 |
[왜 그러나 했더니… 라인, 메신저 넘어 일본 사회 인프라였다] (0) | 2024.05.16 |
[‘백발백중 AI 투자 모델’] [‘인간적인 인공지능’에 반대한다] .... (0) | 2024.05.14 |
[엔비디아 독주에 맞서… 인텔·삼성·네이버 ‘AI 생태계’ 연합] .... (1) | 2024.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