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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부인이 악처가 된 이유]

뚝섬 2024. 5. 22. 22:32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Xanthippe)] 

['크산티페' 누구길래, 악처의 대명사가 됐나] 

[소크라테스의 부인이 악처가 된 이유]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Xanthippe)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Xanthippe)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로, 흔히 '악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평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역사적 맥락과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의 관계

 

1. 소크라테스의 성격:

소크라테스는 철학과 진리를 추구하며 가난하게 살았고, 그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은 일반적인 가정 생활과 다소 충돌이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종종 집을 떠나 젊은이들과 토론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2. 크산티페의 성격: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생활 방식에 불만을 가졌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그녀가 '악처'로 묘사되는 데 기여했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가정의 안정을 유지하고자 했을 것이며, 소크라테스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비판적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3. 역사적 증거:

크산티페가 악처로 묘사된 주요 출처는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저작입니다.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크산티페는 남편의 사형 직전 감정적으로 격앙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에서는 그녀의 성격에 대한 더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합니다.

 

4. 문화적 맥락: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여성은 주로 가정과 관련된 역할을 담당했으며, 가정 밖의 활동에 참여하는 남편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활동과 이에 따른 가정 생활의 불안정성이 크산티페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5. 전통적 이미지:

후대의 문학과 철학에서 크산티페는 종종 소크라테스의 인내심과 철학적 덕목을 강조하기 위해 대비되는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이러한 이미지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고착되었을 수 있습니다.

 

재평가

 

현대 학자들은 크산티페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당시 여성에 대한 편견과 소크라테스를 이상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합니다. 그녀의 행동과 성격을 이해할 때, 당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크산티페가 '악처'로 알려진 이유는 소크라테스의 생활 방식과 철학적 활동이 가정 생활과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며,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주로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는 맥락에서 부각된 것입니다.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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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산티페' 누구길래, 악처의 대명사가 됐나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

 

‘크산티페’가 화제다. 14일 오전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검색에 ‘크산티페’가 등장했다. 크산티페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로 ‘악처’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크산티페는 아내로서 남편의 언동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항상 상스러운 말로 욕하는 등 남편을 경멸해 악처의 대명사가 됐다. 어느 날 크산티페가 소크라테스에게 호통치며 구정물을 퍼붓자 소크라테스는 “저것 봐. 천둥 뒤에는 항상 소나기가 쏟아지는 법”이라며 시치미를 뗐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크산티페는 왜 악처의 대명사가 됐을까. 소크라테스는 늘그막에 크산티페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당시 크산티페는 돌을 쪼고 다듬는 ‘석수장이’ 직업을 가진 소크라테스가 일을 게을리하고, 철학 담론을 주고받는 것을 못마땅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크산티페가 남편인 소크라테스의 인간적인 이해를 많이 받지 못하고 살고, 가정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남편에 분노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 크산티페가 악처의 대명사가 되기는 했지만, 현재 전해지는 크산티페의 악처 노릇이 과장됐다는 시각도 있다.

 

-정혜인 기자, 아주경제(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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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부인이 악처가 이유

 

과소평가된 여성의 성욕

 

남성들이 배우자의 성적 욕구를 과소평가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과 웨스턴 온타리오대학의 심리학 교수들이 1주일에 1∼2회 성관계를 한다고 밝힌 결혼 또는 동거 생활 6년 이상의 229쌍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해, ‘남자가 여자 파트너의 성적 욕구를 지속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연구진은 남성들이 여성 파트너의 성욕을 과소평가하는 이유를 성적 거부(Sexual Rejection)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성관계를 하려다가 퇴짜 맞는 일을 당하지 않고자 여성의 욕구를 과소평가한다는 설명이다.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다는 것. 반면 여성은 파트너가 성관계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정확하게 읽어낸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런 연구 결과를 근거로 연구자들은 배우자 간에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성적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두 사람만이 아는 신호를 정해 파트너에게 성적 의사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성적 욕구는 본능적 욕망이다. 따라서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여성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 소양이자 미덕이 ‘정숙’이던 우리 역사에도 여성의 성적 욕구에 의한 스캔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문 다 닫았어요. / 바람기로 열린 치마만큼 열어놓고 / 다 닫았어요. 꼭 잠갔어요 / 문틈으로 새어드는 / 노란 노략질 / 정조대 열두 개도 / 막지 못하네’라는 민요가 불려지기도 했다.

 

여성의 마음속에 도사린 음심(淫心)을 읽을 수 있는데, 남성의 무분별한 외도도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지만 여성의 바람기도 이에 못지않는 폐해를 유발했으니, 조선의 개국 공신인 변계량의 여동생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변계량은 정몽주, 이색 등 당대 최고 학자들에게 사사한 문장가였다. 또한 황희와 더불어 재상으로서 명성이 자자했으나, 누이동생의 바람기로 곤경을 겪었다.

 

변계량의 여동생은 첫 번째 남편인 박충언에게서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하자 노비인 포대와 사안 두 형제와 사통을 즐겼다. 그러다가 남편이 죽자 박원길과 재혼했다. 조선 건국 초기에는 재혼이 허락되던 때라 쉽게 새 짝을 찾았다. 그러나 그녀는 새 남편을 얻고도 노비 형제와의 간음을 끊지 않았고, 급기야 시댁 식구들에게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후환이 두려웠던 그녀는 정계의 실력자인 오빠에게 달려가 “남편의 성질이 사나워 같이 살기 힘들다”며 이혼시켜 줄 것을 간청했다. 하지만 오빠가 이를 거절하자 남편 박원길과 오빠 변계량이 여러 사람과 공모해 모반을 획책하고 있다고 거짓 밀고를 했다.

 

모반은 가장 큰 범죄인지라 즉각 임금인 정종에게 보고되었고, 관련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잡혀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박원길은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이 되고 말았다. 수사 결과 진실이 밝혀져 더 이상의 참화는 없었지만, 변계량의 여동생과 노비 형제는 참형에 처해졌다. 한 여인의 불륜이 낳은 해프닝치고 피해가 적지 않은 사건이었다.

 

신성한 모성(母性) 어찌 희롱한단 말이오

 

성적 욕구 불만은 이처럼 남녀를 가리지 않고 불행을 부르는데,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가 악처로 유명한 것도 원인은 잠자리 불만이었다. 동성애자였다는 주장이 나올 만큼 소크라테스는 아내에게 무심했다. 어느 날, 독수공방을 견디다 못한 크산티페가 “왜 부부관계를 멀리 하냐”고 묻자 소크라테스가 “당신은 아이들의 어머니요, 신성한 모성(母性)이란 말이요. 그 신성한 모성을 어찌 장난감인양 희롱한단 말이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당신을 모성으로서 존경하겠소”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크산티페가 “뭐라구요! 내가 언제 당신의 존경을 바랐단 말이오”라며 힐난했다고 한다. 그래서 크산티페가 악처인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가 악부(惡夫)였다는 견해도 있는데, 조선시대 설화집인 《고금소총》의 ‘동교이곡(同巧異曲)’이라는 이야기도 이와 유사하다.

 

기생들과는 외도(外道)로 날을 새우면서도 아내와의 잠자리는 가뭄에 콩 나듯이 마지못해 치르는 선비가 있었다. 화가 단단히 난 아내가 이를 힐난하자, “부인으로 말하면 서로 공경하고 존귀하게 여겨 함부로 하지 못하므로 욕정을 품을 수 없지만, 기생은 정이 동하는 대로 할 수도 있고 음탕한 재주를 다 할 수 있으니 그런 연유로 이리 된 것이오”라고 변명했다. 그러자 아내가 “내가 언제 높여 달랬소! 공경해 달랬소!”하며 얼굴에 손톱자국을 담겼다고 한다.

 

성력(性力) 성공(成功) 바로미터

 

소크라테스와 달리 동양의 대철학자인 퇴계 이황은 ‘낮퇴계와 밤퇴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활기찬 부부애를 즐겼다. 퇴계는 성욕은 인간의 원초적 본성이기 때문에 억지로 막으면 좋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부부 금실을 강조하는 서신을 심심치 않게 보내기도 했다.

 

성욕은 식욕과 더불어 2대 본성이다. 물론 식욕은 참을 수 없다. 굶으면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욕은 참아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그래서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살듯이 성욕의 중요함을 깨닫지 못하는데, 성행위는 자손을 낳고, 쾌락을 느끼고, 건강도 얻는 1석3조의 장점이 있다.

 

또한 활달한 부부관계는 부부금실은 물론이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주고, 생활의 활력을 준다. 따라서 부부관계가 좋은 남성은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대인관계가 좋아 성공지수가 높다. 즉, 성력(性力)은 성공(成功)의 바로미터인 것이다.

 

여성 역시 원만하게 부부생활을 하면 건강은 물론이고, 삶에 활기가 넘쳐나 가정생활도 충실하게 해낸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한다면 ‘자녀에게는 현모(賢母), 남편에게는 양처(良妻), 침실에서는 요부(妖婦)’가 되도록 배려해주라 할 수 있다.

 

- 김재영(강남퍼스트비뇨기과 원장), 조선닷컴(1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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