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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길 총장과 구자경·박태준 회장] [서울대 피부과의 연구비 舊態]

뚝섬 2024. 6. 6. 09:00

[김호길 총장과 구자경·박태준 회장]

[서울대 피부과의 연구비 구태(舊態)]

 

 

 

김호길 총장과 구자경·박태준 회장

 

김호길의 과학과 산업 잇는 꿈은 구자경 거쳐 박태준서 꽃피웠다
국가와 기업 하나로 싸우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1985년 8월 17일 박태준 설립이사장(오른쪽)과 김호길 초대총장이 포스텍 건설공사 착공식 현장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조선일보 DB

 

포스텍엔 무은재기념관이 있다. 무은재(無垠齋)란 학문에 경계가 없다는 뜻으로, 김호길 포스텍(당시 포항공대) 초대 총장의 호다. 지난 4월 30일 여기서 김호길 30주기 행사가 열렸다. 서울대 물리학과, 영국 버밍엄대를 나와 미국 로런스 버클리 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을 거친 김호길은 세계적 가속기 물리학자이자 한국 과학교육의 혁신가였다. 1962년부터 1983년까지 20여 년간 해외서 최고 과학자로 활동했지만 끝내 미국 시민권을 따지 않았다. 언젠가 귀국해 한국 과학을 도약시키겠다는 꿈 때문이었다. 재미한국과학자협회 창립을 주도한 것도 그였다.

 

흔히 김호길은 박태준 포철 회장의 요청으로 귀국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를 먼저 알아본 이는 구자경 전 LG 명예회장이었다. 구자경은 일찍이 산학 협동을 꿈꾸며 고향인 경남 진주에 공과대학을 지으려 했다. 2년제 연암공전부터 지은 그는 1983년 김호길에게 세계적 공대로 키우자고 제안하며 초대 학장으로 모셨다. 하지만 교육부 인가가 나질 않았다. 진주엔 4년제 대학이 있다는 이유였지만 속내는 ‘기업이 뭔가 큰 이윤을 노릴 것’이란 시각 때문이었다. 쿠데타로 막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에게 김호길은 편지를 써 “약속을 지키지 않으니 대한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대한사기공화국”이라고 항의했다. 그의 꿈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김호길과 구자경의 꿈이 스러져갈 무렵 박태준이 등장한다. 박태준은 1985년 5월 포철 영빈관에 김호길 연암공전 학장 부부를 삼고초려 끝에 초대해, 포항공대 첫 총장을 맡아 달라고 간청했다. 김호길은 조건을 내걸었다. “만약 내가 총장을 맡으면 포철 소속 포항공대가 아니라 포항공대 부설 포철이 될 텐데 괜찮겠느냐.” 대학 운영의 전권을 달라는 얘기였다. 박태준은 흔쾌히 승낙했고, 구자경도 기꺼이 동의했다. “실력 있는 분을 모셔다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가셔도 좋습니다.”

 

김호길은 곧장 미국과 유럽 22국을 돌며 과학자 450여 명을 만났다. 귀국을 주저하던 한국 과학자들에게 “포항공대에 합류하지 않으면 민족의 역적이 될 것”이라고 호통친 일화는 유명하다. 누가 한국의 동해안 바닷가 이름없는 대학에 오겠냐는 우려를 씻어내고 1987년 3월 해외 과학자 33명을 교수로 초빙해 역사적인 입학식을 갖는다.

 

이 포항공대는 한국 산업사에서 대표적 산학 협동의 성공 사례로 기록된다. 미국의 산학 협동은 대학이 주도했지만 한국은 초기엔 기업이 주도했다. 그것이 세계 최빈국이 단기간에 경제 강국이 된 원동력이었다.

 

최근 삼성중공업이 펴낸 ‘카이스트와 산학 협동 30년’ 기록에 이런 대목이 있다. “K조선이 1990년대 비약적인 성장을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낌없는 연구 개발 투자와 카이스트와 같은 막강한 인재풀, 그리고 그들의 열정이 빚어낸 결실이다.” LNG선의 멤브레인형 화물창, 선박 고장 예지 진단 시스템 등 이루 셀 수 없는 성과들이 자료에는 나열돼 있다.

 

전 세계가 AI 혁명이란 거대한 격랑에 빠져들고 있다. 여기엔 기업과 대학의 협동만으론 명함도 못 내민다. 국가적 역량이 총결집 중이다. 그것도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 일본이 앞장선다. 국가와 기업이 하나되는 이 경쟁에 한국의 미래가 달렸다. 반세기 전 ‘김호길, 구자경, 박태준’은 뒤처진 산업화를 따라잡느라 발버둥을 쳤다. 오늘 그 역사를 소환한 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반문 때문이다. 또 뒤처져서야 되겠나.

 

-이인열 기자, 조선일보(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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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피부과의 연구비 구태(舊態)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관계자가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 의대 피부과학교실(서울대병원 피부과)에서 2017년부터 연구비 6억원이 사라져 최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6년 동안 한두푼도 아니고 억대의 돈이 사라졌는데 대학 당국은 팔짱만 끼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입장을 들으려 피부과 관계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긴 한숨을 쉬더니 20초 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지난해 6월, 피부과 학과장 회계 담당자로 일했던 A씨가 퇴사했다. 후임자가 회계 내역을 살펴보다 횡령 정황을 발견했다. 서울대 당국은 같은 해 12월에야 경찰에 고소했다. 한 교수는 “방만한 연구비 관리의 폐해가 이제야 드러났다”며 “터질 게 터졌다”고 했다. 피부과는 이른바 ‘풀링’이라고 하는 연구비 공유제를 시행해왔다. 교수 개개인이 따온 연구비를 풀링 계좌에 한꺼번에 모아 여러 교수가 함께 쓰는 방식인데 현행법상 엄연한 불법이다.

 

경찰은 A씨가 이 풀링 계좌에서 5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살펴보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피부과 안팎 얘길 들어보니 이 사건은 2016~2022년 피부과 학과장을 지낸 B 교수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교수는 “B 교수가 풀링된 연구비 관리를 도맡아오며 해당 계좌를 자신의 전리품처럼 자랑했다”고 증언했다. 다른 관계자는 “B 교수가 회계 내역 또한 제때 공개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B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모두 음해”라고 했다.

 

서울대 피부과뿐 아니라 대학·병원·연구기관의 각종 학과·연구실 등에서 풀링은 일상적이라고 한다. 과거 풀링은 학과 살림이나 대학원생 인건비 배정 등 편의를 위한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경제 발전으로 국가 지원이나 산학 협력 규모가 조 단위로 늘어나며 풀링 계좌가 일부 일탈 교수의 축재(蓄財)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있다.

 

연구비를 따오는 학과장이나 선임 교수들이 풀링 계좌를 자신의 개인 계좌처럼 사용하는 일도 음성적으로 비일비재하다고 복수의 대학 관계자는 말한다. 교수들이 연구비로 용역 등 월급을 주는 대학원생들은 물론이고, 후배 교수들조차 자신이 따온 연구비가 풀링 계좌에 섞여 들어가 선배 교수 마음대로 사용하는 일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다. 피부과 관계자의 한숨은 이런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풀링 계좌를 통해 대학원생 인건비 일부를 정기적으로 상납받아 자기 생활비로 쓰는 교수도 있다고 한다. 교수가 제자의 ‘코 묻은 돈’까지 뜯어가는 현실에 절망한 많은 청년 연구자가 대학을 떠난다. 정부는 올해 26조5000억원 연구·개발(R&D) 예산을 책정했다. 일부 대학에선 본부나 산학협력단이 각 연구실에 배정된 연구비 관리 현황을 중앙에서 통제, 부정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번 서울대 피부과 논란이 연구비 풀링 구태를 타파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고유찬 기자, 조선일보(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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