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 아니다, '육아 근무'다 ]
[전쟁 중인 이스라엘도 한국 ‘저출산 전쟁’ 걱정]
[자신의 ‘내로남불’이 안 느껴지는 이유]
'육아 휴직' 아니다, '육아 근무'다
'출산 파업'에 대한민국 소멸 중… 나라 쪼그라든다고 아이 낳겠나
육아는 개인 아닌 '공동체 책임'… '육아근무제'로 파란을 일으키자
지난 2006년부터 15년간 저출산 예산으로 280조, 지난해에도 47조원을 썼다. 출생률 제고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 돈이 술술 샜다. 태산을 부수어 먼지만 한 성과도 얻지 못했다. 임신은 극히 사적인 선택이다. “여보, 대한민국 인구가 2040년에는 4900만명, 2070년에는 3600만명으로 쪼그라든대요. 우리 서둘러 임신합시다.” 이런 부부를 본 적이 있나.
아이는 낳고 싶어야 낳는다. 선택이다. ‘무턱대고 낳다 보면 거지 꼴을 못 면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산아제한 하던 시절과는 ‘기본 마인드’가 달라졌다. 출생 정책부터 고령화, 이주민 대책까지 다루는 인구전략기획부가 생긴다. 관련 예산을 통합해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한다. 다행이다. 하지만 최우선 과제인 ‘출생률 올리기’로 가면, 행로가 뻔하다. ‘육아휴직 기간 대폭 확대’ ‘강력한 남성 육아휴직 장려제’ ‘보육기관 2000곳 확충’.... 이미 빵빵한 출산·보육 정책에 ‘돈 바람’을 더 불어넣을 것이다. 뚜렷한 방법이 있었으면 왜 안 했겠나.
“아침 7시에 출근하려고 5시 반에 일어나요. 아줌마란 말 듣기 싫어서 드라이하고 화장하고…. 오후 3시 퇴근? 저는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거예요.” “두 시간 일찍 퇴근? 집에 가면 가사·육아 노동을 계속하는데요?” 직장인 부모를 위한 ‘유연 근무제’ ‘단축 근무제’에 대한 30대 여성 반응은 이렇다. 정책 만드는 아저씨들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자식 키우는 일이 노동이냐”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모성애가 제주 암반수처럼 펑펑 쏟아지는 여성도 이제는 육아를 ‘노동’이라 인식하는 경향이 세졌다.
신생아가 너무 귀해졌다. 출산은 지극한 개인의 선택이지만, 출생율 유지는 국가의 과제이기도 하다. /연합뉴스
육아휴직자(1년)의 반응은 이랬다. “아이를 보다가 베란다에서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에게 말하니 깜짝 놀라 가사도우미를 불렀어요. 애 맡기고 외출해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어요. 그걸 본 다른 동료가 ‘육아휴직인데 왜 도우미를 쓰면서 나와 노느냐’ 하더라고요.”
지금 ‘출산 파업’을 주도하는 가임기 여성들은 대개 성취욕 높은 ‘알파걸’들이다. 세상은 ‘충분한 육아 시간’을 약속하지만, 수혜자들은 그 이상을 원한다. 휴직으로 수당이 없어지고, 복지 포인트를 못 쓰고, 심지어 사내 루머를 못 듣는 것도 자존심 상해한다. 경험자 상당수가 “아이는 예쁘지만 둘째는 안 낳겠다”고 한다.
왜 육아에 ‘휴직(休職, Leave)’이 붙을까. 돈 주는 사람 입장에서 유휴 인력이라 그렇다. 하지만 육아는 ‘쉴 휴(休)’ 자를 쓸 일이 아니다. 국가 존속을 위해 출산이 필요하다면, 출산과 육아는 공동체를 위한 공공적 행위다. 합계출산율 0.6에 근접하는 우리에겐 더욱 그렇다.
‘육아 근무제’ ‘돌봄 노동제’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어떤가. 아이를 돌보는 휴직 부모가 사회적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소속감을 지속적으로 부여하고 ‘휴무일’도 지정한다. ‘공공 가사 도우미’를 파견해 가사와 육아를 도와준다. 이미 보육은 국가 책임이 됐다. 수십조 저출생·보육 예산을 합치면 못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지난 1일 인구전략기획부 신설방안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열어 부처 신설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뉴스1
무엇보다 기업에 폭탄을 던지는 일이 될 것이다. 엄청난 비용 부담에 인사·승진 체계가 흔들리고, 민노총이 가세해 ‘돌봄 노동 대체 인력 무조건 정규직 채용’을 주장하면 재앙이 따로 없다. 결국 여성 취업률이 떨어질 공산이 크다. 중소기업 근로자, 저소득층, 비혼자들이 ‘상대적 불이익’에 욕을 해댈 것이다. 보완책이 필요하다.
인구가 급감하는 ‘자살하는 나라’로서 파격적이고 편파적인 대책까지 고려했으면 한다. ‘낳으면 개이득’ ‘덮어놓고 안 낳으면 나만 손해 본다’는 소문이 퍼지도록 판을 크게 흔들면 좋겠다.
-박은주 기자, 조선일보(24-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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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인 이스라엘도 한국 ‘저출산 전쟁’ 걱정
“0.8에 불과한 한국의 출산율을 우려합니다.”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 25일 텔아비브대에서 열린 포럼의 연설자로 등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실각 시 재집권설이 도는 그는 이스라엘이 지난해 10월부터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음에도 경제사회적으로 강한 복원 능력을 보유했으며 그 비결이 3.0에 달하는 출산율이라고 했다. 정반대에 있는 나라로 한국을 지목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조앤 윌리엄스 미 샌프란시스코 법대 명예교수 등 한국의 저출산을 걱정하는 유명인은 많았다. 서울에서 8000km 떨어진 텔아비브에서도 같은 말을 들으니 한국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느꼈다. 지난해 4분기(10∼12월) 출산율이 0.65임을 알면 베네트 전 총리가 향후 강연에서 한국 상황을 더 언급할 것이다.
같은 달 23∼27일 방문한 이스라엘에서 만난 많은 시민과 정재계 관계자는 묻지 않아도 “자식이 몇 명, 손주는 몇 명”이라며 번창한 후손을 자랑했다. 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의 자금을 유치해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아워크라우드’의 존 메드베데프 CEO는 “네 자녀와 15명의 손주가 있다. 이 중 8명의 손주가 장남 소생”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높은 출산율은 2000년 넘게 떠돌다 간신히 나라를 세우고 아랍국에 둘러싸여 늘 전쟁을 치르는 상황과 관련이 있다. ‘쪽수’에서 밀리면 나라를 다시 잃을지 모른다는 실존적 공포가 출산과 양육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로 이어졌다.
다만 이스라엘을 무조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출산율 증가의 주역이 초정통파 유대교도(하레디)인 탓이다. 이들은 평균 6.6명의 자녀를 낳는다. 일반 유대인(2.5명)의 약 세 배다.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지 ‘통곡의 벽’을 찾았을 때도 길게 늘어뜨린 구레나룻에 검은 옷과 모자를 쓴 하레디 남편을 따라 7, 8명의 자녀를 데리고 가는 하레디 여성이 많았다.
2009년 75만 명이던 하레디 인구는 2022년 128만 명으로 늘었다. 전체 인구 945만 명의 13.5%다. 이들의 비중은 2035년 19%로 늘어난다. 잘 알려진 대로 하레디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으며 직업도 없이 정부 보조금 등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병역과 납세 의무를 지지 않으며 빈곤율도 44%에 달해 사회 전체에 상당한 부담을 안긴다. 지난달 25일 대법원이 “하레디도 병역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판결하자 이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폭력 시위를 벌였다.
저출산을 논할 때 늘 등장하는 ‘집값, 사교육비, 일자리, 보육 제도 등을 개선해야 출산율이 오른다’는 지적은 맞는 말이다. 다만 이 모든 정책이 본질적으로 화이트칼라 계층을 겨냥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한국보다 양육 환경이 우수하고 집값과 사교육비 부담이 덜한 북유럽에서도 출산율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2013년 1.75였던 핀란드 출산율은 불과 10년 만인 지난해 1.26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즉, 복지제도 확대 같은 정책이 유의미한 인구 증가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은 여러 나라에서 입증됐다. 이를 감안하면 이제 인구 소멸 위기를 ‘비상사태’로 여기지 말고 상수(常數)로 인정해야 한다. 피해는 어쩔 수 없되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에 집중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동아일보(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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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내로남불’이 안 느껴지는 이유
[허태균의 한국인의 心淵]
영화 ‘범죄도시’가 4편까지 나왔다. 1탄보다 나은 2탄이 힘든데 엄청난 흥행을 이어가고 있기에 매우 예외적이다. 여러 흥행 요인이 있겠지만 주인공 마석도 형사(마동석)의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체격과 괴력, 전투력의 소유자로 악당을 맨주먹으로 때려잡는 장면들은 항상 경이롭다. 범죄도시만은 영화관에 가서 그 액션의 타격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아들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범죄도시’ 영화를 보면서 늘 궁금하다. 마석도는 어떤 형사일까? 그가 ‘착한 사람’인 건 확실하다. 엄청난 괴력의 소유자이며 우락부락해 보여도 매우 순수하고 겸손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하다. 따로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지도 않고 부하 직원을 항상 아낀다. 하지만 그 착한 사람이 나쁜 악당만 보면 돌변한다. 한번 나쁜 놈을 발견하면 자신을 돌보지도 않고 희생하면서 끝까지 쫓아가서 꼭 단죄하고야 만다. 그것도 묵사발을 만들어서. 이러니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너무나도 착한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그 착한 사람이 진짜 악당을 잡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을 보면 약간 당황스럽다. 우선 악당들에게 금품을 갈취한다. 실제 현금도 빼앗고 음식값도 내게 하고, 공짜 유흥도 즐기고. 더 나쁜 악당을 잡기 위해서 다른 악당을 협박한다. 잡혀 온 악당을 고문하고 불법적으로 이용한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 가서 수사권도 없이 현지 법률도 우습게 위반한다. 결과적으로는 그 불법이 모두 진짜 악당을 잡는 데 다 도움이 되기는 한다. 마석도 형사는 과연 좋은 형사일까? 만약 현실에서 그런 형사가 작은 악당들의 금품을 갈취하고 있을 때(아직 진짜 나쁜 악당을 잡기 전에) 우리가 그 장면을 봤다면, 그가 착한 사람이자 정의로운 형사인 걸 우리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누군가 정의로운 결과를 위해 과정은 정의롭지 않아도 되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마석도 형사를 보면서 불편한 사람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열광한다. 이 모순에 한국 사회의 내로남불이 있다. 한국 사회의 관계주의는 행동보다 사람을 중시한다. 사람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것을 사람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착한 사람에겐 한없이 관대하지만, 나쁜 사람으로 찍히는 순간 더는 사람이 아니다. 무슨 사건이 일어나도 제도나 시스템의 문제보다는 나쁜 인간을 때려잡는 데 집중한다.
한국 사람은 절대 부정부패, 불법, 비윤리적 행동에 관대하지 않다. 하지만 더 큰 정의를 위해, 더 나쁜 악당은 꼭 때려잡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것을 하겠다는 ‘착한’ 사람에게는 열광할 수 있다. 그 착한 사람의 부정부패, 불법, 비윤리적 행동은 넘어갈 수 있다. 무엇이 나쁜지 몰라서,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을 몰라서 관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위대한 정의를 위해서 그러는 거다. 이래서 자신의 내로남불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범죄도시가 흥행 열풍을 이어가는 이유도 한국 사회에 마석도 형사 같은 존재가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우리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우리 사회의 마음에 슬픈 현실이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동아일보(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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