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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조 바이든과 '정치적 급발진']

뚝섬 2024. 7. 24. 10:17

[바이든]

[조 바이든과 '정치적 급발진']

 

 

 

바이든

 

아일랜드 뇌과학자가 “권력을 쥐면 남녀 구분 없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한다”고 했다. 이 호르몬은 뇌에 만족감을 주는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마약과 같은 효과를 두뇌에 일으킨다. 권력은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해 한번 맛을 보면 스스로 끊기가 매우 어렵다. 권력과 마약은 충동을 조절하는 뇌 전두엽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같다. 권력 중독자에게 ‘당선이 어려우니 출마하지 말라’는 것은 마약 중독자에게 ‘약을 끊으라’고 하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9세 때 상원의원이 됐다. 미국 사상 최연소다. 첫 결혼 직후 입양한 강아지 이름을 ‘상원의원(Senator)’으로 지을 만큼 권력 의지가 있었다. 그런데 당선 한 달 만에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다. 두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바이든은 “좋은 상원의원은 다른 데서도 찾을 수 있지만 좋은 아버지는 찾을 수 없다”며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의원직을 포기하려 했다. 주변 설득으로 마음을 바꿨지만 아이들에게 반드시 돌아온다는 걸 확신시키려고 집에서 워싱턴까지 177km 거리를 매일 4시간씩 기차로 왕복했다.

 

바이든은 내리 7선에 성공하며 오랫동안 상원 외교위를 이끌었다.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코소보 사태에 미군 개입을 이끌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휴가 중에도 바이든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바이든은 김정은·시진핑·푸틴 등을 공개 석상에서 “Thug(깡패 자식)”라고 부를 만큼 독재자들을 혐오했다. 이라크에서 무슬림 죄수 학대를 조장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을 향해선 “패주고 싶다”고 했다. 미국의 고립주의를 경계했다. 전임인 트럼프가 헝클어 놓은 외교·안보 실타래를 하나씩 풀었다. 작년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 것도 바이든의 ‘동맹 중시’ 덕분이다.

 

▶엊그제 바이든이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사퇴했다. 바이든은 상원·부통령 선거에서 진 적이 없다. 경선만 통과하면 모두 이겼다. 이번에도 트럼프와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긴 했지만 선거는 100일 이상 남았다. 때로는 극적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도 “당과 국가를 위해서”라며 선거를 접었다. 트럼프를 막기 위해 자신을 포기한 것이다.

 

▶'어차피 질 선거 일찍 그만둔 것’이라는 폄훼도 있겠지만 권력 중독자들이 득실대는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모습인 것은 사실이다. 링컨은 “사람 됨됨이를 알려면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고 했다. 한때 ‘노추’로 비판받던 바이든의 뒷모습에서 멋진 일몰 풍경을 본다.

 

-안용현 논설위원, 조선일보(2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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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과 '정치적 급발진'

 

[조선칼럼]

'급발진'은 위험하다
내 잘못은 인정 않고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1차 TV 토론 망친 이후
엉뚱한 페달 밟고 있다는 걸 바이든은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 정치도 마찬가지다

 

“재선 도전을 하려 했지만 우리 당과 나라를 위해서는 내가 도전을 포기하고 대통령으로서 남은 임기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 지난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입장을 밝혔다. 선거를 100여 일 앞둔 시점에 후보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소식은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지난달 27일 TV 토론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후 끝없이 사퇴 여론이 제기되어 왔음에도 바이든 본인은 한없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으니 말이다.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바이든이 마음을 바꾼 것은 두 보좌관의 보고 때문이었다. 19일 금요일, 코로나 양성 반응으로 자택에서 쉬고 있던 바이든에게, 2020년 대선에서 선대본부장 역할을 했던 심복 스티브 리체티가 찾아왔다. 토요일에는 백악관 선임 고문직을 맡고 있는 마이크 도닐런이 도착했다.

 

그들이 보고한 자체 최신 여론조사 결과는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바이든이 경합주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없었다. 경합주를 잃으면 그 외 지역에서 아무리 많은 표를 얻어도 소용없다. 바이든은 다음 날인 일요일, 아내인 질 바이든 여사 및 신뢰하는 두 명의 조력자와 간단한 대화를 나눈 후, 후보직을 내려놓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오후 1시 45분의 일이었다.

 

심층 취재가 담긴 ‘폴리티코’ 기사가 워낙 흥미진진해서였을까. 내 머릿속에서는 엉뚱한 연상 작용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시청 역주행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번 논란이 된 ‘차량 급발진 주장 교통사고’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급발진은 공식적으로 정의된 용어가 아니다. 자동차가 내 말을 듣지 않았고, 속도가 줄지 않았으며, 심지어 브레이크를 밟아도 멈추긴커녕 더 빨라졌다며,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들이 주장하는 어떤 현상을 막연하게 통칭하는 개념에 더 가깝다.

 

나는 브레이크를 밟고 있지만 자동차는 더욱 가속하는 현상이 과연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각 기관을 전자식으로 제어하는 요즘 차량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오래된 차량이라면 더욱 급발진이 발생할 수 없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유압이 작동하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엔진에 더 많은 연료가 주입되는데, 이 각각의 계통은 서로 간섭과 개입을 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럼에도 급발진을 의심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그들을 위해 심지어 ‘페달 블랙박스’라는 신문물까지 등장했다. 운전자가 어떤 페달을 밟고 있는지 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확인된 결과들은 더욱 분명하다.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는 자신이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는 굳은 믿음을 놓지 않은 채, 액셀러레이터를 꾸욱, 힘차게 밟고 있었다.

 

급발진’이라는 개념은 그래서 위험하다. 내가 잘못되었을 가능성, 내가 오류를 저지르고 있을 가능성을 의식 너머로 날려버리고, 모든 책임을 자동차와 제조사에 떠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정말 급발진 현상이 발생한다면 그 상황에서 운전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모든 페달에서 발을 떼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분명히 그렇다. 그래야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고 생각하며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차량은 서서히 속력을 잃을 테고 그때 다시 운전을 시작하면 된다.

 

미국 대선 뉴스를 보다가 자동차 급발진 주장을 떠올리는 의식의 흐름을 이제 독자 여러분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지난달 27일 TV 토론 이후 바이든이 보여줬던 모습이 바로 그랬으니 말이다. 그는 자신이 엉뚱한 페달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이 페달을 더 꾹 밟으면 부정적 여론에 제동을 걸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일종의 ‘정치적 급발진’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다행히도 바이든은 판단력을 되찾았다. 본인이 밟고 있는 것이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 페달임을 이해하고, 발을 뗐다. 덕분에 1972년 연방 상원 의원에 당선된 후 무려 50년이 넘게 이어져 온 그의 정치 인생은 대참사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미국 대선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누가 운전대를 넘겨받느냐에 따라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국내 정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브레이크라고 우기며 가속 페달을 밟아 대고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다. 국민과 여론과 ‘저들’의 음해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문제를 더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볼 일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조선일보(2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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