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을 계기로 프랑스를 다시 바라봄]
[‘센강에서의 구토’와 올림픽의 적들]
파리 올림픽을 계기로 프랑스를 다시 바라봄
[강경희 칼럼] 2024
민낯의 프랑스 보여준 좌충우돌 올림픽 운영
여전히 멋지면서도 충격적으로 엉성하고 대충대충
이제 한국의 좌파들도 프랑스 환상에서 벗어나려나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지난 7월 26일 오후(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서 레이저쇼가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프랑스가 100년 만에 개최한 파리 올림픽은 이래저래 잊히기 힘든 올림픽이 될 것 같다. 개회식이 특히 그렇다. 경기장을 벗어나 센 강과 에펠탑을 무대로 프랑스 매력을 한껏 보여주려는 창의적 발상은 신선했으나 운영과 콘텐츠는 거센 논란과 미흡한 완성도로 얼룩졌다. 우리에게는 국가명을 북한으로 잘못 읽은 치명적 실수로 오래 남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기독교인들한테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장면으로 종교를 조롱하는 듯한 불쾌감을 안겼다. IOC가 동영상을 삭제하고 개회식을 연출한 감독 토마 졸리가 사이버 위협에 시달리다 못해 당국에 수사 의뢰까지 하게 된 소동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런 소란에 묻혀 지나갔지만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문제적 장면은 더 있었다. 그중 하나가 센 강변의 콩시에르주리 창가에서 피를 내뿜는 장면과 함께 목 잘린 여성을 내세운 퍼포먼스였다. 콩시에르주리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수감됐던 곳이다. 단두대에서 처형 당한 왕비를 재연한 것이다. 이번 올림픽 개회식은 ‘성 평등’의 역사를 한껏 강조하면서 프랑스 역사의 페미니스트 10인을 황금 동상으로 소개했다. 그래 놓고 프랑스로 시집 왔다 온갖 혐오와 헛소문 속에 황당한 죄목을 덮어쓰고 희생된 외국인 왕비의 머리는 프랑스 역사의 전리품처럼 소개하는 그 ‘선택적 정의’가 프랑스의 자가당착을 보여주는 듯했다.
파리 특파원이었던 인연 때문에 파리 올림픽을 계기로 프랑스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역대 파리 특파원들이 프랑스 뉴스를 전달하고 소개하는 일은 종종 이중 장벽에 부딪힐 때가 많았다. 유럽의 경제 대국이고 외교 강국이라는 점 말고 프랑스가 ‘소프트 파워’로 세계사에서 누려온 남다른 위상 때문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전제군주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주의 이념을 전 세계에 수출한 나라, 문화와 예술 선진국, 68혁명으로 상징되는 저항과 자유 정신, 반미(反美)·반 세계화 기수로 프랑스는 실제 국력보다 국가 이미지가 더 높게 매겨지는 나라였다. 이 대단한 자부심이 때로는 프랑스 지식인이나 정치인들로 하여금 프랑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이 됐다.
20년 전 주재 당시 이민자들의 소요 사태가 프랑스 역사상 처음 터졌다. 파리 외곽 이민자 거주 지역에서 2명의 10대들이 경찰 검문을 피해 도망가다 숨졌다. 이를 단초로 이민 2세들의 소요 사태가 확산됐다. 프랑스 내부의 불평등이 곪다 못해 이민자 소요로 폭발하기까지 프랑스 내부에서는 자유·평등의 공화국 정신 덕분에 평등이 뿌리내려 여성이나 이민자 등 소수를 위한 ‘긍정적 차별’ 제도도 필요하지 않다고 자만할 정도였다. 프랑스 스스로 공화국 근본주의에 빠져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과 소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모순을 느끼다가 소요 사태가 터졌을 때 한국 매체들 중에 제일 먼저 보도했는데 그때 한국 내 반응이 참으로 황당했다. 우파 매체가 ‘평등한 나라’ 프랑스를 흠집 내려고 과장 보도를 한다고 한국의 좌파 진영이 비난했다. 소요 사태는 프랑스 전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고 전 세계 주요 매체들이 프랑스로 대규모 취재팀을 특파했다. ‘평등의 나라’ 프랑스에 대한 동경이 유별났던 한국의 좌파 매체들도 취재진을 파리로 급파해야 했다.
2차대전 이후 프랑스는 전후 복구 자금에 의해 경제가 급성장하는 ‘영광의 30년’을 누렸다. 경제 성장기에 터져나온 68혁명의 사회 운동에 기반해 복지를 확대하고 관대한 사회 제도를 유지했다. 1981년 좌파 미테랑 대통령이 첫 집권에 성공했다. 1980, 90년대에 프랑스에 살았던 한국 유학생이나 주재원들에게 한국보다 한참 앞서 있던 프랑스는 동경과 선망의 선진국일 수밖에 없었다. 자유·평등·박애의 나라로, 톨레랑스의 나라로 소개됐다.
하지만 ‘영광의 30년’ 이후 프랑스는 ‘대량 실업의 30년’을 걸었다. 좌파 정부도, 좌우 동거 정부도, 우파 정부도 경제 살리기에 실패했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직시하지 않은 채 부유한 삶을 즐기면서 입으로만 정의를 외치는 ‘캐비아 좌파’ 지식인이 유독 많은 나라다. 프랑스에 대한 허상이 적지 않아 특파원 시절, 있는 그대로의 프랑스를 전달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로부터 십수년 뒤, 파리 올림픽을 통해 프랑스 스스로 굴절 없이,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여전히 멋지고 대단한 점도 많지만 선진국 맞나 싶게 은메달 딴 자기네 국기도 동메달 위치에 게양하는 ‘대충대충 일 처리’, 말은 유려하나 현실의 일 처리는 엉성하기 그지 없는 후진성이 혼재하는 나라가 프랑스다. 지금 보이는 프랑스는 국력이 예전 같지 않아 그런 측면도 있지만 우리나라 위상과 눈높이가 높아져 먼저 선진국이 된 나라를 대등하게 바라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에 대한 허상처럼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도그마와 프레임에 갇혀, 또 정치적 목적 때문에 선택적 기억의 역사, 선택적 정의만을 주장하는 집단이 많다. 다른 나라 뿐 아니라 지난 역사도 선입견이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는 지력과 지혜의 필요성을 되새기는 계기도 됐으면 한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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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강에서의 구토’와 올림픽의 적들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트라이애슬론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지난달 31일 프랑스 파리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아래 센강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 파리=뉴스1
‘센강의 역설.’
최근 2024 파리 올림픽 경기 도중 센강에서 경기를 한 선수가 구토를 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방영됐다. 트라이애슬론 경기를 마친 남자 선수가 10여 차례 구토를 하는 모습이 그대로 생중계되면서 센강의 수질 논란이 다시 지펴졌다.
센강은 예술의 나라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상징하는 곳으로 이번 파리 올림픽 개회식의 배경이 되었다. 주최 측은 각국 선수단을 배 85척에 태워 입장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센강 주변의 콩코르드 광장, 노트르담 대성당 등 오래되고 유명한 건물들을 보여주며 프랑스의 문화적 저력을 과시하려 했다. 하지만 파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며 신중하게 선택한 무대인 센강은 이번 올림픽 진행 과정에서 가장 좋지 않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센강은 올림픽 개최 전부터 수질오염 논란으로 몸살을 앓아 왔다. 센강에서는 이미 101년 전인 1923년부터 수영이 금지됐다. 산업폐수와 생활오수가 걸러지지 않고 쏟아졌기 때문이다. 파리는 2017년 이번 올림픽 유치 이후 2조 원이 넘는 돈을 수질 개선 사업에 썼다.
센강의 수질이 나아졌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올림픽을 앞두고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이 직접 센강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 등 애썼으나 민심은 싸늘했다. 오히려 센강에 ‘배변을 하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과시적인 수질 개선 홍보에 비해 실제로는 수질 개선 효과가 적은 데 대한 반발이자 비아냥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열렸지만 선수의 구토 모습이 부각되면서, 그 원인을 둘러싸고 그동안의 각종 논란이 거듭 재조명되고 있다.
올림픽에서 이렇듯 환경오염이 논란이 된 적은 과거에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2008 베이징 여름올림픽 때의 대기오염 논란이다. 오염된 공기 때문에 테니스와 마라톤 선수의 불참 선언이 터져 나오는 등 사태가 심각했다. 해결을 위해 중국이 준비한 카드는 ‘인공 강우’였다. 베이징 인근 공장들을 폐쇄하고 차량 홀짝제를 실시하는 등 강력한 오염 단속을 실시하는 한편 올림픽을 앞두고 베이징 상공에 요오드화은, 염화나트륨 등 화학물질을 발사해 인공적으로 물방울을 맺히게 한 뒤 비를 내리게 했다. 이를 통해 베이징 상공의 대기오염 물질을 씻어냈다.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 당일에는 반대로 개회식 도중에 비가 내리지 않도록 개회식 전에 주변의 비구름들이 미리 비를 내리게 했다. 개회식 당일 베이징 인근 21곳에서 1104발의 로켓을 발사했다. 중국은 당시 약 5000대의 로켓 발사대, 대포 7000여 문, 전용기 134대, 운영요원 약 4만 명으로 이루어진 인공강우 팀을 운영하고 있었다. 중국이 올림픽을 위해 환경오염 개선 비용으로 쓴 돈은 18조 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하늘마저 움직이고자 한 중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의 대기오염이 올림픽 이후에도 획기적으로 나아졌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베이징 지역 인공강우로 인해 다른 지역의 가뭄이 심해졌다는 등 여러 부작용이 제기됐다.
최근 올림픽 때마다 이 같은 환경 이슈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21 도쿄 올림픽 때는 폭염을 피해 마라톤 경기를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일본 북부 삿포로에서 열었음에도 많은 선수가 기권했으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때는 눈이 내리지 않아 올림픽 최초로 설상경기장을 100% 인공 눈으로 채워 경기를 치러야 했다. 앞으로 기후 온난화로 인해 겨울올림픽을 제대로 열 수 있는 도시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는 각종 정치적 이슈나 테러 등 일반적으로 올림픽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알려진 것들 외에, 우리를 둘러싼 환경 그 자체가 올림픽을 저해하는 가장 큰 적대적 요소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은 이번 센강 수질이나 베이징 대기오염 논란에서 보는 것처럼 일시적인 대책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좀 더 근본적이고 긴 시간의 대응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센강의 구토’는 인류의 축제가 인류가 저지른 환경오염으로 인해 우리에게 구토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파리의 자랑인 센강이 문화·예술적 자부심이 아닌 일종의 경고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이번 올림픽을 바라보며 느낀 센강의 역설이다.
-이원홍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동아일보(2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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