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감정의 정치]
[일단 지르고 보는 '어퍼컷 국정'의 뒤탈]
[서울대 법대와 ‘밴댕이 정치’]
[정심(正心)과 중심(中心)]
[의료계 집단행동 세계 최장으로 가나]
[尹 대통령의 불안한 ‘한국형 헨리 키신저’ 실험]
尹 대통령, 감정의 정치
국회 개원식, 與행사 불참
감정적으로 비쳐져
召命이라는 연금·의료 개혁
여의도 소통없이 힘든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10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마친 뒤 국무위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윤 대통령 뒤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예산안 관련 피켓을 들고 있다. /이덕훈 기자
최근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 ‘감정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22대 국회 개원식에 가지 않았다. 이유는 ‘야당’이었다. 대통령실은 언어 폭력, 피켓 시위로 대통령을 모욕할 것이 뻔해서 참석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국회 개원식에 가지 않은 첫 대통령이란 기록을 남기게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로 예정됐던 국민의힘 지도부 만찬을 추석 뒤로 연기했다. 이 만찬은 원래 대통령실이 제안했던 행사였다. 29일 열렸던 국민의힘 연찬회에도 윤 대통령은 불참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었다. 이유는 ‘한동훈’이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직전에 있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2026년 의대 증원 유예’ 제안이 상당히 불쾌했다고 한다.
이 장면들은 윤 대통령이 둘러싼 현실과 그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을 보여준다. 임기가 반환점을 돌지도 않은 윤 대통령은 여당의 전폭적 지원을 못 받고 있다. 해병대원 특검법을 놓고 용산과 생각이 다른 한 대표는 ‘김경수 복권 반대’에 이어 ‘의대 증원 유예’를 불쑥 던졌다. ‘의대 증원 유예’에 대해 윤 대통령은 자신이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의료 개혁에 찬물을 끼얹는 걸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여의도의 정치 고수들도 “한동훈 대표가 성급하고 미숙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지난 총선을 통해 몸집을 더 불린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때부터 윤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를 숨기지 않았다. 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민주당 계열의 장외 세력들은 탄핵 집회를 시작해 지금도 하고 있다. 민주당도 이를 장내로 끌고 와서 국회에서 연일 ‘탄핵 청문회’를 열었다. 민주당 인사들은 ‘대통령 탄핵’이 일반 공무원 징계쯤 되는 사안인 양 아무렇게나 얘기하고 있다. 대통령 부부를 ‘살인자’라 했던 민주당 의원은 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다른 의원들은 갑자기 윤 대통령이 계엄을 준비한다는 음모론을 확산 중이다.
윤 대통령으로선 평정심 유지가 힘든 상황의 연속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회를 파트너로 해서 국정을 운영해 나갈 수밖에 없는 자리다. 필요하면 자신을 죽이려는 상대와도 웃으며 악수하는, 감정이 배제된 정치도 해야 한다. 더구나 윤 대통령은 지난달 국정브리핑에서 의료·연금·노동·교육 등 4대 개혁에 대해 “개혁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러온다”며 “국민께서 맡긴 소명을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부의 연금개혁안은 그저께 국회로 넘어갔다.
핵심은 지금 대통령실 구조가 윤 대통령 앞에 펼쳐진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외부와 파이프 라인으로 연결된 섬(島)과 같다. 정부 부처와 국가 기관들과 연결된 그 파이프 라인으로 정보와 판단이 공급된다. 대통령실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그 파이프 라인이 정상 작동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무소불위로 보이는 대통령실은 고립되고 쉽게 허약해진다. 역대 정권들을 보면 대통령 임기 말로 가면서 그 파이프 라인이 경색(梗塞)되는 현상들이 나타났다. 대통령 뜻과 어긋나는 정보는 아예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지지율 의식하지 말고 열심히 해서 4대 개혁을 이루자”며 참모들을 다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대통령 임기 말에 나타나는 ‘경색’ 현상이 너무 일찍 오는 것 같다고 우려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그 징후로 받아들이는 여러 사례의 대부분은 ‘격노’와 같은 대통령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대통령은 ‘냉정’해지고, 더 늦기 전에 대통령실과 연결된 국정 운영의 파이프 라인을 점검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최재혁 정치부장, 조선일보(24-09-06)-
_____________
○ 野 ‘계엄 준비설’ 근거가 계엄 관련 직위에 대통령 고교 동문 포진이라고. 맹탕 된 文 정부 계엄 문건 사건 시즌2?
-팔면봉, 조선일보(24-09-06)-
_____________
일단 지르고 보는 '어퍼컷 국정'의 뒤탈
[김창균 칼럼]
최민희 임명 거부 나비효과… MBC 지도부 교체 뻐그러져
불쑥 내민 2000명, 200만원… 의료계 및 軍 혼란 불러
눈앞밖에 못 본 즉흥 결정이 敵 만들고 후유증 남겨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오후 경기 수원 팔달구 서호 잔디광장에서 열린 제28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3.11.10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정치적 중립성이 필요한 국가기관의 지도부는 여당 몫, 야당 몫을 나누어 추천받는다. 방송통신위원회도 그중 하나다. 방통위 상임위원 5명 중 대통령이 2명을 지명하고, 나머지는 여당 몫 1명 야당 몫 2명을 국회가 추천한다. 정부 여당에 주도권, 야당에 견제권을 각각 부여하는 숫자 배분이다.
이런 취지에 따르면 작년 3월 야당이 방통위원 후보로 추천한 최민희씨를 대통령이 임명 보류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대통령실은 최씨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통신 사업자 이익을 대변하는 자리를 지내 이해 상충 소지가 있다는 점을 결격 사유로 들었다. 목소리 크고 ‘골치 아픈’ 최씨를 배제하고 싶은 게 진짜 속내였을 것이다. 하염없이 임명이 미뤄지자 작년 11월 최씨는 자진 사퇴했다. 대통령 지지층은 환호했다. 윤 대통령의 강공이 먹혀든 게 뿌듯했고 ‘미운 털’ 최씨가 잘려 나간 것이 통쾌했다.
민주당은 “눈에는 눈” 보복에 나섰다. 과반 의석을 앞세워 자신들의 야당 몫 2명은 물론, 여당 몫 1명까지 국회 추천을 무산시켰다. 방통위 5인 상임위원 체제는 2인 체제로 쪼그라들었다. 행정법원은 “2인 체제는 하자가 있다”면서 2인 체제가 의결한 방문진 새 이사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방문진이 인사권을 쥔 MBC 사장 교체가 뻐그러졌다.
최씨는 4월 총선에서 당선돼 방통위를 관할하는 국회 과방위원장 자리를 꿰찼다. 그래서 상임위원이 못 된 분풀이를 톡톡히 했다. 오죽 시달렸으면 방통위 직원들이 정신 질환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언젠가 최씨 대신 방통위원 자리를 채울 야당 인사도 최씨 못지않을 것이다. 대통령 입장에서 야당 몫 방통위원 임명을 잠시 퇴짜 놓는 쾌감을 맛본 대가로 MBC의 야당 나팔수 역할을 연장시키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복지부 장관이 새로 임명될 때마다 “손대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 금기 사항 중 하나가 의대 정원 문제다. 의사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400명 증원 방침이 무산되는 것을 목격한 게 불과 4년 전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2000명 증원”을 발표했을 때 “괜찮을까” 우려했다.
2000명이라는 수치가 어떻게 나왔는지 모두 궁금했다. “이런 회의에서, 이런 논의를 거쳐 결론이 났다”는 과정이 밝혀지면 ‘2000명’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설명하지 못했다. 대통령 담화에서 “2035년까지 1만5000명이 부족하다. 의사 배출에 10년이 걸리기 때문에 2025년부터 2000명씩 늘려야 한다”고 밝힌 것이 전부다. 국민들은 “2000명은 대통령 머리에서 나온 수치”라고 믿게 됐다. 의정 갈등은 6개월째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당근도 채찍도 로드맵도 없다. 시간이 해결해 주길 기다릴 뿐.” 사태 초기 윤 정부 측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초급 장교와 부사관들의 이탈이 군(軍)의 큰 걱정거리다. 지난 한 해 동안 1만명 가깝게 군을 떠났다. 역대 최대 수치다. 초급 장교의 70%를 차지하는 ROTC 지원율은 해마다 급감해 정원의 절반도 못 채운다. 윤 대통령 대선 공약인 “사병 월급 200만원”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초급 간부는 사병보다 복무 기간이 훨씬 긴데 월급마저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200만원’은 앞뒤 재보지 않고 불쑥 꺼내 든 수치였다. 그런데도 손본다는 얘기는 안 들린다. 누가 감히 대통령 공약에 토를 달겠는가.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어퍼컷 세리머니를 즐겨 했다. 어퍼컷은 온몸의 힘을 모아 상대 턱을 올려 치는 최후의 일격이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이 결정을 못 하고 좌고우면하면 “그냥 질러”를 외친다고 한다. 결과 걱정은 나중에 하고 일단 밀어붙이라는 뜻이다.
대통령이 서 있는 국정 현장은 상대를 향해 KO 펀치를 날리는 복싱 링이 아니다. 수많은 이해 당사자가 모두 “손해 보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게 고차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국민의 특정 집단을 적으로 몰아 일시적으로 승리하면 그 후과를 치르게 마련이다.
심지어 복싱에서도 큰 펀치부터 휘두르며 덤비는 건 초짜들이다.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려가며 상대의 수비 태세를 먼저 흐트러뜨리는 것이 수순이다. 한 방에 때려눕히겠다고 날린 어퍼컷이 허공을 가르면 카운터펀치를 맞고 휘청거리게 된다. 무작정 지르고 본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R&D 예산 대폭 삭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이 어떤 뒤탈이 났는지 국민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창균 논설주간, 조선일보(24-09-05)-
_______________
서울대 법대와 ‘밴댕이 정치’
[김순덕 칼럼]
국내 최고 엘리트 대학 출신 첫 대통령
“논리 잘못 쓰면 무식한 자보다 해롭다”
‘서울법대시대’ 쓴 교수는 법대생에 가르쳤다
의료대란 불안한 국민… ‘큰 정치’ 하고 있나
2024.09.04. 대통령실사진기자단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의 불법 부당을 알리려다 순국한 이준 열사는 검사였다. 서울대 법대 전신인 법관양성소 1회 졸업생으로 법대 교정 그의 동상엔 ‘위대한 인물은 반드시 조국을 위하여 생명의 피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글이 새겨져 있다.
최종고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2013년 출간한 ‘서울법대시대’에서 이준 열사부터 소개하며 ‘사실 “천하제일 서울법대”라고 자부하면서도 대통령은 내지 못하였다’고 적었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총재 이회창 동문, 총리를 지낸 이수성 동문도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면서 ‘아무튼 끝내 대통령을 내지 못한 최고 엘리트 대학 서울법대시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것은 법대의 무능인가, 한국 국민의 수준인가, 아니면 엘리트 대통령은 원래 거부되는 것인가?’ 책 속에서 자문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 윤석열 대통령 집권 2년 4개월이 다 된 지금, ‘최고 엘리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 물어봤다. 최종고는 말을 아끼는 듯했다. 걱정스럽지만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입학한 79학번 서울대 법대가 당시 전국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건 분명하다. 윤 대통령이 엘리트주의자인 것도 분명하지만 과연 엘리트인지, 국민 수준이 엘리트 대통령을 거부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응급실 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문제로 국민 불안이 심각한 상황이어서다.
대통령은 든든한 주치의가 있어 걱정 없겠지만 노부모와 따로 살거나 아이들 키우는 집에선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대통령 국정 수행도 성적순이 아님을 입증했다는 게 윤 대통령 업적으로 남을 것 같다. 윤 대통령의 ‘밴댕이 정치’ 때문이다.
혹시 대통령 모욕으로 걸릴까 겁나 굳이 원저자를 밝히자면,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말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026년 의대 증원 재검토안’을 내놓자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연찬회도,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도 돌연 취소했다. “대통령이 유치원생인가. 이런 밴댕이 정치가 나라를 이렇게 만든 것”이라는 박 의원의 지적은 찌릿하고 신랄하다.
윤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도 밴댕이 같다. “조롱과 야유,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국회에 가서 곤욕을 치르고 오라고 어떻게 말씀드릴 수 있겠느냐”고 정진석 비서실장은 4일 말했다. 자신이 간신이라는 자백처럼 들린다. 차라리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곤욕을 치렀다면, 참고 심지어 손을 내미는 ‘큰 정치인’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국민은 다 알아본다. 그게 싫어 피함으로써 윤 대통령은 ‘87년 체제 첫 대통령 불참’이라는 밴댕이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날이 하필 대통령 부인 생일이어서 미 상원의원단과 부부 동반 만찬을 가진 것도 개운치 않다.
유교적 전통, 동양적 가치가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지도자는 덕(德)이 중요하다. 사회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무엇보다 강력한 동인은 너그러움과 미더움, 공평무사 같은 지도자의 덕이라고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강조했다. 의료개혁이 아무리 중요해도 윤 대통령이 국민 마음부터 얻지 못하면 전공의들을 돌아오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의대 증원이 마무리된 만큼 개혁의 본질인 ‘지역·필수 의료 살리기’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지난주 윤 대통령은 말했다. 그럼 본질 먼저 시작해야지 왜 의대 증원부터 건드려 이 지경을 만든단 말인가. 대뜸 압수수색부터 시작해 사돈의 팔촌까지 탈탈 털어 엮어 기소하는 ‘윤석열 검찰’을 연상케 한다. 나중에 대법원 무죄가 나와도 그사이 검사들은 승진하고 심지어 대통령도 될 수 있었지만 당하는 국민은 삶이 결딴날 판이다.
이렇게 대안 없이 밀어붙이다가는 2027년 3월 대통령 선거는 뻔하다. 그럼 윤 대통령이 국민 목숨 걸고 시작한 의료개혁은 2026년에서 멈추고 만다. 그래도 상관없단 말인가.
한때 ‘육법당(陸法黨)’ 소리를 들었던 서울대 법대였다. 군사독재를 뒷받침했다는 의미다. 지금은 자칫 ‘검법당(檢法黨)’ 소리가 나올까 두렵다. ‘서울법대시대’에서 최종고는 ‘법대생에게 논리, 윤리, 심리를 바르게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썼다. ‘논리가 강한 주지주의적 인간일수록 윤리에는 약하다. 그리고 논리를 바른 방향으로 구사해야지 꼬이거나 나쁜 방향으로 쓰면 무식한 자보다 더 해롭다’고도 했다. 조국을 위한 생명의 피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서울대 법대 출신 대통령이 무식한 자보다 해롭다는 소리는 안 듣게 해야 한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동아일보(24-09-05)-
_______________
정심(正心)과 중심(中心)
정심(正心)은 대학의 팔조목, 격물치지 성의정심(格物致知誠意正心)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임금의 바른 마음 하나에서 수신이 나오고 제가가 나오고 치국과 평천하가 나오기 때문이다. 정심이란 말 그대로 임금이 자기 마음에 그릇됨[邪]이 끼어들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그릇됨이란 사사로운 욕심이나 교만, 사치 등이다.
그런데 최고 지도자는 정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중심(中心)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때 중심은 가운데나 센터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중(中)은 가운데 중 자가 아니라 화살이 과녁에 적중하다고 할 때의 중 자이다. 중용(中庸)의 중이 바로 가운데 중이 아니라 적중할 중이다.
이 중(中)의 정치로 제나라 환공을 도와 부국강병을 실천한 인물이 관중(管仲)이다. 사마천의 ‘사기’ 세가(世家)에는 그 비결이 실려 있다. 관중이 말했다.
“영(令)을 내리기를 흐르는 물의 원천처럼 하면 (그 영은) 백성들의 마음에 고분고분 들어맞게 된다.”
실제로 사마천은 관중의 정치를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백성들이 원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그렇게 해주었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그것을 없애주었다.”
백성들의 마음이 척도였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중심이다. 정심의 심은 자기 마음이지만 중심의 심은 백성의 마음이다. 정심과 중심의 갭을 줄이는 것이 지도자의 마음가짐이다.
다시 사마천의 말이다.
“그가 정사를 한 것을 보면 재앙도 잘 처리하여 복이 되게 하였고 실패도 바꿔 성공으로 이끌었다.”
일정함[正]보다는 상황에 맞췄기[中] 때문이다. 그래서 관중은 말했다.
“내어줄 줄을 알아서 취하는 것, 이것이 정치하는 보배[政之寶]이다.”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대통령 모습에서 부중(不中)을 보게 된다.
-이한우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 조선일보(24-09-05)-
________________
의료계 집단행동 세계 최장으로 가나
6개월 넘길지 아무도 예상 못 해… 8개월 이스라엘 기록 넘길 판
뜻 모아 결정할 리더십 세워야 파워 커지고 해결 실마리도 찾아
4일 군의관 3명이 배치되는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에 응급실 한시적 축소 운영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아주대병원 응급실은 오는 5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7시부터 다음날인 금요일 오전 7시까지 24시간 16세 이상 성인 환자의 경우 심폐소생술(CPR)을 필요로 하는 등의 초중증 환자만 받는다. /연합뉴스
“이번 파업이 짧으면 2~3개월, 길면 반년 이상 갈 수 있다.” 대형 병원 전공의들이 이탈하기 시작한 지난 2월 20일 김윤(현 민주당 의원) 당시 서울대 의대 교수는 TV 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토론을 지켜본 필자는 충격을 받았다. 설마 6개월까지 갈까 싶어, 김 교수가 심각성을 강조하느라 과장한다 생각했다. 다음 날 정진행 서울의대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도 “김 교수가 무책임한 발언으로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어떤 근거로 그런 충격적 발언을 한 것이냐”고 비판했다.
그런데 전공의 집단 이탈이 7개월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 수도권 대형 병원 응급실마저 시간대 또는 진료 과목별로 진료 제한이 일상인 상황에 이르렀다. 의정 갈등이 이렇게 장기화하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6월 말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네 달 넘게 의료 공백이 지속될 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3~4주면 진정될 거라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 정도면 세계 최장 아닐까 싶어 찾아보니 아직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공립 병원 의사들이 급여 인상, 의사 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며 2011년 약 8개월, 2010년 217일(약 7개월) 파업한 기록이 있다(의료정책연구원 자료).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갈등이 언제 끝날지 전망조차 보이지 않으니 머지않아 세계기록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스라엘은 예외적인 나라이고, 서구에서 의사 파업이 길게 가는 일은 극히 드물다. 영국 의사들이 올해 1월 국가보건서비스(NHS) 75년 역사상 최장 파업을 벌였는데 엿새였다. 그만큼 환자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최후 수단으로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왜 이렇게 사태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길게 이어지는 것일까. 의사들은 정부가 한꺼번에 무리하게 2000명을 증원했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의사들이 뜻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만 외치며 협상다운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전공의들이 지난 4월 대통령을 만날 때 “(접점이 없으면) 원래 하던 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고 말한 것이 이들의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의사들과 접촉한 정부 관계자는 “의사들은 전공의, 의대 교수, 의사협회, 의학회, 의대생 말이 다 다르고 그 조직마저 또 쪼개져 있어서 어느 말을 듣고 대응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고 했다. 한 중진 의사는 “정부가 들어주기 어려운 정책이 있으면 ‘의료계 단일안을 좀 만들어 오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 십중팔구 의견을 모으지 못해 더 이상 연락하지 않음을 정부가 잘 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사 하나하나가 흩어진 점인 모래알 조직인 것이다. 의협이 법정 단체이긴 하지만 개원의 중심인 데다 전공의들의 불신을 받아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의협 회장에 수시로 극단적 성향 인사가 뽑히는 것도 의사들의 민주적 리더십이 취약함을 드러내는 사례일 것이다.
의사들이 이런 식으로 의견을 모으지 못하면 자신들은 물론 국민에게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로 다시 한번 드러났다. 지금도 문제지만 앞으로도 계속 문제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지금 의사들에게 시급한 일 중 하나는 민주적 리더십을 세우는 일 같다. 의대 교육과정에 관련 과목을 넣거나 필러 시술법 강의하듯 의사들을 상대로 세미나라도 열어야 할 판이다. 의사들 뜻을 하나로 모을 수 있어야 파워도 커지고 6개월 넘게 가는 의정 갈등도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24-09-05)-
________________
尹 대통령의 불안한 ‘한국형 헨리 키신저’ 실험
용산 대통령실 경호처 부속건물에 최근 한때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새로 만들어지는 외교안보특별보좌관 사무실을 한번 보고 싶다며 방문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쓰던 다른 사무실 일부를 헐어 특보실로 만드는 공사가 아직 진행 중인 데다 폭염 속 에어컨도 없는 상황. 직원들이 윤 대통령의 발걸음을 막느라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연쇄이동 논란 속 외교안보특보직 신설
윤석열 정부의 초대 외교안보특보 자리는 지난달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장관에, 신원식 국방장관을 국가안보실장에 앉히는 연쇄 인사 과정에서 신설됐다. 국가안보실 사령탑 자리를 내어주게 된 장호진 전 실장이 맡게 된 새 직함이다. 7개월 만에 돌연 교체된 국가안보실장 인사의 배경을 놓고 경질설, 권력다툼설 등이 난무했다. 윤 대통령이 특보 사무실을 직접 챙기는 것을 보니 후속 조치에 신경이 쓰이는 인사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나토(NATO) 정상회의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해외 정세를 보고 군인 출신 국가안보실장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게 인사 발표 당시 대통령실의 설명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두 개의 전쟁이 동시에 돌아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도 이제 외교보다는 안보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위협 등에 대비해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은 군이 할 일이다. 중동과 유럽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국가안보 사령탑이 군인 출신으로 교체돼야 했는지 의문이다. 국방부 인사들이 ‘즉·강·끝(즉시, 강하게, 끝까지)’의 응징을 외칠 때 다른 한쪽에서 적대국 혹은 비우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하는 게 국가안보실이 해야 할 일 아닌가. 한 발 더 나아가 전쟁 종식 이후 러시아 등과의 관계 재설정까지, 풀어내야 할 외교 방정식은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까다롭다.
불과 60여 일밖에 남지 않은 미국 대선 또한 초박빙 구도 속에 그 결과를 가늠하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재선될 경우 제기될 이슈는 주한미군 감축 같은 군사 문제만이 아니다. 북-미 협상 재개, 미중 관세전쟁,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기 등 한국이 대응해야 할 경제안보 분야의 난제가 쓰나미처럼 들이닥칠 것이다.
‘리베로’로 해외를 뛰면서 이런 현안을 풀어낼 것이라는 장 특보의 역할은 막상 애매하다. 원전 세일즈 같은 특별 임무를 맡게 된다지만 특보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미션이 무엇인지 정확지 않다. 경제안보나 통상 관련 업무라면 산업통상자원부, 한미일 협력은 외교부 장차관들이 언제라도 출장길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업무 중복이나 관할권 충돌의 문제가 불거지지 말란 법이 없다.
윤 대통령은 기존과는 다른 상근 외교안보특보직을 처음 만드는 취지로 “우리도 헨리 키신저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했다고 한다. 헨리 키신저가 밀사로 중국을 오가며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열었을 때는 그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직하던 때였다는 것을 알고 한 언급인지 모르겠다. 키신저의 성과는 충분한 권한과 국가적 지원, 이를 보장받을 직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6년 넘게 백악관에서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한 최장수 국가안보보좌관이다.
‘리베로’ 역할 한계와 업무중복 우려
교체 사실을 직전까지도 몰랐던 장 특보는 예정됐던 업무 일정들을 갑작스럽게 조정해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인사 배경이 석연치 않으니 이번 연쇄 인사의 출발점으로 보이는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 임명을 놓고 탄핵 대비용이니 계엄령 준비니 하는 야당의 공세만 거세져 간다. 대통령실이 “외교와 안보의 두 마리 토끼를 쫓겠다”고 의미를 실은 국가안보실과 외교안보특보실의 역량을 결국 동시에 흔들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진다.
-이정은 부국장, 동아일보(24-09-05)-
==========================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 > [時事-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돼도 ‘美 우선’… 100조 투자 韓 기업, 대선 리스크에 떤다] .... (3) | 2024.09.06 |
---|---|
[K팝의 성공 비결로 K정치를 개조할 순 없을까] (7) | 2024.09.06 |
[박 대표는 정말 믿고서 이 황당한 내용 주장하나] .... (1) | 2024.09.05 |
[文 전 대통령 딸은 화내기 앞서 의혹 해명 먼저 하길] .... (15) | 2024.09.05 |
['친환경'의 역습] [中 전기차의 공습에 獨 공장 문 닫는 폭스바겐] (1) | 2024.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