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년 만에 받은 ‘침몰 징용 귀국선’ 조선인 명단]
[‘죽사니즘’ 결단이 빛바래 간다]
79년 만에 받은 ‘침몰 징용 귀국선’ 조선인 명단
일본 정부가 ‘우키시마(浮島)호 침몰과 함께 사라졌다’던 승선자 명부 일부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방한을 하루 앞둔 5일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1945년 8월 우키시마호가 강제 징용됐다가 귀국하려던 조선인 수천 명을 태운 채 폭침된 지 79년 만이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 해군이 고의로 폭파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오랜 세월 피해자와 유족의 한(恨)을 외면해 온 일본이 이제야 달랑 명부를 가져온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는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 일대를 요새화하면서 방공호와 철도 건설 등에 조선인을 대거 동원했다. 조선인은 기아와 매질, 중노동에 시달렸다. 패전을 맞아 보복이 두려웠던 일본 해군사령부는 조선인 수천 명을 부산으로 돌려보내겠다며 우키시마호에 태웠다. 그러나 8월 22일 오미나토항을 떠난 배는 이틀 뒤 교토 마이즈루항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일본 정부는 배가 기뢰를 건드렸다고 발표했지만 믿기 어려운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당시 기뢰 폭발에 나타나는 물기둥이 보이지 않았다. 9년 뒤에야 인양한 배는 선체가 안에서 밖을 향해 휘어 있었다. 내폭의 증거다.
▷해군 승조원들이 부산에 가지 않으려고 자침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출항 전 승조원들은 ‘전쟁이 끝났는데 조선에 가면 맞아 죽거나 포로가 될지 모른다’며 항명 사태를 일으켰다. 배엔 돌아올 연료도 없는 상태였다. 폭발 전 일부 해군이 배에서 내려 구명보트를 타는 모습을 본 생존자도 있다. 폭침이 사고를 위장해 징용 조선인을 몰살하려던 해군사령부의 계획이라는 설도 있다. 배는 처음부터 부산이 아닌 마이즈루항으로 향했다. 사령부에서 일했던 아버지로부터 ‘(사령부가) 배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는 증언이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6일 “인도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대응해 왔으며, 이번 명부 제공도 그런 대응의 일환”이라고 했다.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승선자 명부의 존재가 드러난 뒤에도 일본 정부는 이를 부인하거나 답변을 피해 왔다. 유족들이 낸 배상 청구 소송에선 명부를 ‘승선 시 작성해 배에 비치한 것’으로 정의하며 ‘침몰로 상실됐다’고 주장했다. 최근에야 일본 기자의 정보 공개 청구를 계기로 명부 75건을 보관해 온 것을 인정했다.
▷“자기네가 아쉬워서 (사람을) 갖다 썼으면 되돌려 놔야지. 노예같이 부려놓고 사람을 죽이는 게 인도적인 건가?” 우키시마호 생존자의 호소다. 일본 정부가 뒤늦게 명부를 건네려면 사과와 진상 규명 의지를 함께 표하는 것이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일본 정부가 여전히 은폐하고 있는 강제징용 피해자 명부 등 자료가 적지 않다. 총리 방한 등 이벤트에 맞춰 마치 선물 주듯 해서는 일본 정부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릴 것이다.
-조종엽 논설위원, 동아일보(2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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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사니즘’ 결단이 빛바래 간다
윤석열 대통령이 꼭 봐야 할 동영상이 있다. 야당 의원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일제강점기 때 당신 아버지의 국적은 조선 일본 대한민국 중 어디더냐’를 질의하는 장면이다. 김 장관은 제대로 답을 못 했다. 누가 옳으냐를 떠나 의정 단상에서 15분이나 얼굴 붉힐 일인지 모르겠다. 이런 국정의 낭비는 안보전략과는 별개로 몇몇 무리한 인사를 한 용산 탓이 크다.
대통령은 지난해 한미일 3국 협력 강화를 선언했다. 한미동맹 말고는 제대로 된 안보협력체가 없던 우리로선 껍질을 깬 중대한 결정이었다. 미국이 중국을 막겠다며 중동에서 발을 뺀 결정(Pivot to Asia)이 나온 게 2010년이다. 그 후 오커스, 쿼드, 칩4 협력이 진행됐지만, 중국의 심기 등을 고려한 한국은 어디에도 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국제 질서가 바뀌고 있다.
한미일 협력 강화에서 본 미래와 기회
미중 수교의 주역인 닉슨 대통령은 1990년대에 “우리가 (중국이라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창조자의 도움으로 인간 사회 적응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창조자에게 복수를 시도한 소설 속 괴물 말이다. 중국을 국제무역-금융 시스템 안으로 인도했다가 오히려 당했다고 여긴 미국의 처지를 절묘하게 비유한 것인데, 워싱턴의 반중 정서는 그때보다 나빠졌다. 미국은 겉으로는 뭐라 포장하든 중국과 러시아를 사실상 배제하는 글로벌 질서를 짜고 있다. 그 바람에 ‘안보는 미국과 하고, 돈은 중국과 번다’는 한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은 기회주의로 여겨지게 됐다. 이런 국면에 한국이 일본과 더 밀착함으로써 3국이 한 몸처럼 경제와 안보이익을 지키자는 게 워싱턴의 생각이다. 윤 대통령은 거기서 한국의 미래와 기회를 봤다.
한미일의 군사협력은 우리 야당과 중-러가 의심하듯 훗날 다자 간 안보협력체인 ‘동아시아의 작은 나토(NATO)’가 될 수도 있다. 반성을 모르는 일본 탓에 가능성은 낮지만, 100% 안 된다고도 말 못 한다. 이재명 대표의 먹사니즘에 빗대자면 윤 대통령은 ‘죽사니즘(죽느냐 사느냐를 건 국가안보)’의 첫발을 뗀 것으로 역사는 평가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그 과정에 일본과 대타협을 시도해도 되겠느냐고 국민에게 묻지 않고 결단했는데, 2018년 남북 군사합의처럼 훗날의 평가를 받는 영역에 해당하겠다. 야당은 “한국은 들러리”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우리 민주당이었다면 이랬을 것”이라는 대안은 안 들린다. 야당 대표의 인식이 “그냥 중국에도 셰셰(謝謝·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된다”는 정도라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
문제는 필요한 결단이었다 하더라도 국내 정치에선 찜찜함이 넘친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이 안보전략과 역사적 아픔을 구분 못 해서 자초한 일이다. 일본과 협력한다고 해서 “역사를 잊지 말라”고 촉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독립기념관장 등에 뉴라이트 인사들을 임명한 대목에서 찜찜함은 더 커진다. 학술의 자유야 당연하지만, 굳이 공직을 맡길 필요가 있을까. 모든 정치를 한일전으로 만들겠다는 야당 생각을 알면서도 대통령은 죽사니즘 3국 협력의 정당성을 약화시켰다.
불필요한 역사논쟁 자초할 이유가 뭔지
김문수 장관 영상처럼 우리 장관들이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이냐 48년이냐, 일제강점기 조상들 국적이 일본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을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이 봤다면 민망해야 정상이다. 야당을 탓할 때가 아니다. 상황 개선을 위해 필요하다면 유연한 후퇴의 수를 찾아야 한다. 내년 3·1절에도 정부와 광복회가 행사를 따로 치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퇴임 후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퇴로 찾기는 못 할 일이 아니다.
-김승련 논설위원, 동아일보(2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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