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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폭신한 돼지고기와 바삭한 튀김옷의 조화] ....

뚝섬 2025. 6. 8. 05:45

[돈가스, 폭신한 돼지고기와 바삭한 튀김옷의 조화] 

[불그스름한 육즙이 쫙~ '레어 돼지구이'가 유행이네]

 

 

 

돈가스, 폭신한 돼지고기와 바삭한 튀김옷의 조화 

 

서울 영등포구 ‘The정 돈까스’의 히레가스와 알밥. 젓가락으로 살짝 누르니 투명한 육즙이 얼음 녹듯 스르륵 흘러나왔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동(東)여의도 한편에서 돈가스를 먹으며 대학 시절 생각이 났다. 알밥과 돈가스라니.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 것 같았다. 분식집에서 돈가스를 시키는 날은 아르바이트비를 받은 날이었다. 밥을 꼭 집에서 먹고 다녔던 나는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굳이 차비를 아끼겠다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친구와 분식집에 앉았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치고, 산을 연달아 넘듯이 헉헉대면서 지나가던 대학 시절이었다. 경남 사천이 고향이던 친구와 서로 사투리로 이야기하며 깨끗이 돈가스 접시를 비웠다. “나중에 돈 벌면 이런 거 마음 놓고 사 먹지 않겠나.” 친구는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둘 다 속으로는 ‘그게 언제일까?’ 생각했던 것 같다.

 

친구 목소리도 덩달아 떠오른 그곳은 KBS 별관 근처, 동여의도 경도빌딩 2층의 ‘The정 돈까스’라는 집이었다. 여의도 점심시간은 일찍 시작되기로 악명이 높다. 특히 이 집은 11시에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왔다. 머리가 하얀 노인 부부, H라인 스커트를 입은 여자, 넥타이를 슬쩍 느슨하게 풀며 자리를 잡은 남자, 모두 살짝 기대감에 부푼 얼굴이었다. 마치 초등학교 교실처럼 테이블 앞에 반짝이는 눈동자로 음식을 기다렸다. 간판에는 ‘일본식 돈까스’라고 적혀 있었지만 벽에 붙은 메뉴판에는 친숙한 이름이 가득했다. 베이컨 알밥, 제육 알밥 등은 아마 대학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가격도 그 옛날 수준이었다. 알밥 하나를 시켜도 작은 우동과 돈가스 한쪽이 딸려 나왔다. 

 

서울 영등포구 ‘The정 돈까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사람들이 다 앉자 주인장이 답안지를 거둬들이듯 테이블을 돌며 빠르게 주문을 받았다. 바쁘거나 사람이 몰리면 어딘지 모르게 퉁명스럽기 쉬운데 이 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다린 사람에게는 오래 기다렸다며 양해를 구했다. 눈을 마주치며 웃고 말투가 공손했다. 창을 향해 있는 주방에는 중년 여자들이 보였다. 앞치마를 꽉 동여맨 여자들은 배구를 하듯 돈가스를 튀기고 우동을 삶아 앞으로 넘겼다. 그러면 주인장이 찬과 소스를 담아 손님에게 빠른 걸음으로 가져다 주었다.

 

돌솥에 담겨 나온 알밥은 김가루와 단무지, 날치 알, 부추, 신김치, 베이컨이 원형 그래프처럼 구역을 곱게 나눠 밥을 덮고 있었다. 밥을 비빌 때마다 치익거리면서 밥이 눌어붙는 소리와 냄새가 났다. 횟집에 가면 서비스로 나오던 알밥은 공짜 같은 느낌이 아니면 먹지 않았을 종류였다. 이 집의 알밥은 달고 매콤한 맛이 통통 튀면서도 무난하게 균형을 잡았다. 그 감각이 아슬아슬하지 않고 푸근해서 숟가락 가득 떠서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철망 위에 받쳐 나온 돈가스는 안심을 튀긴 히레가스였다. 등심 쪽인 로스가스도 메뉴에 올랐지만 모두 히레가스만 먹고 있었다. 맛이 깔끔하고 기름이 많지 않은 안심이 주인장 취향이라고 했다. 돈가스는 튀김옷이 두껍거나 혹은 저온에서 튀겨 색이 옅거나 하지 않았다. 특별할 것 없이 선홍빛 안심을 그대로 튀겨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젓가락으로 돈가스를 살짝 누르니 투명한 육즙이 얼음 녹듯 스르륵 흘러나왔다. 너무 익어서 단단하거나 혹은 덜 익어서 질겅거리지 않았다. 폭신하게 씹히면서 부드럽게 풀어지는 돼지고기 안심과 바삭하고 얇은 튀김옷이 산뜻한 대조를 이뤘다. 이 맛이라면 매일 점심으로 먹어도 물리지 않을 것 같았다. 

 

폭신하게 씹히면서 부드럽게 풀어지는 돼지고기 안심과 바삭하고 얇은 튀김옷이 산뜻한 대조를 이뤘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슬쩍 주인장에게 비결을 묻자 별것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저 매일 구할 수 있는 가장 신선한 고기를 쓰고, 이 집에서 나가는 음식, 그러니까 돈가스부터 시작해 깍두기, 피클, 소스 등을 직접 만드는 것뿐이라고 했다. 저녁 영업을 하지 않기에 오후 2시 30분이 되면 이 집은 문을 닫는다. 그때부터 밤 10시까지 100인분 정도를 준비하면 일과가 끝난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준비해 놓은 것을 다 팔고 또다시 밤까지 준비를 한다.

 

그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듯 ‘장사는 이렇게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비결을 찾는다.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알게 되면 남에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몰래 다짐한다. 그러나 몸을 움직여 자전거로 길을 가듯 정직한 방법만 아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매일이 산을 오르듯 어렵지만 그 길이 최선이라는 것을 안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기에, 스스로를 아끼지 않기에 그들은 늘 젊음이다. 그렇게 돈가스 한 조각에 담은 시간과 마음은 말하지 않아도 전해져 작은 가게는 인생을 배우는 학교 같았고 손님 모두가 학생 같았다.

 

#The정 돈까스: 히레가스 1만2000원, 돈가스 추가 3000원, 베이컨 알밥 1만1000원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조선일보(2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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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그스름한 육즙이 쫙~ '레어 돼지구이'가 유행이네


삼겹살 사랑하는 한국인
살짝 익혀 먹는 게 유행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한 돈가스 전문점. 안심 돈가스 속에 붉은빛이 돌았다. 종업원에게 “고기가 빨갛다”고 하자 “먹을 만큼 익은 것”이라고 했다. 옆 테이블 돈가스는 생고기처럼 보일 만큼 빨갰다. 불그스름한 육즙이 흘러나왔다. 

 

서울 광화문 한 돈가스 전문점의 안심 돈가스. 바싹 익히지 않아 속이 불그스름하게 보인다. /이미지 기자

 

돼지고기는 잘 익혀 먹어야 한다는 통념이 깨지고 있다. 돈가스와 삼겹살 등을 완전히 익혀 먹지 않는 게 유행이다. 2021년 외식 사업가 백종원 대표가 한 방송에서 “(과거와 달리) 지금은 돼지고기를 완전히 안 익혀 먹어도 된다”며 “완전히 익기 직전이 제일 부드럽다”고 한 뒤 이런 돈가스 가게가 늘고 있다. 제주 흑돼지 식당들도 “바짝 익히면 맛이 없다”며 레어(rare)로 먹길 권한다.

 

그런데 최근 공개된 사진 한 장이 ‘덜 익혀 먹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덜 익은 고기를 먹고 기생충에 감염된 환자의 CT 사진이었다. 불안감이 확산하자 대한한돈협회가 “국내산 돼지고기는 덜 익혀도 안전하다”는 반박 자료를 냈다. 대체 무슨 사진이길래?

 

◇삼겹살 사랑하는 한국인 놀랐다

 

지난 28일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 샘 갈리 박사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대퇴골에서 무릎 아래까지 흰색 쌀알 같은 낭종이 퍼진 환자 사진이 올라왔다. ‘낭미충증’ 감염 환자의 CT 사진. 낭미충증은 갈고리촌충의 유충인 낭미촌충이 자라면서 근육이나 뇌 같은 조직에 침투해 낭종이나 병변을 형성하는 증상이다. 갈리 박사는 “낭미충증 예방을 위해 절대로 날고기나 덜 익힌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말했다. 

 

'낭미충증' 기생충에 감염된 환자의 다리 CT 사진./X

 

한국은 세계에서 삼겹살을 가장 사랑하는 나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조사한 외식 소비 패턴 데이터에 따르면 작년 한국에서 외식 메뉴로 가장 인기는 ‘돼지고기구이’였다. ‘밖에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을까’라는 말이 ‘외식할까’라는 말과 동의어처럼 쓰인다.

 

갈리 박사가 공개한 사진을 본 한국인들의 불안감이 높아졌다. 대한한돈협회는 “국내에서는 덜 익은 삼겹살 섭취로 인한 낭미촌충 감염 우려가 없다”고 밝혔다. 인분을 먹여 ‘똥 돼지’ 키우던 시절은 과거일 뿐 돼지가 사료 먹고 크는 지금은 낭미촌충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9년 이후 국내산 돼지고기로 낭미촌충에 감염된 사례는 없었다. 1980년대부터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에서 돼지 먹이를 사료로 바꿨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국내산 돼지고기를 통한 낭미촌충 감염 우려는 없다고 말한다. 기생충학 박사인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중남미 쪽은 아직 인분을 먹여 돼지를 키우기도 하고, 호주에서 감염 사례가 나오긴 했지만 국내에서는 감염 사례가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돼지고기를 구태여 바싹 익혀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한국도, 독일도 날로 먹는다

 

익히냐 덜 익히냐의 문제와 상관없이 날로 먹기도 한다. 제주도나 전라도 등에서는 돼지고기를 생으로 먹던 문화가 있다. 개인이 도축하던 시절 이야기다.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은 “과거 제주도에선 잔치 때마다 돼지를 마련하는 ‘도감’이라는 직책이 있었는데, 도감이 돼지를 도축할 때 갓 잡은 돼지에서 단단한 비계가 있는 목덜미 부위는 생으로 나눠 먹었다”면서도 “돼지고기를 육회로 먹는 문화는 사라졌지만 다리살이나 등심 등은 덜 익혀야 식감이 부드럽다”고 말했다.

 

지금도 맛볼 수 있다. 전남 무안의 장부식육식당은 ‘암퇘지 육회’를 판다. 1968년부터 돼지 육회를 판매한 이곳은 돼지 목덜미 부위를 야채와 함께 빨갛게 무쳐 낸다. 이 식당 김석종 사장은 “옛날엔 도축 직후 돼지고기를 생으로 썰어 소금에 찍어 먹기도 하고, 육회로 내기도 했다”며 “요즘은 전날 도축한 돼지고기를 다음 날 새벽에 받아 육회를 만든다”고 했다. 인근에서 도축한 국내산 돼지고기만 사용하고, 매달 한돈 협회에서 직접 심사를 받는다. 경기도 양평에도 특정 기간에만 돼지 육회를 파는 식당이 있다. 

 

무안 장부식육식당의 돼지고기 육회. /업체 홈페이지

 

돼지고기를 생으로 먹는 국가가 한국만은 아니다. 독일에서는 메트 부어스트라는 돼지고기 육회와 이 육회에 양파 등을 꽂아 고슴도치 모양으로 만든 메티겔을 먹는다. 다진 생돼지고기와 양파를 빵에 끼우면 멧브로첸이라는 샌드위치가 된다. 생산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지방이 35% 이상 되지 않아야 한다. 태국에서도 술을 마시며 돼지고기 육회를 먹는 ‘먹방’이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돼지 호흡기에서 발견되는 연쇄상구균에 감염돼 목숨을 잃은 사람이 24명으로 늘어나자 태국 정부는 ‘익히지 않은 돼지고기 섭취를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다국적 돼지는 생식 주의

 

모든 돼지고기가 생식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작년 국내에 수입된 육류 중 가장 많은 것(30%)은 돼지고기로 54만7000t에 달한다.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 중 상당수가 물 건너온 다국적 돼지들이다. 수입량이 가장 많은 건 미국산. 이베리코로 유명한 스페인 돼지고기와 캐나다·칠레·네덜란드가 2~5위를 차지한다. 박경희 농축산식품부 검역정책과장은 “수입 돼지고기도 기생충과 질병이 없다는 검역 조건을 통과해야 수입된다”면서도 “수입 돼지고기의 경우 유통 과정이 길고, ‘익혀 조리하는 것’을 전제로 세균 수 등의 기준을 정하기 때문에 생식엔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조선일보(2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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