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중독과 무한 스크롤]
[한국인 유튜브 시청 월 19억시간]
[광고성 문자 수신, 동의하십니까?]
[딥페이크 최대 피해국의 게으름]
도박 중독과 무한 스크롤
오래전, 잭팟 꿈을 꾸며 카지노에 들어간 손님은 우선 현금을 코인으로 바꿔야 했다. 코인 슬롯머신에 넣고 레버를 당기면, 화면에 있는 무늬가 한참 돌아갔다. 보통 ‘꽝’이 나오고, 손님은 다시 코인을 넣고 레버를 당겼다. 코인이 떨어지면 계산대에 가서 현금을 코인으로 바꿨다.
이런 슬롯머신은 다시 코인을 넣고 레버를 당길 때까지 숨 쉴 시간이 있었다. 코인을 바꾸러 계산대로 걸어갈 때는 ‘여기서 그만할까?’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다 레버가 버튼으로 바뀌고, 코인이 현금을 넣는 식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현금 대신 신용 카드를 꽂았다. 이제 카지노 손님은 카드를 꽂고 버튼을 누르는 기계적인 작업을 쉼 없이 반복하기 시작했다. 사용자는 슬롯머신과 하나가 되어서 1분에 30번, 1시간에 1800번(혹은 그 이상) 버튼을 눌러댔다. 손님이 쉼 없이 버튼을 누를 때, 카지노는 쉼 없이 돈을 벌었다.
카지노의 새 기계들이 구현하려고 했던 목표는 ‘심리스(seamless)’였다. 마치 매듭이 없는 그물처럼, 하나의 행동에서 다른 행동으로 이행이 물 흐르듯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는 뜻이다. ‘심리스’의 원리는 21세기에 인터넷에 적용되었다. 개발자 아자 래스킨(Aza Raskin)은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는 사람들이 다음 페이지를 계속 클릭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앨 요량으로 ‘무한 스크롤’을 발명했다. 커서를 페이지 아무 데나 두고 마우스의 스크롤 버튼을 돌리면 페이지는 무한히, 끊임없이 내려갔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대부분의 소셜미디어가 무한 스크롤을 탑재했다. 소셜미디어는 사용자의 선호를 파악해서 좋아할 만한 내용을 계속 보여주었고, 사용자는 스크롤을 내리면서 소셜미디어에 몇 시간이곤 빠져 있게 되었다. 소셜미디어 중독과 함께, 비슷한 내용을 계속 보다 보니 예전 같았으면 코웃음 쳤을 음모론과 가짜 뉴스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래스킨은 자기가 무한 스크롤을 발명한 것을 크게 후회했지만, 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의지로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기 힘들듯이, 개인의 의지로 무한 스크롤 소셜미디어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사회적 규제에 대해서 고민해 볼 시점이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조선일보(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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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유튜브 시청 월 19억시간
8월 한 달간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한 앱은 유튜브로, 총 19억5666만 시간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5100만 인구수로 나누면 전 국민이 1인당 하루 73분꼴로 유튜브를 시청한 셈이다. 5년 전보다 2배 넘게 늘었다. 세계 유튜브 사용자 27억명의 하루 평균 시청 시간 19분에 비하면 4배 가까이 많다. 이젠 TV 대신 유튜브만 보는 사람도 상당수다.
▶미국의 스포츠용품 업체가 성인 1000명의 스마트폰 사용 습관을 조사했더니 하루에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보는(스크롤) 길이가 약 340m에 달했다. 1년이면 124km로, 마라톤을 세 번 완주한 거리만큼 화면을 내려보면서 스마트폰에 빠져 산다.
▶최근 프랑스에서 뇌과학자, 중독 전문가 등 10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디지털 기기 및 소셜미디어 사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3세 미만 영·유아는 TV를 포함한 스크린 시청 전면 금지, 3~6세는 어른의 지도하에 교육적인 콘텐츠만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또 휴대폰 사용은 11세부터, 휴대폰을 통한 인터넷 접속은 13세부터, 소셜미디어 사용은 15세부터 허용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콘텐츠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에 중독성이 있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충동 조절 실험에서 스마트폰으로 소셜미디어를 수시로 확인하는 사람은 즉각적인 보상에 중독돼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처럼 뇌가 디지털 기기의 자극적 영상에 중독되는 현상을 가리켜 미국 워싱턴대 데이비드 레비 교수는 ‘팝콘 브레인’이라고 이름 붙였다. 소셜미디어의 유해성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엊그제 인스타그램 모회사인 메타가 청소년 계정을 비공개로 바꾸는 ‘10대 계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빅테크 기업에만 맡겨두지 않고 세계 각국이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을 TV 수준으로 규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는 청소년 10명 중 4명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일 정도로 디지털 기기 사용에 과다 노출돼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의 휴대폰 및 게임 이용 시간은 성적과 반비례한다’는 통념이 퍼져 있다. 많은 사교육 전문가들은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 유익한 영상도 많지만, 10대들의 성인용 영상 이용률이 47.5%에 달할 정도로 디지털 유해 환경도 심각하다. 온갖 혐오 발언과 가짜 뉴스가 판치고 조폭들까지 유튜브로 돈벌이를 하는 ‘디지털 무법천지’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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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성 문자 수신, 동의하십니까?
‘투자, 신제품, 급등, 당일 지급, 종목, 손실, 내부 정보, 최저가….’ 최근 이 단어들이 포함된 문자메시지를 받지 않도록 차단 문구로 설정해뒀다. 하루에 많게는 10통, 적어도 1~2통은 받는 광고성 문자, 스팸 문자에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문자 발신 업체들은 수신자보다 한 수 위에 있다. 사전 검열 키워드를 뚫고 도달한 문자들은 ‘투 자’ ‘신@제품’ ‘급/등’처럼 띄어쓰기나 특수 기호를 활용하고 있었다.
이번 추석, 가족들의 대화 화두 중 하나는 광고 문자였다. 이미 이골이 난 동생과 사촌들은 독소 조항인 광고성 문자 수신동의, 마케팅 목적의 개인 정보 수집 항목을 찾아내 동의하지 않는다고 표시하지만, 부모님과 조부모님 세대는 다르다. 문자보다 전화가 편하다는 할머니의 하소연도 이 탓이었다. 안부 여쭈려 보낸 문자가 수백 통의 스팸과 함께 뒤섞여 있기도 했다. “그럼 이런 것 좀 안 오게 해보라”는 요청에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요즘 회원 이용 약관은 현대판 을사늑약이라고도 불린다. 항목들이 고객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해서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누구든지 영리 목적의 광고성 정보 문자를 전송하려면 수신자의 명시적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 동의를 받는 방법이 갈수록 교묘해진다는 것이다. 식당이나 헬스장 멤버십 회원 가입을 할 때 수십 개의 약관 항목 중 하나로 광고성 문자 항목을 끼워 놓고 동의를 받는다. 선택 항목인 광고성 문자 수신 동의 체크 박스를 가장 아래에 숨겨 놓는 경우도 있고, 동의하면 사은품을 준다는 식으로 꾀는 경우도 있다.
기업들이 마케팅 목적이라며 수집한 고객 개인 정보가 유출돼 2차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업 광고 문자가 아닌 불법 스팸 문자의 경우, 무작위 번호로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다른 업체가 가진 개인 정보를 해킹하는 식으로 입수하는 경우가 많다. 불법 스팸 문자를 보내는 업체들이 포털 사이트나 여행사, 콜택시 업체 등이 가진 고객 전화번호를 몰래 빼내오는 식이다.
이런 광고를 뿌려도 당장 매출이 늘 것 같지도 않은데, 이런 문자는 왜 계속될까. 광고 수익을 위해 이동통신사들이 스팸 문자를 사실상 용인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통신사는 자사 고객에게 외부 광고 업체의 광고 문자를 보내는 식으로 광고 대행 영업도 한다. 대부 업체를 비롯해 여러 영역의 광고를 해주며 수익을 올리는데, 한 통신사의 경우 광고 대행 서비스 중 저축은행 비율이 2022년 기준 36%에 달하기도 했다. 통신사 3사는 AI 등을 통해 메시지를 필터링한다고 설명하지만, 이렇게 광고 대행 영업을 지속하는 한 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개그맨 출연자들을 주축으로 한 유튜브 채널에선 10년 뒤엔 광고성 문자 동의를 받으려는 업체들 수법이 더 교묘해질 것이라며 풍자했다. 마우스로 드래그를 해야만 광고 동의 항목이 보이도록 하거나, 결제 확인 서명인 줄 알았더니 사실 개인 정보 수집 동의를 받는 식이었다. 2034년이 오기 전이지만 기업과 고객 사이 이미 현실인지 개그인지 모를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신지인 기자, 조선일보(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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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최대 피해국의 게으름
미국 청소년들은 17일부터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이 모르는 사람의 개인 메시지를 받지 않는다. 청소년 이용자 계정 기본값을 모두 ‘비공개’로 설정해 범죄자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려는 인스타그램 조치 덕분이다. 또 폭력·성적 콘텐츠, 공격적 단어나 문구 접근도 어려워진다. 이 같은 조치는 인스타그램의 자발적인 대책이라기보단 그동안 기업 육성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던 미국조차도 거대 플랫폼 폐해가 심각해지자 규제를 강화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된 영향이다.
거대 플랫폼의 영향력은 각국에서 어느 미디어보다 강력하다. 유튜브는 전 세계 인구의 31%인 25억명, 인스타그램도 20억명이 사용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은 개인들이 올리는 콘텐츠에 붙는 기업 광고 수익 중 30~50%가량을 가져가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의 플랫폼에 올라온 유해 콘텐츠 책임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회피하고, 성착취·마약·테러 등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됐는데도 수사 당국의 협조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각국 정부는 플랫폼과의 전쟁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검찰은 지난달 텔레그램의 파벨 두로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를 미성년자 성착취물 유포 등을 방조·공모한 혐의로 체포했다. 브라질 법원은 수사 협조를 하지 않은 ‘엑스(X·옛 트위터)’의 브라질 내 접속을 차단했으며, 호주 정부는 가짜 뉴스를 방치한 플랫폼에 전 세계 매출의 5%를 벌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올해 2월부터 플랫폼 기업에 강도 높은 책임을 묻는 ‘디지털 서비스법(DSA)’을 시행한 유럽은 이미 구글 등 여러 플랫폼 기업에 수조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번 플랫폼과의 전쟁에선 유난히 조용하다. 지난달 당정은 딥페이크(AI로 합성한 진짜 같은 가짜 콘텐츠) 성범죄 대책을 내놨지만, 제작자의 형량을 강화하는 수준에 그쳤다. 거대 플랫폼 관련 내용은 지금까진 이메일로만 소통했는데 앞으로는 핫라인을 확보하겠다는 정도였다.
정부가 거대 플랫폼 눈치를 보는 사이 2021년 세계 최초로 플랫폼 규제법을 시행했다는 한국은 이제 딥페이크 최대 피해국이라는 오명을 썼다. 전 세계 딥페이크 음란물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53%)이다. 정부가 관련법이 없다는 이유로 나서지 않아 피해자들은 결국 가해자를 직접 찾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오랜 법적 다툼 끝에 승소하더라도 벌금은 많아야 수백만원에 그친다. 플랫폼 규제가 정작 국내 기업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미 세계 플랫폼 경쟁에서 네이버·카카오는 보이지 않는 데다, 한국인 피해 규모를 감안하면 국내 기업 보호는 너무 한가한 명분이다.
-윤진호 기자, 조선일보(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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