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구호]
[잠수함 전문 부사관 절반이 떠나, 이래서 군이 유지되겠나]
[‘실체 없는 유령’ 계엄 의혹과 언제까지 싸워야 할까]
[민간인이 군사령관이 될 수 있을까]
암구호
군(軍)에서 피아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암구호(暗口號)는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낮에는 눈으로 적과 아군을 구별할 수 있지만 밤이 문제였다. 지금과 달리 로마 시대 암구호는 문장 하나로 이뤄졌다. 황제나 장군들이 직접 암구호를 정해 내려보냈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승리의 여신 비너스’, 폼페이우스는 ‘불굴의 헤라클레스’ 이런 식이었다. 서사시의 한 구절을 암구호로 정한 황제도 있었다. 로마군이 되려면 암기력도 좋아야 했을 것 같다.
▶노르망디 상륙 때 암구호는 플래시/선더(flash/thunder)였다. 섬광과 천둥이라는 뜻이다. 독일인들이 영어식 th 발음을 할 수 없어서 th가 들어간 선더를 암구호로 정했다고 한다. ‘밴드오브브라더스’를 포함해 노르망디 전투를 다룬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이 암구호 장면이 나온다. 이때도 암구호는 3일마다 변경됐다. 낙하산병들은 암구호 대신 금속 딸깍이(Cricket Clicker)로 소리를 내 피아를 구별했다.
▶암구호와 사투리 관련 우스개를 다룬 창작 판소리가 있다. 암구호는 자물통과 열쇠였다고 한다.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자물통?” 하면 “열쇠”라고 답해야 한다. 그런데 전라도 병사는 ‘열쇠’ 대신 ‘쇳대’라는 사투리로 답을 했다. “쇳대도 긴디(맞는데)...”라며 망설였다는 것이다. 한 6·25 참전 용사는 “그때는 못 배운 사람들이 많아 매일 암구호를 정해도 외우지 못했다”고 했다. “어이”라고 물어 “동무”라고 하면 인민군으로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암구호의 생명은 보안이다. 암구호는 영어로 ‘password’, 즉 비밀번호다. 2014년까지는 군단별로 자체 암구호를 썼지만 지금은 전군이 같은 암구호를 쓴다. 합참에서 한 달에 한 번, 한 달 치를 전군에 하달한다. 매일 정오 기준으로 24시간 동안 쓰고 바꾼다. 3급 비밀로 규정된 암구호는 전화로는 전파할 수 없고, 유출되면 즉시 폐기해야 한다.
▶몇 년 전 병사들에게 휴대전화가 보급된 이후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암구호를 공유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암구호를 못 외워 질책을 받던 한 병사는 여자 친구와의 대화방에 암구호를 보내 수시로 확인하다 적발됐다. 암구호 전파 업무를 담당하던 병사는 “나 소대장인데”라는 휴대전화를 받고 암구호를 알려줬는데 실제는 소대장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는 장교가 사채업자에게 암구호를 알려준 사실이 드러났다. 사채업자가 신뢰를 쌓자면서 암구호를 요구했다는데, 무너진 군 기강이 혀를 차게 한다.
-정우상 논설위원, 조선일보(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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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전문 부사관 절반이 떠나, 이래서 군이 유지되겠나
해군은 지난 2020년 7월 12일 제주 해군기지에서 209급 잠수함의 수중작전과 승조원들의 생활을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해군 잠수함의 수중작전과 승조원 생활상이 공개된 것은 잠수함 운용 25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어뢰 발사와 함내 화재 진압, 전투장면 등이 생동감 있게 재연됐다. 사진은 한 해군이 침대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해군
최근 5년간 양성된 잠수함 승조원의 절반 이상이 잠수함을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해군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이후 해군에서 키운 잠수함 승조원 750명 중 421명(56%)이 전역, 보직 변경 등으로 더는 잠수함 근무를 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힘든 근무 환경에 비해 열악한 처우 때문이다. 잠수함은 20~30평 지하 공간에 40명이 공동 생활하는 것과 같은 환경이다. 침대는 겨우 누울 수 있다. 물이 부족해 샤워는 불가능하고 누수(漏水) 확인이 중요하기 때문에 얼굴만 씻어도 물방울까지 닦아야 한다. 화장실 사용도 물 내리는 소리를 적이 탐지할까 봐 제한된다. 한 번 출항하면 3~4주간 신선한 공기와 햇볕을 쐬기도 어렵다. 그런데 월급은 다른 보직에 비해 70여 만원 더 받는 정도다.
잠수함 승조원은 모두 장교, 부사관이고 특히 80% 이상이 부사관이다. 교육과정만 1년이 넘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일반병은 잠수함 근무를 할 수가 없다. 어뢰·음파탐지 등 핵심 전투 장비를 전부 부사관이 운용한다. 잠수함뿐 아니다. 1조원짜리 이지스함, 1000억원짜리 스텔스기, 고위력 현무 미사일도 실제 운용과 정비를 담당하는 부사관이 없으면 모두 쇳덩이에 불과하다. 육·해·공군이 첨단으로 무장할수록 부사관 역할은 중요해진다.
천안함 용사 46명 중 30명이 부사관이었다. 앞으로도 실제 전투 상황에서 목숨 걸고 나서는 군인은 부사관일 것이다. 그런 부사관이 낮은 보수와 장래 불안 때문에 군을 빠르게 떠나는 것은 보통 심각한 국가적 문제가 아니다. 중사 이하 전역 희망자가 2019년에 비해 두배 늘었다. 작년부터 선발 정원도 못 채우고 있다.
내년 병장 월급이 200만원을 넘으면서 실수령액에서 병장보다 적게 받는 초급 부사관이 나올 것이란 우려도 있다. 국방 개혁은 ‘병사 월급 200만원’ ‘병 복무 단축’ 같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군을 실제 움직이는 부사관의 처우를 개선하고 사기를 높이는 것이 핵심이고 우선이다.
-조선일보(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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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없는 유령’ 계엄 의혹과 언제까지 싸워야 할까
[손효주 기자의 국방이야기]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0일 국회에서 계엄법 개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선원 김병주 김민석 의원, 수어통역사, 부승찬 의원. 뉴스1
“설령 계엄이 선포되고 군사 조치 시행 명령이 떨어진다고 해도 정당성이 결여된 명령에 따를 군인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군인들을 판단력 미숙한 이들로 폄훼하는 거죠.”
A 중령은 최근 야당 일부 의원들이 제기하는 ‘계엄 준비 의혹’에 대해 “불쾌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른 군인들도 비슷했다. “군을 모독하는 행위”라거나 “황당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B 소령은 “의미 없는 정쟁에 군을 끌어들이지 말라”며 반발했다. C 장성은 “군이나 정부가 계엄을 모의했다는 증거를 하나라도 가져와 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 달 1일 국군의날을 맞아 우리 군은 시가행진을 진행한다. 40년 만의 2년 연속 시가행진이다. 올해는 아예 국군의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는데, 34년 만이다.
이례적인 결정의 이유 중 하나는 국군의 사명감과 자부심을 높일 계기가 필요해서다. 이는 군의 사기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국민의 성원을 체감할 수 있는 시가행진 같은 축제의 장을 자주 만들면 군인들 사기가 진작될 것이란 기대가 높다.
그러나 계엄 의혹으로 축제 전 기대에 부풀어야 할 군인들 일부는 사기 저하를 호소하고 있다. 한 장교는 “전시에 목숨 걸고 국민을 지킬 군인들이 여차하면 국민에게 총구를 겨눌 ‘잠재적 계엄군’ 취급을 받고 있다. 군을 국민의 적으로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했다.
실제로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정부가 국군의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건 계엄 선포 사전 작업이라는 괴담이 떠돈다. 시가행진 참여 부대는 계엄 선포와 동시에 계엄 임무 수행군으로 임무가 바뀌고, 전차 등 국방력을 자랑할 무기들은 그대로 도심에 배치돼 국민 진압에 쓰일 것이란 시나리오다. 야당 일각에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개연성에 기대 제기한 의혹이 다양한 괴담으로 각색돼 몸집을 키우면서 국민의 불안을 부추기고 군에 대한 불신까지 조장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내 친야 성향으로 분류되는 예비역 대장들도 실소했다. 예비역 대장 A 씨는 “2024년에 무슨 계엄이냐”며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어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만큼 계엄 시행 준비 과정에서 시행도 못 해보고 폭로될 것”이라고 했다. B 씨는 “전시 계엄 수행 절차는 한미 연합연습 때 연습하지만 평시 계엄은 연습 자체가 없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평시 계엄 시행 명령을 따를 지휘관이 몇이나 되겠나”라고 했다. 실제로 군은 1992년부터 전시 계엄 수행 절차만 연습을 하고 있다.
더욱이 우려되는 건 계엄 의혹 공세의 총구가 최근 국군방첩사령부를 향한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계엄 준비 음모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군기 문란의 실무 핵심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해임을 요구한다”고 했다. 민주당 김민석 의원은 22일 “여 사령관 최우선 척결”까지 언급했다. 그러나 그를 ‘척결’해야 할 사유는 모호하다. 여 사령관이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충암고 출신이고 계엄 선포 시 방첩사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 사령관 전두환 소장이 맡은 서슬 퍼런 직책인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이 된다는 점 등이 근거라면 근거일 순 있겠다. 방첩사의 또 다른 전신 기무사가 박근혜 정부 당시 세월호 유족 사찰이나 계엄 검토 문건 작성 등으로 논란이 된 점도 ‘척결’ 주장의 이유로 볼 순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조직의 ‘원죄’에 근거한 추정일 뿐이다. 척결을 주장하려면 그가 계엄 모의에 가담했다는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하지만 ‘카더라’ 수준의 추측이 전부다.
최근 방첩사는 국군정보사령부 군무원의 블랙 요원 명단 등 군사기밀 유출 사건을 수사하며 군무원을 구속했다. 북한과의 연계성 밝히기에도 주력했다. 군 간부들이 암구호를 알려주고 사채를 쓴 사건도 올 초 방첩사가 먼저 인지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방첩 수사 등을 진행하며 군기 유지 임무를 하는 부대 수장인 여 사령관을 정반대로 군기 문란 핵심으로 규정하려면 ‘그 자리가 과거에도 문제가 된 자리’라거나 ‘대통령 후배’라는 식의 주장만으론 부족하다. 국가보안법 등에 근거해 군내 간첩 수사를 실시하는 방첩사의 수장이 명확한 근거도 없이 난타당하는 모습을 가장 환영할 이는 방첩사 존재 자체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북한이다.
북한은 최근 핵물질 제조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했다. 대남 핵타격 미사일도 발사하고 있다. 오물풍선은 일상처럼 날아든다. 국방력을 조금도 허투루 써선 안 될 엄중한 안보 상황에 우리 군은 실체 없는 계엄 의혹 포화 속에 의혹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느라 소모되는 듯하다. 마지막 계엄이 선포된 1979년과 45년이 지난 현재 군의 위상이나 사회 시스템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유령 의혹’은 힘을 잃는다. 우리 군이 더 불필요하게 소모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손효주 정치부 기자, 동아일보(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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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이 군사령관이 될 수 있을까
[임용한의 전쟁사]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백면서생인 제갈량을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하고 그에게 군사 지휘를 맡기자 관우와 장비는 분노한다. 이 이야기는 소설의 설정이긴 하지만 정말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과연 제갈량을 인정할 사람이 있을까? 실제 현실에서 제갈량은 문무를 겸비한 리더가 꿈이었고, 군사 지휘에도 욕심을 냈지만, 소설과 달리 유비가 만류했다.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의 명감독이었던 토니 라루사는 변호사 출신으로 메이저리그를 제패했다는 사실로 유명해졌지만 실은 그도 메이저리그 선수 출신이었다. 보잘것없는 성적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뒤에 변호사가 되었던 것이다. 스포츠든 전쟁이든 격렬한 승부의 세계, 그것도 최정상급 승부에 제갈량처럼 전혀 실전 경험이 없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면 장수는 반발하고 병사와 국민은 불안해질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살던 시절에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 아테네는 시민투표로 사령관을 선출했는데, 니키마키데스라는 역전의 장수가 안티스테네스라는 부자이자 수완 있는 경영자로 유명한 인물에게 지고 말았다. 금권선거가 만연하던 시절이라 안티스테네스의 재력이 위력을 발휘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분개하던 니키마키데스가 소크라테스를 만났다. 아테네의 양심이자 지혜인 소크라테스는 어이없게 안티스테네스가 훌륭한 지휘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지론은 이렇다. 능력 있는 인재를 찾아내 적재적소에 등용하고, 국가를 위해 자신의 노력과 재산을 공여하고, 상벌을 공정하게 하고, 부하들의 인망을 얻는 것은 리더의 공통된 미덕이자 의무이다.
현대의 군대는 고대 그리스의 군대와 다르다. 아무리 소크라테스의 말이라도 민간인이 군사령관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고대 아테네에서 사령관이 된다는 건, 곧 정치지도자로 등극한다는 의미였다. 소크라테스의 시대에 아테네는 추락하고 있었다. 그의 진의는 몰락하는 사회를 구할 리더상에 있었다. 너무 뻔한 미덕 같다고? 세상을 둘러보라. 이런 리더가 어디에 있는지.
-임용한 역사학자, 동아일보(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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