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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확정 다음 날… 이스라엘 장군들은 하나같이 옷을 벗었다] ....

뚝섬 2025. 2. 3. 11:47

[ 휴전 확정 다음 날… 이스라엘 장군들은 하나같이 옷을 벗었다]

[“지옥 맛볼 것” 트럼프 경고 먹혔나… 이-하마스 6주 휴전]

[사망자 4만1870명, 참혹한 ‘가자 전쟁’ 1년]

[얼핏 이기는 듯 보이지만… 이스라엘은 국민·친구 잃고 적만 늘고 있다]

 

 

 

휴전 확정 다음 날… 이스라엘 장군들은 하나같이 옷을 벗었다

 

[新중동천일야화]

이스라엘 최악의 리더는 부패·독직 아닌 적 기습 못 막은 지도자
하마스 수뇌부 응징했지만, 재작년 10월 7일 도발 못 막은 죄
15개월간 사직서 품고 다녀… 다들 "남은 평생 짊어지고 가겠다"
 

2024년 1월 3일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이 사진에서 헤르지 할레비(가운데) 이스라엘군 총참모장이 이스라엘 북부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이스라엘군 병사들과 함께 걷고 있다. / 로이터 연합뉴스

 

가자 전쟁이 멈췄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3단계 중 첫 단계의 시작일 뿐이다. 42일간의 휴전을 거쳐 양측의 약속 이행을 평가한 후 다음 단계를 논의한다. 이스라엘 인질과 팔레스타인 수감자 교환도 삐걱거리는 등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단 폭격이 그치고 가자 주민들이 비록 폐허지만 자기 마을로 돌아가게 된 것은 반길 만한 일이다. 국제사회도 안도하고 있다.

 

휴전이 확정된 다음 날, 방위군 총참모장 헤르지 할레비 장군과 가자 작전을 진두지휘한 야론 핑켈만 남부사령관은 바로 사직 의사를 밝혔다. 휴전 후속 조치를 마무리한 후 2단계에 진입하는 3월 6일 전역한다. 작년 4월 이미 사직한 아하론 할리바 정보사령관에 이어 이스라엘 국내 정보 책임자인 신베트 수장 로넨 바도 퇴진 소식을 알렸다.

 

이스라엘 군, 정보 수뇌부는 왜 기다렸다는 듯 물러나는 것일까? 하마스의 공격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에 최악의 리더는 적의 공격을 허용한 지도자다. 독직이나 부패 또는 개인의 스캔들보다 훨씬 중한 책임을 묻는다. 국가 존망의 위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랍 연합군에 기습당했다. 큰 피해를 보고 패전 직전까지 몰렸다. 누란지위(累卵之危)에서 보여준 골다 메이어 총리의 지도력은 발군이었다. 이스라엘 내부 여론 및 국제사회가 양보와 휴전을 요구할 때도 외교력을 발휘, 끝까지 버티며 시리아와 이집트를 격퇴했다. 이로 인해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19일 만의 극적 역전승을 자축하며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대법원장 시몬 아그라나트가 이끄는 조사위원회가 전쟁 직후 소집되었다. 총참모장 다비드 엘라자르 장군 및 관련 간부들에게 기습의 책임을 물어 파면했다. 모셰 다얀 국방 장관 및 총리의 정치적 책임도 언급했다. 전쟁 영웅 골다 메이어는 물러났다.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는 평가와 적의 기습을 허용한 책임의 영역은 별개였다.

 

10·7 하마스 도발은 꼭 50년 전의 욤키푸르 전쟁보다 이스라엘에 몇 배 큰 충격을 준 치명적 안보 실패였다. 1973년 욤키푸르는 국가 간 정규군의 전면전이었고 민간인은 한 명도 죽지 않았다. 반면 하마스는 민간인을 겨냥했다. 사망자 1200명 중 800명이 민간인이었고 인질 251명이 피랍된 무참한 비극이었다. 이스라엘의 분노는 응징으로 이어졌다. 곧바로 시작된 가자 공격 및 하마스 궤멸 작전은 가공할 만했다. 무자비한 비대칭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며 국제사회의 비판이 고조되었지만 이스라엘은 멈추지 않았다. (이에 대한 책임과 평가는 분명히 뒤따라야 하지만 여기서는 별론으로 하자.)

 

할레비 장군이 이끄는 이스라엘군은 적을 궤멸시켰다. 헤즈볼라, 하마스의 수뇌부를 차례로 제거했다. 무선호출기 폭발 공작으로 헤즈볼라 지휘 체계를 순식간에 붕괴시킨 장면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분간 하마스 조직 재건이 어려울 정도로 가자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장군들은 전쟁이 끝나면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할레비 장군은 전쟁 첫날부터 사직서를 품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적의 공격을 막지 못한 책임이 엄중하기에, 이후 거둔 승전의 전과는 마이너스로 상쇄된다는 것을 기억한 것이다. 그리고 휴전과 함께 사직서를 냈다.

 

네타냐후 총리가 그간 한사코 휴전안을 거부해 온 이유다. 욤키푸르 사례에서 보듯 전시 지휘관보다 총리의 정치적 책임이 크고 엄중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욤키푸르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처참하게 당한 책임의 무게에 중압감을 느꼈을 법하다. 하마스의 기습을 허용한 주원인 중 하나가 바로 네타냐후가 주도한 정국 때문이라는 평가도 부담이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당시 네타냐후가 재집권을 위해 초정통파 유대교 근본주의 각료들을 포함하는 강경 보수 연정을 구성하면서 벌어진 소란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네타냐후는 극단주의 성향의 각료들을 견제하는 사법부를 무력화하려 했다. 이른바 사법 개편 논란이다. 이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국민의 시위는 건국 후 최대 규모라 할 만큼 격렬했다. 연립 정부 내에서도 총리에 반대하며 국방 장관이 사직하는 등 안보 부처의 혼란이 이어졌다. 이 틈을 하마스는 노렸다.

 

작년 7월 이스라엘 가자지구 접경 지역을 방문, 인질 부모와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전쟁 중이었기에 네타냐후 정부에 관한 평가는 다들 함구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하마스에 대한 응징 전쟁이 끝나면 이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기력하게 적에 기습당한 진상을 반드시 규명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가 결연했다. 이제 진실의 시간이 도래했다. 총참모장 할레비 장군이 토로한 사직의 변은 네타냐후 총리를 묵직하게 타격한다. 장군은 지난 15개월간 군사작전의 공과 노고를 온전히 부하들에게 돌리며 마지막 말을 이렇게 맺었다.

 

“10월 7일 아침, 제가 지휘하는 이스라엘군은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그날의 끔찍한 실패에 대한 책임은 매일, 매시간, 그리고 남은 평생 동안 제가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휘관들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했다면 사죄하고 사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굳이 상찬받을 일이 아닐 수 있다. 군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네타냐후 총리와 카츠 국방 장관의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먼저 치고 나온 것이라는 수군거림도 있다. 하지만 군의 수장이 40년 군 생활의 마지막을 실패라 고백하며 책임을 평생 짊어지겠노라 선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울림이 있었다. 제복을 입은 이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처벌받을 가능성도 있다. 선출직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안위 여부에만 몰두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지도자는 성취와 업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짊어질 때 더 빛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조선일보(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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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맛볼 것” 트럼프 경고 먹혔나… 이-하마스 6주 휴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불가능해 보이던 휴전협상이 타결됐다. 우선 6주간 전투를 중단하고, 이스라엘 포로 1인당 하마스 수감자 30명 비율로 맞바꾸는 포로 교환이 시작된다. 3단계 휴전 합의 중 1단계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 닷새 전에 타결됐다.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가자지구 경계선을 넘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1200명가량 살해하고, 약 250명을 인질로 끌고 가면서 시작된 전쟁이 15개월 만에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미국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인 중 어느 쪽 역할이 더 컸느냐를 두고 뜨겁게 논쟁 중이다. 타결 발표는 트럼프가 X(옛 트위터)를 통해 선수를 쳤다. 바이든이 몇 시간 뒤 기자회견에서 “힘겨운 협상을 마쳤다”며 성과를 내세웠지만, 기자들은 ‘어느 쪽 공로가 더 크냐’는 질문을 빼놓지 않았다. 바이든은 “지금 농담하는 거냐”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서명 당사자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먼저 전화한 건 바이든이 아니라 ‘미래 권력’ 트럼프였다. 이스라엘 보도자료는 온통 트럼프의 역할을 강조했고, 바이든을 거론한 건 딱 1문장이었다.

▷미국 전문가들은 두 대통령을 모두 평가했지만, “내가 당선됐기에 가능한 휴전 합의”라는 트럼프의 말은 무시하기 어렵다. 휴전 협상 내용은 바이든 정부가 지난해 5월 내놓은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8개월 동안 진척이 없다가 “내 취임식 날까지 미국인을 포함한 인질을 안 풀어주면 전면적인 지옥을 맛볼 것”이라는 트럼프의 엄포 후 속도가 났다. 트럼프는 친구인 뉴욕의 부동산 사업가 스티브 윗코프를 특사로 임명했다. 유대계이지만, 외교도 중동도 문외한이었다.

 

▷윗코프 특사는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데 능력을 발휘했다. 11일 이스라엘로 날아가면서 “무조건 일정을 잡자”고 했다. 토요일인 그날은 유대인들이 엄격하게 지키는 안식일이었지만, 이스라엘이 따랐다고 한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협상 타결은 네타냐후 총리의 결심으로 가능했다. 그는 전쟁 중이라 현직을 유지할 뿐이지, 전쟁이 끝나면 퇴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트럼프와 협력할 때라야 휴전 후에도 권력 연장이 가능하다고 여겼을 공산이 크다.

▷지금의 국제 질서는 미국의 힘이 빠지면서 더 불안정해졌다고 평가된다. 불필요한 해외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재등장이 겹치면서 국제 분쟁은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늘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 취임 직전에 어렵다던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이 성사됐다. 트럼프는 알려진 대로 자신이 주인공인 ‘거래의 성사’에 관심이 크다. 군사력은 제한적으로 쓰겠다면서도 “지옥을 맛보게 될 거다”라는 식의 엄포 외교를 서슴지 않는다. 이번 협상 타결은 더 자신만만해진 트럼프식 외교의 서막일 수 있다.

-김승련 논설위원, 동아일보(2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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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4만1870명, 참혹한 ‘가자 전쟁’ 1년 

 

1년 전 오늘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세력 하마스가 분계 장벽을 넘어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했다. 민간인 약 1200명이 숨졌고,  250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해 하마스 소탕에 나섰고, 서울 면적의 60% 정도인 가자지구 대부분을 장악했다. 몇 차례의 이-하마스 휴전협상이 불발되는 동안 국제사회 관심은 헤즈볼라의 배후인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으로 옮겨간 듯하다. 1년 전 받았던 전쟁의 충격이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다 가자지구 사망자가 4만1870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전해졌다. 하마스 보건부와 유엔 기구가 파악한 이 숫자는 민간인과 하마스 대원을 합친 것인데, 사망자의 30% 이상이 어린이로 파악됐다. 정치와 군인이 시작한 전쟁에서 사회적 약자가 제일 먼저 희생된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하마스는 빽빽한 흙벽돌 건물 밑으로 지하 터널을 뚫었고, 그곳에서 무기와 인질을 숨겨놓고 저항해 왔다. 하마스가 자국민을 방패 삼은 곳에 이스라엘의 공격이 집중되면서 희생자는 빠르게 늘어났다.

인구 215만 명인 가자지구에서 주민의 90%가 피란민이 됐다. 식량, 의료품이 절대 부족하고, 병원과 학교는 제 기능을 잃었다. 구호품 실은 트럭을 차단하는 바람에 외국 공군 수송기가 약품과 밀가루를 낙하산에 매달아 투하하던 장면이 기억에 선명하다. 1년 동안 이 좁은 땅에 평균 3시간에 1번씩 폭격이 감행됐다. 외신 사진 가운데 팔다리에 자신과 가족의 이름을 써넣는 모습이 있다. 폭격으로 신체 일부가 훼손되더라도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마스 보건부가 지난달 649쪽 분량의 전쟁 사망자 명단을 공개했다. 그때까지 사망자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3만4000여 명을 나이순으로 정리한 기록이다. 그 명부 1∼14쪽을 채운 710명은 0세로, 첫 번째 생일을 맞이하지 못한 채 어른들의 전쟁에 스러져 갔다. 군사작전에 직접 희생됐을 수도 있고, 나빠진 영양과 의료 환경 탓에 숨졌을 수도 있다. 기습공격은 하마스가 감행했지만, 그 피해는 하마스가 지키겠다고 약속한 팔레스타인인에게 집중된 것이 이번 전쟁의 아이러니다.

▷지난 1년간 이스라엘은 군사작전에선 승리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아랍세계에는 분노와 증오가 쌓여 왔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대선 철 미국의 리더십 부재를 틈타 더 공세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가깝게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멀리는 이란과 예멘 반군을 상대로 하니, 네 갈래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선 하마스 1인자 제거와 100명 남짓 남은 이스라엘 인질의 석방을 손에 쥐어야 멈출 듯하다. 하마스로선 응할 수 없는 조건이니,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는 동안 정치와 거리가 먼 이들의 수난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김승련 논설위원, 동아일보(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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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이기는 듯 보이지만… 이스라엘은 국민·친구 잃고 적만 늘고 있다

 

[新중동천일야화]

이민가는 국민, 돌아온 이의 두배… 美 외에 국제사회 우군도 없어
팔 민간인 사망 4만 육박… "부모잃은 고아들, 하마스 자원 입대
"9·11 이후 美의 이라크전쟁이 승리한 걸까… 이, 반면교사 삼아야

 

1년 전 오늘, 하마스의 기습 테러는 무도했다. 중동판 9·11이었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에 나섰다. 파상 공세였다. 가자는 초토화되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수괴를 비롯한 핵심 지도부를 적진 한가운데서 제거했다. 정보력과 공작 능력에 세계가 놀랐다. 특히 무선 호출기 연쇄 폭발로 헤즈볼라의 지휘 통제망을 무력화시킨 장면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은 전선을 북부로 확대했다. 지상군을 레바논 남부로 투입, 헤즈볼라 거점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작년 피습은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의 악몽을 연상시켰다. 방심으로 아랍 연합군에게 기습을 당했던 4차 중동전쟁의 재현이었다. 하지만 이젠 1967년 6일 전쟁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당시 아랍 영토를 파죽지세로 점령했던 압도적 승리를 재현하는 것 같다. 추락했던 네타냐후의 지지율이 반등 기미를 보이자 차제에 판을 바꾸려 한다. 레바논 공습과 진격은 물론 이란과의 일전도 불사할 태세다. 꼭 1년 만에 이스라엘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된 것 같다. 이스라엘의 공세를 상찬하며 전쟁은 저렇게 해야 한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탁월한 정보력과 치밀한 작전 수행 능력, 그리고 준비 태세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면전을 마다 않는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능력에 대한 찬탄과 별개로 이스라엘은 이 시점에서 근본적인 질문에 마주한다. 전쟁을 통해 더 안전해졌는가? 더 안전해질 것인가? 적, 국민, 그리고 친구, 세 측면에서 답은 모두 부정적이다.

 

첫째, 미래의 적을 키우고 있다.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너무 많이 죽었다.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응징은 정당했으나 더 정밀해야 했다. 자국 국민 1200명의 죽음에 대한 보복은 좋으나 하마스 대원 아닌 4만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죽음까지 합리화할 수는 없다. 하마스의 카셈 여단 대변인은 현 무장 대원의 85%가 이스라엘에 의해 부모 잃은 고아라고 했다. 이번에 사망한 가자지구 주민의 자녀들은 10년 후 목숨 걸고 복수에 나서는 하마스 대원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마스는 조직이 아니라 이념이다. 조직은 물리력으로 해체할 수 있지만, 이념은 상위의 가치로 압도해야 한다. 민간인 피해를 최대한 회피하며 인권을 챙기는 공세를 펼쳐야 했다. 현장 지휘관들의 노력은 있었다. 그러나 네타냐후와 극우파 각료들의 입장은 초토화에 더 방점이 찍혀 있었다. 개전 초기 연설에서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숙적 아말렉을 언급하며 구약성서의 정복 서사 기억을 독려했다. 직접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구약성서 사무엘상 15장을 연상시켰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국제사법재판소에 학살 혐의로 제소되었다. 

 

둘째, 국민을 잃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원이나 옥토가 별로 없다. 핍박 피해 각처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에게 변변한 것들이 있었겠는가? 척박한 땅에 나라 세우고 번영을 구가하게 만든 중요한 힘이 하나 있었다. 사람의 힘이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스라엘이었기에 인재들은 꽃을 피웠다. 그들이 떠나고 있다. 전쟁 탓이기도 하지만 네타냐후 정부의 극우화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이미 이탈하고 있었다. 특히 의료, 과학기술 그리고 스타트업 인사가 많았다. “의사들이 병원을 떠났고, 대학은 핵심 분야 교수 채용이 어렵다. 이대로면 (지식인의 유출로) 이스라엘은 소멸된다.” 2004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테크니온공대 아론 치에하노베르 교수의 일갈이다. 하마스나 헤즈볼라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인재들이 나라를 떠나기에 망할 수 있다는 그의 경고는 서늘하다. 전쟁 직후 격심했던 이탈 추세는 최근 다소 완화되긴 했다. 이주해 들어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만 귀환 유대인 중에는 강경 보수파가 더 많다. 세속주의자들이 떠나고, 종교적 시온주의자들 많아지면 이스라엘은 결국 중세 국가가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신정주의와 독재 행태를 보이는 중동 여느 국가들과 다를 바 무엇일까? 어쩌면 이 점이 이스라엘 국가 위기의 본질 아닐까?

 

셋째, 친구, 특히 미국을 잃고 있다. 지금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 편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거의 유일하게 지지해주는 미국과의 관계도 심상치 않다. 청년들이 변수다. 지난달 퓨리서치 여론조사에 나타난 20대 미국 젊은 층의 반네타냐후 여론이 눈길을 끈다. 지지 정당과 별 상관없이 대부분 네타냐후를 반대한다. 민주당 성향 청년 9%, 공화당 성향 청년 22%만 네타냐후를 지지하고 있다. Z세대 젊은이들은 이스라엘이 왜 미국의 영원한 친구여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반대에도 확전하는 네타냐후 편을 굳이 들다가, 국제사회에서 미국도 도매금으로 반인도주의의 배후로 비난받는 데 분노한다. 어른들은 이스라엘 편이지만, 다음 세대가 주도할 10년 후 미국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마치 아랍의 젊은 군주들이 선대 국왕들의 팔레스타인 형제 의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미국의 지지 없는 이스라엘의 안보는 상상하기 어렵다. 위기의 전조다.

 

피습 1년을 맞는 오늘, 네타냐후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미래의 적을 줄이고, 국민을 지키고, 친구를 얻을 방도다. 장기적으로 사람을 얻는 포석을 해야 한다. 이제 전쟁의 시간을 외교의 시간으로 바꿀 때다. 휴전 협상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인질도 살리고, 지난 1년 매일 평균 한 명씩 전사한 이스라엘 장병들의 생명도 지킨다. 기호지세로 계속 확전하면 세상을 다 이길 것 같지만 자칫 더 위험해질 수 있다. 9·11후 미국이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을 무너뜨렸을 때 국제사회는 미국의 압도적 힘을 확인하고 숨을 죽였다. 당시 중동 전문가들과 전략가들이 이라크 민간인 피해를 염려하며 경고했을 때 부시 정부는 듣지 않았다. 대서양 동맹국들의 반대에도 부시 정부는 이라크 전쟁이 정의의 전쟁이며 신이 도우시니 이긴다고 했다. 과도한 자신감은 수렁으로 이끈다. 이라크에서 막대한 전비와 희생을 감수하고도 미국의 중동 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 지금 네타냐후가 참고해야 할 전쟁은 압승의 상징인 6일 전쟁이 아니다. 이라크 전쟁이어야 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조선일보(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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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1년. 경전엔 다른 구절도 많을 텐데, 왜 이것만 실천을….

 

-팔면봉, 조선일보(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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