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이 소환한 야간 통행금지의 기억]
[“총 쏴서라도 문을…” “의원 다 체포해” “두 번 세 번 계엄령 선포”]
["총 쏘고…" "계엄 두, 세번" 심각한 그날 尹 발언]
비상계엄이 소환한 야간 통행금지의 기억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비상계엄 포고령 초안을 자신이 작성했다고 26일 변호인단을 통해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초 포고령 초안엔 국민 통행금지 조항이 있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삭제했다고 했다. 국민 생활의 불편과 경제 활동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국회에 경종을 울린다’는 목적의 ‘경고성 계엄’임을 강조해 윤 대통령을 비호하려는 의도겠지만, 위헌·위법적인 포고령을 대통령이 직접 검토, 수정했다는 사실만 확인됐을 뿐이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뉴스 화면 아래 ‘오후 11시 이후 통행 시 불심검문·체포’라는 자막을 합성한 사진이 온라인에서 확산했다. 계엄을 경험한 장년층들은 웃어넘길 수 없었다. 야간 통금 강화는 시위 금지, 대학 휴교 등과 함께 과거 계엄 포고령의 단골 조항이었기 때문이다. 예전 문건을 베껴 쓴 티가 나는 이번 포고령에도 통금이 포함될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윤 대통령이 통금 조항을 뺐다면 국민을 배려한 게 아니라 국민의 분노를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말에 폐지됐다가 일제강점기에 부활한 야간 통행 금지는 광복 이후엔 1945년 9월 미 군정 포고령 1호로 시작돼 6·25전쟁과 군사정권 등을 거치면서 계속됐다. 적용 시간과 지역에 변화는 있었지만 대체로 자정에서 오전 4시였다. 오후 10시가 되면 라디오에선 귀가 종용 방송이 나왔고, 자정이면 사이렌 소리와 방범대원들의 호각소리가 거리에 요란했다. 야간 통금은 1982년 1월 5일 36년 4개월 만에야 해제됐는데,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가 이미지를 의식한 조치였다.
▷통금 시간이 다가오면 막차 버스를 타기 위해 마음이 급해졌다. 택시를 잡는 사람들은 ‘따블’과 ‘따따블’도 불사했다. 통금에 걸리면 파출소로 끌려가는 곤욕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즉결심판을 받고 벌금을 낸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집에 가지 못해 숙직실에서 잠을 청한 직장인, 단속을 피해 손을 잡고 달린 연인, 술집 문을 걸어 잠그고 밤새 술잔을 기울인 술꾼 등 장년층 이상에겐 그 시절 추억 하나쯤은 있으리라. 크리스마스 이브 등에 잠깐 통금이 해제되면 거리마다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와 밤을 즐기기도 했다.
▷야간 통금 해제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컸다. 온전히 ‘24시간 시대’가 열리면서 편의점 등 24시간 문을 여는 가게도 생겼다. 서비스 부문의 고용이 늘어나고 소비심리가 살아나는 등 경제효과도 적잖았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온전한 이동의 자유를 되찾은 것이 가장 큰 효과였다. 40여 년 만에 국민의 밤 시간과 자유를 다시 빼앗겠다는 발상을 했던 계엄 세력은 얼마나 후진적인가. 해외의 시선을 의식해 통금을 해제한 군사정권보다도 퇴행적으로 보인다.
-김재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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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쏴서라도 문을…” “의원 다 체포해” “두 번 세 번 계엄령 선포”
이게 국헌문란 아니고, 폭동 아니면 뭔가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 출동한 군 지휘관들에게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라” 등의 지시를 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뒤에도 “해제됐다 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검찰이 27일 ‘계엄 2인자’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내란 중요 임무 종사 등 혐의로 기소하면서 공소장에서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 병력 투입에 대해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 “야당의 망국적 행태를 상징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 등의 해명을 한 바 있지만 계엄 당일 윤 대통령의 급박한 지시 내용은 그대로 이행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경악할 수준이다.
검찰에 따르면 계엄 주축 세력의 목표는 국회 봉쇄 및 해제 요구 무산, 주요 정치인 체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등 세 가지였다. 그중에서도 윤 대통령은 특히 국회 무력화에 주력했다. 먼저 경찰에 비상계엄 선포 시 국회 통제를 지시했고, 경찰은 28개 기동대와 버스 168대를 동원해 국회 출입을 막았다. 윤 대통령은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전화해 “국회 들어가려는 의원들 다 체포해, 포고령 위반이야”라고 독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모여들자 윤 대통령은 군에 과격한 지시를 쏟아냈다. 이진우 수방사령관에게는 “총을 쏴서라도…”라고 다그쳤고,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도 “의원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며 본회의장 진입을 지시했다. 이날 동원된 군과 경찰은 총 4749명이었다. 야당에 경고하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윤 대통령 주장과 달리 무력으로 국회를 장악하려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음에도 이 수방사령관에게 제2, 제3 계엄 의지를 밝히며 국회 무력화 시도를 계속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계엄 해제 후 3시간 반 뒤에야 대국민 담화가 나온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검찰은 “국회를 무력화시킨 뒤 별도의 비상 입법기구를 창설하려는 의도를 확인했다”고 했다. 김 전 장관도 계엄해제안 의결이 임박하자 우원식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당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등부터 체포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아울러 중앙선관위로 출동한 정보사령부 군인들이 야구방망이와 망치, 송곳으로 무장했었으며, 문상호 정보사령관은 선관위 직원 30여 명을 포승줄과 케이블타이 등으로 묶고 얼굴에 복면을 씌워 수방사 벙커로 이송할 것을 지시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3월부터 계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또 “위헌, 위법한 비상계엄 선포로 위헌, 위법한 포고령을 발령했다”며 내란죄 구성 요건인 ‘국헌문란’ 및 ‘폭동’에 해당한다고 했다. 김 전 장관 수사를 통해 확인된 내용들은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와 불가분의 관계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도 내란 우두머리로 지목된 윤 대통령 측은 “내란이 아닌 소란” “수사보다 탄핵이 우선” 등의 이유를 대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출석 요구도 거부하고 있다. 탄핵은 탄핵이고 수사는 수사다.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동아일보(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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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쏘고…" "계엄 두, 세번" 심각한 그날 尹 발언
지난 12·3 비상계엄 당시 유리창을 깨고 국회에 진입하려 시도하는 계엄군.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등 일선 군 지휘관들에게 전화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 다 끄집어내라”는 지시도 했다고 한다. 검찰이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을 구속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포함한 내용이다. 대통령이 총기 사용을 언급했다는 것도 충격적이고, 사실이면 명백한 위헌·위법이다. 헌법과 계엄법에 따르면 비상계엄으로 사법부와 행정부의 권한은 제한할 수 있어도 입법부 활동을 정지시킬 수는 없다. 검찰은 이런 정황과 진술 등을 근거로 윤 대통령의 행위가 국헌 문란 목적이 인정되는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윤 대통령은 조지호 전 경찰청장에게도 수차례 전화해 “국회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 다 포고령 위반이야. 체포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김용현 전 장관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에게 여야 대표 등 주요 인사 10여 명 체포·구금을 지시했다는 것이 검찰 수사 결과다.
이런 진술과 정황은 그동안 비상계엄이 입법 폭주, 탄핵 폭주를 일삼는 야당에 대한 경고성 조치였다는 윤 대통령의 해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윤 대통령은 체포의 ‘체’ 자도 꺼낸 적이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체포 조까지 동원했다는 것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란 것이 있느냐”고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직후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게 “해제됐다 하더라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 진술과 정황이 사실인지는 앞으로 수사와 재판으로 밝혀질 것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너무 충격적이고 심각한 내용이다. 계엄 사태 최고 책임자인 윤 대통령이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국민에게 먼저 명백히 밝혀야 한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와 관련해 “법적,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탄핵 심판과 수사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이런 공언과는 거리가 멀다. 공수처의 출석 요구엔 다 불응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는 모습이라도 당당해야 한다.
-조선일보(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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