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됨’의 단가표]
[감정을 잘 다뤄줘야 ‘성격 좋은 아이’로 자란다]
‘부모 됨’의 단가표
어느덧 임신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단언컨대 살면서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몇 달이었다. 임신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다. 생전 처음 겪는 종류의 불편과 통증에 ‘이게 맞아?’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가 하면 한 생명이 생겨나고 자라나는 것을 보고 느끼는 일은 경이롭다. 콩알만 한 것에서 심장 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사람의 형체를 갖추더니 이제는 숨쉬듯 느껴지는 발길질을 당해내고 있노라면 그 밖에 달리 형언할 길이 없다. 세상에는 간접 체험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배워 나가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낯설고 어려운 것은 이른바 ‘출산 준비’라 일컬어지는 것들이다. 이제 막 안정기에 들어섰던 무렵 친구가 말했다. “산후조리원은 예약했어?” 부랴부랴 전화를 돌렸더니 좋다는 곳들은 이미 만실이었다. 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가격대였다. 단순히 비싼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선택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이 당혹스러운 지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당장 출퇴근에 바쁜 맞벌이 부부는 산달을 목전에 두고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져 ‘베이비 페어’에 다녀왔다. 유모차며 이유식 의자까지 브랜드는 왜 이리 많고 가격대는 또 왜 이리 천차만별인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용품은 그나마 낫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터’를 구해야 하는데, 아이의 안녕과 직결된 단가표에 정신이 다 아찔하다.
기시감이 들었다. 결혼을 준비하던 시절, 예식장이며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며 ‘선택 지옥’에 빠졌다. 다만 그때라면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적당히 경건하되 합리적인 선에서 빠른 의사결정을 추구했고, 예식 자체보다는 다시는 없을지 모르는 남미 신혼여행에 보다 많은 공을 들였다. 내가, 우리가 당사자이니 가능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출산은 달랐다. 아이가 대상이고 그마저도 처음이니 주변의 조언과 무한 검색에 기댈 뿐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아이와 관련된 선택이라면 다를 수 있겠다고. 아이가 자라면서 누구는 얼마짜리 외투를 입고 얼마짜리 교육을 받고 얼마짜리 휴가를 가는지 마음이 쓰일 수 있겠다고. 이전에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진정한 계급 사회로 진입하게 된 느낌이라 불현듯 아득해졌다.
인구 소멸 시대의 주된 이유로 꼽히는 ‘경제적 부담’의 이면은 결국 좋은 부모가 되어주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아닐까. 결혼을 준비하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결혼식’이 아닌 ‘부부 됨’을 준비하고 싶다고. 마찬가지로 ‘출산’이 아닌 ‘부모 됨’을 준비하고 싶다. 세상 좋은 것은 다 주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사랑만큼은 아낌없이 주자 다짐한다. ‘금수저’는 아니더라도 ‘사랑수저’만큼은 확실하게 물려주자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한다.
돌이켜 보면 나를 지킨 것은 값비싼 외투가 아닌 ‘우리 공주님’ 하고 안아주는 아빠의 품이었고, 나를 꿈꾸게 한 것은 이름난 학원이 아닌 ‘엄마는 우리 딸 믿어’ 입버릇처럼 말하던 엄마의 지지였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재산 아닐까.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동아일보(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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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잘 다뤄줘야 ‘성격 좋은 아이’로 자란다
[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F’(감정)에는 F로 답해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성격이 좋은 사람들이다. 성격이 좋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일 속에서 그냥 내 마음을 좀 편안하게 유지하고,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하고 잘 지내는 것이다. 올해는 우리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성격 좋은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 또한 어떻게 성격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했으면 한다.
그렇다면 아이를 어떻게 성격 좋은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까? 성격은 타고난 것과 길러진 것의 합이다. 타고난 것은 기질이라고 한다. 타고난 것은 생물학적 특성이다. 사람은 아이나 어른이나 이 생물학적 특성을 토대로 자신에게 가깝고 의미 있는 소중한 상대에게 신호를 보낸다. 아이에게 그 대상은 부모다. 부모가 이 신호에 잘 반응해줘야 아이가 성격 좋은 사람으로 자란다. 특히 감정적인 신호를 잘 다뤄줘야 한다.
이렇게 설명하면 많이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라는 말로 오해한다. 그렇지 않다. 아이가 보내는 신호 중에는 빨리 반응해줘야 할 것이 있고, 들어줘야 하는 것이 있는 반면 못 들어주는 것도 있다. 들어줄 수 없는 것은 들어줘선 안 된다. 하지만 이때 못 들어주더라도 감정적인 신호는 잘 다뤄줘야 한다. 중요하고 의미 있는 대상에게서 못 들어준다는 대답을 들으면 아이 입장에서는 좀 서운하다. 기분도 좋지 않다. 그 감정을 잘 다뤄줘야 성격 좋은 아이로 자란다.
아이를 서운하지 않게, 기분 나쁘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래, 속상은 할 거야. 기분 나쁠 수 있어”의 정도라도 그 마음을 알아주라는 것이다. 마음을 다뤄주고 시간을 좀 주면 아이는 그 정도의 서운한 감정과 나쁜 기분은 스스로 소화해낸다. 이렇게 들어줄 수 없는 것이 생길 때 부모가 어떻게 반응해주었느냐가 쌓여서 아이의 성격이 된다.
부모와 아이의 성격이 완전히 다를 때, 부모가 아이의 감정적인 신호에 반응해주는 것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만약 아이는 소심하고 눈치를 보고 친구에 연연하는 성격이라고 해보자. 부모는 정반대로 그다지 외로움도 타지 않고 남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어느 날 아이가 부모에게 “엄마, 나 학교에서 좀 외로운 것 같아”라고 말한다. 부모는 대뜸 “누가 너 괴롭혀?”라고 묻는다. 아이가 “아니, 괴롭히는 것은 아닌데, 친한 친구가 없는 것 같아”라고 답한다. 부모는 금세 “에이,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라고 해버린다. 아이가 보내는 감정적인 신호에 반응을 잘 안 해준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과 성격이 달라도 ‘아, 얘가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것 보니, 얘한테는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가 보구나’라고 생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성격대로 쉽게 조언할 것이 아니라 “너에게는 가깝게 지내는 친구의 존재가 중요하구나”라는 식으로 아이의 성격을 이해하며 대화해 나가야 한다. 아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친구가 없는 것 같아?”라고 다시 묻는다. 아이가 그런 것 같다고 하면 “작년에는 그런 친구가 있었어?”라고도 물어본다. 작년에는 그런 친구가 있었다고 하면 그 아이하고 지금은 어떤지도 묻는다. “만나면 반갑지만 다른 반이라…”라고 하면 “그래도 걔가 있어서 다행이네. 같은 반이 되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으니…. 그런데 걔하고는 어떻게 친해졌어?”라고도 물어준다. 아이가 대답을 하면 “이번에도 좀 기다려봐. 주변에 누가 너랑 잘 맞을지도 생각해보고 좀 잘 해줘도 봐”라고 해준다. 이것이 아이가 보낸 신호에, 아이가 느끼는 힘듦의 무게에 알맞게 반응해준 것이다.
아이가 “엄마도 그랬어?”라고 물을 수 있다. 그러면 “엄마는 너를 사랑하지만, 엄마랑 너는 다른 사람이니까. 엄마는 그럴 때 너처럼 힘들지는 않았어. 하지만 네가 이런 것을 힘들어한다고 해서 약한 사람은 아니야. 이런 건 사람마다 좀 다르거든” 하고 일러줘야 한다.
모르는 사람은 기분이 나빠지면 그 사람을 안 만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가깝고 의미 있고 중요한 관계는 기분이 나빠지면 그것만으로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 아이의 기분을 살피고, 비위를 맞추고, 뭐든 들어주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감정적인 신호를 보내면 무시하거나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하거나 없는 것처럼 대하거나, 상황을 설명해서 지나치게 빨리 설득해 납득시키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의미 있고 중요한 사람이 ‘마음’을 표현할 때는 ‘마음의 단어’로 받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좀 편안하게 유지하는 성격 좋은 사람으로 자란다. 사실 마음을 표현할 때 마음으로 받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기도 하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동아일보(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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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 잔소리도 AI한테 듣는 ‘혼설族’. 경제 위기와 취업난이 불러온 쓸쓸한 설 풍경.
-팔면봉, 조선일보(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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