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거듭되는 경솔하고 정파적인 행태]
[탄핵 정국, '선의의 무관심'도 필요하다]
헌재의 거듭되는 경솔하고 정파적인 행태
헌법재판소가 3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이 위헌인지에 관한 권한쟁의·헌법소원 심판의 선고를 연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낸 권한쟁의심판의 변론을 재개해 오는 10일 오후 2시에 변론을 열겠다고 3일 오전 11시 57분께 공지했다. 사진은 이날 헌법재판소 모습. 2025.2.3/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헌법재판소가 3일로 예고했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보류 건에 대한 위헌 여부 선고를 돌연 연기했다. 민주당이 밀어붙인 숱한 정략적 탄핵소추는 제쳐두고 마 후보 문제를 먼저 결정한다고 서두르더니 선고를 불과 2시간 앞두고 ‘무기한 연기’를 발표했다. 일반 재판도 이런 경우는 드물다.
마 후보 관련 헌재 재판은 청구인 자격과 이례적 속도 등 ‘절차적 흠’ 논란이 작지 않다. “최 대행이 마 후보를 임명하지 않아 국회 선출권을 침해했다”는 취지의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것은 우원식 국회의장이다. 그런데 권한쟁의 심판은 국가기관 간 분쟁이 전제인 만큼 청구인은 국회의장이 아닌 ‘국회’가 돼야 하고 그러려면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마 후보 문제 관련 국회 의결은 없었다.
우 의장이 권한쟁의 청구를 한 것은 지난달 3일이다. 이에 앞서 헌재에는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과 한 총리 탄핵 정족수에 관한 사건, 감사원장 탄핵안 등이 접수돼 있었다. 이 중 한덕수 전 대행 탄핵안과 정족수 문제는 국정 안정을 위해 가장 서둘러 결론 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도 한 전 대행의 정식 재판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반면 마 후보 재판은 변론을 한 번만 하고 종결하려 했다. 최 대행 측의 변론 재개 신청을 3시간 만에 기각한 적도 있다. 왜 이 문제만 이렇게 서두르는가.
헌법 재판은 하나하나가 국가 중대사다.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 헌재는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하고 무엇보다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지금 마 후보 문제에 대한 헌재의 행태는 공정, 신뢰, 신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헌재 재판관들이 노골적인 정파성을 드러내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는 너무나 명백한 민주당의 정략이었다. 그런데도 헌재 재판관 4명이 이 위원장 탄핵에 손을 들었다. 모두 민주당 측이 추천한 사람이었다. 4명 중 3명이 우리법연구회나 그 후신인 특정 판사 그룹 출신이다. 이들의 행태는 헌법 재판관이 아니라 민주당이 파견한 정당원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마 후보를 임명해야 한다는 권한쟁의 결정을 하려면 헌재 재판관 8명 중 5명, 보류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하려면 6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 추천 헌법 재판관들이 마 후보 임명을 밀어붙였으나 이 숫자를 얻지 못하자 ‘일단 후퇴’했을 가능성이 있다. 헌재가 청구인 자격 문제 논란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경솔하고 위험한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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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 '선의의 무관심'도 필요하다
[朝鮮칼럼]
모든 걸 빨아들인 정치 블랙홀
우리 사회 평범한 일상 잃어
'굿나잇'으로 끝내기 어려운 세상
'날것 뉴스'만 24시간 현재진행형
모를 듯한 민심이 제일 무서운 법
속내 감추기·표정 관리 때론 필요
조용히 일상 사는 익명의 다수
결정적 순간, 선거로 표출해야
시론 성격의 칼럼을 정기적으로 쓰는 이에게 요즘 같은 대통령 탄핵 정국은 적잖이 난감하다. 사람들의 이목이 일제히 집중된 현안에 목소리 하나 더 보태어 뭘 할까 싶다가도, 그것을 피하자니 초미의 국가적 관심사에 혼자 무심한 듯 보일까 신경 쓰여서다. 지난 두 달 가까이 정치가 모든 걸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바람에 우리 사회는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렸다.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르페브르의 말처럼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지겹게 반복되는 것이 ‘비루한’ 일상이긴 해도, 안도감과 익숙함을 통해 그래도 세상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 역시 ‘위대한’ 일상이다.
정치가 일상을 망가뜨린 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우리나라만의 사정도 아니다. 아마도 뉴스 정보 환경의 변화 탓이 클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모든 것이 라이브이고 실시간이며 현재진행형인 시대에 살고 있다. 날것 상태의 뉴스가 하루 종일 사람들을 자극하는 이른바 ‘CNN 효과’다. 예전 미국에서는 텔레비전 저녁 뉴스의 클로징 멘트가 ‘굿 나잇’이었다. 이제 만사를 잊고 잠을 청하라는 취지였다. 또한 과거에는 하루를 기다려야 그다음 날 신문을 받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온라인 신문은 주야 24시간 불침번이다. 여기에 가세하는 것이 차고 넘치는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뉴스물(物)이다. 게다가 이 가운데 상당수는 시시콜콜한 가십(gossip)성이다.
그럼에도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별로 무너지지 않는다. 정치로부터 일상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지켜내고자 무진 노력하기 때문이다. 카페나 술집 등에서 지인들끼리 정치 이야기를 화제로 삼는 것은 대개 시간 낭비라 생각한다. 사는 동네나 길거리에 정치적 선전·선동 플래카드가 난무하는 광경을 지역 주민들은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통행이나 생업을 방해하는 시위나 집회를 ‘삶의 질 치안’(quality of life policing)이라는 이름으로 강력히 통제하는 곳도 있다. 선거 역시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정도로 그 과정이 대체로 차분하다. 이른바 ‘폴리페서’(poli-fessor)나 ‘폴리로여’(poli-lawyer)는 학계나 법조계 내에서 존경과 거리가 멀다.
민주주의의 원조(元祖) 나라들은 정치를 일종의 ‘필요악’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정치란 국가와 국민 사이의 계약을 관리하는 하나의 직업일 뿐, 정치인이라고 특권적 존재는 아니다. 그런 만큼 남을 가르쳐 이끄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지도자’나 ‘나라의 큰어른,’ ‘대권’(大權) 같은 개념은 낯설게 느낀다. 정치를 세상의 중심에 두는 대신, 삶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개인이고 삶의 의미 또한 일상 속에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에 진짜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정치 문화나 정치 참여 방식에서 작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모습의 정치가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가령 선거나 정당 활동 등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는 제도권 영역에서 작동하는 공식적 정치 과정이다. 하지만 헤드라인을 가끔 화려하게 장식하는 비제도권·비공식적 정치도 있다. 데모나 반란 같은 정치투쟁 말이다. 그런데 이 두 유형 이외에 통상적인 정치학이 간과해 온 또 다른 정치 지형이 있다. 평소 익명의 다수가 생활 세계 안팎에서 잘 보이지도 않고 잘 들리지도 않게 쌓아가는 ‘미시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어느 결정적인 순간, 이는 혁명으로 폭발하기도 하고 선거 이변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은 이를 사회 기반 시설, 곧 인프라스트럭처에 빗대어 ‘하부정치’(infrapolitics)라 불렀다.
우리나라는 정치와 관련하여 온 국민이 사사건건, 시시각각,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측면이 강하다. 정치를 누구는 재미로, 누구는 취미로, 누구는 일로써, 누구는 무심코, 그리고 누군가는 역사적 사명감으로 매일매일 소비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다. 정치가 일상을 뺏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정치에 상납한다고나 할까. 물론 정치의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이런 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효과다.
한국 정치를 수렁에서 빼내려면 선의의 무관심이나 속내 감추기, 거리 두기, 표정 관리 같은 나직하되 굳센 미시적 대응이 오히려 매가 되고 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치권의 갑질 장단에 덩달아 환호와 분노 사이를 기약 없이 왔다 갔다 하는 대신, 정치에 무심하고 초연한 척 각자의 일상을 의연히 꾸려나가는 자유주의 시민의식이 장기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보탬이 된다. 알듯 모를 듯한 민심이 실은 가장 무섭다.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사회학, 조선일보(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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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與野 원로 “다음 대선 때 改憲 국민투표 같이”. 진영 갈등 더 심해졌지만, 키를 쥔 분이 도통 무관심이라.
-팔면봉, 조선일보(2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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