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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파는 트럼프] [그린카드(영주권)] [우리가 알던 미국은 없다]

뚝섬 2025. 2. 27. 19:53

[다 파는 트럼프]

[그린카드(영주권)]

[우리가 알던 미국은 없다]

 

 

 

다 파는 트럼프

 

“다시 합법적(체류자)이 되니까 정말 좋네요!” 1976년 7월 27일 영국 록밴드 ‘비틀스’의 존 레넌이 뉴욕 이민국 앞에서 외쳤다. 그의 손엔 녹색 무늬의 미국 영주 번호 등록증, 이른바 ‘그린카드’가 들려 있었다. 1972년 닉슨 행정부는 레넌을 미국에서 추방하려 했다. 레넌의 반전·평화 메시지가 닉슨 대통령의 재선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레넌도 이후 4년을 소송한 끝에야 겨우 미국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다. ‘걸출한 예술가’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과 세계적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 등의 서한도 법원에 제출했다.

 

트럼프 행정부 ‘정부효율부’ 수장인 일론 머스크에게도 한때 불법 체류를 했다는 의혹이 따라다닌다. 남아공 출신인 머스크는 1995년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다니겠다고 비자를 받아 미국에 입국했는데, 학교 등록도 하지 않고 곧바로 창업했다. 분명한 이민법 위반이었지만, 그는 부자가 된 후 이 문제를 해결하고 2002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거액 투자가 필요한 ‘투자이민(EB-5)’으로 영주권부터 받았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1985년 개봉한 한국 영화 ‘깊고 푸른 밤’은 미국 영주권을 얻기 위해 위장 결혼한 부부의 비극을 그렸다. 1990년 미국 영화 ‘그린카드’에도 영주권 때문에 위장 결혼한 부부가 나온다. 100만달러쯤 내면 미국 영주권을 주는 ‘투자이민’ 제도는 미국 영주권의 이런 인기 속에 1990년 만들어졌다. 영국, 캐나다, 호주, 스페인 등도 비슷한 형태의 ‘골든 비자(Golden Visa)’ 제도를 운영했다. 그러나 최근 3년 사이 선진국 대부분이 이 제도를 폐지했다. 중국 부유층이 몰려 실질적 투자는 안 되고 주택 가격만 폭등하는 등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25일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카드(미국 영주권)는 골드카드”라며 “약 500만달러(약 70억원)의 가격에 판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렇게 ‘일시불’을 내고 이주할 수 있는 국가는 지중해의 몰타나 카리브해의 세인트루시아 같은 작은 나라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미국이 이 시장에 뛰어들어 푸틴과 친한 러시아 재벌 마피아들도 받겠다고 한다.

 

▶트럼프는 부동산 업자로 알려졌지만 ‘트럼프’ 이름으로 팔 수 있는 것은 뭐든 팔았다. 트럼프 스테이크, 보드카, 물까지 있었다. 대통령 당선 뒤에도 자신과 따로 만날 수 있는 모임 티켓을 100만달러에 팔았다. 그는 미국의 역사, 정신, 가치, 품위, 체면까지 팔 것 같다.

 

-김진명 기자, 조선일보(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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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카드(영주권)

 

외국 국적을 유지한 채 미국에 무기한 거주할 수 있는 권리로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국(USCIS)에서 부여한다. 1946~1964년까지 녹색 종이에 인쇄했던 영주권 서류의 색깔에서 유래해 '그린카드'라 부른다. 그린카드를 얻으면 취업이나 경제 활동에 제약이 없지만 연방 공무원에는 임용될 수 없고 선거권도 갖지 못한다. 중대 범죄를 저지를 경우 본국으로 추방될 수 있다.

 

-박국희 기자, 조선일보(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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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미국은 없다

 

멋진 테리우스 아저씨였던 미국
캔디 한국을 향해 독촉장 내민다
우리가 알던 미국이 없어진 세계
한국 정치 인질극은 언제 끝날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5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보안 허가 취소에 관한 각서에 서명하고 있다./AP 연합뉴스

 

태평양전쟁 때 미군의 후방 기지였던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에선 매년 2월 15일 특별한 의식이 거행된다. 원주민 남성들이 낡은 미군 군복이나 ‘USA’가 큼지막이 적힌 옷을 입고 대나무로 만든 가짜 총을 메고서 성조기를 들고 엄숙하게 걷는다. 일명 화물 숭배(Cargo Cult) 종교로, 전쟁 당시 미군이 수송기로 실어 날랐던 벼락 같은 풍요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원주민들이 그때의 미군 모습을 흉내 내면 다시 화물이 쏟아지리라는 믿음으로 이런 의식을 매년 치르는 것이다. 미군 기지가 있었던 남태평양 멜라네시아 권역 곳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성조기를 성스럽게 다룬다는데, 유독 바누아투에서 2월 15일을 특별히 여기는 이유는 물자를 쫙쫙 뿌려주던 존 프롬(John Frum)이라는 신비로운 미국 남자(미군 수송 담당자였을 수 있다)가 이날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약속했다는 설화에 기반한다.

 

대한민국 현대사에도 ‘존 프롬’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한국인이라면 못 잊을 이름이다. 원자폭탄 투하를 승인했던 트루먼 대통령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즉시 UN 안보리를 소집해 미군의 참전을 결정했고,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의 흐름을 뒤바꿨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휴전 협정과 더불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안보 동맹의 기틀을 놨고, 경제 원조도 아끼지 않아 ‘한강의 기적’ 발판을 만들어줬다. 어디선가 짠하고 나타나 가난한 캔디를 아낌없이 도와주는, 훤칠한 재벌 테리우스 아저씨가 지금껏 우리가 알던 미국이었다.

 

한국에 가다(Go to Korea).’ 요즘에야 한국 관광을 뜻하지만, 6·25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졌던 1952년 가을에는 ‘골칫거리를 정면 돌파한다’는 의미의 숙어로 통했다. 이 무렵 미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던 아이젠하워는 민주당 트루먼 행정부가 제대로 대처 못한 세 가지를 ‘K1 C2’, 즉 한국(Korea)과 공산주의(Communism), 부패(Corruption)로 꼽았는데 언급 순서에서 보듯 한국이 으뜸 골칫거리였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는 대선 투표일을 열흘 앞둔 10월의 어느 날 “I shall go to Korea(내가 한국에 가겠다)”라며 전쟁의 출구 전략을 세우겠다는 연설로 당선을 매조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약속대로 당선 직후 한국에 와서 전선을 살폈고, 이듬해 휴전 협정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2025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가지 않는다. 대의명분보다 돈에 진심인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희토류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면서 종전 협상은 침략국인 러시아와 둘이서 한다. 요즘 테리우스 아저씨는 약소국을 돕기는커녕 관세 전쟁을 일으키고 캐나다와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가자지구 등을 호시탐탐 노리는 성난 포식자로 변했다. 이런 그에게 ‘대행민국’을 향한 너그럽고 따뜻한 관심을 기대할 수 있을까. 오히려 캔디도 세계 10위권의 ‘머니 머신’으로 컸으니, 방위비도 관세도 전보다 훨씬 많이 내라는 독촉장만 한아름 날아올 판이다.

 

한국 기업인들이 최근 미국 정부를 찾아가 ‘70년 동맹’을 호소했지만 돌아온 답은 “10억달러 투자” 강권이었다. 미국은 UN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 채택 표결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이 예고했던, 우리가 알던 미국이 없어진 세계(The Absent Superpower)가 성큼 열렸다. 아무리 애타게 성조기를 흔들어도 존 프롬이 다시 나타날 리 없는 2025년. 탄핵의 강과 불신의 바다를 건너 격변하는 글로벌 무대에서 생존할 방법을 찾는 일도 이번엔 오롯이 대한의 사람들끼리 해내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정치의 인질극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양지혜 기자, 조선일보(25-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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