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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핵무기 개발을 앞당긴 세기의 스파이들] ....

뚝섬 2025. 4. 15. 08:36

소련 핵무기 개발을 앞당긴 세기의 스파이들

 

[정일천의 정보전과 스파이] 

 

클라우스 푹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미국 에너지부(DOE)가 동맹국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포함시킨 이유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국내에서 제기된 핵무장론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지만 DOE 산하 연구소에서 한국인 직원의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 유출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핵기술 유출과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핵무기 개발에서 앞서 있던 미국이 짧은 기간에 소련에 따라잡히게 된 데는 미국에 침투한 소련 스파이들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독일 태생의 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다. 그는 나치를 피해 영국에서 유학하며 영국의 핵개발 프로젝트 ‘튜브 알로이스’에 참여해 국적까지 취득했다. 하지만 뼛속까지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소련 정보총국(GRU) 스파이가 됐다. 그는 영국과 미국의 핵개발 프로젝트가 통합되면서 미국에 파견돼 DOE 산하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우라늄 농축 연구와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플루토늄 폭탄 제조 등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핵 관련 기밀을 소련에 넘겼다. 그의 스파이 행적은 1949년 소련의 핵실험을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결국 징역 14년을 선고받은 뒤 1959년 모범수로 조기 석방돼 동독으로 추방됐다.

조지 코발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그는 대공황 시기에 소련으로 이주했다. 모스크바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군 복무 중 정보총국 공작원으로 선발됐는데, 미국 국적의 엘리트라는 점이 작용했다. 1940년 암호명 ‘델마르’를 얻어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신분 세탁을 위해 미 육군에 자원 입대했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군에서 우수 인력으로 선발돼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후 미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 근무하면서 핵물질 생산 정보 등을 빼돌렸으며, 특히 그가 입수한 핵시설 및 설비 관련 정보는 소련 핵 연구시설 구축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존재는 사망 이듬해인 2007년 러시아의 영웅 칭호 수여로 세상에 알려졌다.

 

영국 공산당원이면서 소련 스파이로 활동한 멜리타 노우드도 있다. 이 여성은 1930년대부터 영국 핵개발 프로그램 자문위원회 간부의 비서로 근무하며 40년간 핵 관련 정보를 소련에 제공했다. 노우드는 은퇴와 함께 스파이 활동을 중단한 지 20년이 지난 80세의 나이에 스파이였음이 밝혀졌다.

소련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가 핵 보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이런 스파이들의 비밀 활동이 있었다. 원자폭탄 출현 이후 핵무기 기술은 스파이들에게 최고의 정보 목표였다. 그 목표를 가장 잘 수행한 나라 중 하나가 북한이다. 이는 동시에 우리의 정보 활동 실패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과 오작동 장비 투입을 통한 핵실험 불능화, 핵 과학자 암살 등 다양한 공작을 성공시키며 핵 개발을 저지하고 있다. 우리에게 북한 핵문제가 철 지난 유행가처럼 인식돼서는 안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강대국의 안전보장 담보만 믿고 핵무기를 포기한 우크라이나의 뼈저린 후회를 지켜보며 웃고 있다. 한국 스파이들의 분발이 절실하다.

 

-정일천 가톨릭관동대 초빙교수·전 국정원 국장, 동아일보(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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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충수가 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공개적 핵무장 논의]

[핵 잠재력, 떠들수록 더 멀어진다]

 

 

 

----[朝鮮칼럼]----

 

자충수가 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공개적 핵무장 논의

 

인류 역사상 모든 핵무기 개발은 정부·국민도 모르게 극비 추진
그런데 지금 우린 전대미문 美 양해와 묵인 공개적 압박
한국 안보를 고려해 美가 용인? 국제사회 모르는 비현실적 가설
유일한 방법은 극비리 개발 후 제재 감내하는 길밖에 없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래 한국의 독자 핵무장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지가 증가 추세다. 2017년 북한의 제6차 핵실험 이후 주로 보수적 시민단체들에 의해 제기되기 시작한 핵무장 담론은 이제 학계와 전문가들을 거쳐 일반 국민에게도 폭넓게 확산되었다. 30년에 걸친 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해결 전망이 희박한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실질적 억지력을 확보하려면 독자적 핵무장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그 주장엔 강력한 논리적 정당성이 있다.

 

그러나 한국이 핵무장을 강행할 경우 북한과 이란처럼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로 국내 산업 기반이 초토화되리라는 반론이 제기되자, 그 대안으로서 미국의 사전 양해와 묵인하에 핵무장을 하자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한 주장이 더욱 힘을 얻게 된 것은 ‘한국의 핵무장까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논의해야 한다’는 트럼프 선거 캠프 소속 엘브리지 콜비(Elbridge Colby) 전 국방부 부차관보의 공개적 주장 때문이었다. 그에 고무된 많은 한국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할 경우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자 그 희망은 더욱 부풀고 있다.

 

인류 역사상 모든 핵무기 개발은 예외 없이 자국 정부와 국민조차 모르게 극비리에 추진되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도 그랬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서 핵무장에 성공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핵개발 정보가 끝까지 누설되지 않았고 핵실험도 실시하지 않은 관계로 용케 제재 조치를 피해 갔다.

 

그러나 인도, 파키스탄, 북한은 모두 장기간 혹독한 제재를 면할 수 없었다. 이런 역사적 선례들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핵무장 추진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면서 이에 대한 미국의 사전 양해와 묵인을 압박하는 전대미문의 접근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그런 공개적 접근법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대북한 핵 억지력 확보를 위해 독자 핵무장 외에는 다른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논리적 당위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처럼 공개적 방식으로 핵보유 의지를 표출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접근법인지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런 공개적 접근 방식은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감시와 견제를 크게 강화시켜 스스로 손발을 묶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고려해 핵무장을 용인할지도 모른다는 논리는 한반도라는 우물 안에서는 통용될지 모르나 우물 밖의 국제사회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비현실적 가설이다. 이란, 이집트, 사우디, 터키 등 중동 제국의 핵무장을 막고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해야 하는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예외적으로 용인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만일 한국이 불가피하게 핵무장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이스라엘처럼 극비리에 핵개발을 단행하고 발각 시엔 북한과 이란처럼 제재를 감내하는 길밖에는 방법이 없다. 핵무장은 토론과 세미나로 실현될 일이 아니며, 핵무장으로 가는 험난한 길엔 지름길도 샛길도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현실을 수긍하는 사람들은 그 대안으로서,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일본처럼 상업적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을 보유함으로써 유사시 즉각 핵무기 제조에 나설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교적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이 주장은 국내적으로 상당히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으나, 이 역시 미국의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새 원자력협정에 따른 농축 시설과 재처리 시설을 절대 핵무장에 이용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미국 정부가 갖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1988년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 당시, 상업적 핵 시설을 이용한 핵무장을 추구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미국 정부에 심어주기 위해 10년 이상의 긴 세월을 투자했다. 그러나 한국은 그와 정반대로 독자 핵무장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로 원자력협정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한국 사회의 공개적 핵무장 논의는 국제사회의 불필요한 의심과 감시를 유발하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어렵게 만들어 독자 핵무장의 꿈을 더욱 요원하게 만드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조선일보(2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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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잠재력, 떠들수록 더 멀어진다

 

25년 전 한국, 비밀 농축 실험
IAEA 발각돼 안보리 회부될 뻔
그전엔 佛 재처리시설 수입 시도
그때도 미국 압력으로 취소
핵, 감정이 아닌 현실을 보라
자체 농축 기술 확보가 우선
원심분리 기술·공정 개발에
기술적·산업적 역량 집중해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한국 내에서 독자 핵무장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핵무장에는 반대하지만 언제든 핵무장에 나설 수 있는 잠재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한미 원자력 협정의 내용을 모르면서 협정 개정을 요구하는 ‘선무당’들이 활개를 치는가 하면, 평소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세력이 동맹을 해칠 핵무장에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핵 담론은 가히 백가쟁명의 시대를 맞고 있다.

 

먼저, 핵 잠재력이 없는 나라가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 핵 잠재력이란 한마디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기술적·산업적 인프라를 말하는데, 우라늄 농축 시설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보유해야 핵 잠재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핵무기 원료로 고농축우라늄(HEU)이나 플루토늄이 사용되는 데, 농축 시설에서 우라늄을 90% 이상 농축하면 무기급 HEU가 되고,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그러나 농축과 재처리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도 필요하므로 핵비확산조약(NPT)이 허용하는 합법적인 활동이다. 원전 연료로 사용되는 저농축우라늄(LEU)을 생산하려면 농축 시설이 있어야 하고, 재처리 시설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엄격한 사찰과 감시를 통해 투명성이 유지되고, 평화적 용도로만 사용된다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민감핵주기(sensitive fuel cycle) 시설이 핵무장에 악용될 위험성 때문에 원자력 기술 선진국들은 이와 관련된 기술·부품·장비 등의 해외 이전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확대를 위해 농축이나 재처리가 꼭 필요한 국가라도 장차 이를 핵무장에 전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받으면 관련 기술과 물자에 대한 접근이 조직적으로 차단된다. 즉 핵 잠재력 확보를 위해 농축·재처리 시설이 필요하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것은 민감 핵기술 보유국들에 민감 기술과 물자에 대한 접근을 막아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은 이미 50년 전에 프랑스와 재처리 시설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취소한 적이 있고, 2000년에는 비밀리에 레이저를 이용한 농축 실험을 한 사실이 2004년 IAEA 사찰에서 발각되어 유엔 안보리에 회부될 위기까지 겪은 바 있다. 핵개발 미수 ‘전과’가 있는 나라는 평화적 목적만을 위해 농축이나 재처리를 하겠다고 아무리 우겨도 믿어줄 나라가 없다. 이렇듯 핵 잠재력이란 잡으려고 소리를 낼수록 더 멀리 달아나는 이치를 모르면 헛발질만 하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은 민감 핵주기 시설을 보유할 방법이 없나? 결론부터 말하면 농축은 가능한데 재처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하에서 재처리는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독자적 기술로 농축 시설을 건설하는 데는 제약이 없다. 협정 11조2항에서 미국의 동의를 받아 20% 미만 농축만 할 수 있다고 한 문구를 두고 농축에도 사전 동의가 필요한 것으로 착각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이는 미국에서 도입한 우라늄이나 장비를 사용할 경우에만 적용된다.

 

한미 원자력협정을 탓하기 전에 협정이 허용하는 자체 농축 기술부터 확보해야 한다. 농축 시설 건설에 외국산 소재나 장비를 사용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평화적 농축은 아무도 시비할 수 없는 당당한 명분이 있다. 전력 공급에서 원전이 3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핵연료 공급을 해외 농축 독과점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 에너지 안보는 바로 국가 안보다. 원전 연료의 부분적 자급을 위해서라도 농축 기술 개발을 최우선 국책 과제로 삼아야 한다. 경제성이 입증된 원심분리 기술과 공정 개발에 우리의 기술적·산업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재처리는 핵연료를 연소한 원자로의 원천 기술 보유국과 핵연료 공급국의 동의를 요하는 협정상의 제약을 받지만 설혹 동의를 얻더라도 국내 환경단체들이 가로막을 것이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에 50년 이상이 걸리는 나라에서 그보다 환경적으로 훨씬 더 위험한 재처리 시설 부지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조선일보(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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