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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의 가짜 민주주의] ['어쩌면 해피엔딩' 이.. ] ....

뚝섬 2025. 7. 2. 09:29

['오징어 게임'의 가짜 민주주의]

['어쩌면 해피엔딩' 이 진짜 해피엔딩 되려면]

[프라다를 입는 악마가 물러났다]

 

 

 

'오징어 게임'의 가짜 민주주의

 

(※이 글에는 ‘오징어 게임 3’의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드라마 아닌가요?” 지난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3’가 공개된 뒤 한 게시판에 오른 댓글이다. 시즌2부터 달라진 것은, 다음 게임의 속행 여부를 놓고 참가자들이 투표를 벌이는 부분이다. 시즌3에서 주최 측은 이것을 “자유롭고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반란에 실패한 참가자들의 시체를 통로에 걸어 놓고 “공정하고 평등한 게임의 룰을 거부한 결과”라고 선전한다.

 

과연 그것이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인가? 주최 측은 게임장으로 끌려온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어차피 게임은 속개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상당수는 다음 게임에서 숱한 사람이 죽을 것임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돈에 눈이 멀어 찬성표를 눌렀고, 반대하는 이들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됐다.

많은 학자가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다수결 원칙이라는 것은 힘을 가진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묵살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이진우) “의외로 많은 사람이 다수결을 만능 원리로 알고 있지만, 소수 의견이라 해도 억압하지 말고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다.”(강원택) “다수가 선(善)이고 소수가 악(惡)이라는 거짓을 내세우는 것은 잘못이다.”(송호근)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끝까지 설득과 토론을 거쳐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체제일수록 오히려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것을 현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북한의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이것은 다수로 상정된 의견에 소수가 완전히 억눌리거나 존재 의미를 상실한 체제다. 오래전 금강산에서 만난 한 북한 감시원은 “인민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복잡한가”라며 남한의 정치가 답답하다는 말을 했다. 그 ‘인민’들의 의견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이해하지도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의 현실이라고 크게 다를까. 일단 ‘다수’의 지지를 얻어 정권을 차지한 세력은 ‘소수’와 대화와 토론을 거치는 대신 그들을 일방적으로 억압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는 모습을 우리는 지난 수십 년 정치사에서 익히 봐 왔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은 과연 이런 민주주의 체제의 취약점을 풍자하는 작품이었을 수도 있다. 지도자가 제 역할을 못 했을 때의 위험성 역시 드러난다. 시즌2에서 참가자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게임을 시작한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은 시즌3에선 공황 상태에 빠져 별 역할을 못 한다. 마지막 게임에선 9명 중 최다 6명이 생존할 수 있었는데도 특정 참가자를 지키겠다는 고집 때문에 8명이 사망하는 참사를 빚었다. 이제 민주주의 체제에는 어떤 보완 장치가 필요한 걸까.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조선일보(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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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해피엔딩' 이 진짜 해피엔딩 되려면

 

아카데미상 받은 한국 영화 더 오르지 못하고 내리막길
K뮤지컬 실력 인정받으려면 토니상에서 멈추지 말아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한국 토종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6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사진은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공연 모습./NHN 링크

 

지난 주말 시즌 3가 공개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순위를 집계하는 모든 국가에서 1위에 올랐다. 넷플릭스 사상 최고 히트작에 걸맞은 뜨거운 반응이었다. 그런데 주식시장은 차가웠다. ‘오징어 게임’과 관련된 일부 제작사 주가가 월요일 주식시장 개장 직후부터 하향 곡선을 그렸다. 20% 넘게 폭락한 것도 있었다. 주가는 과거의 성취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움직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가 하락은 K드라마 제작사들에 던지는 “내일의 먹거리로 무엇을 준비했느냐”는 질문이자 냉정한 평가일 것이다.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았을 때 K영화도 같은 질문 앞에 섰다. ‘기생충 이후’의 한국 영화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불행히도 5년째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중이다. 2017~2019년 한국 극장의 연평균 매출은 1조8200억원을 넘었는데 작년엔 그때의 65%에 불과했다. 올 상반기 한국 영화 흥행 성적은 더 처참하다. 지난해 두 편이었던 ’1000만 관객’ 영화가 올핸 실종됐다. 밖에서 한국 영화를 보는 시선도 차가워지고 있다. 한국 영화를 늘 주목하던 칸 영화제가 올해 한국 장편 영화를 단 한 편도 초청하지 않았다. 아카데미 시상대에 섰을 때 상상도 못 했던 추락이다.

 

이렇게 된 것이 혹시 ‘아카데미상의 저주’는 아닐까 생각해 봤다. 한국 영화계는 관객이 떠나는 이유를 밖에서만 찾으려 했다. 관객 감소를 코로나 탓하며 그것만 끝나면 떠났던 관객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다. 정작 관객의 취향과 감상 메커니즘이 혁명적으로 바뀌는 현실은 눈감거나 못 본 척했다. 휴대전화와 단절되느니 차라리 극장 관람을 포기하겠다는 극장 기피 현상도 뚜렷해졌지만 이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근 극장가 주변에서 “휴대전화 마음대로 보고, 불판에 고기도 구워 먹는 극장이라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온다. 관객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들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그렇게 표현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한국 뮤지컬이 도약하려면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세계 4대 시장으로 꼽힐 만큼 외형적으로 커졌지만 매출의 70%를 해외에서 라이선스를 주고 들여온 대형 뮤지컬이 차지한다. 창작 뮤지컬의 토대는 여전히 영세하다. 토니상을 한 번 받았다고 그런 과제가 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쩌면…’은 브로드웨이에 수출되면서 현지 관객 취향에 맞게 수정됐다. 화려한 홀로그램 이미지를 더했고 반딧불이로 가득한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이며 원작보다 세련된 볼거리를 추가했다. 이런 브로드웨이식 연출에서 우리가 벤치마킹할 것은 없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용산 대통령실로 K컬처 각 분야에서 큰 성과를 이룬 주역들을 초청했다. 그중엔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천휴 작가,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연출한 김원석 감독 등이 포함됐다. 이 대통령은 ‘폭싹…’이 남미와 유럽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고 치하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폭싹…’은 비영어권에서만 1위를 했을 뿐, OTT의 진검승부가 펼쳐지는 북미 영어권 시장에서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 정상을 차지하려면 제2, 제3의 ‘오징어 게임’이 나오고 에미상도 두 번, 세 번 받아야 한다. ‘책을 한 권만 내면 진짜 저술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한 번 낸 것에 만족하지 말고 새 책을 쓰라는 얘기다. 아카데미상과 에미상, 토니상도 다르지 않다. 세계에서 의심 없이 K컬처의 실력을 인정받으려면 한 번의 수상을 자신의 실력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같은 상을 적어도 두 번 이상 받아야 한다. 모든 첫 수상은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선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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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를 입는 악마가 물러났다

 

특정 업계를 잘 모르는 사람도 아는 이름이 있다. 멸종 직전인 내 직업군에도 있다. 고(故) 로저 이버트다. 영화 평론계를 모르는 사람도 이름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1975년 퓰리처상을 받은 첫 영화 평론가다. 아마 최후의 영화 평론가로 남을 것이다.

 

이버트가 유명해진 것은 영화 평론을 대중의 품에 안겼기 때문이다. 그가 등장하기 전 평론은 현학적이고 배타적이었다. 이버트는 쉬운 언어로 평론을 썼다. 대중을 위한 가이드였다. 평론에 별점을 도입한 것도 그였다. 진중한 영화광이 혐오한다고 불평하면서도 몰래 찾아보는 그 별점 말이다.

 

패션계를 모르는 사람도 아는 이름이 물러났다. 미국 패션 잡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터다. 37년 만에 편집장직을 내려놓았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실제 모델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유명한 이유는 악마처럼 독해서만은 아니다. 독하기만 해서 유명한 사람은 없다. 진중권도 베스트셀러를 쓴 미학자였다.

 

윈터의 업적도 이버트와 같다. 패션을 대중의 품에 안겼다. 그가 등장하기 전 패션 잡지는 고답적이고 배타적이었다. 윈터는 모델만 등장하던 ‘보그’ 커버에 대중적 유명인을 처음으로 실었다. 모델에게 50달러짜리 청바지를 입힌 그의 첫 커버는 전설적이다. 힐러리 같은 정치인 커버도 혁신적이었다. 지금은 다들 그렇게 하니 놀라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윈터 시대가 끝났다. 필연적인 끝이다. 더는 패션 잡지가 유행을 선도하지 않는다. 영화 평론가와 같은 운명이다. 지금의 윈터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이다. 이버트는 유튜버들이다. 두 사람은 패션과 영화 평론을 민주화했다. 그 민주주의는 더욱 민주화되어 무정부주의로 진화했다. 이제 패션계와 평론계에 대통령은 없다.

 

윈터는 ‘아마존’ 제프 베이조스와 결혼한 새 아내를 새 커버로 공개하기 직전 사임을 발표했다. 거대 테크 기업 대표의 신부를 얼굴로 내세운 ‘보그’의 선택에 한탄이 쏟아졌다. 모델도 셀러브리티도 정치인도 아닌 억만 장자의 시대가 왔다는 신호다. 윈터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예언자였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일보(2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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