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여, '영남 자민련' 벗어나 '찢청 너바나'처럼]
[재무성 힘뺀 아베, 기재부 죽이는 이재명]
보수여, '영남 자민련' 벗어나 '찢청 너바나'처럼
가정 파탄과 퇴학, 고통 겪은 좌절감을
진솔하게 표현해 90년대 주류 된 너바나
국힘도 비주류답게 기득권을 버려야 산다
욕을 먹더라도 청년·서민·호남에 다가가라
대구 서문시장 벗어나 강북 수유시장으로
대한민국에서 보수 정당은 이제 철저히 비주류다. 겨우 개헌 저지선만 확보했을 뿐, 대통령 탄핵도 막지 못했다. 집권 여당이 현금 살포 포퓰리즘을 남발하고, 노란봉투법으로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며, 검찰청 폐지도 모자라 사법부를 겁박해 3권 분립을 무너트려도 막을 힘이 없다. 남은 길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것인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역사는 비주류가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고 다시 주류가 된 사례로 가득하다. 록 음악사에서도 그런 예가 있다.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에서 출발한 ‘너바나’가 시대의 중심으로 떠오른 과정이다.
레이건 시대의 경제 호황 덕분에 80년대 미국은 화려함으로 물들었다. 음악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MTV가 개국하며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고, 시장의 논리가 예술을 압도했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같은 수퍼스타들이 등장하더니 기획사에서는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를 포장해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 냈다. 록도 변질됐다. 젊고 잘생긴 록커들이 화려한 의상과 긴 머리로 무대에 서고, 마치 올림픽을 치르는 듯 보컬은 고음을, 기타리스트는 속주를 뽐냈다. 헤어메탈(hair metal) 밴드라 불리던 이들 중엔 심지어 자신의 노래조차 쓰지 못하고, 히트 작곡가의 진부한 사랑 노래를 사다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록의 본질인 ‘내면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상업적 가면만 남은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번영과 사랑만으로 채워질 수는 없다. 레이건 시대가 남긴 그늘, 특히 벌어지는 빈부 격차 속에서 패배자가 된 X세대의 우울과 좌절은 주류 음악에 반영되지 않았다. 리스너들은 기계처럼 찍혀 나오는 양산형 음악에 질렸고, 자기 감정을 대변해 줄 새로운 소리를 갈망했다. 그때 등장한 것이 시애틀 언더그라운드 록그룹들이었다.
대표 주자가 바로 너바나다. 리더 커트 코베인은 가난과 가정 파탄을 겪으며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고, 퇴학 뒤엔 돈이 없어 퇴학당한 학교 화장실을 청소해야 했다. 마약에 찌들어 살며 고통 속에서 해탈을 원했던 그는 밴드 이름을 ‘너바나(해탈)’라 지었다. 너바나는 그들이 겪은 우울과 좌절, 소외감을 록 특유의 거칠고 원초적인 사운드에 담아냈다. 화려한 가면 대신 진심을 담은 음악이 젊은이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1993년 뉴욕 콘서트에서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기타를 연주하는 '너바나'의 프론트맨 커트 코베인. @pinterest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1991년 발표한 2집 ‘Nevermind’는 3000만장 넘게 팔렸다. 그러더니 MTV 시대의 제왕 마이클 잭슨을 끌어내리고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너바나가 평소에 입고 다니던 찢어진 청바지와 목이 늘어난 티셔츠 패션이 유행하더니 급조된 헤어메탈 밴드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심지어 음악성을 인정받던 메탈 밴드들마저 구한말 상투 잘리듯 머리를 자르고 음악 스타일도 바꿔야 했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보통 밴드들은 상업적 성공 뒤 더 대중적인 음악을 선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커트 코베인은 달랐다. 록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아 다음 앨범 이름을 ‘In Utero(자궁으로 돌아가자)’로 지었다. 그리고 2집의 팝적인 요소들을 걷어내 더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를 들려줬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충실할 뿐 상업적 성공과 타협해 거짓된 음악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중은 그의 진정성에 감동해 ‘시대를 잘 만난 록커’라는 평을 넘어, 그를 ‘진정한 예술가’로 존경하기 시작했다.
너바나가 열어젖힌 길은 다른 밴드들에게도 기회를 줬다. 시애틀의 펄잼, 사운드가든, 앨리스 인 체인스가 인기를 얻더니 이 흐름이 퍼져 시카고에서는 스매싱 펌킨스,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라디오헤드가 자신들만의 독창적 음악을 선보였다. 대중은 이 흐름을 ‘얼터너티브(대안) 록’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들은 90년대를 상징하는 ‘주류’가 되었다. 결국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의 본질은 화려한 포장이나 성공 공식이 아니라, 인간 내면을 진정성 있게 담아내는 것임을 증명한 것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대중은 자신을 대변해 주는 정치인들의 진정성을 느낄 때 움직인다. 그런데 좌파의 포퓰리즘은 달콤하지만 보수적 정책은 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말하고, 예산을 아껴 불확실한 기술 개발에 투자해야 미래가 있다고 주장한다. 고용 유연성이 있어야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고,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이야말로 취약 계층을 해친다고 말한다. 당장은 듣기 불편하다. 그렇기에 대중에게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보수 정당은 대구에서 장외 투쟁을 택했다. 왜 하필 대구인가? 비주류답게 설득해야 할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야지, 지지자가 이미 많은 곳에서 야당 탄압을 막아 달라고 하니 대중의 눈에는 진정성 없이 영남 기득권만 지키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대로 가다간 영남 자민련으로 쪼그라들 뿐이다.
보수 정당은 대구 서문시장 대신 강북 수유시장에 가야 한다. 그리고 저임금에 군을 떠나는 초급 간부들을 만나 경제적 보상을 약속해야 한다. 학식에서 청년들을 만나 포퓰리즘의 달콤한 독을 막아내겠다고 설득해야 한다. 광주 5·18묘지만 들렀다 가지 말고, 쇠락해 가는 여수 화학단지에 가서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민주당이 소외시킨 당신을 대변하겠다”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21일 대구 동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야당탄압·독재정치 국민 규탄대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찾아가면 처음에는 욕을 먹을 것이다. 하지만 욕을 먹더라도 계속 다가가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민주당은 수십 년간 열세 지역인 영남의 문을 두드리다 영남 출신 대통령을 셋이나 배출하며 세를 확장했다. 눈앞의 이익을 떠나 꾸준히 진정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보수여, 다시 주류가 되고 싶다면 대구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진정성을 보여라.
-박은식 내과 전문의, 조선일보(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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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성 힘뺀 아베, 기재부 죽이는 이재명
日 아베 "재무성, 내 발목 잡아"
관료들 길들이고 돈 풀기 지속
결과는 빚 폭탄과 권력형 비리
미워도 곳간 문지기 필요하다
이재명 정부가 기획재정부를 해체하고 예산 기능을 따로 떼어내 총리실 산하에 기획예산처를 만든다고 최근 발표했다. ‘효율성’과 ‘전문성’이 명분이지만, 기재부 눈치 안 보고 예산을 주무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 같다. 김대중 정부 때 예산처를 총리 아래에 둔 적이 있지만, 산업 구조조정 등 외환 위기 수습을 위한 것으로 지금과는 목적이 달랐다. 이 대통령은 당선 전 “기재부가 왕 노릇 한다”며 불만을 드러낸 적이 있다. 기본소득·재난지원금·지역 화폐 같은 민주당 정책에 제동을 건 ‘모피아’들이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비슷한 불만을 가진 일본 지도자가 있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차 집권(2012~2020년) 당시 재정 팽창이 핵심인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면서 재정 준칙을 지키려는 재무성에 강한 반감을 가졌다. “나라가 망해도 재정 규율만 수호하면 만족한다”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정권은 무너뜨리러 온다”(아베 회고록)고 비난했다. 재무성 관료들이 ‘지속 불가능한 정책’이라며, 긴축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돈 쓰는 데 인색하면 민심을 얻기 힘들다. 이런 생각이 누적돼 “나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망상 수준에 이른 것이다. 아베는 재무성이 아베 부부의 지인에게 국유지를 헐값 매각한 ‘모리토모 학원 비리’로 위기를 맞은 적이 있는데, “내 발목을 잡으려는 재무성의 책략일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결국 ‘재무성 힘 빼기’에 나선다. 2014년 11월, 재무성이 추진해온 소비세 인상을 저지하고, 아베노믹스의 당위성을 확보하려고 ‘중의원 해산’ 승부수를 던졌다. 돈을 풀고 세금 깎아준다는데 싫다는 국민은 없었다. 재신임에 성공한 아베는 소비세 인상을 연기하고, 내각인사국을 신설해 부처 고위 공무원 600여 명의 인사권을 장악한다. 그러자 소신 있던 엘리트 관료들이 힘을 잃고, 총리 비위를 맞추고 납작 엎드리는 ‘손타쿠(忖度·알아서 헤아림)’와 ‘히라메(넙치) 관료’가 생겨났다.
재무성은 가장 극적으로 변한 조직이다. 나라 곳간을 관리하던 재무성 이재국장 오타 미쓰루는 2017년 소비세 인상분을 빚 갚는 데 쓰지 않고 복지에 쓰는 ‘세수 용도 변경’에 협조하며 ‘재무성의 변절’에 앞장섰다. 같은 해 터진 모리토모 학원 비리도 손타쿠의 결과였다. 재무성은 국유지 헐값 매각 과정에 정치권이 관여한 기록을 없애려고 문서 조작을 감행했다. 죄책감으로 갈등하던 한 관료는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노동 개혁·규제 완화 같은 구조 개혁은 미진한 채 돈만 푼 아베노믹스는 전후 일본 역사상 빚을 가장 빨리 늘린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누적된 나랏빚이 GDP 대비 235%로 세계 최고, 재정 파탄 수준이지만 “국채 대부분(87%)은 국내에서 보유 중이라 괜찮다”는 둔감론도 있다. 해외에 진 빚이 적으니 외환 위기 가능성이 낮다는 논리. 하지만 일본 전문가들은 ‘정부 부채에 관한 거짓말’ 중 하나로 꼽는다. 국가가 파산하면, 국민 자산은 종잇조각이 되고, 부담은 후대의 몫이다.
이재명 정부의 ‘기재부 죽이기’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한국은 비기축통화국 중 부채 비율이 셋째, 위험도는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힌다. 재정 파탄과 권력형 비리를 피할 수 있을까. 아무리 밉더라도 쓴소리하는 곳간 문지기가 하나쯤은 필요하다.
-류정 기자, 조선일보(2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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