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 식솔 볼모 삼아 反美 도박 할 건가]
['악마적 협상가' 이승만]
5000만 식솔 볼모 삼아 反美 도박 할 건가
3500억달러 對美 투자 못 한다
대통령 선포에 與는 지원 사격
'트럼프 깡패' 욕설 섞인 비난도
미국 요구 과도한 것 맞지만
보복당하면 피해는 국민 몫
家長의 책무 느끼며 대응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대통령실
미국의 상호 관세 부과 시한을 하루 앞둔 7월 31일, 한국 협상팀은 초읽기에 몰리고 있었다. 미 상무장관은 “관세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한미 정상회담도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미국이 3500억달러 투자를 요구한 상태에서, “앞으로 검토해 나가자”는 잠정 합의가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3500억달러 투자를 약속받았다”고 기정사실처럼 공개했다.
3500억달러라는 수치가 세상에 알려진 과정이다. 우리 경제 규모는 일본의 절반을 밑도는데, 투자 금액은 일본이 약속한 5500억달러의 절반 이상이었다. 일본보다 못한 합의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한미 관계는 덜컹대고 관세 협상 순서도 맨 끝으로 밀리면서 불안하던 차였다. 타결된 것만도 다행이라 여겼다. 어차피 최종 조율 절차가 남아 있었다. 일본의 마무리 수순을 지켜보고 대응하면 된다는 쪽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5500억달러 그대로,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 합의를 마쳤다. 우리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3500억달러는 당초부터 우리가 감당할 수 없었다. 우리 외환 보유액의 80%에 해당한다. 그 돈을 한꺼번에 미국 주머니에 털어 넣으면 제2의 IMF 금융 위기에 내몰린다. 미국의 요구는 동맹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미국 측 요구가) 거칠고, 과격하고, 과하고,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타임지 인터뷰에서는 “정상회담 때 미국 요구대로 (3500억달러 투자) 합의에 서명했다면 내가 탄핵당했을 것”이라고 했다. 3500억달러 대미 투자 거부 선언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원 사격에 나섰다. “트럼프 정부의 날강도 압박, 길목을 막고 돈을 뜯어내는 깡패와 다를 바 없다” “트럼프의 깡패 짓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서슴없이 깡패라고 불렀다. 미국이 추가 압박에 나서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맞받았다. 이런 말들은 실시간으로 백악관에 전달됐을 것이다.
“3500억달러는 부당하고 수용 불가능하다고 보도해 달라”고 정권이 언론에 협조를 구한다는 말도 들린다. 반미(反美) 정서를 지렛대 삼아 미국을 움직이겠다는 전략이다. 반미는 정권 정체성에도 맞는다. 개딸들은 박수 치며 환호할 것이다. 미국 요구가 지나친 만큼 명분도 서고 폼도 난다. 우리가 익숙했던 다른 미국 대통령들이라면 통했을지 모른다. 트럼프에게는 소용없는 일이다.
정부는 미국이 3500억달러를 고집하면 25% 관세를 맞고 말겠다는 각오인 듯싶다. 3500억달러를 퍼주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트럼프에게 정면 승부를 걸면 25% 관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관세율을 50%로 두 배로 올릴 수 있다. 다른 품목에도 관세를 올리는 보복 조치를 할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지난주 우석대 박노준 총장의 인터뷰를 읽다가 한 구절이 눈에 꽂혔다. “제가 이 자리에 있는 한, 우석대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게 최우선입니다. 학교발전기금을 내는 분이나 교육 당국 관계자에게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합니다. 필요에 따라선 그분들 신발을 닦고 양말을 빨아드릴 자세가 돼 있습니다.” 박 총장은 선린상고 야구 선수 시절, 투수와 타자로서 모두 탁월했던 이도류(二刀流)였다. 여학생 팬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던 수퍼스타 시절과 “가족을 위해 고개 숙인다”는 지금의 모습이 교차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 자리에 있는 한 대한민국 5000만 식솔을 먹여 살리는 게 최우선이어야 한다. 세상의 가장들은 삶의 현장 곳곳에서 ‘트럼프’들과 마주친다. 직장의 위계질서 속에서, 원청과 하청 간의 도급 관계 속에서 ‘트럼프’는 부당한 요구를 한다. 그 횡포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 올곧고 정의로울 것이다. 대부분의 가장은 그러지 못한다. 자신에게 생계를 의존하고 있는 가족들이 눈앞에 어른거려서다. 그래서 인내하고 타협한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하소연도 못 한다. 혼자 분을 삭일 뿐이다. 이 대통령은 반미 선동으로 정치적 재미를 보려는 세력에 업혀 있는 동시에,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의 삶을 책임지고 있다. 둘 중 어느 쪽 입장에서 ‘3500억달러 문제’를 풀어 나갈 것인가.
-김창균 논설주간, 조선일보(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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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 협상가' 이승만
1953년 10월 2일 나는 전쟁이 지나간 광화문 앞에 서 있다. 어제 워싱턴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조인됐다. 이를 성사시킨 주역은 대통령 이승만이다. 여기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월터 로버트슨이 역사 속의 숨은 천사처럼 등장해 조력했다. 아이젠하워 정부는 휴전협정을 맺은 다음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게 선거공약이었고 미 국무부와 미 사회 전반에는 소련 간첩(후일 여럿 밝혀진다.)과 소련에 자발적으로 동조하는 지식인 등이 많았다. 그런 미국을, 세계 최빈국의 그 시절 여든 살 노인 대통령이 신묘한 정치적 방법론과 ‘미치광이 전술’로 거의 멱살을 잡아 끌고 갔다.
로버트슨은 1953년 여름 한국에 입국해 가을까지, 이승만과 무려 12차례의 혹독한 담판을 인내하며 미국과 한국 사이를 중재했다. 그 생고생 끝에서 그는 이승만의 초인적인 애국심을 존경하게 됐고, 대한민국은 이 미국인에게 누대(屢代)의 빚을 지게 되었다. 이승만은 조약이 체결된 뒤에도 발효를 13개월이나 늦추며 미국을 더욱 몰아쳐 여러 국가적 이득을 그야말로 끝까지 뜯어냈다. 그것들 중 그가 특히 몰입한 건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터지면 미군이 자동 개입하는 장치를 마련해 북한과 중공, 소련의 침략을 예방하는 거였다. 조약 자체에서는 미흡한 이것은 미군 주둔으로 보완됐지만, 질려버린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서명 전은 물론 발효 전에도 이승만을 제거하는 계획까지 검토했으니 미국 입장에서 그가 얼마나 악마적(?) 협상가였는지 알 수 있다.
이승만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성사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 후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며 번영할 것입니다.” 제6조에 의해 이 조약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싫어진 쪽이 팩스 한 장만 보내면 파기된다. 요즘 같아서는 차라리 그러는 게 낫겠다 싶다. 불이 차갑다고 우기는 한국인이 너무 많아서다. 그들이 제 온몸이 불타면서도 안 뜨겁다고 그럴 수 있는지, 또는 재가 되는 까닭을 제 어리석음이 아니라 불의 탓으로 돌리는지 구경하고 싶어서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조선일보(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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