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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금관' 받은 트럼프] [첨성대] [ ..두께 0.04㎜ 금박의 기적]

뚝섬 2025. 10. 30. 09:34

['신라 금관' 받은 트럼프]

[첨성대]

[경주에서 발견된 두께 0.04㎜ 금박의 기적]

 

 

 

'신라 금관' 받은 트럼프

 

문명사에서 황금은 권력을 상징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이아손은 “후계자가 되고 싶으면 황금 양피(羊皮)를 가져오라”는 왕의 지시에 원정대를 조직해 보물찾기에 나선다. 프랑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을 화려한 금박으로 꾸미고 촛불을 켜면 방 전체가 금빛으로 물들게 했다. 잉카제국의 옛 수도 쿠스코에 있던 코리칸차는 사방 벽을 금판지로 뒤덮은 황금 사원이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황금 사랑도 유별나다. 뉴욕 트럼프타워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와 그가 소유한 마러라고 리조트 사무실 천장·벽·액자 등이 모두 금빛이다. 백악관 집무실에 걸린 전임 대통령들 초상에 금빛 테두리를 둘렀고 신축 중인 영빈관 샹들리에와 집기까지 온통 금빛이다. 백악관이 아니라 금악관(Golden House)이란 말까지 돈다. 자신이 내놓는 정책에도 금 수식어를 즐겨 쓴다. 중국 견제용 신형 함대도 ‘골든 플리트(황금 함대)’로 명명했다.

 

▶아시아를 순방 중인 트럼프에게 금 선물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 아베 전 총리는 금장 골프채, 이시바 전 총리는 백금으로 도금한 사무라이 투구, 이번 다카이치 총리는 금박 골프공을 선물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금색 호출기를 선물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왕실도 사랑한다. 영국 왕실만 두 번 국빈 방문했다. 올해 방문 때 황금 마차를 타고 윈저성에 들어가 왕실 만찬을 대접받고 “영국은 왕실을 가질 만큼 아주 운 좋은 나라”라고 했다. 일본 왕실 방문도 그에겐 각별했다. 천황에게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독재 국가들이 하는 열병식도 부러워했다. 미군은 잘 하지 않는 열병식을 끝내 열게 만들고 마침 자신의 생일이었던 그날 스스로 주인공이 됐다.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왕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속내는 다를 것이다. 기자들이 3선 도전 여부를 묻자 트럼프는 “나는 그것을 하고 싶다”고 솔직히 답했다. 그는 푸틴, 김정은 등 임기 없는 독재자들과 친분도 자랑한다. 미국에서 반트럼프 시위는 ‘노 킹(No King)’이 핵심 구호다.

 

▶트럼프의 금 사랑과 왕실 사랑을 모두 고려한 선물을 우리 정부가 준비했다. 29일 방한한 트럼프에게 신라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것이다. 이미 인터넷에는 신라 금관을 쓴 트럼프 합성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다. 금관 모형 선물이 한미 관세협상 타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트럼프가 “정말 특별하다. 감사하다”고 한 걸 보면 선물에 매우 만족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동아일보(2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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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첨성대, 지진에도 끄떡 없었다 

 

2016년 9월 경주에 지진이 발생한 뒤 경주 첨성대의 피해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모습. 첨성대는 건물 가운데 창문으로 출입하는 독특한 구조예요. /조선일보DB

 

31일 경북 경주에서 개막하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맞춰, 야간에 경주의 대표적 국가유산인 국보 첨성대 외벽을 배경으로 ‘별의 시간’ ‘황금의 나라’ 영상을 띄운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첨성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천문대’로 알려진 우리나라 문화유산입니다. 신라 시대였던 서기 633년(선덕여왕 2년)에 만들어졌어요. 무려 14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지 않나요?

 

돌 364개로 27단을 쌓은 건물

 

첨성대를 선덕여왕 때 만들었다는 기록은 ‘삼국유사’에 보입니다. ‘시왕대연석축첨성대(是王代鍊石築瞻星臺)’, ‘이 왕(선덕여왕) 때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는 거예요. 15세기의 기록인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633년이라는 건립 연도가 기록돼 있습니다. 첨성대란 명칭은 ‘별을 관찰하는 건축물’이란 뜻이니 이름에서부터 그 용도가 명백한 셈이죠. 경주의 다른 유산과는 달리 건립 당시의 일화가 전해지지 않은 게 아쉽습니다.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기념하기 위해 첨성대를 배경으로 미디어 아트 전시가 진행되는 모습. /연합뉴스

 

첨성대의 구조를 보면, 높이는 약 9.17m입니다.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예요. 맨 아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가 있고 그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맨 위에 우물 정(井) 자 모양의 ‘정상부’를 얹었죠. 원통부에는 부채꼴 모양의 화강암 돌 364개로 모두 27단을 쌓아 올렸습니다. 중간에 남쪽 방향으로 정사각형 문이 나 있습니다.

 

위는 사각형, 아래는 원 모양이어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천원지방·天圓地方)라는 고대의 우주관과는 반대예요. 그 이유에 대해선 ‘천체와 계절의 변화를 더욱 정확하게 관측하기 위한 구조’라는 얘기가 있고, ‘불경에 등장하는 수미산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란 추측도 나옵니다.

 

많은 사람은 ‘돌 364개로 27단을 쌓았다’는 숫자도 뭔가 의미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364개에 임금(선덕여왕)의 존재인 1을 더하면 1년 365일이 되는 것이고, 맨 아래 장대석을 포함하면 28단이 되므로 28수의 별자리를 상징한다는 분석도 나와요. 또 선덕여왕이 신라의 27대 임금이란 사실이나, 달의 공전 주기가 27일이란 사실을 상징했을 수 있습니다. 또 364²+27²=365²이 된다는 계산도 있어요.

 

첨성대의 건축 구조를 표현한 그림.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 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가 있고, 그 위에 정상부가 얹혀 있는 구조입니다. /그래픽=백형선

 

왜 사다리를 타고 가운데로 들어가게 했을까

 

그런데 말이죠. 첨성대를 보면 생겨나는 가장 큰 궁금증은 역시 이것 아닐까요.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서 어떻게 별을 관측했다는 거야?”

 

‘세종실록 지리지’는 다행히도 이 질문에 대한 답 일부를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 가운데를 통해 올라갈 수 있게 했다’는 거죠. 사다리를 놓고 가운데까지 올라간 뒤 창문 같은 구멍으로 들어가 안에서도 역시 사다리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의문이 남습니다. “그냥 맨 아래에 문을 냈으면 출입하기에 훨씬 편리했을 텐데, 도대체 왜?” 

 

조선 태조대에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에 새겨진 천문도를 다시 종이에 찍어 그린 지도. 고구려 천문도가 바탕이 됐대요. 신라뿐 아니라 고구려의 천문학도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여요. /국립고궁박물관

 

놀랍게도 그 이유는 아직 아무도 잘 모릅니다. 이 문은 춘분과 추분 때는 햇빛이 첨성대 밑바닥 전체를 환히 비추고, 하지와 동지 때는 햇빛이 전혀 비치지 않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있어요. ‘석가모니가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불교 설화를 인용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중간 창문을 만들었더라도 아래쪽에 출입문을 별도로 만들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아리송합니다.

 

첨성대 상부에 당시 지어져 있던 누각에서 진짜 천문 관측이 이뤄졌을 것이란 설도 나오는데, 세월이 흐른 뒤 목조 건축물은 사라지고 돌만 남는 경우가 많아 그럴듯한 추측이라고 할 수 있죠.

 

첨성대 건립 뒤 실제로 관측 기록이 많아졌다”

 

이렇게 뭔가 불편해 보이는 구조 등으로 인해, 첨성대는 천문 관측 기구가 아니라 종교적 상징물이거나 기념비, 제단, 왕권을 신성시하기 위한 도구였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과거 그 옆에 있었던 진짜 천문대는 사라지고 석조 부속 건물만 남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죠. 그러나 모두 확실한 증거를 찾기는 어렵고, 현재 학계의 정설은 ‘천문 관측 기구가 맞다’는 겁니다.

 

한국천문연구원 본부장을 지낸 김봉규 박사는 고대 한국의 천문학 자료를 종합 분석한 결과, 첨성대가 건립된 뒤 신라 천문 관측 기록의 양이 크게 증가했을 뿐 아니라 내용도 자세해졌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또 당시 관측된 유성이 떨어진 지점이 모두 첨성대 주변이었다고 합니다. 첨성대가 실제 기능을 했던 천문 관측소였다는 거죠.

 

첨성대가 있는 장소는 신라 때 주변에 관청 건물이 많았고 왕궁인 반월성과도 멀지 않은 장소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천문을 관측하고 앞날의 길흉을 예측하는 것은 왕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니 천문대가 도심에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겠죠.

 

평양의 ‘고구려 첨성대’는 진짜일까

 

첨성대가 지금까지 보존된 건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779년(혜공왕 15년) 규모 7.0 정도로 추정되는 ‘서라벌 대지진’이 일어나 경주에서만 1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났었어요. 그런데도 첨성대는 멀쩡했던 거죠. 건축 전에 미리 1.5m 이상 땅을 파 모래와 자갈을 채워 넣었고, 곡선이면서도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만들어 지진의 충격을 덜 받게끔 일종의 ‘내진 설계’를 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2016년 경주 지진이 났을 때는 맨 위 우물 정자 모양의 돌이 4㎝ 정도 움직인 데 그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중에서 유독 신라에만 천문 관측소가 있었던 걸까요? 조선 초에 만들어진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이 옛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했다는 얘기가 있듯, 고구려의 천문학도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에서는 2011년 “평양에서 신라보다 200년 빠른 고구려 첨성대 유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는데, 북한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유적을 조작하는 경우가 있어 아직 진짜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조선일보(2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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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발견된 두께 0.04㎜ 금박의 기적 

‘선각단화쌍조문금박(線刻團華雙鳥文金箔)

 

“뭔가 반짝이는 게 있어요.” 2016년 11월 ‘경주 동궁과 월지 발굴 현장’에서 현장 근로자 손정현(75)이 발굴 조사자 정원혁(37)을 찾아왔다. 반짝이는 것은 금일 확률이 높다. 발굴 현장에서 발견되는 유물 대부분은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지만, 금은 반짝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금은 귀하다.

 

그렇다 보니, 유물 발굴 현장에서는 작은 조각도 허투루 볼 수 없다. 유물은 흙속에 팥알 크기로 구겨져 있었다. 열흘 뒤 20m 떨어진 곳에서 같은 사람이 비슷한 유물을 또 발견했다. 대단한 눈썰미였다. 게다가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에서 보존 처리를 거치며 혹시나 하고 두 유물을 펼쳐 하나로 합쳐 보았더니 기적처럼 딱 맞았다. 

 

‘선각단화쌍조문금박(線刻團華雙鳥文金箔). 가로 3.6cm다.

 

순도 99.99% 순금 0.3g(한 돈은 3.75g)으로, 크기가 가로 3.6㎝, 세로 1.17㎝, 두께는 0.04㎜였다. 금박에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눈으로 살펴보기에 힘든 정밀한 세공이었다. 현미경으로 살펴보니 꽃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새 두 마리가 오밀조밀하게 새겨진 문양이었다.

 

극강의 세공술로 만든 통일신라의 금박에는 꽃을 위에서 본 형태로 늘어놓은 둥근 꽃무늬(團華)와 두 마리 새(雙鳥)가 마주 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선각단화쌍조문금박(線刻團華雙鳥文金箔)’이란 이름을 얻었다. 실제 살펴보면, 5㎜ 정도 공간에 무려 60개 선이 머리카락보다도 가늘게 새겨져 있다. 사람의 솜씨라 믿기 힘든 엄청난 초정밀 기법에 ‘혹시 외계인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선각단화쌍조문금박(線刻團華雙鳥文金箔)

 

누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정교한 아름다움을 새겼을까. 현미경도 없던 시절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상서로운 문양을 새기며 눈으로 보기도 어려운 아름다움이 어디엔가 닿기를 바라던 선조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지금 경주에는 찬란했던 신라의 유산이 오늘의 세계를 환대하고 있다. 경주에서 열리는 에이펙(APEC)은 세계에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순간에 여섯 개의 금관과 함께 황금 도시 경주의 찬란한 빛으로 그 바람도 반짝인다.

 

-윤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자연유산위원, 조선일보(2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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