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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씨·鄭씨 발음 구분한 이순재... 71년째 무대는 하늘나라에서] ....

뚝섬 2025. 11. 26. 06:13

[丁씨·鄭씨 발음 구분한 이순재... 71년째 무대는 하늘나라에서]

[老배우의 거침없이 70년]

 

 

 

丁씨·鄭씨 발음 구분한 이순재... 71년째 무대는 하늘나라에서

 

배우 이순재가 몇 해 전 모교인 서울대의 ‘관악 초청 강연’ 연사로 후배들 앞에 섰다. 연설 주제는 ‘자부심’이었다. “연기를 오래 하다 보니 이런저런 유혹을 받았다. 그때마다 ‘내가 실수하면 모교 망신 아니야?’라며 유혹을 뿌리쳤다”고 했다. 그는 “자부심 있는 사람은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 여러분도 이를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자부심은 ‘배우 이순재’를 채찍질했다. 부끄러운 연기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다그친 일화가 여럿이다. 대사를 암기할 때 그는 ‘완벽’을 목표로 했다. 사전을 펼쳐 들고 “정(丁)씨는 단음으로, 정(鄭)씨는 장음으로 발음한다”는 그 앞에서 동료들은 혀를 내둘렀다. 1981년 TV 드라마 ‘코리아 판타지’에서 애국가를 만든 안익태 역을 맡았다. 카라얀이 지휘한 곡들을 석 달에 걸쳐 암기한 뒤 “기초라도 가르쳐 달라”며 자신을 찾아온 이순재에게 지휘자 금난새는 고개를 숙였다.

 

▶후배에게도 엄격했다. 누가 CF가 안 들어온다고 걱정하면 “시끄러워. 대사나 좀 제대로 외워”라고 나무랐다. 교수로 대학 강단에 섰을 때는 일요일도 없이 학생들을 불러내 두 달 넘게 발음 연습만 시켰다. 그런데도 좋아하며 따르는 이가 많았다. 이순재도 “나처럼 친한 이가 많은 사람도 없을 것”이라 자부했다. “아무리 탐나도 남의 배역을 빼앗지 않았고 조언을 구하는 후배에겐 진심으로 대했다”고도 했다. 배우 전광렬이 드라마 ‘허준’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자 “모든 걸 바쳐 연기하라. 자식이 훗날 아버지 대표작을 물었을 때 할 얘기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며 응원했다.

 

▶비슷한 배역이 들어오면 피했다. “대발이 아버지로 5~6년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한 작품에서 성공했다고 그 이미지에 갇히면 배우는 그걸로 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야동 순재’로 ‘꽃보다 할배’로 변신을 거듭했다. ‘성공한 배우의 삶을 돌이켜보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과거를 느긋이 회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사위를 일찍 잃었다. 지난해 아흔을 맞아 다시 무대에 설 땐 “외손주들 학비를 대기 위해 아직 아프면 안 된다”며 다음 작품 얘기를 했다.

 

▶배우 이순재가 영면에 들었다. 70년 연기 인생을 마쳤다. 생전의 그는 ‘이순재, 나는 왜 아직도 연기하는가’라는 책에서 배우가 된 이유를 “정년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음 무대는 하늘이다. 모교 친구이자 동료였던 이낙훈이 “함께 연기할 벗이 왔다”며 두 팔 벌려 반길 것 같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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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배우의 거침없이 70년  

 

연기 인생 70년을 바라보는 배우 이순재. /고운호 기자

 

대학 시절 그는 연기를 하고 싶어 연극반에 들어갔지만 배역이 주어지질 않았다. 3학년 때는 총무를 맡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총무는 어지간한 일에 다 얽혀 있고 모든 자리에 웬만하면 빠지지 않는다. 그가 배역 대신 총무를 맡게 된 이유는 연습 때 써보곤 “넌 안 되겠다”며 빠꾸(퇴짜)를 계속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청년은 바깥으로 나가서 1956년 ‘지평선 너머’라는 연극으로 데뷔했다. 첫 배역은 예순 살 먹은 노역(老役). 그때는 몰랐다. 장차 프로 무대에서 누구보다 오랫동안 연기를 하게 될 줄은. 70년 가까이 흘러 이제는 최고령 현역 배우가 됐다.

 

연기란 자기 몸뚱이를 가지고 능력껏 표현하는 일이다. 모든 것을 다 드러내고 평가받는 직종. 눈치 보지 말고 두 발 다 담가야 한다. 그러나 히트작을 내고 인기를 얻을 땐 조심하라고 그는 말한다. 이미지는 감옥이라 갇히면 끝장이다. 그는 성공한 캐릭터인 ‘대발이 아버지’를 5~6년 더 우려먹을 수 있었지만 끝나자마자 버렸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MBC

 

배용준의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한류를 일으켰다면 중국에 최초로 수출된 드라마는 ‘사랑이 뭐길래’였다. 하지만 그는 대발이 아버지를 재연해본 적이 없다. “배우는 텅 빈 상태에서 스탠바이하고 있는 존재예요. 배역을 맡으면 늘 백지(白紙)에서 시작합니다. 그 백지 위에 새롭게 개성을 그려나가고 끝나면 싹 지워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인물에 사랑과 연민을 담았다. 보면서 웃다가 콧날이 시큰했다. 

 

이 노배우는 1934년생 이순재다. 근년에는 기억력 쇠퇴를 방어하는 중이다. “암기력은 배우의 필수조건이고 그걸 못 하면 내려와야 한다”며 그가 비방을 들려줬다. “암기훈련을 자주 합니다. 기억력 감퇴를 막을 수는 없지만 늦출 수는 있어요. 틈날 때마다 미국 대통령 이름을 1대 조지 워싱턴부터 46대 조 바이든까지 죽 암송하곤 합니다.”

 

아흔 살 현역 배우 이순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연기는 할수록 더 어렵고 내 양심이 더 잘 안다”는 이 배우 말마따나 삶은 탄탄대로가 아니다. 난관이야말로 인생의 거름이라고 했다. 왜 아직도 연기를 하는지 묻자 돌아온 답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솔직히 이것밖에 할 게 없으니까 하는 거예요.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니까 합니다.” 그 하루하루가 쌓여 오늘에 이르렀다. 거침없이 70년. 

 

-박돈규 주말뉴스부장, 조선일보(2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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