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內-이런저런..]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 제국'] [아이스크림 하나 때문에.. ]

뚝섬 2026. 3. 4. 06:05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 제국'] 

[아이스크림 하나 때문에 9세 초등생 사진 공개한 점주]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 제국'

 

“엄마는 저런 걸 사 먹으면 배앓이를 하거나 이질에 걸려 죽는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아이들이 입술이 파래지도록 빨아먹으며 단물을 삼키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내 고결한 집안의 가풍이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했다.” 박완서 자전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지금의 6070 세대를 단숨에 그들의 유년 시절로 데려간다. 설탕 대신 사카린, 우유 대신 색소를 탄 얼음과자에 불과했지만 ‘아이스케키’는 가난한 소년소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 뿐만 아니다. 아이스크림 산업은 이후에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1970년 국내 최초의 콘 아이스크림인 부라보콘의 등장은 그야말로 화제였다. 영하 18°C 이하에선 부패하지 않는 특성 때문에 유통기한 표시 의무도 면제받을 만큼 관리 효율이 높았고, 냉장고 보급과 함께 집집마다 냉동실을 채우는 품목이 됐다. 여름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이스크림 통을 비우는 게 중산층의 소박한 행복이자 나름 풍요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영원할 것 같았던 ‘아이스크림 제국’이 녹고 있다고 한다. 2015년 2조원에 달했던 빙과 산업 국내 시장 규모가 지난해 1조4000억원대로 줄었다. 주요 기업들의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30%가량 동반 하락했다. 때로 보관의 이점이 탐욕과 만나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녹아내린 제품을 다시 얼려 파는 ‘재냉동 하드’는 서걱거리는 얼음 결정을 남겼고, 포장지 안에서 비틀린 형태가 됐다. 품질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에게 배신감을 안겼음은 물론이다.

 

▶유통의 패러다임이 배달로 바뀐 것도 쇠락 이유다. 동네 수퍼 냉동고에서 꺼내 먹을 때는 아무 문제 없던 아이스크림은 배달이 힘들다는 치명적 문제가 있었다. 여름철 독보적이었던 아이스크림의 자리는 이제 비슷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저가 아이스 커피와 제로 음료 등으로 다양해 졌다. 아직도 골목마다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수두룩하지만 과열 경쟁과 전기료·물류비 부담에 시름이 깊다고 한다.

 

▶달콤한 아이스크림 한 스푼으로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쌉싸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고단함을 달래준다. 국내 커피 수입량이 20만t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동안, 아이스크림 주 소비층인 5~14세 학령인구는 10년 새 100만명 가까이 줄어버렸다. 풍요의 시대에 마주한 빙과 산업의 쇠락은, 이제 차가운 얼음 막대 하나로는 채워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달라진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어수웅 논설위원, 조선일보(26-03-04)-

______________

 

 

아이스크림 하나 때문에 9세 초등생 사진 공개한 점주

 

중장년 세대 중엔 어린 시절 학교 앞 가게에서 물건을 슬쩍하다 혼쭐난 경험들이 더러 있을 것이다. 유년 시절 친구들과 콩 서리, 수박 서리하던 경험담을 털어놓는 유명인들도 있다. 대개는 “다신 하지 마라”는 훈계를 듣고 풀려나거나, 부모에게 먼저 들킨 경우 제 발로 찾아가 “잘못했다” 사과하고 용서받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자녀에게 서리 당한 집 일손을 돕게 하는 부모도 있었다. 아이들의 잘못을 교육의 기회로 삼을 줄 알았던 이들에게 얼마 전 600원짜리 아이스크림 미결제 사건을 놓고 벌어진 송사는 씁쓸하기만 하다.

▷사건은 2023년 4월 9세 어린이가 인천 무인매장에서 아이스크림을 계산하지 않고 들고 나가면서 시작됐다. 40대 가게 주인은 이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 캡처 사진을 ‘일주일 안에 연락 없으면 경찰에 신고한다’는 문구를 달아 가게 내부에 공개했다. 아이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지만 인근 주민들은 알아볼 수 있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이 부모는 가게 주인과 합의를 시도했으나 불발됐다. “절도”라는 가게 주인과 “단순 실수”라는 부모 주장이 엇갈렸다.

▷경찰은 아이가 어려 죄가 되지 않는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가게 주인이 그해 7월 아이 사진을 다시 가게에 붙이면서 사건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 아버지가 사진을 떼자 가게 주인은 재물손괴죄로 고소하고, 부모는 가게 주인을 아동학대와 명예훼손으로 맞고소했다. 아이 아버지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가게 주인은 1심에선 무죄, 2심에선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아이를 알아볼 수 있는 사진과 절도를 암시하는 글을 같은 학교 학생들이 이용하는 매장에 게시한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했다. 아이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아이 부모는 아이가 실수로 계산을 안 하고 나온 건데 상습범으로 몰아붙여 화가 났다고 한다. 또 “검찰에서 가게 주인이 30만 원에 합의할 의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합의금을 목적으로 이 일을 벌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반면 가게 주인은 “합의금을 요구한 적 없다. 정식으로 사과만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렇더라도 아홉 살 아이 잘못을 쉽게 범죄로 규정하고 사진까지 공개하는 극단적 방법을 써야 했을까.

▷중장년 세대가 어린 시절 소소한 일탈을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이유는 동네 어른들의 따끔하되 너그러운 꾸지람에서 좋은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는 배려심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사방에 CCTV 달아놓고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잘못하다 걸리면 아이 장래고 뭐고 무조건 범죄자로 낙인찍어 응징하고, 법 말고는 갈등을 조율할 줄 모르는 각박한 사회가 됐는지 6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로 벌어진 기막힌 송사에서 절감하게 된다.

 

-이진영 논설위원, 동아일보(26-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