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250년, 이상과 현실의 투쟁-자유를 향한 식민지의 반란]
['괜찮은 평화'가 정말로 괜찮으려면]
미국 250년, 이상과 현실의 투쟁-자유를 향한 식민지의 반란
그 시작은 영국의 '세금 폭탄'이었다
③ 영국의 오만이 키운 식민지 독립
1763년 영국과 13개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프랑스 세력과의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인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불과 13년 뒤인 1776년, 식민지는 모국(母國)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함께 승리를 자축하던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모든 문제는 영국 정부와 의회, 왕의 오만과 무지에서 시작됐다. 식민지인들이 자유와 자치에 얼마나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지 영국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피트를 몰아내고 집권한 왕당파
그동안 영국과 식민지 관계는 돈독하고 호혜적이었다. 양쪽 모두 교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누렸다. 영국의 초대 수상 월폴(재임 1721~1742년)은 교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밀수와 탈세 등 일부 불법 행위를 묵인했다. 거국적·장기적 관점에서 얻는 번영에 비하면 사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1765년 미국 독립운동가 패트릭 헨리(오른쪽 붉은 옷)가 영국 정부가 부과한 인지세법에 반대해 버지니아에서 연설하는 장면을 묘사한 화가 피터 F. 로더멜의 그림. /미국 패트릭 헨리 기념관
상황이 변한 건 7년 전쟁이 끝났을 무렵부터다. 영국은 승리했지만 식민지와 입장 차이로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 순간이야말로 유능한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 영국의 내각과 의회는 평범하거나 부족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7년 전쟁에서의 승리가 확실해 보이자 내부 권력 투쟁이 벌어졌고, 거기서 이긴 국왕파가 윌리엄 피트 수상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외부의 적과 싸우는 데 무능한 리더가 내부 투쟁에는 유능한 경우가 많다. 권력은 어린 신임 국왕 조지 3세(GeorgeⅢ·재임 1760~1820년)의 가정교사이자, 국왕 모친의 애인으로 소문난 뷰트 백작에게 넘어갔다. 뷰트 일당은 무능했다.
◇식민지에 부과한 다양한 세금들
모국과 식민지 사이의 갈등은 프랑스로부터 새롭게 획득한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의 광활한 땅을 둘러싸고 생겨났다. 영국 정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반발과 식민지 간 충돌을 우려해 점진적인 개발을 원했다. 그러나 식민지인들은 즉각적인 개척을 요구했다. 정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식민지인들이 개척자가 되는 길을 막으면 그들은 반역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 안의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분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전쟁 부채와 이를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전쟁 기간 영국 정부는 막대한 부채를 짊어졌다. 승리로 확장된 식민지를 지키기 위한 비용도 필요해 증세가 불가피했다. 영국 정부·의회는 쉬운 방법을 택해 식민지에 관세를 부과했다. 그렇게 1764년 설탕법이 제정됐다. 오랜 세월 용인된 설탕의 밀수입을 금지한다는 의미는 있었다. 그러나 런던 의회에 대표를 파견할 수 없던 식민지인들 입장에서는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영국 고유의 과세 원칙에 반하는 조치였다. 법 집행 과정에서 벌어진 강압적인 감시와 조사도 그들의 불만을 키웠다.

이듬해에는 식민지에 인지세법이 제정됐다. 서류·신문·편지·유언장 등에 인지(印紙)를 사서 붙이도록 강제했다. 설탕법이 뉴잉글랜드의 일부 상인에게 피해를 끼친 것과 달리 거의 모든 식민지인에게 적용됐다. 자유와 자치가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자 영국에 대한 신뢰와 애정은 빠르게 식었다. 이해관계가 서로 달랐던 13개 식민지는 처음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영국 상품 불매 운동이 확산됐고 조직적 저항을 시작했다. 결국 보스턴에서 인지세 징수관을 겨냥한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식민지의 모든 인지세 징수관이 사임했다. 법은 있으나 집행할 사람이 없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인지세법은 식민지와 불화를 일으켜 미국이 독립하게 되는 결정적인 기폭제가 됐지만, 이 법률은 영국 의원들 대부분의 무관심 속에서 쉽게 통과됐다. 그만큼 영국의 정치인들은 식민지 상황에 대해 무지(無知)했고, 교만했다. 왜 그랬을까? 자신들의 힘을 과신했고, 식민지가 뭉쳐서 영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오만은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하다. 세계 제국을 향해 나아가던 영국도 교만의 덫을 피할 수 없었다.
◇영국 정부의 계속되는 악수(惡手)
결국 영국 정부는 인지세법을 고수할지 폐지할지 기로에 섰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식민지에서의 폭력 사태를 반란으로 규정하고, 인지세법 철폐가 ‘영국의 통치권을 훼손시킬 것’이라고 여겼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인지세법을 더 이상 집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교만·무지·불통의 산물인 이 법률은 폐지됐다. 이 과정에서 내각이 연달아 무너지고 위기가 심화됐다.
조지 3세는 내키지 않았지만 피트를 다시 불러 내각을 맡겼다. 그러나 불행히도 하늘은 영국을 버렸다. 건강 악화로 피트가 쓰러진 것이다. 내각의 주도권은 대(對)식민지 강경파인 찰스 타운센드 재무장관에게 넘어갔다. 그는 차·유리·도료·종이·납 등 대중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상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법을 통과시켰다(1767년 타운센드법).
분노로 들끓는 식민지에 결정타를 날린 건 차(茶)에 대한 새로운 법이었다(1773년 Tea Act).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세금을 내지 않고 식민지에 직접 차를 수출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다. 법의 목적은 명확했다. 재고가 넘쳐 파산 직전에 놓인 동인도회사를 구하겠다는 것. 불공정 조치였다. 식민지 상인들에게는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면서 왜 동인도회사는 면제를 받는가? 영국 의회는 식민지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가? 우리는 대영제국의 신민이 아닌가?
식민지인들의 이 근본적인 질문에 영국 정부와 의회는 침묵했다. 7년 전쟁에서의 승리 이후 계속된 헛발질로 식민지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영국의 국왕·내각·의회는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오만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무력 충돌까지 딱 한 걸음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출처 19세기 후반 영국의 삽화가 헨리 M. 패짓이 1770년대 미국 보스턴 시내에서 벌어진 영국군과 식민지 주민들 사이의 소요 사태를 묘사한 그림. 영국 정부의 일방적인 관세 부과에 분노한 보스턴 시민들이 압류한 물자를 마차에 실어 나르는 영국군에게 돌을 던지며 항의하자 총검을 든 병사들이 막아서고 있다./1766년 영국의 만평가 벤저민 윌슨(Benjamin Wilson)이 인지세법 폐지를 기념하며 그린 '인지세법 아가씨의 장례식'. 인지세법을 지지했던 영국 정치인들이 묘비 앞에 줄지어 서 애도하고 있다. 인지세법이 폐지되고 활기를 찾은 항구에는 무역선이 들어오고, 창고 건물에는 '미국으로 갈 물건들(Goods NOW Ship'd for America)'이라고 적혀 있다.
英과 식민지 갈등 키운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라
역사는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영국과 아메리카 식민지 사이의 악화 과정도 그렇다.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자 영국 정부는 수상으로 친(親)식민지파의 수장 윌리엄 피트를 내세웠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식민지에 우호적인 피트의 내각에서 가장 반(反)식민지적인 정책과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됐다. 양측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출처 찰스 타운센드 초상
이 아이러니의 원인은 피트의 예기치 못한 와병(臥病)으로 내각 주도권이 찰스 타운센드 재무장관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타운센드는 강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중대한 순간에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게 된 건 우연이 겹친 결과였다. 피트는 재무장관직을 노스 경(卿)에게 먼저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당시 타운센드는 직전 수상이었던 로킹엄 후작과 가까운 사이였다. 타운센드를 자신의 파벌에 묶어두려 했던 로킹엄 후작의 단속이 성공했다면 상황은 달라졌겠지만, 야심가 타운센드는 피트의 재무장관 제안을 덥석 물었다. 피트가 쓰러진 뒤 내각의 핵심 인사 중 한 명이라도 타운센드에 맞섰다면 역사의 방향은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국은 계속 일이 꼬이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최종적인 아이러니는 타운센드가 강압적인 법들로 영국과 식민지 사이의 긴장을 극대화하고, 3개월 만에 급사(急死)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가 망친 것과 혼란은 살아남은 자들이 감당해야 했다.
-송동훈 문명 탐험가, 조선일보(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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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평화'가 정말로 괜찮으려면
최근 미 국방부가 새로운 국가방위전략(NDS)을 발표했다. 미국은 미 본토 방위와 서반구, 인도·태평양에 집중하고 동맹국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 문서에서 화제가 된 키워드는 ‘괜찮은 평화(decent peace)’다. NDS가 추구하는 최종 목표이자, 미·중 양측이 긴장 관계 속에서도 평화를 유지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를 두고 한국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대만을 포기하거나 중국에 아시아를 양보하려는 전조가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이 용어의 원작자인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차관의 의도는 명확하다. 그가 2021년 저서 ‘거부 전략’에서 설파한 ‘괜찮은 평화’란 중국이 강대국 지위는 유지하되 아시아 패권은 포기한 상태를 뜻한다. 미국은 중국의 비토 없이 아시아와 교류하고, 아시아 국가들은 자치와 독립을 유지하는 ‘괜찮은 균형’이다. 중국이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당분간 유지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인식에 기반한다.
주목할 점은 콜비가 이러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역설적으로 ‘무력 충돌을 불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미 정부는 MAGA 세력 일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제1 열도선 내 군사 전진 배치를 유지하고 있다. 미 국내에서는 쇠락한 군수 산업을 부활시키고 무기 생산 속도를 전시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한다. 해양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의 조선업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괜찮은 평화’ 워딩은 “아무리 비싼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론을 연상시킨다. 적과의 공존을 인정하고 억제력을 유지하겠다는 논리가 표면적으로는 비슷하다. 이 대통령은 실제로 미국의 NDS 발표 직후 “북한보다 국방비를 월등히 많이 쓰면서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자주국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문제는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의 방향이다. ‘자주 국방’ 구호와 달리, 실제 현장에서는 전쟁 억제력을 약화시키는 조치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12·12 비상계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방첩사령부를 해체하려 한다. 군의 정치화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보안 역량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실책이다. 둘째, 육해공 사관학교를 국군사관대학으로 통합할 계획이다. 이는 각 군 고유의 작전 환경과 특수성을 무시해 군의 전문성을 하향 평준화시킬 위험이 크다. 셋째,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 소위 ‘자주파’ 인사들은 남북 대화를 명목으로 한미 연합 훈련 중단을 시도한다. 실전 감각과 동맹국 간 협동 작전 능력을 훼손하는 행위다. 여기에 군의 허리인 초급 간부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며 이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전시작전권 전환마저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다.
콜비는 ‘거부 전략’에서 “평화를 보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라며 지도자들에게 ‘끔찍한 가능성까지도 예상하고 숙고할 수 있는 도덕적 상상력’을 주문했다. 우리 지도자들 역시 대북 저자세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그럼 (북한과) 한판 뜰까요?”(이재명 대통령 1월 21일 발언)라고 일갈하는 대신, 북한이 감히 전쟁을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태세를 갖춰야 한다. 한미 동맹 현대화를 감정적으로 반대하는 대신 지역 안정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반일 선동 자제를 넘어 일본과의 실질적인 안보·경제 협력을 증진시켜야 한다. ‘괜찮은 평화’가 정말로 괜찮으려면, 듣기 좋은 말의 성찬 대신 뼈를 깎는 실전 준비가 필요하다.
-홍태화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 유라시아 펠로, 조선일보(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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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캐나다에 “국경 다리 지분 절반 내놓기 전엔 개통 불가”. ‘가장 길고 평화로운 국경’도 이젠 옛말.
-팔면봉, 조선일보(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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