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國內-이런저런..]

[고향 잃은 마산 아재] [가족에게 줄 수 있는 최고 선물 행복한 얼굴]

뚝섬 2026. 4. 22. 06:27

[고향 잃은 마산 아재]

[가족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행복한 얼굴]

 

 

 

고향 잃은 마산 아재 

더는 볼 수 없는 1976년 경남 마산시(현 창원시) 서성광장 로타리의 모습. "유신으로 전진"이라는 슬로건이 붙은 오른쪽 높은 건물이 마산전신전화국, 멀리 보이는 산은 무학산이다. /인스타그램

 

마산 출신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부산 출신 아니에요? 맞다. 부산 출신이다. 그리고 마산 출신이다. 마산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냈다. 부산에서 청년기를 보냈다. 둘 다 고향이다. 이중국적, 아니 이중 고향자다.

 

고향은 태어난 곳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음속 간직한 그리운 곳도 고향이다. 부산도 마산도 다 고향이라 부를 수 있다. 마산은 창원에 통합되지 않았냐고? 마산 사람에게 묻는 순간 호통을 들을 것이다. KBO 역사상 최강 전투력을 가진 마산 아재들 속을 건드리면 곤란하다.

 

소셜미디어에 옛 마산 사진을 올렸다. 1976년, 내가 태어난 해 사진이다. “북한 아닌가요?”라는 Z세대 댓글이 달렸다. 내 딴에는 아름다운 옛 사진이라고 올렸다. Z세대에게는 사진에 묻은 가난만 보인 모양이다. 다시 보니 그렇다. ‘유신으로 전진하라’는 문구가 적힌 건물은 딱 평양스럽다.

 

사진을 찍은 시기 한국 1인당 GDP를 찾아봤다. 825달러다. 같은 시기 북한 추정치는 777달러다. 1970년대 중반은 남한 1인당 GDP가 북한을 갓 넘어선 시기다. 나는 북한보다 겨우 잘살게 된 시기에 태어난 세대다.

 

한국 세대 갈등은 전례 없이 빠르게 성장한 국가라 발생하는 것일지 모른다. 각 세대가 태어난 국가의 상이 다 다르다. 60대 이상은 방글라데시와 소득이 비슷한 후진국에서 태어났다. 내 세대는 필리핀, 페루 같은 저소득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났다. Z세대는 처음 선진국 문턱에서 태어난 세대다. 세대 통합이 잘될 리가 없다.

 

너희는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모른다’와 ‘너희는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모른다’가 부딪친다. 이건 가치관의 충돌이 아니다. 환율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여 살며 같은 화폐를 쓰다 생긴 오해에 가깝다. 정치적 통합이라는 문구로 대충 해결될 일은 아니다. 2010년 마산, 진해, 창원은 정치적으로 묶였다. 대충 묶였다. 사람은 묶이지 않았다. 창원은 세 도시의 기억을 억지로 이어 놓은 프랑켄슈타인이 됐다. 마산 아재는 고향만 잃었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조선일보(26-04-22)-

______________

 

 

가족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행복한 얼굴

 

5월 문턱서 떠오른 부모-가족에 대한 기억
떠나신 아버지께 때때로 읽혔던 삶의 무게
그럼에도 슬픔 건너편 “가족이 사는 기쁨”
고통을 나눌 가족이라는 존재 자체가 위로

 

지난 주말 날이 좋길래 베란다 화분에 꽃을 심어 볼까 싶어 꽃가게를 찾았다. 가게를 둘러보는데 ‘어머니의 날 선물 예약’이란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제 곧 5월이구나. 5월 8일이 어버이날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6월 셋째 주 일요일을 아버지날로 기념한다.

내 아버지는 4년 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많이 약해지셨지만 그래도 늘 밝은 모습을 보이려 하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화분에 심을 화초를 고를 게 아니라 집에 가서 어머니께 보낼 선물을 주문해야겠구나 싶었다.

아버지를 여의었을 때, 나는 내 영혼의 일부가 잘려 나간 것 같았다. 여든을 훌쩍 넘도록 사셨으니 호상이라 할 만한데, 그런데도 왜 그렇게 슬프고 애달팠을까. 아버지의 삶이 애달파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 세대 분치고는 유별난 면이 있었는데,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설거지와 청소를 꼭 아버지가 하셨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모두에게 밖에 나가 놀다 오라고 하셨다. 우리가 다시 돌아왔을 때면 집은 깨끗이 정돈돼 있었고, 식탁에는 차와 과일이 깔끔하게 차려져 있었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둘이고 조카며느리도 있는데 웬 청승이냐고 하셨지만, 차와 과일을 보며 모두가 감탄하고 감사해하는 게 아버지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그런데 사실 식민지에서 태어나 내전을 겪고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던 아버지에게는 슬픈 일이 많았다. 내 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자상하고 유쾌한 분이었는데 아주 가끔, 정말 일 년도 아니고 몇 년에 한 번 정도 술에 취해 두서없이 예전 얘기를 하실 때가 있었다. 그때는 너무 슬픈 얼굴이어서 어린 마음에도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돌아가시기 일 년 전부터는 아버지 집 근처에 살면서 자주 아버지께 들렀는데, 평생 하지 않던 어릴 적 얘기, 젊을 때 얘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시곤 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보내고, 내가 더 아프고 괴로웠던 것 같다. 그러다가 조금씩, 명절날 과일상을 차려 놓고 가족을 맞으며 환하게 웃던 모습을 떠올리며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삶이 슬픔만으로 점철된 게 아니었고, 기쁘고 행복했던 날도 많았다는 걸 떠올렸다. 아버지가 평생 하지 않던 슬픈 얘기들을 말년에 하신 건, 내가 그 말을 정성껏 들어주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는 그렇게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었다.

 

예전에 내 아내가 일본에서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때가 있었다. 손주를 돌보기 위해 아버지가 일본에 오셨다. 어느 날 출근하는 나에게 무심코 이런 말씀을 하셨다. “가족이 아파서 힘들 때도 가족이 있고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사는 기쁨이다.” 아버지 말년에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우리 형제는 우리 형제대로 아버지 때문에 애타고 있었을 때, 우리는 어쩌면 고통을 나누는 가족이 있다는 행복을 누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최근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로 세상이 시끄러운데, 대장동 수사팀에 있던 한 검사가 암 수술 후 요양 중인데도 불구하고 동행명령장을 받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뉴스를 봤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는데, 그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고 선배 검사에게 아들에 대한 후원을 부탁했다는 얘기도 떠돈다. 사실이라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만일 그렇게 허망하게 아들 곁을 떠난다면 아들에게 큰 상처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오히려 아빠는 잘 견디고 있다며 웃는 얼굴을 보이면 좋을 텐데. 너무 힘들어 웃을 수 없을 때는 그 고통을 가족과 함께 나눠도 좋을 것이다. 가족이 소중한 건 고통을 나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수험생은 입시에 떨어질까 초조하고, 취준생은 취업이 안 될까 겁나고,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사업가는 사업가대로 힘든 게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비록 어떤 일에 실패한다 해도 내 도전을 응원하고 내 실패를 아파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우리 삶의 위안이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검사도, 그가 원칙대로 수사한 것이 맞다면 언젠가 억울함이 풀리기를 바란다. 그리고 미래의 일은 우리가 알 수 없고 지금 이 순간은 암담하다 해도, 사랑하는 가족의 응원과 격려가 주는 기쁨을 누리면 좋겠다. 다가오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우리 모두 잠시나마 당신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얼굴을 가족에게 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얼굴이 가족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동아일보(26-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