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통은 모르는 요리의 역설]
['밥메리카노'를 아십니까]
밥통은 모르는 요리의 역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은 레시피에 적힌 수치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킨다고 했다. ‘약간’ ‘적당량’ ‘한 꼬집’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요리책을 미워한다면서, 모든 재료를 저울에 올려 단 1g도 넘거나 부족하지 않게 맞추고, 파를 썰 때도 자를 사용한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이 만든 음식은 놀라울 만큼 맛이 없다며 그 이유를 물었다.
같은 재료라도 날에 따라 상태가 다르다. 계절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습도와 온도에 따라 질감이 바뀐다. 식탁에 앉은 사람의 상태도 맛에 영향을 준다. 기운이 빠지고 축 처진 날에는 짠맛이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땀을 많이 흘린 뒤라면 더 그렇다. 몸이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셈이다. 이럴 때는 국물의 간을 아주 미세하게 올리는 것만으로도 음식의 만족도가 달라진다. 감기나 피로, 수면 부족이 있으면 미각과 후각이 흔들린다. 특히 후각이 둔해지면 오히려 짠맛, 쓴맛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이렇게 입맛이 예민해진 날에는 같은 간도 과하게 느껴진다. 요리는 숫자가 아니라 감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레시피는 출발점일 뿐, 마지막 판단은 그날의 감각이 맡는다. 요리의 본질은 결국 융통성에 있다.
‘밥통 같다’라는 표현이 있다. ‘멍청하다’고 말하고 싶을 때 사용한다. ‘생각 없이 작동하고, 반복적으로 같은 기능만 하는 기계’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런데 거꾸로 밥통 같아야만 하는 영역이 있다. 바로 안전이다. 주방은 불을 다루는 장소인 만큼 융통성은 허용되지 않는다. 튀김 기름을 올려놓고 자리를 비우지 않는 것, 가열 중인 팬을 방치하지 않는 것, 화재가 발생했을 때 정해진 순서대로 대응하는 것. 이런 것을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지켜야 한다.
맛을 만드는 데는 유연함이, 안전을 지키는 데는 단호함이 필요하다. 요리는 균형의 기술이다. 어디까지는 바꾸고, 어디부터는 절대 바꾸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일. 좋은 요리사는 그 경계를 정확히 안다.
-유재덕 파불루머, 조선일보(2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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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메리카노'를 아십니까
비비고, 섞고, 말아 먹는
한국인의 밥 사랑

일부 젊은 층은 아메리카노에 밥을 말아 먹기도 한다. /인스타그램 화면
‘밥메리카노’. ‘밥’과 ‘아메리카노’를 합친 말이다. 밥 먹은 다음 아메리카노 마시는 걸 얘기하는 게 아니다. 아메리카노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다. 이 낯선 조합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영상에서는 데운 즉석밥과 얼음, 아메리카노를 한 그릇에 담고 “졸리고 입맛 없을 때 (먹는다)”라는 설명을 붙였다. 조회 수는 960만. 수백만 조회 수의 비슷한 영상이 줄을 잇는다.
반응은 나뉜다. 먹어 본 적 없는 이들은 “당황스럽다”. 먹어 본 이들은 대체로 “뭐야, 이거 생각보다 맛있잖아?” 커피 특유의 구수한 맛이 보리차를 연상시켜 의외로 이질감이 덜하다고 한다. “숭늉 같다”며 배추김치나 깍두기·멸치볶음을 곁들이는 사례도 있다. 녹차에 밥을 말아 고명을 올려 먹는 일본 오차즈케와 흡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언어에서도 드러나는 한국인의 밥 사랑. 만나면 “밥 먹었니?” 안부를 묻고 헤어질 땐 “밥 한번 먹자”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밥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음식을 밥과 함께 먹는 시도가 끊임없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콜라에 밥을 막아 먹는 ‘콜라 밥’. 잊을 만하면 누군가 “맛이 궁금하다”며 도전하고, 그 장면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곤 한다.
음료뿐만이 아니다. 카레맛 과자 ‘비29(B29)’를 먹어본 후 “짭조름한 양념이 많이 묻어 있어 밥이랑 먹어도 괜찮겠다”며 실제로 이 과자를 잘게 부숴 카레 가루처럼 밥에 뿌려 먹는 사람도 있다. ‘스윙칩 오모리김치찌개맛’은 한때 밥에 비벼 참기름을 뿌려 먹거나 부숴서 주먹밥 재료로 넣어 먹는 방식이 인기를 끌었다. 그 밖에도 고추장 맛, 데리야키 맛, 짬뽕 맛, 구운김 맛 과자처럼 밥반찬 맛을 떠올리게 하는 디저트는 어김없이 실험 대상이 된다.
밥과 낯선 음식의 조합은 온라인에서 관심을 끌려는 의도에서 시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이런 ‘레시피’를 올리는 사람 중에는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가 많다. 조회 수를 올릴 수 있는 콘텐츠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전문가들은 “밥 중심의 음식 문화와 비비고, 섞고, 말아 먹는 데 익숙한 한국인의 식습관 때문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빵을 선호한다고 해도 나고 자라며 밥을 먹어 온 한국인이기에 가능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조유미 기자, 조선일보(25-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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