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냉면은 자극적이라고요?… ]
[평양냉면]
함흥냉면은 자극적이라고요?…
강렬하되 조화로움 맛보세요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내 ‘경동함흥냉면’의 회냉면. 1인분에 1만3000원이다. 김도언 작가 제공
서울 동대문 밖에는 오랜 시간 자연스러운 교역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한국 최대의 약령시장, 경동시장이 있다. 그런데 이곳을 약초 향기로만 기억하는 건 일종의 결례다. 골목 안쪽에는 스쳐 지나가기 쉬운 작은 가게 하나가 있다. ‘경동함흥냉면.’ 예닐곱 평 남짓한 공간, 몇 개 되지 않는 테이블, 분주하게 오가는 손님들. 그러나 이곳의 진짜 크기는 면적이 아닌 맛과 기억의 깊이로 가늠해야 한다. 요컨대 깊이도 크기가 될 수 있다.
1995년부터 한자리를 지켜온 이 집은 세월을 버텨낸 노포 특유의 단단함을 지니고 있다. 메뉴는 단출하지만, 그 속에 오랜 시간 축적된 내공이 응축돼 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메뉴에 대한 확신을 갖고 거기에 집중한 것이야말로 내공의 내력이다.
이 집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회냉면은 한 끼 식사를 넘어 감각의 체험에 가깝다. 잘 숙성된 홍어회와 특유의 비법 양념이 어우러져, 한 젓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미각뿐 아니라 온몸의 감각이 환하게 열리는 듯하다. 매콤함과 감칠맛이 교차하며 혀끝에서 길게 여운을 남기는데, 이 균형감이야말로 이 집이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유일 테다. 경동함흥냉면은 홍어무침을 별도로 판매할 정도로 홍어 숙성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의 물리적 조건과 정서적 경험 사이의 대비다. 좁은 홀, 빈번한 회전, 바쁜 손놀림…. 이 모든 요소는 보통 손님들에게 조급증을 안겨 식사를 서두르게 만든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오히려 시간이 느슨해진다. 이모님의 다정한 말투와 손님을 대하는 수굿한 태도에서 묘한 안온함이 스며 나오기 때문이다. 시장 한복판에서 느끼는 이 소박한 환대는 음식의 맛과 더불어 이 집을 기억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포인트다.
요즘에는 냉면이라 하면 평양냉면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담백함과 절제의 미학으로 대표되는 평양식에 비해 함흥냉면은 종종 자극적이라는 오해 속에 과소평가되곤 한다. 그러나 경동함흥냉면은 그 편견을 넌지시 뒤집는다. 자극적이되 거칠지 않고, 강렬하되 조화롭다. 이는 그저 매운맛을 강조한 음식이 아니라, 오랜 시간 다듬어지면서 완성된 미각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 집이 자리한 경동시장은 단순한 장터가 아니다. 삶의 온도가 오가는 공간이다. 상인들은 이곳에서 생애를 걸고 일하고, 손님들은 장을 보며 일상의 빼곡한 행간을 채운다. 그 한가운데에 경동함흥냉면은 작은 위로처럼 놓여 있다. 미더운 냉면 한 그릇을 비우며 사람들은 다시 기운을 내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어쩌면 진짜 명품은 화려한 공간이나 거창한 이름으로만 증명되지 않는다. 좁은 골목, 오래된 시장, 그리고 한결같은 손맛 속에서 만들어진다. 경동함흥냉면은 그렇게 소리 없이 그러나 단단하게 자신만의 브랜드를 완성해 가고 있다. 이곳을 찾는 것은 단지 냉면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의 기운과 사람의 온기를 함께 들이켜는 일에 가깝다.
진짜 맛있는 음식은 먹고 돌아서는 순간 바로 생각난다고 하던가. 경동함흥냉면이 딱 그렇다. 돌아오는 길이 못내 아쉬웠다.
-김도언 소설가, 동아일보(2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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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전라남도 토박이가 1980년대 초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난생처음 서울에 살게 됐다. 식당에 '냉면'이라고 쓴 빨간 깃발이 내걸린 걸 보고 '저것이 필시 무슨 음식인 모양인데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광주 주재기자 선배는 '왜 전라도 사람들은 냉면을 먹지 않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밭과 들, 강과 바다에서 철 따라 나는 것 먹기도 바쁜데 웬 냉면?" 냉면에 대한 대접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한국의 양대 냉면이라고 할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흔히 '물냉'과 '비냉'으로 불리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면의 재료다. 평양냉면은 메밀가루, 함흥냉면은 감자전분이 국수의 주 성분이다. 맛도 다르고 식감도 다르다. 그러나 평양냉면은 요리의 반열에 올랐고 함흥냉면은 시장통 비빔냉면과 비슷한 신세다. 고깃집 메뉴판에 비빔냉면을 '함흥냉면'이라고 쓰는 집은 많지만 물냉면을 감히 '평양냉면'이라고 쓰는 집은 없다.

▶평양냉면은 고기 육수에 무와 간장을 넣고 끓여 식힌 뒤 메밀과 전분을 섞어 빚은 국수를 말아 먹는 음식이다. 북한 '조선료리전집' 조리법에는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는 젓가락이 쑥 들어갈 정도로 삶아 건져내고 국물은 소금·간장·파·후춧가루로 맛을 내 차게 식힌다"고 돼있다. 쌀농사 짓기 어려운 평안도의 주력 작물 메밀을 가을에 추수해 겨울에 먹던 음식이다. 잘 끊어지는 메밀국수를 뜨거운 국물에 말면 더 먹기 어려워 찬 육수에 먹었다고 한다. 처음 먹으면 밍밍하고 심심하다. "점심에 먹으면 저녁 먹을 때쯤 생각나는 맛"이라는 표현도 있다.
▶평양 옥류관 주방장이란 자가 문 대통령을 가리켜 "평양에 와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전혀 한 일도 없는 주제"라며 "몽땅 잡아다가 우리 주방의 구이로에 처넣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우리 기업 총수들이 리선권에게서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말을 들은 데 이은 '냉면 막말' 2탄이다.
▶2년 전 남북 정상이 만났을 때 문 대통령은 옥류관 냉면을 두고 "제가 늘 먹어왔던 평양냉면 맛의 극대치"라고 했다. 남북 공연 교류로 북에 다녀온 연예인들도 옥류관 평양냉면이 어떻더라 저떻더라 말을 쏟아냈다. CNN은 평양냉면 조리법을 소개했고 영국 가디언지는 "평양냉면은 평화의 상징"이라고 보도했었다. '맛의 극대치인 평화의 상징'에서 '처먹고 요사 떠는' 음식이 된 평양냉면 신세가 딱 요즘 남북 관계 같다.
-한현우 논설위원, 조선일보(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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