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승부 망치지 말라… 심판을 심판하다
반복되는 부실 판정 시비
공정성 회복 논의 거세져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손흥민 선수. 2023년 6월 엘살바도르와의 경기 장면이다. /뉴시스
“심판, 눈 뜨자!” 올해 K리그 심판 동계 훈련은 이 같은 자성의 다짐으로 시작됐다. 지난 시즌 잇따른 오심으로 인한 비난의 구호 “심판, 눈 떠라!”가 관중석에서 너무 자주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K리그 오심은 전년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한 79건이었다. 오죽하면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이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다. 유튜브에 새해 각오 영상까지 올렸지만 민심은 싸늘했다. “직장인도 일 못하면 회사에서 얼마나 깨지는데, 앓는 소리 하지 마라.” 오심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월 7일 열린 인천 대 광주 경기에서는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페널티 박스 내 경합 과정에서 인천 수비수와 광주 공격수가 충돌하자 주심은 곧장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VAR(비디오 판독)까지 거쳤지만 판정 유지. 그러나 천천히 다시 보면, 수비수가 먼저 공을 걷어낸 뒤 공격수와 맞부딪친 것이기에 반칙이 성립하지 않는 장면이었다. 오히려 항의가 거셌다며 인천 코치진에 경고가 주어졌고,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광주가 결국 승리했다. 며칠 뒤 축구협회는 이 판정이 오심이었다고 인정했다.
◇부실 판정, 경기 결과 뒤집어

지난달 10일 열린 EPL 시합에서 맨유가 역전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핸드볼 파울이 있었으나 심판은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고 결국 득점을 올린 맨유가 승리했다. 이후 프로경기심판기구는 오심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EPA 연합뉴스
공정성을 위해 존재하는 심판이 되레 부실 판정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처음 ‘프로축구 성장위원회’를 발족해 심판 판정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다루기로 했다. 심판 교육·평가 체계 개선,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시범 도입과 같은 기술 고도화를 통해 ‘판정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 역시 심판 운영 쇄신안을 발표하고, 매 라운드 종료 후 온라인 피드백 교육 정례화 및 판정 통일성 강화를 위한 교육 체계 보완 등의 대책을 내세웠다. 외부 질책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경기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축구 리그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오심이 우승팀까지 바꿔놨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 2일 미국 스포츠 매체 디애슬레틱이 이번 시즌 판정 오류를 전수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올해 우승팀 아스널은 마땅히 페널티킥이 부여돼야 했음에도 심판이 그냥 넘어간 상황 등으로 인해 3경기에서 한 골 차 진땀승을 챙길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판정이 제대로 됐다면 판도가 달라져 2위 맨체스터 시티가 우승컵을 들어 올렸을지 모른다. 맨체스터 시티는 오심으로 승점 2점을 손해 본 것으로 조사됐다.
◇로봇에 굴복… 90% 틀린 심판도

MLB에서 뛰는 한국인 타자 이정후가 안타를 쳐내고 있다. 지난 10일 경기에서 이정후는 ABS 챌린지를 통해 인간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오심)을 바로잡았다. /AFP연합뉴스
종목 불문, 심판은 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다. 미국 프로야구가 올해부터 도입한 로봇 심판 ‘ABS 챌린지’ 사용 결과를 보면, 인간 심판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지난 4월 AP통신은 올해 메이저 리그 개막 이후 첫 1주 동안 ABS 챌린지를 통한 판정 번복률이 55.2%(542회 중 299회)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스트라이크냐 볼이냐, 인간의 판정이 로봇에 의해 절반 넘게 정정됐다는 얘기다. 12차례 이의 신청에서 11차례 판정이 달라져 번복률 91.7%를 기록한 심판도 있었다. 모든 공을 로봇이 판정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재확인 신청 기회가 팀당 두 번뿐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 수치가 나온 것이다.
로봇은 착시에 속지 않기 때문이다. 전 분야에서 로봇 심판 도입 요구가 거세지는 이유다. 지난 4월 한국 남자 프로배구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기막힌 판정 논란이 일었다.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이 세트 스코어 2대2로 팽팽히 맞선 마지막 세트, 매치 포인트에서 현대캐피탈의 스파이크 서브가 코트에 꽂혔다. 인(in)이라면 그대로 경기 종료. 그러나 판정은 아웃이었다. 화면상에는 분명 공이 라인에 닿아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비디오 판독 이후에도 판정은 아웃이었다. 이날 현대캐피탈은 패배했고, 감독은 “승리를 강탈당했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지난 4월 남자 프로 배구 챔피언 결정전 2차전 논란의 순간. 위 사진은 현대캐피탈 측의 아웃 판정 장면이고, 아래 사진은 같은 경기 대한항공 측의 점수 인정 장면이다.
첨단 장비 부족으로 인한 한국만의 애매한 ‘로컬 룰’ 탓이었다. 국제 무대에서는 초고속 카메라 여러 대로 공 위치를 확인하는 ‘호크아이 시스템’을 통해 다차원 판독이 가능하기에 공의 일부라도 라인에 닿은 것으로 보이면 공격 포인트가 인정되지만, 한국에서는 TV 방송사 중계 화면으로 비디오 판독을 할 수밖에 없는 한계로 ‘접지면을 기준으로 공이 최대로 눌린 상황에서 안쪽 라인이 (육안으로) 보이면 아웃’이라는 자체 규정이 적용된다. 다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배구연맹은 3년 내 AI 판독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최근 공식 발표했다.
◇참다 못한 선수들, 심판 등급 공개

올해 진행 중인 NBA 파이널 경기 모습. 이례적으로 NBA 선수 노조는 최종전이 끝나기도 전에 사상 초유의 심판 평가서를 공개했다. /AP 연합뉴스
경기장의 주연은 선수지만, 최고 존엄은 심판이다. 불복종하면 퇴장당하고 벌금까지 부과된다. 판결하는 존재, 그러나 이제 판결의 대상이 돼가고 있다. 미국 프로 농구 NBA에서는 지난달 선수 노조가 모든 심판을 3등급으로 나눈 평가표를 사상 처음 공개했다. “NBA가 짜고 치는 WWE(프로레슬링)냐”는 분노까지 터져 나온 상황에서 노조 측이 밝힌 네 가지 심판 평가 요소는 판정의 정확성, 경험, 균형 잡힌 성격, 소통이었다. 한국인 최초의 NBA 풀타임 심판으로 2023년부터 코트에 투입된 황인태 심판은 3등급으로 분류됐다. NBA 역시 ‘호크아이’ 도입을 검토 중이다.
여자 리그(WNBA)도 상황은 비슷하다. 오죽하면 지난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심판을 보러 경기장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지금 WNBA에서는 그들이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썼다.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고대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라는 질문이 심판을 향하게 되면서 ‘심판의 심판’이 본격 논의되고 있다. 대학에서 도입한 학생의 교수 평가 제도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 이를테면 팬들과 언론이 앞장서서 축구 선수뿐 아니라 심판에게도 평점을 매겨 공개하는 영국이 대표적이다. 냉철한 평가와 더불어 ‘최고의 심판 순위’도 함께 발표함으로써 자발적 경쟁력 고양의 효과도 낸다는 평가가 나온다.
◇심판 존재 이유, 설득력 갖춰야

판정에 불만은 품은 관중이 야구장에 난입해 심판을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2014년 이 사건을 계기로 비디오 판독이 전격적으로 도입됐다. /스포츠조선
오심이 경기의 일부로 용인되던 시대는 갔다. 기계를 통한 판독 기술은 갈수록 정교해지고, 팬들의 안목은 높아진 상황에서 심판의 존재 이유가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 없더라도,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권위는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최근 선관위에 대한 국민적 분노도 감시받지 않는 존재에 대한 강한 불신이 기저에 깔려 있지 않느냐”면서 “경기의 일부로서 심판 역시 논란 불식을 위한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커뮤니케이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중과의 스킨십을 늘리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마사회는 지난달 경마 팬들을 초청해 ‘찾아가는 심판위원’ 설명회를 서울 영등포 지사에서 개최했다. 심의 전반에 대한 궁금증을 심판위원이 직접 해소하는 자리였다. “경기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려면 적절한 심의 및 제재 기준뿐 아니라 팬들과의 소통과 신뢰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대한축구협회도 문제적 판정 장면을 심판이 직접 해설하는 유튜브 콘텐츠 ‘VAR ON, 그 판정 다시 보기’를 시작했고, 경기 후 잡음이 큰 판정 시비를 즉시 해명하는 ‘먼데이 브리핑’ 제도도 올해 초 신설했다. 다만 아직까지 열린 적은 없다.
-정상혁 기자, 조선일보(2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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