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대전(經國大典)]
[조선 成宗 때를 빼닮은 67세 대한민국, "태평성대..?"]
경국대전(經國大典)
6개 분야 319개 조항 … 노비 출산 휴가도 다뤄

국립중앙도서관이 다음 달 25일까지 '아! 조선 법전의 놀라운 세계' 특별전을 열어요. 이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법전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최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로, 경국대전을 비롯한 조선 시대 법전 13종을 소개한다고 해요.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법전으로 잘 알려진 경국대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선 왕조가 백성의 어려운 삶을 도와주는 데 관심이 많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답니다.
나라 다스리는 데 필요한 법전이란 뜻
'경국대전'의 '경국'이란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고, '대전'은 '중요하고 큰 법전'이란 뜻이에요. 결국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법전이라는 의미죠. 고려 시대와 조선 초기까지 우리나라는 대체로 성문법(문서의 형식을 갖춘 법)보다는 불문법(문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은 관습법·판례법 등) 위주로 다스렸다고 해요. 조선 건국 이후 신흥 사대부들은 '명확한 기준을 지닌 법이 없기 때문에 백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법전을 편찬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1397년(태조 6년) '경제육전'이란 법전이 나왔고, 태종 때 이 법전이 '속육전'으로 보완됐습니다. 이후 7대 임금인 세조는 최항·노사신·서거정 등의 신하에게 '경국대전'의 편찬을 명했습니다. 다음 왕인 예종을 거쳐 9대 성종 임금 때인 1485년(성종 16년), 드디어 경국대전 편찬을 마치고 시행하게 됩니다.
경국대전은 행정법과 민법·형법을 아우른 종합 법전으로, 이전(관리 조직과 임명 등), 호전(세금 제도 등), 예전(외교·과거시험·학교·혼례·제사 등), 병전(군사 제도 등), 형전(형벌·재판·노비 등), 공전(기술·건설 등)의 6개 분야에서 319개 법 조항이 담겨 있었죠.
임신한 관청 노비에게는 80일
이 법전은 백성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나라의 관심이 컸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신분제가 엄격했던 조선 시대에 노비는 관청에서 일하는 '공(公)노비'와 양반집에서 일하는 '사(私)노비'로 나뉘었습니다. 그런데 경국대전의 '형전'을 보면 공노비에 대한 놀랄 만한 조항이 나옵니다. "여자 노비에게는 아이를 낳기 전에 30일, 낳고 나서는 50일 휴가를 주고, 그 노비의 남편에게는 아이가 태어난 뒤 15일 휴가를 준다"는 거예요. 출산 휴가가 엄마 90일(쌍둥이 120일), 아빠 10일인 요즘 기준으로 봐도 그다지 짧은 기간이라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미혼(아직 결혼하지 않음) 또는 비혼(결혼하지 않음) 남녀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요즘 많은 국가들이 저출산과 인구 감소의 원인이 된다고 걱정하고 있죠. 조선 시대에는 특히 여성이 결혼하지 못하는 것을 큰 불행으로 여겼다고 해요. 그래서 경국대전의 '예전'엔 이런 조항도 있죠. "양반의 딸 중에서 서른 살이 다 되도록 생계가 어려워 시집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예조에서 임금에게 보고해 적당한 혼인 비용을 준다." 한마디로 '(당시 기준으로) 노처녀 결혼 자금'을 나라에서 지급해 줬던 겁니다. 그런데 그다음엔 좀 섬뜩한 말도 나오죠. "그리 가난하지 않은데도 서른 살 넘은 딸을 시집보내지 않은 아비는 엄중히 처벌한다." 물론 옛날에 이랬다는 겁니다.
백성 보호하고 탐관오리 벌주려 했지만
요즘 대형 사고나 자연재해의 피해를 입은 지역은 긴급한 복구를 위해 국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지원을 하곤 해요. 그런데 농업을 국가의 가장 큰 산업으로 여기던 조선 시대에도 비슷한 취지를 담은 법령이 있었습니다. 경국대전의 '호전'을 보면 "새로 개간한 땅이나 모두 재해를 입은 땅, 절반 이상 재해를 입은 땅, 병들어 농사를 짓지 못한 땅에 대해선 그 정도에 따라 조세를 면제한다." 농민의 생산력 유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백성을 위한 법적 조항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몰래 자기 이익을 챙긴 관리가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관리의 부패에 대해선 특히 민감한 조항이 많았습니다. 지위가 높은 친척의 집에 드나드는 것을 막는 '분경(분주히 쫓아다니며 이익을 추구함) 금지제'와 친척 관계에 있는 관리들이 같은 관청에서 근무하지 못하게 하는 '상피제'가 있었어요. 지방 하급 관리 중에서도 뇌물을 받고 부역을 면해 주거나 세금을 받을 때 수고비를 챙긴 부정부패 공무원은 엄격한 처벌을 받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만약 경국대전이 오래도록 원칙대로 잘 지켜졌더라면 조선 왕조는 계속 전성기를 누리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백성이 굶주리거나 민란을 일으키는 일도 없었겠죠.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특정 가문 사람들이 중요한 관직을 독차지하는 '세도정치(勢道政治)', 아예 돈으로 벼슬 자리를 사고파는 '매관매직(賣官賣職)' 같은 일이 숱하게 생겨났어요. 백성에게 가혹한 세금을 거두는 일도 빈번히 일어났고요. 모두 경국대전에서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던 것이었습니다. 번듯한 법전을 만드는 일 못지않게, 그것을 공정히 지키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보물로 지정된 경국대전]
지난 6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된 '경국대전'은 모두 세 종류입니다. 삼성출판박물관이 소장한 권 1·2,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권 1~3, 수원화성박물관이 소장한 권 4~6이죠. 삼성출판박물관의 '경국대전'은 이 중에서도 무척 귀한 자료라고 할 수 있는데요. '경국대전'이 완전히 편찬되기도 전인 1471년(성종 2년) 신묘년에 출간된 일명 '신묘대전'으로, 아주 이른 판본이랍니다.
-유석재 기자/기획·구성=조유미 기자, 조선일보(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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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成宗 때를 빼닮은 67세 대한민국, "태평성대..?"
"현재의 대한민국은 조선시대 역사에 비춰보면 어느 시기쯤에 해당합니까?"
가끔 듣는 질문인데 답은 분명하다. "성종 시대입니다." "태평성대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망조(亡兆)가 들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열세 살 성종이 즉위한 해가 1470년이었다. 1392년 조선이 세워지고 78년이 되던 해이니 광복 70년을 맞는 대한민국과 비슷했다. 조선은 세조대를 지나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다만 세종 덕분에 생산력은 높아져 성종 때는 호화 사치가 극에 이르렀고 부정부패가 만연했으며 관직이 능력 중심에서 연줄 중심으로 타락했다. 조선 중기에 이이(李珥)는 '동호문답'이라는 글에서 성종 시대를 평하며 "그 당시는 태평한 지 오래되어 나라가 부유하고 백성은 넉넉하니 대소 신하들이 나랏일은 생각하지 않고 노는 데만 뜻을 두어 구속받는 것을 싫어해 그 그릇된 풍속의 폐단이 지금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 시기는 신분 고착화가 심했다. 세종이 지방의 관기(官妓) 소생인 장영실을 고위직에 올렸던 파격 인사는 이때가 되면 불가능해졌다. 그의 행실 논란을 떠나 나라에 공을 세운 유자광을 서얼 출신이라 비판하고 관직에서 내쫓은 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이 같은 신분 고착화와 관련이 깊다. 우리 재벌가가 2세를 넘어 3세, 4세가 등장하면서 이런 문제가 우리에게도 발생하고 있다. 조현아 사건이 많은 사람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도 이런 연장선에서 봐야 하지 않을까?
대책은 하나다. 사회적 이동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여기에 여야가 있을 수 없고 좌우가 있을 수 없다. 계층 고착화는 힘없는 사람에게는 기회 박탈임과 동시에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에게는 정당성 약화를 가져다 준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하는 논란도 사회적 이동 가능성이라는 잣대로 보면 선택은 분명해진다. 보편적 복지는 수혜자 전반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적 이동 가능성을 높이는 일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가진 자나 없는 자나 똑같이 지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없는 자에게 더 불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없는 집 자식들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게 시급하다"며 무차별 급식을 내세우고 관철하는 게 지금 좌파 세력의 수준이며 넓게는 우리 사회 수준이다.
사회적 이동 가능성을 높이는 데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대한 합의와 실천 의지를 앞세우고 다른 것들은 뒤로 돌릴 때 꽉 막혀 있는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풀어갈 실마리가 나온다. 더불어 사회적 이동 가능성에 반(反)하는 행위, 즉 특권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과 부를 부당한 방식으로 세습하려는 행위에 대해 좀 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이 뚫리면 약자들에 대한 그 어떤 지원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은 이미 많이 뚫려 있다.
성종 시대도 그런 시대였다. 시대의 과제를 외면한 결과는 처참했다. 바로 그 아들이 폭군으로 지목돼 불행한 종말을 맞았고 조선 왕실 자체가 무력화되면서 신하들이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바람에 백성은 기댈 곳이 없게 돼 버린 것이다. 성종이 오죽 한 게 없었으면 세조가 편찬 작업을 시작한 '경국대전'이 성종 때 완성됐다는 것 하나만 우리가 기억하겠는가?
-이한우 문화부장, 조선일보(1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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