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 리더'는 무모함을 대담함으로 속인다]
[지나친 칭찬]
'불통 리더'는 무모함을 대담함으로 속인다
英 심리학자가 본 '초단절형 인간'
불통, 독단, 야망
스티브 테일러 지음ㅣ신예용 옮김ㅣ21세기북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두 달 전인 1939년 7월.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간디는 폴란드 침공을 준비하던 독일 총통 히틀러에게 “인류를 야만적인 상태로 몰아갈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라며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역사는 바뀌지 않았다. 간디는 1년 뒤 다시 편지를 보내 지적했다. “전쟁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해서 당신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전쟁은 히틀러가 죽고 나서 끝났다.
영국 심리학회 자아초월 심리학분과 의장을 역임한 저자는 설득에 실패한 이유를 두고 “‘비폭력과 폭력’ 리더십 스타일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두 사람의 ‘연결과 단절’ 차이에 있다”고 분석한다. “간디는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초연결형 인간’인 반면, 히틀러는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초단절형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이코패스와 나르시시스트 특성이 합쳐진 인물을 ‘초단절형 인간’이라고 정의한다. 이들은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타인의 권리나 억압에 무관심하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한다. 가장 뚜렷한 특징은 권력과 부, 성공을 향한 ‘강박적 욕구’라고 한다. 공감과 이타심을 중요시하는 초연결형 인간이 권력에 초연한 것과 대조된다. “초단절형 인간은 스스로 불완전하다고 느낀다. 따라서 자기를 완성하려는 방법으로 권력과 지위, 부를 갈망하게 된다. (…) 아무리 큰 권력이나 많은 부를 얻더라도 이들에게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전 세계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한다고 해도 대중에게 충분한 관심을 얻었다고 느끼지 못한다.” 이 같은 특성은 독재자들에게 주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뉘른베르크에서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는 모습. 1928년 나치당은 전국 득표율 2.6%에 그쳤다. 경제 불황을 유대인 탓으로 돌리고, 빈곤층과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펼친 결과, 히틀러가 총통이 되기 1년 전인 1932년 선거에서 득표율을 37%까지 끌어올렸다. 저자는 "민주주의에서도 병리주의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히틀러를 비롯해 북한 김정은, 러시아 푸틴과 같은 독재자들이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도 초단절형 인간의 특성 때문이다. 저자는 나치 체제와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을 모두 경험한 폴란드 심리학자 안제이 로바체프스키가 주장한 ‘병리주의’로 이를 뒷받침한다. 병리주의는 사이코패스 특성을 가진 소수가 정상적인 사람들로 이뤄진 사회를 통제하는 체제를 뜻한다. “인격 장애가 있는 개인이 리더 역할로 부상할 때 사회가 병리주의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 간혹 심리적으로 정상인 사람도 리더의 충동성을 결단력으로, 나르시시즘을 자신감으로, 무모함을 대담함으로 착각한다.”
문제는 “민주주의에서도 병리주의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1928년 독일 총선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은 전국 득표율 2.6%를 얻는 데 그쳤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나치당을 극단적 비주류파로 생각했다.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 이후 독일 경제가 불황에 빠지자, 나치는 독일 경제의 문제를 일으킨 주요 원인으로 유대인을 꼽았고, 일자리 창출과 실업수당 및 사회보장 제도를 통해 빈곤층과 노동자층의 지원을 약속했다. 결국 1932년 선거에서 득표율을 37%까지 끌어올리면서 히틀러라는 초단절형 인간이 독일을 병리주의로 바꿨다. 현대 정치에서도 외부의 적을 상정해 우리 편을 만들고 포퓰리즘을 내세워 인기를 끄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다.
민주주의가 연결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라면 초단절형 인간은 이를 파괴하고 단절을 통해 자신을 지탱한다. 저자는 “우리가 권력에 끌리는 초단절형 인간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때만 등장한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도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초단절형 정치인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연결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선천적 특성이며 단절은 부자연스러운 일탈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며 희망을 던진다. 책의 마지막 세 문장을 통해 ‘충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힌트를 남긴다. “우리가 가장 고립되고 분열돼 있을 때조차 ‘우리는 항상 하나’다. 항상 우리가 알고 있던 것만 기억하면 된다. 언제나 살아온 방식 그대로의 존재가 되기만 하면 된다.”
-김광진 기자, 조선일보(2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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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칭찬
한 살에 한글을 떼고 두 살에 천자문을 뗀 뒤 세 살에 미적분을 풀었다는 천재 소년 김웅용은 요즘 의정부 한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친다. 미국 나사(NASA)에 들어갔다 적응 못하고 돌아와 지방공기업에 취직한 그를 사람들은 '실패한 천재'라 불렀다. 오십 줄에 반백이 된 김웅용은 어릴 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조국과 민족, 세계 평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하겠느냐"였다며 웃었다. 찬사와 기대가 만발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엔 고개를 저었다. "노벨상을 타고 세계 명문대 교수가 되는 것이 과연 성공이냐"고 반문했다. 십대 두 아들에게도 "공부 잘하라"보다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놀아라"는 말을 훨씬 많이 한다고 했다.
▶'칭찬 스티커'는 아이 키우는 집이면 으레 냉장고 벽에 붙은 필수품이다. 초등학교 교실 게시판에도 흔하다. 칭찬 스티커, 칭찬 통장이 교육 현장에 등장한 건 2002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서점가를 휩쓸면서다. 미국 샌디에이고 해양관에서 범고래 '샴'의 쇼를 보고 감동한 저자가 조련사에게서 들은 멋진 쇼의 비밀이 '칭찬'이었다. 조련사가 범고래 다루듯 선생님이 착한 일, 기특한 일을 한 학생에게 스티커를 나눠주기 시작했고 가장 많이 모은 아이에겐 상까지 줬다.
▶그런데 아이들은 고래와 다른 모양이다. 부모가 아이를 지나치게 칭찬하면 자기애(自己愛)가 큰 이기주의자, 나르시스트로 자란다는 연구가 나왔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팀은 "너는 다른 아이보다 특별해"라는 칭찬이 아이 자존을 키워주는 게 아니라 '자아도취'로 엇나가게 한다고 경고했다. '칭찬의 역풍'이다.
▶어느 심리학자는 아이를 지나치게 칭찬하면 아이가 훌륭하지 않다는 게 언젠가 들통날까 봐 불안해한다고 말한다. 자만에 빠져 노력하지 않고, 남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해 쉽게 좌절한다고 했다. 교사들도 칭찬 스티커의 부작용을 말한다. 친구보다 스티커를 많이 받으려고 책을 한 번에 열 권씩 빌려 와 읽기도 한다. 선생님 스티커와 똑같은 것을 구해 오는 아이도 있단다.
▶옛사람들도 칭찬이 지나치면 독(毒)이 된다고 일깨웠다. 실학자 이덕무는 '청장관전서'라는 책에 썼다. '아이에게 총명한 기운이 있으니 반드시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방자하고 거리낌이 없어지며 악해질 것이다.' 비료를 지나치게 주면 꽃을 피우기도 전에 뿌리가 썩어 버린다는 뜻이다. 김웅용은 "아이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게 뭔지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격려해주면 된다"고 했다.
-김윤덕 논설위원/문화부차장, 조선일보(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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