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時事-萬物相]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 [광장에서 길 잃지 않으려면]

뚝섬 2025. 2. 24. 11:08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 

[광장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

 

보수란 대체 무엇인지 묻자
'三無者' 이문열이 답했다
"과거를 악당으로 몰지 마라
그 수고가 오늘을 만들었다"
 

 

경기 이천 부악문원에서 만난 작가 이문열. 출생과 고난, 성공과 불행 등 그가 걸어온 길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닮았다. /이태경기자

 

누구나 일생을 통해 꼭 하고 싶은 이야기, 그래서 평소에는 가슴 깊이 묻어두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는 그것을 직접 글로 펼쳐 보인다. 이문열에게는 ‘영웅시대’(1984)가 그런 이야기였다. 6·25를 전후한 자신의 불행한 가족사. ‘영웅시대’는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으로 당대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문열이 유일하게 초판본을 보관해 온 소설이다.

 

‘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특별전이 열리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그 소장품을 마주했다. 인천상륙작전 직후 월북한 공산주의자 아버지로 인해 수시로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아들의 기억과 감정이 담겨 있다. 이문열은 “내 삶을 완전히 비틀어 놓은 아버지의 월북이 그때의 내게 절실했기 때문에 쓴 것”이라고 했다.

 

빨갱이 가족’ 딱지는 1948년 그가 태어나면서 물려받은 상속재산과 같았다. 오기를 부릴 땐 ‘삼무자(三無者)’라며 큰소리치고 다녔다. 나라가 없고, 아비가 없고, 스승이 없다는 뜻이었다. 월북한 아버지를 둔 불온한 국민은 공무원이 될 수 없었다(연좌제는 전두환 정부에 이르러 폐지됐다). 생활은 파탄의 연속이었고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니 인생의 스승, 학문의 스승도 없었다.

 

‘영웅시대’에서 이문열은 고백한다. 소년 시절에 공산주의라는 말은 피 묻은 칼이나 화약 냄새 나는 총 같았다고. 철이 들면서 공산주의는 형체도 색깔도 냄새도 없는 ‘생각의 다발’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그는 끊임없이 좌와 우를 비교하며 살아야 했다. 좌파는 평등을, 우파는 자유를 우선순위에 둔다. “내가 동의하기 어렵고 거추장스러운 건 좌파가 주창하는 평등이 전체주의, 집단주의로 흐르기 때문이다. 각자 자신의 속도로 걸어갈 수 있는 게 자유라고 생각한다.” 

 

2001년 11월 3일 부악문원 앞에서 열린 이문열 작가 책 장례식. 한 어린이가 관(棺)처럼 묶은 소설책들 앞에서 '영정'을 들고 걷고 있다. 영문도 모르는 어린이에게 어른들이 시킨 일이다. /조선일보DB

 

이문열은 한때 펜을 검(劍)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전능한 검이 아니라 그것을 지닌 사람을 상하게도 하는 면도날이었다. 우파 논객이던 그는 ‘책 장례식’이라는 참사를 겪은 불행한 작가이기도 했다. 낙천·낙선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를 ‘홍위병’에 비유한 칼럼을 쓴 2001년, 자신의 책 수백 권이 화형대에서 불타는 것을 목격했다. 이문열의 삶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닮았다.

 

4년 전 부악문원에서 이문열을 만났다. 교수신문이 2020년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를 뽑을 정도로 ‘내로남불’이 만연한 때였다. 보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물었다.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이라고 이문열은 답했다. “보통은 먼저 산 사람들을 악당으로 몰지 않나. 그런데 오늘은 그들의 수고로 만들어지고 발전해 온 것이다. 물론 악당이 섞여 있었지만서도. 현대사를 보면 박정희 20년과 신군부 10년, 두 군사정권이 절벽처럼 가로막고 있지만 그 시대에 우리 삶은 더 나아졌다. 좋은 것은 빼놓고 왜 나쁜 것만 앞세우나. 적어도 ‘필요악’이었다.” 그런 형태의 권력이 아니고는 해결하지 못할 일이 많았다는 뜻이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마지막 변론기일을 앞두고 전국에서 탄핵 찬반 집회가 열렸다. 이쪽이 내란 세력을 척결하자고 외치면 저쪽은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자고 맞선다. 미워하고 파괴하는 것은 쉽다. 건설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훨씬 어렵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어리석고 나약하지만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문학은 허망해 보여도 새가 울고 개가 짖는 것보다 울림을 줄 때가 있다.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이 보수다. 나라도 없고 아비도 없고 스승도 없다던 ‘삼무자’의 말이라 더 웅숭깊게 들렸다. 

 

이문열이 소장한 '영웅시대' 초판본. 3월 3일까지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특별전(무료)에서 감상할 수 있다.

 

-박돈규 기자, 조선일보(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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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朝鮮칼럼]

동물 세계 존재하는 超정상 자극.. 틴베르헌이 발견, 노벨상 받아
인스타 美人·사교육·주식 차트 등 인간도 과잉 자극·과잉 반응 많아
더 큰 우려는 종교와 정치.. 자칫하면 중심 잃고 교란·표류
정치 과잉 종교 과잉 벗어나 일상의 다양한 신호 집중해야

 

어미 갈매기의 부리 끝에는 붉은 점이 새겨져 있다. 배고픈 새끼 갈매기는 그 붉은 점을 막 쪼아댄다. 그러면 어미는 마치 자동판매기처럼 자신이 물고 온 먹이를 토해내어 새끼를 먹인다. 1950~60년대에 동물학자 니코 틴베르헌은 이런 행동에 대해 짓궂은 의문을 품었다. 만일 훨씬 선명한 붉은 점이 새겨진 더 긴 부리를 인조 모형으로 만들어 제시하면 새끼는 어떤 행동을 할까? 그러자 새끼는 실제 어미는 본 체도 안 하고 인조 부리의 붉은 점만을 필사적으로 쪼아댔다.

 

당하기는 어미도 마찬가지. 어미 갈매기는 본래 둥지 속 알을 열심히 돌본다. 그런데 초대형 가짜 알을 만들어 둥지에 들이밀면 어미는 진짜 알은 외면한 채 가짜 알에만 정성을 다한다. 이런 행동은 특정 자극에 의해 자동적으로 유발되는 선천적 반응(‘고정 행동 패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 자극보다 과장된 자극이 주어지면 더 강하게 반응한다. 틴베르헌은 동물 세계에 존재하는 이런 ‘초정상(超正常) 자극’ 현상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1973년)을 받았다.

 

인간도 다양한 초정상 자극들에 과잉 반응한다. 포르노는 특히 남성에게 훨씬 강렬한 시각·청각 자극을 주어 때로 중독을 일으킨다. 성형 중독이나 외모지상주의도 마찬가지다. TV와 SNS를 켜는 순간 우리는 최고로 매력적인 외모를 인위적으로 추구하는 수많은 초정상 자극들에 정신을 빼앗긴다. 여전히 수렵·채집 시기에 잘 적응해 있는 우리의 뇌는, 모든 부족을 다 뒤져도 구경조차 할 수 없을 거 같은 극강의 매력적 외모를 매시간 처리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우리 수렵·채집인은 인스타그램에서 매번 길을 잃는다.

 

이른바 ‘7세 고시’ 열풍도 초정상 자극에 대한 고정 행동 패턴 중 하나다. 최근 모 방송사에서 방영하여 크게 언급되고 있는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는 유명 선행 학원 입학을 위해 발버둥치는 만 5~6세 아이와 부모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아이들이 풀어야 할 문제의 난이도는 수능 수준인데 난이도는 매년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혀를 찰 일이지만 그들은 절박해 보인다. “어머니, 아이가 7세면 늦어요. 4세부터 시작해야 해요”라는 초정상 자극에 홀리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 자녀의 미래를 과도하게 걱정하는 부모의 불안 본능이 강하게 작동하는 현장이다.

 

물론 수렵·채집 시기에 잘 적응된 자녀들의 뇌도 수능 문제를 4~7세에 풀게끔 진화하지는 않았다. 그 시기는 뇌가 잔가지들을 정리하고 큰 도로를 만들어 정상적 신경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게끔 오히려 신체 활동을 활발히 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부모들은 불안 마케팅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사교육 시장의 초정상 자극에 홀려, 마치 자신의 알은 내팽개치고 커다란 가짜 알을 품는 불쌍한 갈매기처럼, 어린 자녀들을 지적으로 학대하고 있다.

 

종교도 초정상 자극을 발신하기 쉬운 단체다. 종교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담보로 세상에 대한 과도한 단순화를 조장하고 시대착오적 발상을 강요하며 사실 관계에 대한 감수성을 포기한다면 본질을 잃은 이익집단으로 타락하기 쉽다.

 

물론 선전·선동이 난무하는 정치 영역에서 초정상 자극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리고 요즘처럼 정치와 종교의 과잉 신호들이 동맹을 맺고 각자의 동맹 규모와 빈도로 우리 뇌를 교란한다면 정상적 자극으로 살아가는 차분한 일상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런 숫자들은 과잉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주말 광장에 몇 만 명이 모였는가, 얼마나 큰 소리로 외쳤는가, 그리고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자기 확신이 얼마나 큰가를 강조하다 보면, 중도층 유권자들에게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실제 섹스는 포르노처럼 뜨겁지 않다. 정상적 교육에서는 7세가 수능 문제를 풀 수 없다. 돈과 투자 수익만을 최고 가치로 삼는 이들은 주식 차트의 초정상 자극에 삶을 맡긴다. 참된 종교는 광장의 소음이 아닌 세상의 소금으로 인류에 봉사한다. 이런 맥락에서 헌재 판사를 협박하거나 당대표에 대한 비판 자체를 금기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는 초정상 자극에 대한 본능적 과잉 행동 패턴 중 하나다. 과잉 자극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삶은 필경 표류한다. 우리 수렵·채집인의 불행은 매주 광장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이다.

 

초정상 자극의 시대를 돌파할 힘은 오히려 일상의 ‘다양하고 미묘한 신호’에 집중함으로써 생긴다. 정치가 아무리 긴박해도 모든 대화를 정치화하진 말기. 종교가 근본적이라도 합리적 비판은 허용하기. 입시나 경제적 독립이 절박해도 다른 가치들을 구석에 몰아넣지는 말기. 새끼 갈매기가 가짜 인조 부리에 속지 않으려면 진짜 어미 고유의 미묘한 신호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처럼.

 

-장대익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석좌교수·진화학, 조선일보(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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