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해전 영웅의 아내] [연평해전]

[연평해전 영웅의 아내] 

[연평해전] 

 

 

 

연평해전 영웅의 아내 

 

스물여덟 살 김한나씨는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으로 남편 한상국 중사를 잃었다. 결혼한 지 6개월 만이었다. 그 후 겪은 일은 더 기가 막혔다. “남편 좀 바다에서 빨리 꺼내 달라”고 하소연했다가 “당신 남편 구하려고 함정을 대거 투입했다가 북한을 자극해 전쟁 나면 책임질 거냐”는 말을 들었다. 남편의 1주기 때 주한 미군 사령관의 위로 편지를 받았다. 우리 정부는 편지 한 통 안 보냈다. “이러면 누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느냐”며 미국 이민을 떠났다.

 

▶파출부와 식당일로 3년을 버텼는데 향수병이 생겼다. “남편이 목숨 바쳐 지키고자 한 나라인데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사추세츠 우스터의 6·25 기념탑을 방문했다가 미국인들이 연평해전 전사자 추모 벽돌까지 전시한 것을 보고 감동한 것도 귀국을 결심한 계기였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제복 입은 사람들’을 존중하는 나라로 만들고 싶었다.

 

▶돌아온 그녀는 연평해전 영웅을 기리는 일에 팔 걷고 나섰다. 추모 로고를 새긴 티셔츠와 버튼을 만들어 배포했고 연평해전 전사자와 유족에게 가해진 부당한 처우를 질타하는 수기 ‘영웅은 없었다’도 썼다. ‘서해교전’ 명칭을 ‘연평해전’으로 바꾸고 남편이 최후를 맞은 참수리 357호 모형의 전쟁기념관 전시와 연평해전 부상자의 유공자 대우, 남편의 상사 추서 진급을 모두 이뤄냈다. 연평해전 전사자를 순직이 아닌 전사로 대우하는 특별법 제정도 요구해 관철했다. 그 사이 병마로 쓰러졌다가 수술도 받았다.

 

▶김한나씨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는 뉴스가 어제 조선일보에 실렸다. 남편 계급이 상사로 바뀐 뒤에도 국방부 연금은 중사 계급에 준해 지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관련법 개정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었다. 지난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했고 올 3월부턴 국회로 장소를 옮겼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것인데 이번 국회 들어서도 여야 정쟁에 뒷전으로 밀렸다고 질타했다.

 

▶법이 바뀌어도 김씨는 소급 적용이 안 돼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래도 불볕더위 속에 땀 흘리며 서 있는 것은 “제복 입은 영웅들을 위한 일이어서”라고 했다. 김씨의 수기에 그녀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밝힌 대목이 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제 남편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남편이 한 일’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남편 잃은 아픔을 보훈 운동으로 승화한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녀가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김태훈 논설위원, 조선일보(24-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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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연평해전 13주년

 

13년 전 6월로 관객을 데려가는 영화 '연평해전'(감독 김학순)은 평점 9.3점(CGV 홈페이지 집계)을 받으며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 '극비수사'(8.4) '쥬라기 월드'(8.3) '소수의견'(8.6)을 비롯해 현재 상영 중인 주요 상업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다. 2002년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지킨 참수리 357호는 '명량' '국제시장'과 달리 동시대에 잊힌 청춘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현실감이 살아 있는 비극이다.

관객은 영화 속 명장면에 대한 글을 SNS나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의무병 박동혁 상병(이현우) 어머니가 숨을 거둔 아들을 살려보려고 전기충격기를 잡은 채 오열하는 장면, 침몰한 참수리 357호에서 조타장 한상국 하사(진구)의 시신을 인양하는 장면, 357호 정장 윤영하 대위(김무열)의 아버지가 아들이 남기고 간 제복을 부둥켜안는 장면 등이 관람평에 자주 언급된다. 이 밖에도 목숨을 건 교전이 벌어지는 대목, 357호 장병이 모여 2002 월드컵 3·4위전을 응원하는 환상 속 흑백사진, 본편이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12분)에 담긴 윤영하 정장의 생전 인터뷰도 잊지 못할 장면으로 꼽히고 있다.

◇동혁이를 살려줘요

박동혁의 몸에서는 3kg이 넘는 쇳조각이 나왔다.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된 박동혁은 약병을 주렁주렁 매달고 84일간 생사를 헤매다 그해 가을에 떠났다. 영화를 본 관객은 그가 숨을 거뒀다는 사실 때문에 눈물 흘리는 게 아니다. 아들의 사망이 확정된 순간, 말 못하는 어머니(김희정)가 오열하며 전기충격기를 들기 때문이다. 김학순 감독은 동혁이 어머니를 청각장애인으로 표현했다. 너무 할 말이 많아서 오히려 말을 못 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장면은 박동혁이 한상국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가 생일 축하를 해주는 대목 때문에 감정적으로 더 격해졌다. 거리는 온통 월드컵 축제로 들떠 있고 밤하늘에선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어머니는 케이크 불을 끄기 전에 기도하는데, 자식을 군대 보낸 부모 마음이야 소리 내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내 아들 무사히 제대하게 해주십시오"였을 것이다.

◇아버지의 포옹

장교 출신인 윤영하 정장의 아버지(송재호)는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절제돼 있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거나 주저앉지 않는다. 하지만 딱 한 장면, 그가 상실감을 몸으로 표현할 때 관객도 바닥 모를 슬픔을 체험한다. 영결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 앞에 진해의 벚꽃처럼 흰 윤영하의 제복이 보인다. 아버지는 이름표를 쓰다듬다 와락 제복을 끌어안는다. 2002 월드컵 때 대한민국 골문을 지켰던 수문장 이운재는 바로 이 장면에서 울고 말았다.

◇한상국을 물에서 뭍으로

조타장 한상국은 제2연평해전 직후 실종됐다가 41일 만에 인양된다. 침몰한 357호 조타실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됐는데 키에 손을 묶고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배를 지킨 셈이다. "그럼 배랑 결혼해"라는 한상국 아내의 대사, 망연자실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등이 이 대목을 더 명장면으로 만들었다.

김학순 감독은 한상국을 뭍으로 데려오는 장면에 가장 공을 들였다. 무엇보다 수중 촬영을 고집했다. "한상국 하사의 시신을 발견해 수면으로 올리는 대목의 수직적 앵글, 또 그를 찾아 바닷속으로 한없이 내려가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그는 말했다. 경북 울진 앞바다 수심 20m에 가라앉은 난파선을 이용해 촬영하고 컴퓨터그래픽으로 매만졌다.

◇"배는 내가 살릴 테니"

NLL을 넘어 남하한 북한 경비정에서 처음 날아온 85mm 포탄은 조타실에 명중했다. 30분간 교전이 벌어지는데 한상국은 중상을 입고도 의무병 박동혁을 돌려보내면서 "배는 내가 살릴 테니 넌 가서 사람 살려"라고 말한다. 그가 부사관을 대표하면서 장교와 사병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존재였고 남모를 상처를 안고 있었다는 점에서 울림이 크다.

카메라는 조천형 하사가 방아쇠를 당기는 상태로 숨질 때 딸의 사진이 함께 불타는 장면을 비춘다. 그 아이가 357호 여섯 용사의 유일한 자녀 시은이다. 시은이는 지난 2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됐다. '연평해전'은 여섯 용사와 살아남은 유족의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아우르면서 감정을 격발시킨다.

◇흑백사진

이 영화는 월드컵 경기장과 광장의 함성을 들려주며 시작된다. 그날 평화로웠다면 저녁 메뉴는 얼큰한 닭볶음탕이었고 여느 청년들처럼 한국과 터키의 월드컵 3·4위전을 시청하면서 "대한민국"을 외쳤을 것이다. 흑백사진으로 남은 이 영화 속 환상 장면처럼 말이다. 사진 속 얼굴들이 티없이 밝고 죄 없이 맑아서 관객은 더 아팠다.


-박돈규 기자, 조선일보(1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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