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총재 시절인 1996년 중국을 방문했다가 산둥성 태산(泰山)에 올랐다. 잔뜩 흐렸고 안개까지 자욱한 날이었다. 정상에 다다랐을 즈음 이슬비가 내렸다. 그를 취재하면서 궂은 날 다리도 불편한 몸으로 왜 굳이 정상까지 갈까 의아했다. 일행들 사이에서 "태산에 올랐을 때 비가 내리면 천하를 얻는다는 속설이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날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입이 귀에 걸릴 만큼 좋아하던 김 전 대통령을 잊을 수 없다. 1년 남짓 지나 97년 대선에서 그는 대권을 거머쥐었다.
▶2002년 대선 주자였던 김중권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민주당 대표였던 2001년 태산에 올랐다. 덥기만 하고 비는 내리지 않았다. 기자들이 "비가 안 와 섭섭하겠다"고 하자 김 대표는 "비가 안 와서 다행이다. 우산도 필요 없고 내려가기도 안전해서…"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서운한 표정은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듬해 대선 후보 경선에서 탈락했다. 2006년 손학규 경기지사가 태산에 갔을 때도 비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태산이 뭐기에 한국 정치인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태산 일대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보고서 맘먹고 가는 사람도 있다. 태산은 중국 5대 명산 오악(五岳) 중 하나다. 조선 중기 문신 양사언의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로 귀에 익은 그 산이다. 그러나 1545m로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다. 가 보면 이게 그 태산인가 싶을 정도로 허망하다.
▶높이를 떠나 태산은 중국인에게 특별한 산이다. 수천 년에 걸친 역사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무엇보다 진시황 이래 황제들이 천하를 통일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봉선(封禪) 의식을 치른 곳이다. 여기에다 태산에 올랐을 때 비를 맞는 것을 용의 승천에 비유해 좋은 징조라고 해석하는 속설이 있다. 그게 어쩌다 우리 정치인들 귀에까지 들어온 모양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이튿날 태산에 올랐다고 한다. 마침 비까지 내려 우산 쓴 반 총장 사진이 웨이보를 비롯한 중국 SNS에 실렸다. 반 총장은 "태산에 오르면 어떤 곤란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다. "국내 정치에 관심을 둔 적이 없다"는데도 반 총장은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힌다. 그래서 대권 속내를 슬쩍 내보인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정치인들이 남의 나라 산에 별스러운 의미를 두는 게 우습지만 '우중(雨中) 등태산(登泰山)'은 세상 궁금증에 대한 '반기문식' 답변인지도 모르겠다.
-김민철 논설위원, 조선일보(15-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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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山의 특징
중국의 황산(黃山)은 별천지(別天地)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이 있고, 화산(華山)은 무협지에 나오는 명검(名劍)이 반짝거리는 것 같고, 태산(泰山)은 장엄(莊嚴)하다. 태산의 장엄함은 거의 일직선으로 놓여 있는 수천개의 촘촘한 돌계단에서 느껴진다. 태산 정상부의 관문인 남천문(南天門)까지 올라가는 돌계단이 멀리서 보면 거의 일직선이다. 특히 십팔반에서 남천문까지 올라가는 800미터의 코스는 1600여 개의 계단이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만약 갈지(之)자의 형태로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이었으면 장엄함이 덜하였을 것이다. 꼭대기가 한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거대한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태산 남쪽 방향의 수천 개 계단은 신성한 제단에 접근하는 신도(神道)이다. 태산이 자리 잡고 있는 산동반도 지역은 '산해경(山海經)'의 무대이다. 즉 고대 동이문화(東夷文化)의 중심지라는 말이다.
동이문화의 특징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추구하는 신선사상(神仙思想)에 있다. 날개를 달고 하늘로 승천한다는 '신조(神鳥) 토템'의 발원지가 바로 이 태산을 중심으로 한 산동과 요동지역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고대부터 태산은 불로장생하는 신선들이 살고 있다고 알려진 산이었다. 불로장생을 그토록 갈망했던 진시황이 엄청난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멀고 먼 태산까지 온 이유가 순전히 제사(봉선·封禪) 때문이었을까? 대권은 이미 잡았는데 뭐하러 제사를 또 지내겠는가! 제사는 명분이었고 태산의 신선을 만나 불사약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더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山不在高 有仙則名'(산부재고 유선즉명·산은 높이가 중요하지 않고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다)이다. 일찍이 공자도 올라갔고, 한무제도 9번이나 태산에 왔고, 청나라 건륭제는 6번이나 태산에 올라갔다고 한다. 그래서 '제왕의 산'이 되었다. 산의 영검함은 돌에서도 나온다. 태산석(泰山石)은 청회색을 띠고 있는데 중간에 띠를 두른 듯한 무늬들이 많다. 만져보니 아주 단단하다. 돌이 단단할수록 기도발도 잘 받는다. 예로부터 태산석은 귀신을 쫓는 영검한 기운이 있다고 여겨졌다. 문 앞에 세워 놓는 '태산석감당'(泰山石敢當)이 그것이다.
-조용헌, 조선일보(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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