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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山房閑談] [지리산(智異山) 생존법]

뚝섬 2023. 12. 12. 08:38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山房閑談] 
[지리산(智異山) 생존법]

 

 

 

지리산 시인 이원규의 山房閑談


가을은 바야흐로 안개 시즌이다. 낮밤 기온 차이가 13℃를 넘어서고, 마침내 15℃ 이상이 되면 이른 아침마다 물안개와 산안개가 짙게 오른다. 그야말로 몽환적인 풍경이 자주 펼쳐진다. 거기에다 음력 그믐 전후의 맑은 밤이면 산 아래의 안개 너머로 푸른 밤하늘의 별을 동시에 볼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굳이 지리산 주능선이 아니더라도 정령치나 남부능선의 형제봉에 올라도 가히 선경을 볼 수 있다. 섬진강 물안개는 날마다 보아도 그 모습을 달리하며 가슴 설레게 한다. 그리고 국민 출사지인 전북 임실의 국사봉이나 경북 청송의 주산지엔 전국의 진사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룬다.

나 또한 이 가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자정 무렵 모터사이클을 타고 임실의 국사봉을 찾아갔다. 섬진강에 내려앉는 별빛들을 보다가 ‘별밤의 거처’를 임실로 잡은 것이다. 옥정호의 국사정 3층 정자에 작은 텐트 하나를 쳐놓고 나니 그곳은 지상 최고의 거처가 되었다. 옥정호에 깔리는 안개 너머로 떠오르는 별빛과 마주하는 하룻밤은 말 그대로 별유천지 비인간이었다. 가을밤 안개 위에서 빛나는 별밭을 우러르며 꼴딱 밤을 지새고 말았다. 

저 쪽빛! 전북 임실의 새벽 옥정호. 안개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다. 안개 자욱한 옥정호, 드론으로 촬영

내 생애 몇 번이나 더 이런 밤과 새벽을 맞이할 수 있을까. 새벽 4시에 잠시 눈을 붙이려고 텐트 속에 기어들어가도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올려다보았어도 옥정호 밤안개 너머로 지는 별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궁금했다. 하지만 별빛만 보이는 게 아니라 잠시 내려놓은 세상 인간사도 한눈에 다 보이는 듯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입산 18년, 나는 이제 겨우 지리산의 청년이 된 것이다. 나이 50대 중반이지만 청년처럼 이래저래 눈치 안 보고 좀 더 젊게, 자유롭게, 철없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내 인생의 모토는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였다. 그래서 늘 배수진의 자세로 살다 보니 오히려 낙천적, 낙관적 삶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지난해부터 뻔질나게 드나들던 임실의 옥정호에서 내 생애 최고의 장관을 직접 담았으니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새의 눈’인 드론으로 항공촬영을 시도한 것이다. 안개 속에서 솟구치며 솟아올랐다가 다시 안개 자욱한 옥정호의 악어섬으로 내려앉는 장면을 담아냈다. 동영상 촬영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스틸 컷을 제대로 찍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하룻밤 꼬박 새웠지만 온몸의 에너지는 더 충만해졌다.

집에 돌아와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밀린 원고 하나를 마감하고 보니 어느새 다시 가을밤이 찾아왔다. 온 하늘에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다 못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섬진강변 작은 마을, 5년째 빌려 사는 누옥(陋屋) 피아산방에도 별들이 찾아온 것이다. 강아지 얼씨구도 별밤을 서성거리고 종려나무, 가죽나무, 대나무, 감나무 위로 별들이 서로 다른 색깔로 달려왔다. 외등과 방안의 밝은 전등을 끄고 보니 즐거운 별들의 습격이 이어졌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한밤중의 형제봉에 올랐다. 그야말로 온 하늘은 별밭이었다. 백로(白露)에서 추분(秋分)으로 이어지는 가을 밤하늘엔 감히 손가락질 할 엄두조차 못 내도록 별들이 빽빽했다. 별자리에게 길을 물어 임도를 따라 산에 오르니 온갖 풀벌레 소리들 또한 안개처럼 자욱하게 밀려왔다. 이따금 마주치는 고라니들도 멍하니 하늘을 보다 숲으로 사라지고, 나 또한 귀를 쫑긋하며 ‘별말씀’이 아니라 ‘별의 말씀’을 들었다. 별빛 쟁쟁하니 내일 아침 안개 또한 환하겠구나 생각하며 산정에 벌러덩 드러누워 하 많은 별들 중에 북극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별들의 말씀을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냥 듣지도 말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쪼그려 앉았다가 하산하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을 수밖에!

그런데 별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온 뒤 큰 문제가 생겼다. 너무 많은 별들을 사진으로 담아와서인지 한순간에 컴퓨터가 다운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컴퓨터가 ‘별말씀’을 다 하시는 것이었다. 밤새 고생하다가 다음날 아침부터 애를 썼지만 결국 하루 종일 헛수고였다. 어쩔 수 없이 구례의 전문가에게 맡겼더니 5시간 만에 다 고쳤다고 연락이 왔다. 다행히 거금 11만 원을 들여 고치기는 했지만 C드라이브에 담겨 있던 사진과 글들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허탈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디지털 시대의 숙명 같은 것이니 어쩌겠는가. 다시 별들은 뜨고, 사라진 글들은 언젠가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이다.

형제봉 패러글라이딩.

막개발로 자손만대 이어질 별빛들마저 사라질 위기

잠시 허탈해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밤이 오자 다시 해발 1100고지의 산정에 올랐다. 지리산의 야인으로 훌훌 옷을 벗었다가 너무 추워 얼른 입고 말았다. 산정에 쪼그려 앉아 돌이켜보니, 별들에게도 길이 있다는 것을 되새기게 되었다. 별들은 캄캄할수록 더욱 더 빛나며, 우리 삶이 늘 그렇듯이 그 절망의 어둠을 배경으로 등대처럼 더 빛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별과 어둠은 한 몸인 것이다.

그렇다. 저 많은 별들도 아시는지 네온사인 화려한 도시나 부잣집의 불안한 외등이 너무 밝은 집에는 오지 않았다. 너무 가난하여 밤마다 겨우 텔레비전만 켜는 뒷집 할머니의 마당을 찾아오고,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 검은 숲으로만 오시는 것이었다. 캄캄하고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아닌가.

설악산이며 지리산, 국립공원의 산정마다 케이블카가 들어선다면 저 별빛들은 모두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만 해도 캄캄해졌다. 가로등 환해진 4대강에서는 이미 보기 어려운데 마침내 산마저 떠난다면 어찌 될 것인가. 경제개발이나 관광활성화 등의 이유를 들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실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막개발로 자손만대 이어질 별빛들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난 10년 넘게 환경운동이나 생명평화운동을 해왔지만 이제는 그저 지리산의 야인으로 살고 싶다. 하지만 조금씩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 10년 길거리 노숙생활을 하며 도보순례와 삼보일배 등 3만 리를 걸었으니 앞으로 한 10년은 제발 야인의 삶을 살고 싶다. 하지만 설악산이며 지리산 등 삼천리 수려강산을 지키지 않는다면 미래세대에게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지리산에 오기 전에 <북극성>이란 시를 쓴 적이 있다.

숲 속에 홀로 누운 밤이면
나의 온몸은 나침반
그대 향해 파르르 떠는 바늘

밤새 외눈의 그대 깜빡일 때마다
나의 몸은 팽그르르 돌아
정신이 없다

극과 극의 사랑이여
단 하룻밤만이라도
두꺼비집을 내리고 싶다

이 시를 읽고, 구례에 사는 송태웅 시인이 이렇게 해설을 했다.

“빛을 향하여 떠도는 밤-. 숲 속에 홀로 누운 사람이 여기 있구나. 외로움을 향하여 행군했던 지친 영혼을 잠시 숲 속에 누인 사람이. 그 밤에 어둠을 빛내며 별 하나 뜬다. ‘나’는 나침반이 되어 ‘그대 향해 파르르 떠는 바늘’처럼 반응한다. 이것은 높은 정신이나 초월적 세계에 대한 숙명적이자 본능적인 지향의식이어서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지상에서 이르러 보고자 하는 가장 높은 세계에 별 하나 떠 있고 그 별은 운명처럼 ‘나’를 충동하여 편히 못 쉬게 한다. 진실을 위하여 잠 못 이루는 밤, 빛을 향하여 떠도는 밤. 시인은 두꺼비집을 내릴 수 있을까.”

1 안개 속에 휩싸인 국사정의 모습. 이곳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묵었다. 2 밤비에 지는 낙엽들.

천둥과 번개 찍으러 피뢰침의 자세로 기다려

18년 전 지리산에 올 때도 ‘단 하룻밤만이라도/ 두꺼비집을 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입산 18년 동안 나는 자주 두꺼비집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송태웅 시인의 짐작처럼 정말 내가 온전히 두꺼비집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날마다 입산 초심, 그 첫마음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속다짐을 할 뿐이다.

이 가을엔 안개가 끼는 청명한 날도 좋고, 을씨년스럽게 가을비가 내리는 날은 또 그 자체로 운치가 있다. 사실 나는 지난봄부터 안개를 기다리고 비를 기다리고, 벼락을 기다려왔다. 섬진강으로 내리꽂히는 번개를 잡고 싶었다. 그것도 폭우의 밤에 야생화 너머로 떨어지는 번개를! 그러나 실패했다. 비가 내리면 ‘피뢰침의 자세’로 기다렸지만 아쉽게도 올해는 천둥과 벼락이 살짝 비껴지나갔다.

겨우 해질 무렵의 번개 둘을 잡았다. 한밤중이 아니니 장노출로는 잡을 수 없어 빗속에서 계속 셔터를 눌러대다 보니 겨우 잔뿌리 하나 없는 희미한 모습의 번개를 잡았을 뿐이다. 밤늦도록 기다리다 집에 돌아왔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을 크롭해 살짝 포토샵을 해봤다. 전혀 새로운 모습이었다. 그동안 비가 오면 천둥벼락을 기다렸다. 누군가 피할 수 없으면 정면에 서라고 했다. 나는 언제나 적란운과 벼락의 정면에 설 수 있을까. 올해 안에 몇 번의 기회는 더 있을 것이다.

삶은 눈높이에 따라 달라 보인다. 야생화를 보면 야생화의 눈높이로 아니, 키 낮은 꽃일수록 더 낮은 자세로 봐야 하고, 사람을 보면 사람의 눈높이로 봐야 한다. 그러다 나무보다 더 높은 곳에서 ‘새의 눈’으로 수직으로 내려다보는 세상은 또 확연히 다르다. 160cm의 플러스마이너스 30cm 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아주 조금의 차이도 크게 느껴진다. 키가 단 몇 cm만 차이가 나도 더 작거나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런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차이는 참으로 하잘 것 없는 도토리 키재기가 된다. 키가 크고 작고, 돈이 많고 적고, 직위가 높고 낮고 그 모든 것이 평면의 그림으로 보일 뿐이다. 높낮이는 사라지고 저마다의 무늬와 색깔만 남는다. 그리하여 때로는 아주 낮은 곳에서, 그리고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다 아주 높은 곳에서 새의 눈으로도 봐야 한다.

얼마 전에 수구초심의 자세로 내 고향 문경엔 다녀 온 적이 있다. 그날 오전 점촌도서관에 강연하러 가는 길이었다. 거창을 지나 막 김천으로 가는 길에 내 앞 차가 개울가로 내려가려다 공사 중인 도로에서 우왕좌왕 하던 고라니를 치고 말았다. 강연제목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SUV 차량은 브레이크를 잡으며 몸부림치더니 고라니의 옆구리를 치여 순식간에 죽여 놓고 저만 살았다는 듯이 서서히 멀어져갔다.

간신히 브레이크를 잡고 공터에 바이크를 세웠다. 멍하니 서 있다가 후다닥 달려가 숨이 덜 끊어진, 아무 죄도 없는 고라니에게 교장 선생님처럼 훈계를 했다. 화가 났다. “고라니, 이 새끼야, 네가 죽을 짓을 했구나!” 숨이 덜 끊어진 고라니에게 직업의식 투철한 의사처럼 아무 죄도 없는 고라니에게 죄를 전가시켰다. 도저히 살릴 수 없는 고라니의 인증 샷을 찍고는, 찍다가 엎드려 반대편 차량에 나도 치여 죽을 뻔하면서, 욕을 먹으며 벌떡 일어나 교통 통제를 하고는, 숨이 막 끊어지는 고라니를 풀밭에 겨우 옮겼다. 나도 모르게 마구 화를 내며 채 덜 감은 눈을 감겨 주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빌려 사는 섬진강변 누옥에도 별빛들은 찾아온다.

절대 고독 탐닉하는 몽유야인

별밭을 우러르며 무더웠던 지난여름을 돌아보았다. 몽유 야인(夢遊 野人)으로 살기에는 너무 번잡하고 바쁜 일상이었다. 어쩌다가 덜컥 방송출연 결정을 하는 바람에 장장 보름 동안의 강행군이 이어졌다. 다시 하라면 참으로 못 할 짓이지만 그래도 마음을 먹었으니 최선을 다했다. 9월 23일 수요일 오후 7시30분~8시30분, 가을개편 첫 방송인 KBS 1TV ‘휴먼다큐 사람과 사람들’ 프로그램이었다. 내레이션을 가수 최백호 선생이 맡았다니 더 기대가 컸다.

등단 31년의 시인 행세도 빼고, 시를 쓰는 사진가니 하는 꼬락서니도 빼고, 또 풍류도니 방외지사니 하는 어깨 힘도 다 빼고, 내 일생의 꿈인 ‘지리산 날라리’ 역할을 반쯤은 소화한 것 같다. 방송출연 덕분에 돌이켜보니 내가 내게 선물한 것 중의 최고는 지리산행이었다. 어느새 18년이 되었다. 무책임, 루저, 후안무치 등 돌을 던지면 돌을 맞겠다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결행한 지리산 입산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준 선물의 백미는 모터사이클이었다. 지리산에 땅 한 평, 내 집 하나 갖지 않으려는 조건이었다. 기마족의 자세로 35년간 100만 km 이상을 달리며 한반도 남쪽의 거의 모든 마을들을 둘러보았다. 거기에다 또 하나의 큰 선물은 카메라였다. 세상을 새롭게 보며 지난 4년 정도 15만 km를 찾아다니며 온갖 희귀 야생화들을 만났다. 10년간 3만 리 순례 길에서 무너진 건강마저 온전하게 되찾았다.

그리하여 다시 야인의 날들이 다가왔다. 그냥 야인이 아니라 나 홀로 절대고독의 시간을 탐닉하는 몽유 야인! 마침내 안개 시즌이 다가왔다. 산정 운무 속에서 셀프카메라의 매력에 푹 빠지며 아주 천천히 7년 만의 신작 시집을 마무리 할 때가 온 것이다.

꽃무릇을 찾아온 긴꼬리제비나비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소주 생불 이원규

입산 3년 만에 주먹밥도 떨어지고
피아골 아지트에서 막 동면 끝낸
반달가슴곰의 부스스한 얼굴로 하산하는 길
서굴암 석실 속의 약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는데
주먹크기의 모조 금동불상 아래
시주금 1만8천3백원이 놓여 있었다
그 누구의 간절한 기도인지
애써 외면하며 돌아서 나오는데
금동부처가 자꾸 불콰한 소주병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돈 안 벌고 못 벌고 안 쓰고
산짐승처럼 살다 보니 단돈 10원도 없었다
한참 내려오다 돌아가 날름 3천 원을 훔쳤다

섬진강변 외곡검문소 앞 슈퍼에서 소주 두 병을 샀다
도둑놈의 걸음걸이가 경쾌했다
피아산방에 돌아와 이승의 마지막 술이려니 하고
일단 소주 한 병을 목구멍 폭포로 털어 넣으니
초승달이 뜨고 자꾸 저승새가 울었다 
서굴암 석실 속의 모조 금동불상이 생불처럼 보였다
아직도 일곱 잔 반이 남았으니
하루에 한 잔씩, 티스푼으로 떠 마시는 술마저 아까웠다

지리산하 외딴집에서 마지막 소주 한 잔을 마시는 데
58분47초가 걸렸다 15년 전의 일이었다
목마른 병아리처럼 쇠 젓가락으로 찍어 마시니
어느새 입 속은 소주바다, 혓바닥은 해일
단 한 잔만으로도 알딸딸하니 극락의 잠이 들었다  

-글·사진 이원규 시인, 조선닷컴(1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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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智異山) 생존법


[조용헌 살롱]

 

 

 

지리산은 구례군,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남원시와 같은 5개 시·군을 품고 있는 한국 최대의 산이다. 둘레는 대략 340km. 850리에 해당한다. 풍진 세상을 떠나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산이 바로 지리산이다. 그래서 '지리산로드' 850리는 한국의 실크로드이기도 하다.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속을 벗어난 수많은 방외지사(方外之士)들이 오고가면서 선(仙), 불(佛), 유(儒)의 문화를 꽃피웠다.

이러한 전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현재 지리산에는 약 3000명의 직업 없는 '낭인과(浪人科)'들이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3000명이란 수는 5년 전쯤 경찰서 정보과에서 조사한 통계다. 이 낭인들이 하는 일은 다양하다. 기공(氣功) 하는 사람들, 무속신앙 하는 사람, 그림 그린다, 글 쓴다, 사진쟁이, 녹차 만드는 사람, 사업 부도나서 들어온 사람, 불치병 고치러 들어온 사람, 천연염색하는 사람, 떠돌이 승려 등등이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밥 굶지는 않는다. 이 골짜기 살다가 저 골짜기로 이사를 다니기 때문에 정확하게 통계를 낼 수는 없다. 남쪽의 화개에 살다가 칠선계곡으로 옮기고, 실상사 인근의 뱀사골로 옮기는 식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리산에 오면 '자살하는 사람 없고, 굶어 죽는 사람 없다'는 사실이다. 자살이 없고, 굶어 죽는 사람이 없는 산이 지리산이다.

지리산에서 생존하는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지리산에 기대서 먹고산다. 약초를 뜯어서 팔거나 아니면 등산객들 배낭이라도 대신 들어다주면 먹을 양식은 생긴다. 그 다음 단계는 도시에 살던 사람들에게 기대서 먹고산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봄에 매실주라도 만들어주면 이 사람들이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돈 봉투도 놓고 가고 먹을 것도 갖다 주고 간다. 오고 가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을 만드는 단계이다. 나무공예, 도자기, 작설차, 천연염색 등을 배우게 된다. 대체적으로 3년 정도 지나면 정착에 들어간다는 게 이 분야의 전문가인 이원규(43) 시인의 분석이다. 이 시인은 7년 전 서울에서 월간지 기자를 하다가 문득 산이 그리워 단돈 200만원 가지고 지리산으로 뛰어든 인물이다.

-조용헌, 조선일보(0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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