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현으로 건너간 백제인들]
[유네스코 유산에 오른 百濟]
나라현으로 건너간 백제인들

호류지 백제관음당 사진 : 호류지 홈페이지
‘감을 먹는데 종이 울리는구나. 호류지!’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하이쿠 가운데 한 수다. 오늘날 세계 문학사에 하이쿠라는 이름을 남긴 마사오카 시키가 나라현을 여행하며 지은 시다. 시키는 폐결핵을 앓아 고향 마쓰야마에서 요양하다가 도쿄로 돌아가는 길에 호류지를 둘러본다. 그러다가 고즈넉한 찻집에서 땀을 식히며 단감을 먹는데, 천년 고찰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저 그뿐인 단출한 한 줄 시. 그럼에도 어렴풋한 종소리가 백 년을 거슬러 여기 울리는 듯하니, 과연 순간을 붙잡는 찰나의 예술이다.

백제관음을 보는 이 대통령과 다카이치 수상 사진 : 일본총리실 홈페이지
호류지에는 7세기 중반 완성한 백제관음보살입상이 있다. 녹나무로 만든 높이 2m가 넘는 이 입상은 왜에 정착한 백제인의 후예가 만든 걸로 알려졌다. 호류지를 건설한 쇼토쿠태자는 신하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백제 불교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멸망 후 도망쳐온 백제인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 주고 후하게 대접하기도 했다. 와쓰지 데쓰로는 ‘고찰순례(古寺巡礼)’에서 이 불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 둥글고 청아한 팔뚝과 맑고 청초하며 매끄러운 가슴의 아름다움은 인체의 미에 익숙한 마음에서 우러난 소산이 아니라, 비로소 인체의 끝 모를 아름다움을 발견한 놀라움의 소산이다. 그 어렴풋한 미소에 깃든 따사로운 그리움, 동경(憧憬)의 결정과도 같은 희미한 표정에는 자비로 가득한 순수가 깃들어 있다. 갸름하고 부드러운 옆얼굴에도, 기묘하게 물결치는 가냘픈 몸에도.’

백제관음보살입상 정면 사진 : 위키백과
이번에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수상이 호류지의 보물 창고 백제관음당에서 관음상을 보는 사진이 공개되었다. 먼 옛날 나라현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숨결을 불어넣은 거대한 입상이 자그마한 사람들을 굽어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왼손에는 이승의 고통과 슬픔을 잊게 하는 공덕수가 든 물병을 들고, 은은하게 웃는 자애로운 신의 입가에는 “서로 손잡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가 흐르는 듯하다.
-정수윤 작가·번역가, 조선일보(2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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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유산에 오른 百濟
"조선의 역대 왕조 가운데 바다 건너 영토를 둔 왕조는 백제밖에 없었다."
일본 고대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는 나라(奈良)의 정창원(正倉院)에는 백제 의자왕이 일본 실권자 후지와라에게 보낸 바둑판과 바둑함이 남아 있다. 바둑판 모서리에는 등을 둘 가진 낙타가 그려져 있고 은으로 만든 바둑함에는 코끼리가 새겨져 있다. 쌍봉낙타는 몽골쯤 가야나 볼 수 있고 코끼리는 인도·동남아가 고향이다. 백제에서 만들어 보낸 물건에 어떻게 이런 동물 모양이 들어갔을까.
▶그러고 보니 1993년 충남 부여에서 발굴된 백제금동대향로에는 악어도 조각돼 있다. 악어는 물속에 들어가 있는 듯 주둥이에 기포(氣泡)가 달려 있다. 악어를 실제 보지 않고는 이런 생생함을 담기 힘들 것 같다. 백제사 전공인 이도학 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이를 "백제가 얼마나 국제적이었나 보여주는 물증"이라고 단언한다. 백제인들은 발달한 항해술과 조선(造船) 기술을 바탕으로 일본·중국은 물론 동남아까지 누볐다. 중국 광서 장족자치구에는 지금도 백제허(百濟墟)라는 지명이 있다. 백제소학교, 백제여행사도 있다.

▶우리말 '시시하다'를 일본에선 '구다라나이'라고 한다. '구다라'는 백제를 말한다. 그러니까 백제 것이 아니면 시시하다는 뜻이다. 불교와 천자문 등 선진 문물이 대부분 백제에서 건너갔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백제의 세 번째 수도 사비성, 지금의 부여는 중국·일본·동남아 사람이 오가고 각지의 온갖 특산물이 모이는 국제도시였다. 지금 부여읍 인구가 2만여명인데 당시엔 5만~6만명이나 됐다. 성 안팎에 정림사 천왕사 같은 절들이 헤아리기 힘들게 많았다.
▶백제가 웅진(공주)에서 사비로 천도한 것은 538년 성왕(聖王) 때였다. 오랜 계획과 첨단 공법 덕에 사비의 시가지는 정연한 바둑판 같았다. 현재 부여군청 앞 로터리에서 부여박물관에 이르는 길은 백제 때 만들어진 길이 발전한 것이라고 한다. 길 양편에서 그때의 배수로 흔적이 발견됐다.
▶그러나 최인호의 소설 제목 '잃어버린 왕국'처럼 백제는 오랫동안 역사의 뒷전에 있는 느낌이었다.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고구려, 삼국통일 위업을 이룬 신라에 비해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제 유네스코가 공주·부여·익산에 있는 백제역사유적 8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들 유적이 인류 가치 교류의 중요한 증거이고 문화의 우수함과 독창성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이번 지정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선 백제사를 보는 시야를 백제 사람들이 세계를 봤던 것만큼 넓혀야 할 것이다. 단재 신채호의 말을 빌어 백제를 상상하고 싶다. "조선의 역대 왕조 가운데 바다 건너 영토를 둔 왕조는 백제밖에 없었다."
-김태익 논설위원, 조선일보(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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