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입문하게
된 이후로 백두대간 종주의 꿈은 항상 용틀임하며 나의 마음 한켠을 압박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07년 6월 29일 지리산 종주를 시작으로 나의 백두대간 종주기는 시작된다. 적어도
대간 종주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살면서 정말 힘들거나 난관에 봉착할 때면 군대생활의 추억이 그 난관을 극복하게 해주는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러나 군 생활은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라도 넘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느지막이
나이 들어 시작된 대간 종주는 자신과의 싸움의 연속이었고, 선택권은 항상 나에게 있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었지만 그 유혹을 이겨낸 결과로서 남다른 의미가
부여됐다.
-2012년 4월 28일 백두대간 43구간 백복령~석병산~삽당령 구간을 지나면서 백복령 비석 앞에서.
온몸을 에이는
칼바람 몰아치는 영하의 한밤중에, 아니면 궂은 비바람 몰아치는 악조건 속에서 대간 마루금을 걸으며 아득히
저 아래 민가에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그 따뜻한 아랫목과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상상을 했었다. 정말
힘들 때마다 ‘내가 왜 이 길을 걸어야만 하나’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그때마다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걸었다. 고통은 무시하라고 스스로에게 자책을 하며 걸었다. 돌이켜 보면 아득한 길이지만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영상은 남은 내 생애 동안 의지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동반자가
되리라.
동엽령~빼재 구간에서 야간에 눈길 속에서 길을 잘못 들어 탈진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맞아
정말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동원해서 무사히 도착했던 아찔한 기억…. 고모령~대야산 구간에서 100여m는
족히 될 듯한 수직에 가까운 암벽 구간을 눈 쌓인 야간에 밧줄에 의지해서 통과할 때 한쪽 팔이 불편한 산우님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평상시 비상용으로 휴대하고 다니던 데이지 체인을 이용해서 그분을 보조 자일로 묶어서 무사통과했던 기억….
사실 산행 경력이 쌓일수록 배낭의 짐이 점점 많아지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건 필연이라고 했다. 대간
산행 중 어렵거나 가벼운 위기를 몇 번 겪다 보니 항상 최악의 비상상황을 대비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
또한 나를 위한다기보다는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거의 사용할 일이 없을
수도 있지만 어쩌다 한번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는 해답을 한순간에 얻는 일 이기도 했다.
화령재~속리산 구간에서는 35℃가 넘는 찜통더위
속에서 원래 예상했던 산행시간 13시간을 훌쩍 넘어서게 되고, 도중에
식수가 떨어져 더위와 갈증에 무심히도 힘들어 했었다. 나중에 계곡을 만나 꿀물같이 퍼마시던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무박으로만 진행하다 보니 무릎에 무리가 와서 한동안 대간산행을 쉬어야 할 때는 상실감에 또 다른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컨디션 난조로 다리에 경련이 나서 아무도 모르게 아스피린을 씹어 삼키며 응급조치하며 걸었던 기억…. 화방재와 금대봉~은대봉 구간의 수많은 야생화들에 취해서 머물러 있고만
싶어지던 기억…. 백복령~삽당령 구간에 지천으로 피어 말을
걸어 주고 응원해 주던 얼레지와 노루귀의 군락은 생을 다하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주저앉고 싶은 나약한 본심 이겨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가늠할 수 없던 상황에서 정말로 힘이 바닥에 닿았는데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고 그냥 거기서 뒷일 생각
없이 드러눕고만 싶은 순간에 하늘 끝이 안 보이는 까마득한 오르막이 나타나는 절망감도 맛보았다. 주저앉고만
싶던 나약한 본심을 이겨내고 내가 선택한 이 길은 어떻게든 가야 한다는 집념과, 한편으로는 담담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진리도 배웠다.
앞으로 사는 동안 난관이 오면 또 그렇게 이겨내리라 다독인다. 정말 힘들게 산행을 마치고
나서 신발을 벗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글 때의 시원함이란 하나의 예술이었다.
남들이 볼 때 그까짓 백두대간 종주가 뭘 어쨌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의 인생에선 큰 언덕이었고 사건이었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종주를 할 수 없기에 더 값진 것이라고 했다.
하나의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잉태한다. 혹여 사는 동안 통일을 맞을 수만 있다면 향로봉을
지나 백두산까지 도전을 하리라는 설렘으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해 본다.
지리산에서부터 달려온 백두대간 종주의 발걸음을 멈춰야 하는 진부령. 진부령 고갯마루에 내려서서
향로봉으로 오르는 군사도로를 바라보며 대간 종주를 무사히 마쳤다는 기쁨과 아직 남은 백두대간 구간을 갈 수 없다는 슬픔을 동시에 맛본다.
대간 종주 산행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용기를 주고 말없이 지켜봐 준 나의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기나긴 시간 무사하게 품어 주시고 백두대간 종주를 허락해 주신 백두대간 산신령님께 한없는 감사를 바친다.
-김주영(1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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