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산-산행이야기]

[스크랩] 내 인생의 또 다른 이정표, 백두대간 종주 산행

뚝섬 2013. 6. 21. 13:22

산에 입문하게 된 이후로 백두대간 종주의 꿈은 항상 용틀임하며 나의 마음 한켠을 압박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07 6 29일 지리산 종주를 시작으로 나의 백두대간 종주기는 시작된다. 적어도 대간 종주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살면서 정말 힘들거나 난관에 봉착할 때면 군대생활의 추억이 그 난관을 극복하게 해주는 정신적인 지주였다.

그러나 군 생활은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라도 넘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느지막이 나이 들어 시작된 대간 종주는 자신과의 싸움의 연속이었고, 선택권은 항상 나에게 있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었지만 그 유혹을 이겨낸 결과로서 남다른 의미가 부여됐다.


-2012 4 28일 백두대간 43구간 백복령~석병산~삽당령 구간을 지나면서 백복령 비석 앞에서.

 

온몸을 에이는 칼바람 몰아치는 영하의 한밤중에, 아니면 궂은 비바람 몰아치는 악조건 속에서 대간 마루금을 걸으며 아득히 저 아래 민가에 반짝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그 따뜻한 아랫목과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상상을 했었다. 정말 힘들 때마다 ‘내가 왜 이 길을 걸어야만 하나’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그때마다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걸었다. 고통은 무시하라고 스스로에게 자책을 하며 걸었다. 돌이켜 보면 아득한 길이지만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영상은 남은 내 생애 동안 의지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동반자가 되리라.

동엽령~빼재 구간에서 야간에 눈길 속에서 길을 잘못 들어 탈진 직전까지 가는 상황을 맞아 정말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동원해서 무사히 도착했던 아찔한 기억…. 고모령~대야산 구간에서 100m는 족히 될 듯한 수직에 가까운 암벽 구간을 눈 쌓인 야간에 밧줄에 의지해서 통과할 때 한쪽 팔이 불편한 산우님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평상시 비상용으로 휴대하고 다니던 데이지 체인을 이용해서 그분을 보조 자일로 묶어서 무사통과했던 기억….

사실 산행 경력이 쌓일수록 배낭의 짐이 점점 많아지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건 필연이라고 했다. 대간 산행 중 어렵거나 가벼운 위기를 몇 번 겪다 보니 항상 최악의 비상상황을 대비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 또한 나를 위한다기보다는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거의 사용할 일이 없을 수도 있지만 어쩌다 한번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는 해답을 한순간에 얻는 일 이기도 했다.

화령재~속리산 구간에서는 35℃가 넘는 찜통더위 속에서 원래 예상했던 산행시간 13시간을 훌쩍 넘어서게 되고, 도중에 식수가 떨어져 더위와 갈증에 무심히도 힘들어 했었다. 나중에 계곡을 만나 꿀물같이 퍼마시던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무박으로만 진행하다 보니 무릎에 무리가 와서 한동안 대간산행을 쉬어야 할 때는 상실감에 또 다른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컨디션 난조로 다리에 경련이 나서 아무도 모르게 아스피린을 씹어 삼키며 응급조치하며 걸었던 기억…. 화방재와 금대봉~은대봉 구간의 수많은 야생화들에 취해서 머물러 있고만 싶어지던 기억…. 백복령~삽당령 구간에 지천으로 피어 말을 걸어 주고 응원해 주던 얼레지와 노루귀의 군락은 생을 다하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주저앉고 싶은 나약한 본심 이겨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가늠할 수 없던 상황에서 정말로 힘이 바닥에 닿았는데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고 그냥 거기서 뒷일 생각 없이 드러눕고만 싶은 순간에 하늘 끝이 안 보이는 까마득한 오르막이 나타나는 절망감도 맛보았다. 주저앉고만 싶던 나약한 본심을 이겨내고 내가 선택한 이 길은 어떻게든 가야 한다는 집념과, 한편으로는 담담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진리도 배웠다.

앞으로 사는 동안 난관이 오면 또 그렇게 이겨내리라 다독인다. 정말 힘들게 산행을 마치고 나서 신발을 벗고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글 때의 시원함이란 하나의 예술이었다.

남들이 볼 때 그까짓 백두대간 종주가 뭘 어쨌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의 인생에선 큰 언덕이었고 사건이었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지만 아무나 종주를 할 수 없기에 더 값진 것이라고 했다.

하나의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잉태한다. 혹여 사는 동안 통일을 맞을 수만 있다면 향로봉을 지나 백두산까지 도전을 하리라는 설렘으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해 본다.

지리산에서부터 달려온 백두대간 종주의 발걸음을 멈춰야 하는 진부령. 진부령 고갯마루에 내려서서 향로봉으로 오르는 군사도로를 바라보며 대간 종주를 무사히 마쳤다는 기쁨과 아직 남은 백두대간 구간을 갈 수 없다는 슬픔을 동시에 맛본다.

대간 종주 산행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용기를 주고 말없이 지켜봐 준 나의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기나긴 시간 무사하게 품어 주시고 백두대간 종주를 허락해 주신 백두대간 산신령님께 한없는 감사를 바친다.

 

-김주영(13-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