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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 [1970년대 고도성장의 상징 '삼일빌딩']

뚝섬 2023. 4. 6. 08:11

[63빌딩] 

[1970년대 고도성장의 상징 '삼일빌딩']

 

 

 

63빌딩

 

'한강의 기적' 상징하는 고층 건물… 특수 코팅 창으로 금빛

 

총 1만3516장의 유리창으로 이뤄진 63빌딩의 겉모습. /한화그룹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분관이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들어온다고 해요. 퐁피두센터는 루브르박물관·오르세미술관과 더불어 프랑스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데요. 세계적 명성의 미술관이 한국에 지점을 내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연 2회 퐁피두센터 소장품으로 대규모 전시도 연다고 합니다.

63빌딩은 대한민국의 급격한 성장을 뜻하는 '한강의 기적'의 상징이에요. 무엇보다 한국의 대표적인 고층 건물이죠. 1985년 완공 당시 높이(249.6m)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혔어요. 당시 아시아 최고층 빌딩이었던 일본 도쿄의 '선샤인 60' (239.7m)보다도 높았어요. 1987년 싱가포르에 '원 래플스 플레이스'(281m)가 세워질 때까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어요. 국내 위상은 더욱 확고합니다. 2003년 목동 하이페리온(256m)이 완공될 때까지 18년간 한국 최고층 빌딩 자리를 지켰어요. 이후 서울 도곡동 삼성 타워팰리스(265m), 여의도 IFC(285m), 여의도 파크원 타워(333m), 해운대 엘시티 더샵 랜드마크 타워(412m), 롯데월드타워(555m) 등 63빌딩보다 높은 건물이 생겼어요.

곡선을 그리며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63빌딩의 세련된 디자인은 미국의 유명 설계회사인 '스키드모어, 오잉스 앤드 메릴(SOM)'의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는 건축가 박춘명이 외관 설계를, 얼마 전 별세한 이리형 한양대 명예 교수가 구조설계를 각각 맡았죠. 진도 7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만들었어요. 63빌딩은 황금색을 연상시키는 외관으로 유명한데요. 이 같은 색깔은 황금색 이중 반사 유리 때문에 나타나는 건데 처음 63빌딩을 지었을 때에는 유리창에 진짜 금을 코팅했다고 해요. 63빌딩에 설치된 유리창은 총 1만3516장인데, 각각의 유리창에 0.5g의 공업용 금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13년에 니켈 등을 함유한 특수 코팅 창으로 바꾸면서 이제 63빌딩 겉면에는 금이 없어요.

63빌딩이란 이름은 건물의 층수에서 비롯됐습니다. 63빌딩은 지상 60층에 지하 3층짜리 건물입니다. 지상·지하를 합쳐 총 63층이죠. 하지만 사실은 숨은 층이 존재해요. 60층 전망대 위에 61층이 있는데, 이곳은 직원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그런데 왜 지상 61층이 아닐까요. 63빌딩에는 44층이 없기 때문이에요. 43층에서 바로 45층으로 넘어갑니다. 불길한 숫자로 여겨지는 4가 반복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지상 60층이 된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조선일보(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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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고도성장의 상징 '삼일빌딩'

 

서울 종로구 광화문 청계천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20여분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유독 우직한 느낌의 직사각형 빌딩이 모습을 드러낸다. 철골이 가르고 있는 네모 반듯한 유리창에는 짙은 색 유리가 끼어 있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반듯하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런 다소 투박한 외관 탓에 이 건물은 각양각색의 현대식 고층 빌딩군 사이에서 더 눈에 띈다. 우리나라 최초의 마천루로 꼽히는 서울 종로구 관철동 ‘삼일빌딩’이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 삼일빌딩.

 

 

◆ 한국 마천루의 효시

지금이야 50층을 넘나드는 고층 빌딩이 흔하지만, 삼일빌딩이 완공되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고층빌딩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연면적 3만6000여㎡에 114m, 31층 높이로 우뚝 선 이 건물은, 1985년 여의도 63빌딩(한화63시티)이 들어서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1969년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삼일빌딩. 주변 건물들의 높이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조선일보 DB 

 

완공 당시에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켜서, 건물 맞은편 길가는 손가락으로 건물 층수를 세어보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현재 종로타워가 있는 옛 화신백화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삼일빌딩 층수를 세는 것이 당시 서울의 주요 관광 코스 중 하나였다고 알려져 있다.

197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라, 정부가 발행하는 홍보 책자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삼일빌딩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도 이 건물 최고층 스카이라운지에 자주 들러 시시각각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둘러봤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당시로선 첨단 공법이 사용된 건물이라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 건물은 삼미그룹이 발주했고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는 고 김중업씨가 설계했는데, 당시에는 드물었던 ‘커튼월(curtain wall)’ 방식이 적용됐다. 커튼월 공법이란 철골을 외벽으로 드러내고 철골 사이를 유리로 채우는 방식으로 건물을 짓는 것을 말한다. 김중업씨는 “31층의 높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보를 뚫고 닥트를 배열해 날씬하게 보이려고 무척 애를 썼다”고 훗날 회고했다.

 

1970년대 서울 중구 무교동 일대. 멀리 사진 왼쪽 높은 건물이 삼일빌딩이다. /조선일보 DB 

 

이런 과정을 거쳐 태어난 삼일빌딩은 당대의 세계적인 건축가였던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가 지은 미국 뉴욕시 ‘시그램 빌딩’과 외관이 유사해 일각에선 ‘베끼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삼일빌딩이 국내 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삼일빌딩에서 남쪽 방향으로 내려다본 모습. 멀리 남산타워가 눈에 띈다. 

 

◆ 세월따라 굴곡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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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의 세월만큼이나 굴곡도 만만치 않다. 먼저 김중업씨는 이 빌딩을 완공한 이후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설계비용을 모두 받지도 못한 채 1년 만에 프랑스로 강제 출국돼, 한동안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삼일빌딩에서 서쪽으로 내려다 본 모습.

 

IMF 외환위기 때는 빌딩 소유주였던 삼미그룹이 경영난에 몰려 이 빌딩을 산업은행에 매각했고, 산업은행은 2001년 502억원을 받고 홍콩에 주소를 둔 ‘스몰록 인베스트먼트’에 팔았다. 2008년 대우그룹 회생을 위해 구명 로비를 했다는 혐의로 구속됐던 고 조풍언씨가 이 빌딩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삼일빌딩에서 동쪽으로 내려다 본 모습.

 

한때 한국 최고의 마천루 위상을 누렸던 건물답게, 전망도 최근에 지어진 고층 건물 못지 않다. 남쪽으로는 삼일대로 주변 고층빌딩 사이로 남산타워를 볼 수 있고, 동·서쪽 높은 업무빌딩 사이로 청계천변이 길게 뻗어 있다. 북쪽으로는 북악산을 병풍 삼아 탑골공원의 녹지와 중·저층 건물들이 오밀조밀 몰려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그간 31층에 뷔페 음식점이 있어서 방문객이면 누구나 전망을 즐길 수 있었지만, 지난해 말 음식점이 문을 닫은 뒤로는 입주업체 직원들만 건물을 출입할 수 있다는 점은 아쉽다. 

 

삼일빌딩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본 모습. 

 

현재 건물 시설관리는 삼일개발이 맡고 있고, IT서비스·컨설팅 업체인 메타넷과 대우정보시스템, 모바일 부동산 앱을 운영하는 직방 등이 입주해 있다. 한 입주업체 관계자는 “빌딩이 청계천변에 있어 주변 전망이 뛰어나고 교통도 편한 곳에 있어 사옥으로서의 기능에도 손색이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조선닷컴(1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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