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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값 1만6000원... 北이 이재용 면박줬던 말 떠오른다] ....

뚝섬 2023. 4. 3. 09:43

[냉면값 1만6000원... 北이 이재용 면박줬던 말 떠오른다] 

[나는 평양냉면을 모른다]

 

 

 

냉면값 1만6000원... 北이 이재용 면박줬던 말 떠오른다

 

최근 서울의 유명 냉면집 봉피양이 냉면 값을 1만5000원에서 1만6000원으로 올렸다. 우래옥에 이어 ‘1만6000원 냉면’이 또 등장했다. 또 다른 냉면집 을밀대의 경우, 지난달에 물냉면과 비빔냉면 가격을 1만5000원으로 올렸고 회냉면은 1만8000원이나 한다. 냉면 값이 2만원 될 날도 머지않은 듯싶다.

 

▶냉면은 실향민들의 그리움을 달래주는 ‘영혼의 음식’이었다. 맵고 짠 강한 맛이 아닌, 담백한 맛에 ‘배우고 익혀야 맛을 알게 되는 음식’이라는 표현도 붙어 있다. 그런 맛에 별로 익숙하지 않던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2018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평양냉면 인기가 확산했다. 미국에서 자라나 평양냉면 맛을 모르다 최근에 그 맛에 푹 빠졌다는 가수 존 박은 ‘냉면꼰대 존박이 추천하는 인생 냉면 맛집’이라는 영상을 찍어 올리고는 “자극 없는 슴슴함에 가득 취해보세요”라고 권한다. 평양냉면 맛집을 찾아다니며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평뽕족’(마약처럼 평양냉면에 중독된 사람들), ‘옥동자’( ‘옥’으로 끝나는 평양냉면집을 즐겨찾는 젊은이), ‘완냉족’(평양냉면 완전 정복) 같은 유행어도 등장했다.

 

인기가 높아진 바람에 냉면이누들플레이션’(누들·국수+인플레이션) 주도하고 있다. 1만원대 중반에 팔리는 냉면 재료비는 많아야 3000~4000원대로 추산된다. 냉면집 주인들은 재료비, 인건비, 가스료, 전기료 등이 다 올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월 기준 서울의 냉면 값 평균은 1만692원으로, 자장면(6723원), 칼국수(8731원) 등 면류 중에 단연 비싸다.

 

▶‘시월 관서에 한 자 눈이 쌓이면 푹신한 담요에 이중 휘장 둘러쳐 손님을 잡아두고는 갓 모양 냄비에서 노루 고기 익히고 길게 뽑은 냉면 가락에 송채무침 곁들인다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시에도 냉면이 등장한다. 당시만 해도 메밀 껍질을 벗겨 가루로 만들고, 귀한 고기를 삶아서 만드는 냉면은 겨울철 별미요, 아무나 못 먹는 ‘반가의 음식’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정착하면서 여름철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아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2018년 평양 옥류관 오찬에서 리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이 평양냉면 먹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계 총수들을 향해 면박을 줬다. 한국서 냉면 먹을 때 그런 타박 줄 사람은 없지만, 치솟은 냉면 값 때문에 목구멍에 술술 넘어가기 힘든 음식이 되어간다. 단숨에 후루룩 먹다가는 사레 들릴 판이다.

 

-강경희 논설위원, 조선일보(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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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양냉면을 모른다

 

6·25 이전부터 평양냉면은 한반도 전역에서 팔리고 있었다

 

전라도로 출장 간 사람이, 그곳에서 괜찮은 평양냉면 가게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육이오 전쟁 때 한반도 북부에서 피란 온 사람들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동하면서 평양냉면을 퍼뜨렸기 때문에 전라도에 잘 없는 게 아닐까 추측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최근 들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나하나 살펴보려 한다.

나의 아버지 쪽 집안은 평안북도 구성이라는 곳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일본이 항복하고 한반도 북부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아버지 쪽 친척들은 스파이를 고용해서 몇 사람씩 38선 남쪽으로 넘어왔다. 첩자를 고용해서 친척들을 한국으로 빼 오는 작업을 주도한 나의 할아버지는, 정부 기관에서 근무하면서 전국 곳곳으로 전근 다녔다. 그렇게 부산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평양냉면이 너무 먹고 싶어서 한밤중에 지프차를 몰고 전라도 광주까지 가서 먹고 왔다. 평안도 출신인 할아버지가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맛있는 평양냉면 식당이 전라도 광주에 있었던 것이다.

광주뿐이 아니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있는 군산, 그리고 황해도와 인접한 인천에도 훌륭한 평양냉면 식당이 많다. 광주, 군산, 인천 같은 한국의 서쪽 지역에 훌륭한 평양냉면 식당이 있는 이유는, 육이오 전쟁 때 LST선(전차 상륙함)이 북한 서해안 지역의 피란민들을 실어다가 이곳에 내려주었기 때문이다. 함흥냉면이 흥남에서 부산으로 LST선을 타고 한반도 동해안 라인을 따라 부산까지 내려왔다면, 평양냉면은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LST선을 타고 한반도 서해안 라인을 따라 인천, 군산, 목포, 그리고 광주 등지에 전해졌다.

요즘에는 평양냉면 하면 서울, 함흥냉면 하면 부산이라는 식의 공식이 있는 듯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평양냉면은 육이오 전쟁 때 피란민이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한 음식일까? 1931년 5월 17일 자 조선일보에는 전라도 광주 시내에 불이 나서 조일냉면옥이 피해를 보았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조선시대부터 유명했던 평안도의 평양냉면과는 별도로, 식민지 시대에 이미 평양냉면은 한반도 전역에서 팔리고 있었다.

또 예전 냉면이 겨울 음식이었다면 요즘 냉면은 여름 음식이 되었다. 예전에는 여름만 되면 냉면 먹고 집단 식중독에 걸렸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고기 국물을 우려내는 고기와 냉면 육수가 빨리 상하고, 겨울에 강의 얼음을 떠다가 여름에 쓰다 보니 수인성 질병에 걸리기 쉬웠던 것이다. 이렇게 겨울 음식이던 냉면을 여름 음식으로 바꾸어준 것은 조미료 회사인 아지노모토가 개발한 MSG, 그리고 냉장고의 보급이었다.

이처럼 한국의 평양냉면은 수백 년에 걸쳐서 쉼 없이 그 형태를 바꾸었고, 그 변화 과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래서 평양냉면을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평양냉면을 모른다고.

다만 내가 아는 것이 하나 있다. 누군가 평양냉면에 대해 잘 안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평양냉면이 겪은 수백 년 역사를 잘 모른다고 고백하는 것임을 말이다. 그런 식의 맨스플레인(mansplain·남자가 자꾸 가르치려 드는 것) 아닌 면스플레인(麵splain)을 들을 때마다, 냉면은 젓가락으로 가락을 들어서 식초를 뿌려 먹어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를 듣는 듯해서 체할 것 같다. 자유민주주의 한국의 시민 개개인은 자신만의 평양냉면 먹는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평양냉면의 발전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면스플레인 여러분, 같이 간 분들이 가위로 면을 자르든, 식초를 뿌리든, 계란을 나중에 먹든 부디 상관하지 마소서.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조선일보(20-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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