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101 빌딩은 왜 솥을 쌓아올린 형상인가]
[건축 속 과학]
타이베이 101 빌딩은 왜 솥을 쌓아올린 형상인가
[김두규의 國運風水]
풍수는 미신에 그칠까 대만에서 본 풍수의 미래
대만 타이베이의 랜드마크인 101빌딩 전경. 입지부터 전통 풍수를 참고했고 8개 층씩 묶어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솥을 쌓은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김두규 제공
‘미신으로서 풍수는 소멸할 것인가, 아니면 국제적 성장 산업으로 커 갈 것인가?’ 최근 서구에서 출간된 몇몇 풍수 학술서들이 제기하는 질문이다. 자본주의의 공간 정복(capitalism’s conquest of space·부동산 투기)에 영감을 불어넣는 풍수, 풍수의 서구화, 풍수의 상업화 등이 키워드다.
영국 리버풀대 마데듀 교수가 출간한 ‘풍수와 도시(Feng Shui and the City·2021)’가 대표적이다. 마데듀 교수는 “건축 풍수는 해당 건축물과 부동산 가치 증대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까지 이롭게 하는 문화적 관계항(cultural referent)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는 지금의 건축 설계에서 풍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풍수는 고전 해독과 오랜 실무를 통해서 터득된다. ‘풍수의 땅’ 타이완·홍콩 말고도, 건국 초 풍수를 부정했던 사회주의 중국도 2000년대에 들어와 ‘하나의 문화’로 공식화하였다. “문화가 건축 계획을 규정한다(culture shapes planning)”라는 문장이 나온 이유이다.
풍수가 반영된 건축물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가? 서울의 랜드마크 롯데타워에도 풍수 관념이 드러난다. ‘123′층이란 숫자(1→2→3으로 확장), 555m(5는 중앙을 상징), 석촌호수와 한강 사이에 위치(물은 재물운 향상), 타워의 붓 모양(문방사보 가운데 으뜸이 붓) 등이 그 흔적이다.
그런데 풍수 문화를 의도적으로 반영한 건물이 있다. 대만 여행의 필수 코스인 타이베이 ‘101빌딩(101大廈)’이다. 서구 첨단 과학과 동양 풍수 미학의 합체이다. 풍수는 건축·조경과 더불어 중국 건축의 3대 지주였다. 어떻게 풍수가 반영되었을까?
입지부터 전통 풍수를 참고한다. 지금의 타이베이는 청나라 때인 1875년 타이베이 성(城) 건축에서 시작한다. 처음에는 북극성을 중심축으로 남북축의 성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런데 북극성은 제왕의 별이다. 왕성이 아닌 지방성의 격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북동쪽 칠성산으로 방향을 13도 틀어서 성곽의 위치를 정하였다. 대신에 성문과 주요 교차로는 칠성산의 기운을 받게끔 북두칠성을 형상화하였다. 101빌딩은 북두칠성 국자 모양에서 자루 끝부분에 자리한다. 북두칠성의 생기와 왕기(旺氣)를 받겠다는 의도였다.
대만 타이베이의 101빌딩. /김두규 제공
‘101빌딩’ 이름부터 풍수이다. 원래 이름은 ‘국제금융센터’였다. 그런데 공사 과정에서 사고가 빈발하여 사상자가 났다. 이에 이름을 정식으로 ‘101빌딩’으로 바꾸었다. ‘101′에서 일(一)은 양, 0은 음, 즉 ‘양음양’ 구조로 팔괘의 이괘(離卦: ☲·101)를 상징한다. 이괘는 빛[光]과 문화를 뜻한다. 중국 문화의 진수를 구현한다는 뜻이다.
빌딩 27층부터 90층까지 64개 층을 8개 층으로 묶어 솥[정·鼎] 모양으로 만들었다. 8개의 솥이 차곡차곡 위로 포개져 있는 모습이다. 8[파·八]은 재물의 번창[파차이·發財]을 뜻한다. 8개 층으로 된 솥이 8개가 있으니 ‘88′이 중복된다. 솥은 국가권력을 상징한다. 그 솥 8개가 중첩하여 올라가니 마디마디마다 흥한다[절절고승·節節高升]는 뜻이다. 네모 구멍이 뚫린 중국 옛날 돈을 형상화한 마스코트(mascot·길상물)를 외벽에 붙였다. 중국이 세계 최초로 돈을 주조한 국가였음을 알림과 동시에 돈 많이 벌라는 축원이다.
풍수 미학을 구현시킨 동력은 무엇일까? 건축가 리쭈위안(李祖原·1938~) 덕분이다. 대만에서 대학 졸업 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전통을 토대로 ‘새로운 건축’을 추구하였다. ‘동도서기(東道西器)’가 가능했다. 오세훈 시장이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100층 건물을 짓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적 불명 건축물이 난무하는 우리나라에 첨단 과학과 전통문화를 녹여낼 한국의 ‘리쭈위안’을 기다린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조선일보(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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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속 과학
한계에 맞서는 '초고층 건축' 타이베이101 빌딩 꼭대기엔 왜 '커다란 추'가 매달려 있을까?
'바람 극복'이 최대 과제
내부에 균형장치 달아
강풍에 휘말린 후에도 제 자리 찾아가도록 해
외부 디자인도 바람 고려
위로 갈수록 뾰족하게 모서리는 둥글게 만들어
미국 작곡가 존 올던 카펜터는 1926년 발레 음악 '마천루(摩天樓·skyscraper)'를 썼다. 그는 이 작품에서 미국 대도시에서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가는 빌딩 숲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유머스럽게 묘사했다. 오랜 기간 초고층 빌딩의 대명사였던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도 이 시기에 지어졌다.
1951년 세상을 떠난 카펜터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마천루는 좀 더 극적인 작품으로 발전했을 수 있다. 카펜터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던 건축설계 기법과 시공 기술이 발달하면서 초고층 빌딩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초고층도시주거협의회(CTBUH)에 따르면 올해 완공되는 높이 200m 이상의 초고층 빌딩만 240동에 이른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칼리파'다. 약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를 투자해 2009년 10월 완공했다. 꼭대기 부분의 첨탑을 합치면 높이 829.84m, 첨탑을 제외해도 630m에 이른다. 하지만 부르즈 칼리파의 영광은 채 10년을 채우지 못할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건설 중인 제다킹덤타워는 2019년 완공되면 높이 1007m로 인류가 만든 구조물 중 처음으로 1㎞를 넘어선다.
초고층 빌딩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적(敵)은 바람이다. 무턱대고 튼튼한 뼈대를 쌓기만 한다고 해서 초고층 빌딩을 짓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바람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더 빠르고 강하게 분다. 특히 바람은 빌딩을 타고 지나가면서 일종의 소용돌이를 만든다. 직선으로 불던 바람이 모서리에 부딪히면서 회전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다. 이 소용돌이는 빌딩을 밀었다 잡아당겼다 하면서 빌딩의 강도를 약하게 만든다. 철골이나 콘크리트 같은 대부분의 건축 재료는 위에서부터 누르는 힘에는 강하지만 측면에서 밀거나 잡아당기는 힘에는 잘 버티지 못한다.
초고층 빌딩에 치명적인 소용돌이를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과학 기법이 사용된다. 우선 건물의 외형을 바람에 잘 견디도록 만드는 것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건물의 폭을 좁게 만들어 바람을 덜 받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 3월 완공된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이런 형태이다. 여기에 빌딩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어 바람이 잘 타고 흐르도록 하면 소용돌이가 덜 생긴다.
타이베이101빌딩 상층부에 설치된 공 모양의 추 ‘댐퍼’. 바람의 영향을 상쇄한다. / 위키미디어
중국 상하이 세계금융센터처럼 아예 빌딩 윗부분에 구멍을 뚫어 바람이 통과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스웨덴 말뫼의 터닝토르소빌딩은 건물 전체를 비틀어 바람 길을 만들었고, 대만 타이베이101빌딩은 모서리를 깎은 블록 형태를 쌓아 올려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했다. 초고층 빌딩이 다른 빌딩에 비해 모두 비슷한 형태로 지어지는 것도 결국 바람을 피하기 위한 과학이 공통으로 적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바람의 영향을 전혀 안 받을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도입한 것이 바람의 영향을 상쇄해주는 장치인 '댐퍼(Damper)'이다. 일종의 충격 완화 장치이다. 타이베이101빌딩에는 거대한 공 모양의 추를 상층부 건물 안에 매달았고, 캐나다 밴쿠버 원월드타워 같은 일부 건물은 꼭대기 부분에 물을 반쯤 채운 댐퍼를 활용하기도 한다. 공중에 매달린 추나 물은 빌딩이 바람에 부딪히거나 소용돌이에 휘말려 흔들릴 때마다 원래 위치로 복원되도록 돕는다.
이를테면 빌딩이 오른쪽에서 바람을 맞으면 왼쪽으로 움직인다. 이때 댐퍼는 공중에 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오른쪽으로 치우친다. 덕분에 댐퍼는 빌딩이 많이 움직이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초고층 빌딩의 한계가 어디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언젠가는 자연이 만들어낸 8848m 에베레스트보다 높은 빌딩이 등장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더 높은 빌딩을 지으려는 인간의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수천 년 전 쓰인 성경에 하늘에 닿고자 쌓았던 바벨탑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초고층 빌딩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일지도 모른다.
-박건형 기자/김수지 프랑스 공인건축사, 조선닷컴(17-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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