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69회! 명절이나 신문사 사정으로 건너뛴 몇 차례까지 감안하면 거의 13년 동안 매주 이 칼럼에 글을 쓴 셈입니다. 물론 대한민국 언론 역사에서 아마 영원히 깨지지 않을 23년 기록의 ‘이규태 코너’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이규태 선생님은 1983년 3월부터 2006년 2월 23일까지 23년 동안 무려 6702회에 걸쳐 글을 쓰셨습니다. 일요일과 몇몇 공휴일을 제외하곤 매일 쓰신 선생님 앞에서 감히 매주 참신한 글감을 떠올리느라 힘들었다고 징징거릴 수는 없습니다. 여하간 이제 저도 펜을 내려 놓으렵니다. 긴 세월 한결 같은 마음으로 저를 품어준 조선일보에 머리 숙여 고마움을 표합니다.
돌이켜 보니 제가 신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어언 26년째로 접어듭니다. 참 오래도록 많이도 썼네요. 신문에 글을 쓰는 논객의 삶을 흔히 ‘지적질’이라고들 합니다. 지적질, 맞습니다. 정부나 우리 사회의 허물을 꼭 집어 훈계하는 글을 쓰다 보면 종종 “죄 없는 자만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던 예수님 말씀이 비수처럼 꽂힙니다. 이제 저도 어쭙잖은 돌팔매를 멈추고 남은 삶 자신을 돌아보며 지내렵니다. 그동안 제 글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셨던 독자 여러분께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개미박사’라면 개미에 관한 글이나 쓰지 왜 주제넘게 사회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느냐 꾸짖은 분들께는 구차한 변명을 하나 하렵니다. 저는 개미뿐 아니라 사회를 이루고 사는 모든 동물의 생태와 진화를 연구하는 사회생물학자입니다. 인간 사회도 당연히 제 연구 주제입니다.
청마 유치환 선생님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라고 하셨지만, 저는 솔직히 그동안 넘치도록 주신 여러분의 사랑에 마냥 행복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훨씬 더 많이 사랑해주신 것은 분명하지만 저도 여러분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고백하렵니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조선일보(2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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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들의 자랑질
몇 년 전 한 중국 고위 관리가 5년 안에 여성 1000명과 성관계를 갖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다가 136번째 만에 현장에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런 허황된 포부를 지닌 사내들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다. 조선 중기 선조 때 이조판서까지 지낸 송언신도 '평생 여성 1000명과 자겠노라' 호언한 희대의 한량이었다. 민심을 살핀답시고 돌아다니며 여염집 아낙네를 탐하고 장안의 기방을 주름잡았지만 '원대한 목표'를 달성했는지는 의문이다.
얼마 전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시대 대표 한량 휴 헤프너가 세상을 떠났다. 그 역시 2013년 어느 인터뷰에서 '1000명 이상의 여성과 잠자리를 했노라'고 털어놓았다. 올해 68세인 프로 레슬러 릭 플레어는 1만명을 들먹였고, 63세로 '요절한' 미국 NBA 스타 센터 윌트 챔벌린은 15세에서 55세까지 40년 동안 무려 2만명의 여성을 상대했다고 허세를 부렸다. 비교적 간단한 산수지만 애써 시간을 내어 계산해본 사람들에 따르면 챔벌린과 플레어의 기록은 뻥튀기일 가능성이 커도 헤프너의 자랑질은 상당히 현실적이란다. 챔벌린은 매일 1.4명, 플레어는 매주 5명과 관계를 한 걸로 나오지만, 91세까지 천수를 누린 헤프너는 한 해에 16명씩, 그러니까 매달 한 명 남짓 새로운 여성과 즐긴 셈이다. 실제로 그가 70·80대에도 여전히 즐겼는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지난 1999년 5월 칸 영화제에 참석한 미국 유명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창업자 휴 헤프너(가운데 남성)가 '플레이메이트'라 불리는 여성 모델들에게 키스를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진화생물학에서는 이 같은 수컷들의 허세보다 실세에 주목한다. 제아무리 많은 여성을 품었어도 헤프너는 고작 자식 넷을 남기고 떠났다. 비록 27세에 요절했지만 자식의 수를 가늠하기 어려운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진화적으로는 더 '성공한' 수컷이다. 기네스북은 모로코 이스마일 전 황제의 자식이 888명이라고 기록한다. 재위 기간 55년 동안 부인 넷과 첩 500명을 거느린 황제로서 충분히 가능했으리라는 게 학자들의 계산이다. 임신 적기를 살피며 잠자리를 했다면 여성 65~110명으로도 너끈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조선일보(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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